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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호라고도 부르는 평택호는 아산방조제로 인해 안성천 하류에 생겨난 인공호수다. 평택시내에서 아산방조제까지 안성천을 따라 자전거길이 나 있어 일주여행이 가능하다. 일부 구간은 단절되어 있지만 어렵지 않게 우회할 수 있다. 광활한 평택호는 넓은 들판을 끼고 있어 더욱 커 보이고, 대규모의 평택미군기지도 들어서고 있어 풍경이 급변하는 현장이다. 1호선 전철로 편하게 오갈 수 있고, 호반에는 볼거리 먹거리도 많다
<코스>
평택역→군문교→평택미군기지→아산방조제→평택호관광지→마안산→신왕리→덕목리→숙성리→창내리→궁안교→평택역. 72㎞
12월의 눈 내리는 어느 날. 함박눈이 쉼 없이 쏟아지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는데 함께 갈 사람이 있을까 싶어 여기저기 연락해 보지만 역시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보니 하루 휴가를 내어 따라 나서겠다고 흔쾌히 승낙한다.
혼자서도 다녀 올 수 있지만 아무래도 모델이 없으면 영혼 없는 사진과도 같다. 자연과 어우러진 자전거와 사람은 그래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 ‘함께 할 동행이 있는지’가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이번 겨울은 전철을 이용해 경기도 몇 곳을 여행해 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미처 가보지 못한 경기도에 자전거 여행을 하기 좋은 곳은 어딜까? 사전에 지도를 보고, 자료 검색을 해서 첫 번째로 찾은 곳이 평택호(아산호)다. 평택역에서 접근도 쉽고 아산방조제를 돌아 나오면 약 72㎞로 거리도 적당하며, 전철을 타고 편안하게 귀가하기에도 제격이다.
평택호는 안성천 하구에 있는 인공담수호로 경기 평택시와 충남 아산시에 걸쳐 있다. 아산호로 불리기도 하고 평택호로 불리기도 하는데, 호수 명칭을 두고 아산시와 평택시가 다투고 있다. 이름이야 어떻든 나로서는 함께 동행한 40년지기 친구와 빛바랜 추억사진처럼 흔적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안성천과 진위천 합수점에서 느낀 점
서현역에서 분당선을 타고 수원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해 평택역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25분이다. 수원역에서 급행을 타야 빨리 갈 수 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평택역이다.
평택역에서 남동쪽으로 500m 내려와 우측으로 접어들어 1호선 전철이 통과하는 군문고가교를 넘어야 한다. 이어 안성천이 흐르는 군문교를 넘으면 안성천 자전거길이 나타난다. 이곳 군문교에서 공세리 아산방조제 입구까지는 약 35㎞이다. 군문교에서 시작되는 안성천 자전거길은 팽성대교 밑까지 잘 조성되어 있어 쉽게 갈 수 있다.
간밤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자전거 타기가 그리 녹록치 않아 조심히 달려야 했지만, 아침 햇살이 서서히 비추면서 눈이 녹기 시작해 탈만했다. 안성천 갈대밭에 수북이 쌓인 눈과 곳곳에서 놀라 날아가는 철새들의 비상이 아름답다.
안성천은 안성시 고삼면과 보개면 일대에서 발원해 평택시를 지나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76㎞의 하천으로, 하구에는 아산방조제가 완공된 뒤 많은 간척지가 생겨 지금의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었다.
KTX 경부선이 지나가는 다리에 이르면 석봉리다. 이곳이 강 건너 창내리와 동고리 사이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천이 안성천 제1지류인 진위천과 만나는 합수점이다. 두 물줄기가 만났으니 작은 충돌이라도 있으련만 흐름에는 다툼이 없다. 그렇게 두 물길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울림’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원정리 팽성대교 밑에서 자전거길은 끊어져 약 2㎞를 우회해야 한다. 작은 숲과 밭이 있는 단절구간은 600m로, 내리공원이 조성중이어서 조만간 자전거길이 생길 것 같다. 팽성대교를 따라 돌아 나와 동창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팽성읍 내리마을로 평택미군기지 건설현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진입하면 다시 안성천이다.
