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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긴 문장이지만 꼭 한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左派의 實體와 우리의 對應
****한국발전연구원의 4월 조찬강연내용***
姜 吉 模
<프리존뉴스 사장>
1961년 전북 益山 출생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중앙대의원회 의장
반미청년회 연세대학교 교육책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 간사
공보처 전문위원
한국언론정보연구원 기획실장
한나라당 부대변인
현재 : 프리존뉴스 대표 /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조직위원장
1. ‘주체의 길에서 돌아온 탕아’의 고백
저는 1979년쯤, 선배를 잘못 만나서 이른바 의식화 교육을 받기 시작
80년도에 중앙대 법대에 들어갔고,
2학년때 권고자퇴로 학교를 나와서 기독교운동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공안기능이 제대로 살아있어서 이른바 사회주의 혁명꾼들이 종교의 그늘에 숨어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82년도에 다시 연세대 신학과에 들어갔습니다.
1학기를 마치고 소총수로 군대에 갔다와서
다시 복학한 것이 1985년이었습니다.
제가 군대에 가기 전이었던 80년 전후만 하더라도 운동권들이 주로 읽었던 ‘자본주의 구조와 발전’이라고 하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서적은, 조잡하게 일본판을 복사한 것을 들고 다녔는데,
85년도에 복학해서 학교에 가보니 이른바 이념서적만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이 번듯하게 성업 중이었고, 몇 년 전만해도 운동권들이 몰래 숨겨 다니던 마르크스 레닌주의 서적들이 보란 듯이 제본된 형태의 책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군대에 가있는 3년동안 대한민국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구나”하며 감탄을 했었습니다.
저는 복학하자마자 바로 이념서클에 들어갔고,
87년에는 지하(under)조직의 지도부가 되었습니다.
당시 연세대 반미청년회는 주로 대외투쟁을 맡았고,
고려대쪽 반미청년회는 조직사업을 주로 맡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연세대 반미청년회원들 주도로 ‘구국결사대’란 것을 조직해서, 미문화원과 여당 등에 폭탄 테러 등을 기획, 실천하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이 ‘구국결사대’가 야쿠르트병으로 제조한 사제폭탄을 들고 미문화원에 들어간 것이 공안당국에 의해 ‘반미청년회 조직’의 일부가 적발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당시 안기부가 적발했던 반미청년회원들은 미리 조직에서 잡힐 사람으로 정해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총책이었던 조혁이라는 친구 정도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정도에 그쳤을 뿐, 반미청년회의 핵심멤버들은 거의 무사했고,
그들이 각 학교에서 키우고 있었던 주사파 조직도 건재했습니다. 따라서 반미청년회의 직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었던, 적게는 수백명 혹은 천여명에 이르는 반미청년회 산하 학생운동 조직원! !
사회운동으로 처음 진출할 때에는 반미청년회원들 쪽에서 당시 평민당 쪽으로 들어가라는 권유가 있기도 했었습니다만, 저는 기독교운동 경험이 있었기에 당시 기독교 사회운동 연합이라는 운동조직에 들어가 활동했습니다.
그때 그 조직은 얼마 전까지 노무현정권에서 시민사회수석을 맡았던 황인성씨 등이 지도부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동구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저도 과연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최선의 길이고 가능한 길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에서,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통혁당 출신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ML주의 원전으로 돌아가 공부를 통해 한국사회 혁명의 길과 그 가능성을 점검한 결과 도저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안 된다는 결론을 얻고 혁명을 포기 점진적인 개량운동으로 가자고 선언하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의 대학사회는 자연스럽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외치는 주체 빨갱이들을 양산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처음에 의식화 교육을 받을 때 주로 선배들이 유혹하는 첫 미끼는 역사문제였습니다. 좌파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역사투쟁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80, 90년대에 집중적으로 양산된 대한민국 좌파세력들이 RP작업이라고 하는, 후배들을 키우는 과정의 주요한 매개가 역사문제였습니다.
