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아침 러시아 모스크바 한복판 지하철역 두 곳에서 연쇄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38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 비상대책부는 사고 후 "오전 7시 56분쯤 '루뱐카(바구니라는 뜻)'역에 진입한 열차의 두 번째 칸에서 폭탄이 터져 열차 안 승객과 플랫폼 시민 25명이 숨지고 39명이 부상했으며, 8시 40분쯤에는 '파르크 쿨투리(문화공원)'역에서도 폭발이 일어나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사망자는 최소 38명으로, 부상자는 최소 64명으로 다시 집계했다.
폭발 위력으로 미뤄볼 때 루뱐카역에서 발생한 테러에는 TNT 4㎏에 상당하는 폭약이, 파르크 쿨투리역 테러에는 TNT 1.5㎏ 상당의 폭약이 쓰인 것으로 러시아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루뱐카역 인근에는 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본부가 위치해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Medvedev) 대통령 집무실(크렘린)도 2㎞쯤 떨어져 있다. 파르크 쿨투리역 역시 크렘린에서 5㎞ 이내에 있다.
◆사건 배후는 체첸 분리파?
이날 지하철 테러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단체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전체적인 사건 윤곽은 체첸 등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의 자살 폭탄 테러로 굳어져 가는 분위기다. FSB의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Bortnikov) 국장은 이날 테러발생 후 "테러는 북(北)카프카스(영어명 코카서스)의 이슬람 분리주의자들과 연계된 단체들이 자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이타르타스에 말했다.
또 유리 루시코프(Luzhkov) 모스크바 시장은 이날 파르크 쿨투리역에서 회견을 갖고 "CCTV 분석결과 두 명의 여성이 폭탄을 운반했다"고 말했다. 이슬람 분리주의자들과 연계된 두 명의 여성이 테러를 한 것이라는 얘기다.
N-TV 등 러시아 언론들은 이날 아침 8시 러시아워(rush hour)를 전후해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를 두고 '쇼키로반나야 트라게디야 우트라(아침의 충격적인 비극)'라고 표현했다.
아침 시간 출근길에 오르던 무고한 시민 30여명이 사망하는 등 100여명의 사상자를 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테러가 수도 모스크바의 한복판, 그것도 크렘린과 FSB 등 러시아 연방 정부의 최고 수뇌부가 밀집한 건물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것이다.
특히 러시아 최고 실력자 블라디미르 푸틴(Putin)이 2000년 집권한 이후 모스크바 도심에서의 테러는 2004년을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모스크바에서는 2004년 2월 6일 압토자보드스카야와 파벨레츠카야역 사이에서 일어난 지하철 폭탄 테러로 시민 41명이 사망하고 약 250명이 부상한 적이 있어 이번 테러는 6년여 만이다.
◆테러 재개 신호탄 될까 우려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 이슬람 세력들은 1994년과 1999년 두 차례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치렀다가 패배했으나 여전히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특히 작년 4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전임 푸틴 정부가 10년간 체첸공화국에서 진행한 반(反)테러작전을 종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테러 공격은 카프카스 일대를 중심으로 활성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지난해 열차 테러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해온 체첸 반군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Umarov)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지난달 "러시아 전역에서 테러 활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보르트니코프 FSB 국장으로부터 테러 상황을 보고받은 뒤 대(對)국민 연설을 통해 "테러범을 끝까지 추적해서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보안대책에 구멍이 났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든 브라운(Brown)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Merkel) 독일 총리, 버락 오바마(Obama)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은 테러를 자행한 세력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 국민들은 러시아 국민과 함께 극단적인 폭력과 잔악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맞설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