대규모의 미군기지, 평택을 바꾸다
안성천을 휘돌아 나가는 내리, 대추리, 도두리 지역은 새로 생기는 평택미군기지 공사가 한창이다. 내리에서 도두리로 돌아가는 7.5㎞의 자전거길 안쪽이 전부 평택미군기지로 그 면적이 여의도의 5배가 된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다. 10년 전 용산미군기지를 비롯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를 통폐합해 이곳으로 이전을 결정한 후 한때 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극심했던 때가 떠올려진다. 팽성읍 왼쪽의 대추리와 도두리를 비롯해 내리, 함정리, 안정리, 동창리 등을 포함한 넓은 농경지와 마을은 상전벽해 식으로 변해 있었다. 2017년 모든 기지가 이전을 완료하면 많은 미군과 가족들로 인해 대단한 상권이 조성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지 주변의 땅값은 이미 엄청나게 올랐다고 한다.
팽성-오성간 도로가 건설되는 도두리 자전거길에서는 평택미군기지로 공급되는 고압선 철탑이 남쪽 신남리로 길게 이어져 장관을 이룬다.
노양리 계양낚시터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아산시 둔포면 신남리로 들어서는 길이다. 이곳 신남리에서 창용리, 구성리, 공세리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드넓은 농경지가 펼쳐진 평야지대로 아산호를 아주 가까이 보면서 달릴 수 있는 시원한 구간이다. 백석포리에서 34번 국도 옆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가면 드디어 아산만방조제를 만난다.
아산만방조제는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와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사이의 안성천 하구에 둑을 쌓아 막은 방조제로 그 길이가 2.5㎞이다. 본래 방조제를 건설하면서 호수와 방조제의 명칭은 아산만의 이름을 따서 ‘아산만방조제’, ‘아산호’로 지어졌다. 방조제 입구에 세워진 기념비에도 ‘아산호’라는 명칭이 새겨졌다. 그러나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지사가 아산만방조제와 호수의 관리권을 갖게 되면서 평택시 쪽의 ‘아산호국민관광지’의 명칭이 ‘평택호관광지’로 변경되었고 대외적으로도 ‘평택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산만방조제도 아산방조제로 바뀌었고, 방조제 북단의 새 교량은 ‘평택호대교’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명칭 논란은 더해졌다. 지금도 호수의 명칭이 통일되지 않고 두 가지가 혼용되는 실정이다.
아산방조제는 갓길이 좁고, 통행 차량이 많아 조심해서 달려야 한다. 아산방조제 수문이 끝나는 지점 우측에 ‘한국농어촌공사 평택호관리소’가 나온다. 이곳을 중심으로 ‘평택호관광지’가 시작된다.
문화와 예술, 레저가 있는 평택호관광지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 일원에 펼쳐진 평택호관광지는 평택호의 자연경관을 최대한 활용해 각종 휴양·위락시설과 레저·문화·숙박시설을 조성한 관광지이다. 아산만을 접한 해변도로에는 횟집과 조개구이집, 그리고 숙박시설이 줄지어 있고, 평택호를 접한 호반에는 수상레저타운과 평택호예술공원이 있다.
