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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4-33 2011.05.22.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우리가 탄 배가 순풍에 돛달고 잔잔한 바다를 항해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때로는 폭풍우에 높은 파도가 이는 험한 바다를 항해 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이 그렇습니다. 내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때로는 가정에 곤궁한 일이 일어나 걷잡을 수없는 어려움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一葉片舟’라는 말이 있습니다. 망망대해에 하나의 이파리 같은 배가 위태롭게 떠도는 모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지켜보는 어떤 가정은 일엽편주처럼 위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 두려움이 몰려오고 어려운 문제에 시달리는 가정이 있습니다.
동 일본 열도가 진도 9.0이라는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순간에 초로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수십만 명의 사상자와 이재민을 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원자로까지 폭발해서 전원 공급이 끊기고 방사선 위협으로 식수와 먹을거리까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일본뿐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지구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가뭄과 홍수, 기아와 전쟁, 각종 암과 신종 플루, 오염된 물과 공기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초라하게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하와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뱀이 유혹으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은즉 눈이 밝아져 벗은 몸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고 부끄러움을 가리고자 했으나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부끄러움이 두려움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8) 이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버리는 부끄러운 존재, 두려움에 떠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9) 하나님은 자비한 음성으로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지금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 이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니다. 사람에게 ‘두려움’이 이때부터 생겼습니다. 사람은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두려움에 대한 대증요법으로 가득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짜내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도저히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를 회개하면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3-4) 모든 두려움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회개하고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천신만고로 광야를 지나온 이스라엘이 광야에 버림받은 이유는 불신앙과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내려다보고 있는 높은 성벽과 그 성에 사는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인 거인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만 두려움에 잡혀 버렸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두려운 보고를 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통곡했습니다. 그리하여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광야를 지나오면서 체험한 하나님, 날마다 만나와 메추리를 주신 하나님,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신 하나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불신앙과 두려움은 하나님과 믿음을 빼앗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 결과 두려움에 빠졌던 열 사람과 백성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9)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포기하면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께서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000명을 먹인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먼저 건너가도록 하셨습니다. 그 밤에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이 풍랑에 시달리고 있는 바닷물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한밤중에 유령이 바다를 걸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과 공포로 무서워 떨고 있는데, 주님께서 내니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니”(:28)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바람과 파도를 보는 순간, 주님에게서 자신의 눈을 떼고 바람을 바라보는 순간 두려움이 물려왔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물에 빠지고 말랐습니다.
마태복음 14:30-31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여러분, 바람이 보입니까? 바람은 안 보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보이지도 않는 헛것을 본 것입니다. 실제로는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빠진 게 아니라 헛것을 보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실상을 보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허상을 보는 사람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바람 같은 허상을 보고 살고 있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 심하였느냐” 이 말씀은 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 심하였느냐” 여러분에게 어떤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져도 절대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심하면 믿음이 달아납니다. 믿음이 달아나면 두려움이 옵니다. 두려움이 오면 믿음이 쫓겨 나가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들어오면 두려움은 쫓겨납니다. 시 46:1-3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확실한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아 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흔히 두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려움을 잘 못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은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구 행하면 죄를 짓고 저주를 받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주님을 적대시 했습니다. 주님은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그러한대 제자들에게야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주님이 기적을 베푸시니 바알세불에 지폈다고 비난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을 조소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세상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6절입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숨겨진 것은 반드시 세상에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비밀이 밝혀지고 맙니다. 하물며 하나님에게야 무엇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27) 모든 것이 밝혀질 때 우리가 두려웠던 것도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두려워하던 존재가 밝혀지고 맙니다. 인간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속이고 육신을 죽일 수 있어도 그의 영혼은 손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주의 종을 핍박하고 고통을 주고 육신은 죽일 수 있어도 그의 영혼은 건드릴 수 없습니다.
본문 29절-31절 말씀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가 팔리는 것까지 간섭하십니다. 그런데 성도와 주의 종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어찌 상관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성도와 주의 종은 참새보다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귀히 여기시는 성도와 주의 종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돌보시고 지키십니다.
본문 28절 말씀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도 예배해야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 불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계 21:8 말씀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믿지 않는 자를 둘째 사망에 던지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우상을 숭배하거나 마귀를 따르지 않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죄를 멀리합니다.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하나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깁니다. 이런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에는 사람 손바닥의 안과 밖과 같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를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세상이 주님을 미워하고 성도를 핍박해도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위험에 빠져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 감사하면서 삽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의 모든 두려움도 사라지고 맙니다.
어느 날 사냥꾼이 자기 아들과 함께 사냥을 떠났습니다. 깊은 산 속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만 세차게 몰아치는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피할 곳을 찾다가 동굴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아들은 밤새도록 컴컴한 동굴 속에서 추위와 두려움에 떨어야만 하였습니다. 아들이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아침이 밝아왔고 비도 그쳤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동굴을 나서는데 아들이 투덜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제 밤에 우리가 동굴 속에서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사냥꾼은 아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밤새 우리를 위해서 이 좋은 아침을 만들고 계셨단다.”
본문 32절-33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성도 여러분이 사람 앞에서 담대하게 주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성도 여러분을 시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여러분이 사람이 두려워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을 부인하실 것입니다. 우리 사람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살다가 어떤 일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을 버리면 두려운 형벌이 따라옵니다. 두려움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사랑으로 두려움 없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참 사랑과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하면서 강하고 담대하게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송달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