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제암산에서 탐진강까지 원문보기 글쓴이: 조훈생각
새색시의 녹의홍상을 연상시키듯 가녀린 연초록 꽃대 끝에서 붉게 피어오르는 꽃무릇.
그리움에 진한 멍이 든 걸까? 유난히 짙은 선홍빛을 발하는 꽃잎에서 왠지 모를 애틋함이 묻어난다.
작은 이파리 한 장 없이 껑충한 줄기 위에 빨간 꽃송이만 달랑 피워낸 모습도 독특하다.
화려한 왕관 모양을 연상시키는 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스카라를 곱게 발라 치켜올린 여인네의 긴 속눈썹을 닮았다.
한껏 치장한 그 모습은 누구라도 유혹할 만큼 요염하고 화려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외로움이 배어 있다.
외로운 이들끼리 서로를 달래주려는 듯 무리지어 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선운사 꽃무릇이 유독 눈길을 끄는 건 도솔천 물길을 따라 꽃을 피워내기 때문이다.
맑은 개울가에 핀 꽃무릇은 그림자를 드리워 물속에서도 빨간 꽃을 피워낸다.
불갑사에 비하여 색다른 점은 냇가에 핀 꽃들과 고목나무와 어우러지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선운사에서 가장 많은 꽃무릇을 볼 수 있는 곳은 매표소 앞, 개울 건너편이다.
작은 개울 너머에 온통 붉은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 있어 꽃멀미가 날 정도다.
특히 이른 아침 햇살이 번지기 시작할 무렵, 옅은 새벽안개 속에서 도솔천을 발갛게 물들이는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도솔암에서 천마봉쪽으로 바라본 풍경
꽃무릇 군락지 안으로는 산책로가 나 있어 꽃길을 거닐며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매표소 뒷편, 너른 잔디 마당에도 꽃무릇이 그득하고, 선운사 절집 앞 계곡에도 어김없이 빨간 꽃무릇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어린아이 고사리손 같기도 하고 족두리 같기도 한 선홍빛 꽃송이들
불갑사와 달리 선운사 들어가는 길은 입장료를 3천원씩 내고 들어가야 하지만, 광활한 꽃무릇 단지는 정작 매표소 밖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음껏 꽃구경을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