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
강수남
스피치 원장께서 두 달 후, '청도반시마라톤대회' 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완주 할 수 있을까' 조금은 망설였지만, ‘나를 시험해 봐야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동참 의사를 밝혔다. '약속은 곧 실천이다' 는 것이 평소 생활신조였기에.
착착 준비에 들어갔다. 일요일 저녁, 어린이회관에 모여 지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몸 풀기에 들어갔다. 발목 돌리기·고관절 누르기· 양팔 아래위로 흔들기 등, 하체부터 상체까지 온 몸을 푼다. 발목 부상을 막고자 가벼운 점프는 기본이고. 지도 선생님과의 실전 트레이닝이다, 함께 뛰면서 기본 동작부터 전체적 방법을 수시로 던진다. '장거리는 체중의 부하가 걸리는 무릎, 허리 보호다. 자세가 중요하다. 시선은 앞사람의 허리를 쳐다보듯 15도 각도로 고정 하고, 어깨는 권투 경기에서 상대에게 가벼운 훅을 날리듯 부드럽게 흔든다. 자신에게 맞는 호흡법을 찾아야한다.' 는 등, 자상한 가르침에 적응도가 빨랐다.
두어 달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나의 목표는 가장 짧은 5.9킬로 구간이다. 밤 열 시 넘어 연지 못을 돌았다. 혼자 뛰는 마라톤은 재미없고 따분했지만, 달리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한적한 시간대라 사람도 무섭고 비치는 불빛마저 두려웠다. 수시로 어린이회관을 찾는다. 운동장 여러 바퀴 달린 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벤치에 앉았다. 휴식은 늘 안온하다. 창조주는 인간들의 생활 리듬에 활력을 넣고자 휴면할 수 있는 밤을 창조했을 터이다. 벤치에 비스듬히 기대어 사위를 조망한다. 하늘을 덮은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뭉게구름이 마냥 평화롭다. 다양한 나무들이 서로 몸을 비빈다. 눈을 감고 그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본다. 나뭇잎 마다 소리가 다르다. 늦게 티가 난다는 느티나무는 샤르르, 아기 손 닮은 단풍은 포르르르, 회화나무는 으스스스.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소리가 싱그럽다. 영혼을 파고드는 바람소리는 어떠할지. 나무는 오래토록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생을 맡기겠지만, 나의 마라톤은 일회성일까 아니면 장기성일까?
드디어 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이른 아침, 동료 여러 명과 함께 청도 공설 운동장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응원 차, 선배들이 준비해 온 간식의 온기는 향기 머금은 무화과처럼 달콤하다. 긴 휘슬 소리에 맞춰 20킬로 달리기가 출발하고, 뒤이어 10킬로도 뒤를 따랐다. 내가 선택한 5.9킬로 마라톤은 설렘으로 시작했다. '즐기면서 달리자. 끝까지 완주하자.' 마음을 다잡았다. 달리는 구간은 환상상적이다. 길섶에는 운무가 곱게 내려앉고 감나무는 탐스런 주홍 감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체력도 다지는 일석이조를 직접 창출하는 순간이다.
짧은 구간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다. 반환점을 도는 순간, 점점 숨이 가빠오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구슬땀은 이마에 맺혀 온 몸과 손등을 적시고 발등에 떨어진다. 포기하고 싶었다. 갈등이 무시로 일어난다. '아니야, 해내야 해.' 느슨해지는 마음을 곧추 세우며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왜 달리고 있는가?' 나의 정수리를 파고드는 질문들이 분수처럼 분출한다. 사랑하는 가족, 경영하는 학원에 원아들, 내가 필요한 대상들이 아슴하게 다가온다. 골인 지점이 눈앞이다. 마지막 안간힘을 쏟아 부었다. 마라토너가 기록을 경신코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처럼.
목표를 달성했을 때 희열은 말해서 무엇 하리. 해냈다는 자신감은 나에게 무형의 자산으로 남았다. 다음에는 십 킬로에 도전하여 더 성숙한 나를 만나고 싶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물음표를 던지면서.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짧은 시간에 질주하는 것이 단거리라면, 마라톤은 자기와의 끈질긴 투쟁이다. 인생도 인고의 삶을 헤쳐 나가는 긴 여정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