<역사왜곡>
남한은 매국세력이 만든 나라, 통일을 막고 분단을 선도했던 매국·반민족 정부이고,
북한은 일제의 극한 탄압 속에서도 끝까지 항일투쟁을 했던 영웅들이 만든 정권이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신 위대한 김일성 장군님을 남한에서는 건달 김성주라고 왜곡선전하고 있지만 실제 독립운동사에서 이름을 날리는 장군이었다.”고 하면서 외국 사람들이 쓴 책을 보여줍니다. 그 책에 보면, 김일성은 실존 인물이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을 통해서 ‘진짜 역사가 이런 것이었구나. 그 동안 나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군사독재 세력에 의해서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혀있었구나.’라고 자조하게 만들면서, 꿈에 부푼 대학 1년생을 지적으로 오만하게 만들어줍니다. 그 오도된 역사를 진짜라고 믿으며, 이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을 내리 깔아보게 만들어줍니다. “저것들은 미제의 꼭두각시가 되어있으면서도 자신들이 꼭두각시인지도 모르는 한심한 인간들. 그러나 나는 역사의 진실을 바라보며 자주성, 주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비로소 거듭난 것이다! ! ! .” 대학 1학년 시절에 그러한 자부심은 저에게 있어 대단히 큰 긍지였고 프라이드였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점점 더 대한민국의 근본 모순인 분단 모순이나 계급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것보다 우선해서 통일부터 해야 대한민국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해결되겠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됩니다. 통일을 하려면 북한정권과 연대할 수 있는 ‘연공정권’을 남한에 수립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연공정권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주체사상과 만나는 접점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주체사상은 당시 투쟁방법론에 있어서 다수의 운동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전대협(全大協)의 구호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중투쟁전술의 중요성을 가르친 것이 주체사상적 혁명론의 방법론적 강점이었습니다.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주의그룹)쪽은 대중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 투사들이 먼저 앞장서서 혁명의 길을 개척해야한다고 해서 대중과 괴리된 투쟁을 즐겨했다면, 그런 투쟁에 대해서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학생 운동가들에게 주체사상에 입각한 혁명전술전략론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왜 주사파가 되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버렸다는 말씀밖에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실 개별주체들은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심적인 갈등도 있고 또 수령론을 받아들일 때에는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정상인데,
하나의 집단의식으로 묶어 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신이 주사파 운동권 내에서 지위를 좀 더 높이고 싶은 욕구를 가진 조직원들은, 더욱 더 강력하고 경쟁적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외치게 된 것입니다.
2. 주사파 출신들의 권력 장악 실태
앞에 말씀드렸던 반미청년회는, 당시 안기부 수사 자료에 보면 1988년 1월 25일에 결성된 주체사상 학생운동 지도조직이라고 되어 있는데, 형식적인 결성은 그때쯤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학생운동의 지하조직 핵심들이 서로 연결하는 커넥션들을 갖고 있었고, 그 커넥션은 이미 주사파에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반미청년회는 그렇게 각자 학교별로 산개되어 활동하던 주사파 학생운동 리더십들을 총결집했던 단체였습니다. 이미 철저하게 주체사상으로 물든 학생운동의 지도역량을 조직적으로 묶어 세워 주체의 혁명 역량과 투쟁역량을 더욱 극대화하려는 것이 조직 결성의 목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직 결성 전후로 각 대학별 조직들은 후배 양성 교육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연세대학교 교육책으로서, 연세대 내 12개 단과대학에서 대학별로 앞으로 열심히 운동할 가능성과 자질이 있는 학생들을 엄선해서 단계별로 주체사상 교육을 시켰습니다. . ‘정치학교’라는 이름으로 실시된 주체사상 교육에서는, 주체혁명이론과, 수령론 등을 주로 가르쳤습니다. 그 때 가르친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는 다른 곳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반미청년회라는 조직을 통해서 길러졌던 사람들 중에서 현재 대한민국 권력 내부에 포진하고 있는 인물들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입니다. 그 사람이 최근에 대통령의 대북밀사로 북측과 접촉했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두고, 프리존 뉴스 편집인 칼럼에서 ‘안희정을 대북밀사로 봐야 하느냐, 아니면 대남밀사로 봐야하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한 바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반미청년회에서 활동했었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외쳤던 과거 자신의 사상적, 철학적 편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한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입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핵심 권력 포스트에 진출한 ‘공인 중의 공인’이라면, 최소한 과거의 잘못된 사! ! ! 상 편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공개적으로 아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저는 적어도 그렇게 확신합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 비밀특사로 북한에 갑니다. 북한쪽에서는 “오냐, 내 새끼”하고 반길 것입니다. 이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북한 권력측은 속속들이 압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외치던 사람이라면, 북한 권력측에서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장군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 주사파들의 속성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권력집단 내부에 ‘자기 새끼’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대한민국 정부를 더욱 더 느긋하고 편안하게 부려먹을 수 있는 하수인쯤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주사파 출신>
* 안희정, 제1부속실장과 제2부속실장, 청와대 대변인, 부대변인, 주요 정책부서 행정관
* 반미청년회, 한총련, 전대협 출신 국회의원 15명 정도와 수백명이 집권여당에 있다.
* 시민단체 권력은 사실상 얼치기 좌파들이 다 만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반미 이벤트’가 생기면 3백, 4백 여 개의 시민단체가 자동으로 이름을 걸고 나옵니다. 그 시민단체들의 핵심적 활동가들이 99% 이상 주사파 출신입니다.
