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의 정려는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선비촌 마을에 있다. 이 마을의 뒷 산에는 서포의 할아버지 허주공 김반과 아버지 충정공 김익겸의 묘가 있다. 지난 11월17일(음력 10월 12일)은 허주공의 세일사(歲一祀)가 있었다. 歲一祀란 일년에 한번 지내는 제사이다. 4대 봉사(奉祀)는 방안 제사를 하고 그 이상은 시제로 모신다고 한다. 4대봉사는 부, 조, 증조, 고조이며, 그 이상 5대조부터는 세일사를 한다. 허주공은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 선생의 장자를 잇는 가문으로 수 백년동안 제례의 전통을 전통을 잇고 있다. 허주공의 세일사에 참석하기 전 허주공의 손자가 되는 서포 김만중의 정려를 돌아 보았다. 찾아가는 길은 북대전 IC에서 나와 대전시내 방향으로 고속도로 지하를 지나자마자 좌회전하여 전민동 방향으로 2-3km가면 한국한의학연구원이 나온다. 이 연구원 앞쪽 마을 안쪽에 서포의 정려가 있고, 정려에서 동쪽으로 100미터 가면 김만중소설비와 함께 정려가 둘이 있고 허주공의 도비를 볼 수 있다.
정려는 나라에 모범이 되는 분을 기리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전각을 짓고 그 안에 조정에서 내린 글이 있다. 이곳에 서포의 석상은 본래 나라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근래에 만든 것이다.
김만중의 정려를 해석해보면 효자충신이며, 품계가 숭정대부로 예조판서 겸 의금부사를 지내으며(行), 춘추관의 성균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받았으며(知) 문효공이란 익호를 받은 김만중의 문이다. 조선숙종 32년 4월 정려라 명하다.
허주공 김반의 처이며, 충신정려를 받은 김익겸의 어머니 연산서씨의 정려이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피난 중 적에게 성이 점령당하고 아들 김익겸이 남문에서 폭약을 터트려 자결한 다음 날 자결하였다. 연산서씨의 현판 아래에 김진규의 처 연일 정씨의 현판이 하나 더 있다.
또하나의 정려는 공의 손자가 되는 김진규의 처 연일정씨의 정려이다. 김진규는 대제학에 올랐으며, 김진규가 죽자 계배가 되었으나 27세에 남편따라 죽었다.
허주공 김반의 신도비이다. 신도비는 나라에서 종2품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의 송덕을 기리기 위하여 묘소 앞 길 옆에 세웠다.
첫댓글 유성에 이런 유서깊은 곳이 있구먼,
김박사처럼 주의깊게 관심을 갖고 살펴보지 않으면 그 의미를 누가 알리요,
전국의 어느곳에 가든 살펴 볼 만한 유적이 다 한 두가지 있는데,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게 문제지,
김박이 잘 풀어서 해설해 부니 참 이해하기 쉽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