언론권력도 예외가 아닙니다. 2007년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서 방송사 사장들을 바꾼다고 해서 방송이 바뀔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방송작가, 피디, 기자 등의 상당수가 이른바 386 운동권적 집단정서, 내용적으로 주사파 코드의 영향을 받고 있고, 알게 모르게 뇌 한쪽 구석에 이른바 ‘주사파 메모리칩’을 내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법조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민주 어쩌고저쩌고 하는 법조단체 내에서 열심히 뛰는 젊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주사파 출신이거나 암묵적으로 그 코드에 동의하고 있는 경우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인터넷 권력도 두말할 것 없이 대한민국 얼치기 좌파들이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애국적 우파 네티즌들이 그 동안 엄청난 열세에도 불구하고 고군분투해왔습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지금 온라인공간에서 좌우파가 표면상으로는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음
민주노동당은 원래 PD정당이어야 하는데 민주노동당도 내부를 보면, 머리 숫자에서는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그룹), 이른바 주사파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형식상 대표는 주사파쪽에서 미는 사람이 대표를 하고 있고 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은 PD파들인데, PD파들도 주사파 눈치를 보느라 자기 입장을 당당하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권력구조
노무현 권력= 당초 386운동권 권력= 주사파 권력=한국통치권력= 대한민국 적화단계진입
좌파에서 우파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진 안병직 교수는 “남북한 권력은 사상적 혈연관계”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혈연관계에 가까운 사이= 이는 적화되었다는 이야기를 좀 부드럽게 표현한 것
얼치기 친북좌파 권력은 이 힘의 우열관계를 정확하게 타산하고 있습니다.
이 적화된 정권의 행동양태는 김정일 권력에게 뭔가를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의 화해, 호혜평등, 상호발전을 위해서’ 라는 식의 기만적인 토를 달아서 직간접적으로 김정일 권력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면서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형식으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사례:
세계사에서 가장 자랑스린 성공신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기본조건들을 허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 대표적인 것이 한미동맹 허물기입니다.
*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 친일과거사 청산문제가 대한민국 국가권력이 지향하는 가장 큰 아젠다로 부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친일 아젠다는 김정일 권력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대학 1학년생들을 꼬실 때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만든 정권이요,
북한권력은 항일투사들이 만든 정권”이라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친일문제를 가지고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이 속내로는 김정일 정권의 이해관계에 가장 기여하는 수단으로 보고있음
* 전교조가 중심이 되어서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다 망쳐놓았습니다.
제가 80년대 초에 전교조를 지원하는 사회단체 중심의 공동대책위원회에서 간사를 했었는데, 전교조의 코어집단도 주사파가 맞습니다.
이들이 사학까지 손을 보려고 하는데, 사학은 전교조의 손에 잘 안 들어옵니다. 그래서 사학법 개정안을 만들어서 밀어붙였습니다.
3. 대한민국 얼치기 좌파권력의 실체와 대응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mainstream)이 바로 주사파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그 다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우리의 대응이 보다 현실적으로 힘을 가질 수가 있고 효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 얼치기 좌파권력의 실체와 속성을 제대로 인식하라
김정일은 청와대, 정부, 언론, 시민단체에 있는 사람 등 각자가 자신의 파트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잘 해나가는 ‘공인 간첩시스템’이 훌륭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굳이 남파간첩을 내려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386코어집단은 현재는 ‘권력’을 기반으로 뭉쳐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집단의식과 조직력이 더욱더 강화되었으면 강화되었지, 약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DJ와 YS를 만나보면 YS는 북한이나 주사파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DJ는 당시 주사파들이 밤마다 듣던 이른바 ‘한민전, 구국의 소리 방송’에서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2) 얼치기 친북좌파들과 사상전선을 분명히 세우자
대한민국에서 좌우 이념논쟁이 벌어진다고 하는 것이 좀 웃기는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이념논쟁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권력을 얼치기 좌파들이 붙잡고 대한민국을 친북좌파 이념으로 머리채를 잡고 휘두르고 있는데, 여기에서 좌우 이념논쟁 혹은 좌우문제를 거론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좌파들의 방종과 만행을 방치하자는 이야기와 다름없습니다. 나라 전체가 왼쪽으로 쏠려갔으면 중심을 잡고 있는 분들, 균형감각을 가진 분들이라면 다 오른쪽으로 가야합니다. 그렇게 해서 왼쪽으로 쏠린 균형을 가운데로 가져와야 합니다.
3) 결국은 실천이다
대한민국의 저력은 제대로 된 지도자나 구심점이 없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데 반해, 저쪽은 전체적인 역량 비교에서 처지더라도 하나의 단일대오로 똘똘 뭉친 집단입니다. 북한권력의 힘은 무섭습니다. 이들이 여전히 건재해서 얼치기 친북좌파권력의 베이스캠프의 역할, 지도자의 역할, 방향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현실에서 나쁜 소식 중 나쁜 것입니다. 따라서 정권교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이후에 어떻게 될 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나쁜 소식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대한민국파들이 정권교체의 수단으로 써야 할 한나라당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4. 결론
첫째, 2007년 12월 정권교체가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꾸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상전의 요체는 역사투쟁이고 역사교육입니다. 좌파들이 더러운 역사로 오염시킨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찾아내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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