아산방조제 끝에서 우측으로 500m 가면 평택호레저타운이 나온다. 이곳은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보트나 수상스키, 오리배 등을 체험할 수 있는데, 한 겨울이라 오리배들은 줄줄이 묶여 겨울잠을 자고 있다. 수상레저타운에서 나무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조금 달리면 평택호예술공원이다. 데크길에는 커다란 배 모양 조형물이 있고, 간간이 나타나는 벤치에는 음표를 상징한 조형물과 도로에는 음악과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왜 그런가 했더니 평택은 예로부터 민속음악과 무속음악의 온상지로, 평택이 낳은 국악인 지영희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한국소리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내 공연장 안에는 지영희의 유품과 해금이 전시되어 있다. 그를 우리나라 구전민요 등을 악보로 체계화시킨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유리로 만든 피라미드 형태의 ‘평택호예술관’은 매년 상설로 서예전, 사진전 등 다양한 전시를 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그 밖에 앞뜰에는 평택호를 배경으로 다양한 야외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어 공원의 품격을 높여 준다.
호수인 듯 바다 같고, 바다인 듯 호수 같은 평택호를 바라보면서 듣는 국악의 맛은 어떨까. 번잡한 도심을 떠나 고요한 평택호를 바라보는 나의 자유. 목 놓아 울어도 보고 싶고, 막걸리 한 잔에 노래도 한 곡 불러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고즈넉한 안성천 북쪽 코스
조각공원 옆으로 난 강변을 돌아 나가면 비포장 호반길이다. 대안리 앞 평택호와 마주한 높이 126m의 마안산이 보인다. 평택호와 접한 마안산 자락에서 자전거길은 끊어지고 등산로만 있다. 편안하게 가려면 마안산 북쪽으로 우회해야 한다.
대안리 구진마을 아래로 마안산으로 가는 비포장 농로가 있어 한번 가보기로 한다. 구진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600m 가면 작고 아름다운 호안에 닿는다. 약간의 바위와 모래톱이 있는 작은 호안에서 바라보는 평택호의 풍경은 추억 사진을 찍기에 제격이다. 여기서 호안의 산길을 따라 360m 가면 체육시설을 만나고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대략 20분 정도 오르면 마안산 동쪽 능선이 나온다.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면 대안리와 신왕리의 경계인 고갯길이다. 우측의 도로를 따라 평택호 옆의 농로를 내려오면 계속해서 호반길을 따라 달릴 수 있다.
신왕리 고등산 자락의 호안은 일부 비포장 구간이고, 이후 자전거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덕목리와 삼정리 사이의 삼정리 수로를 잇는 다리를 건너면 팽성-오성간 다리가 안성천을 가로지른다. 강 건너 도두리와 대추리 일대에 조성되는 평택미군기지의 광활한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팽성대교를 조금 지나 창내리에서 안성천의 가장 큰 지류인 진위천 하구를 만난다. 출발지인 평택역으로 가려면 진위천 상류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 궁안교를 건너야 한다. 궁안교에서 평택역까지는 약 8㎞로 지척이다.
기억에 남는 평택호…
안성천을 따라 아산만으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눈 내린 겨울의 안성천. 아산방조제를 건너 도착한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평택관광지에서는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로 눈이 호사했다. 혼자 느끼고 담아두기에는 평택호의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나 강하게 남았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익숙한 것, 익숙한 곳을 더 찾게 마련이다. 이전까지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었던 안성천과 평택호(아산호)는 내가 직접 발을 딛기 전까지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곳이다. 간밤에 펑펑 쏟아지는 눈발에 마음이 동요되어 ‘아침이 되면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보자’로 시작된 우발적인 여행이었다.
평택호를 바라보며 시원한 호수바람을 맞고 있으니, 도시의 생활을 잊을 수 있어 마냥 즐겁기만 하다. 특히 ‘평택호관광지’는 가족끼리 혹은 동호인들과 함께 편안하고 오붓한 즐거움을 나누기에 매력적인 장소다. 눈앞에 마주한 평택호는 햇빛을 받아 유리알처럼 빛난다. 반짝이는 물을 헤치며 시원하게 무리지어 나는 철새들의 아름다운 군무, 한 모퉁이에 여유롭게 떠있는 어부의 조각배까지. 넓은 평택호 곳곳에는 제각각의 매력을 담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1호선 전철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글·사진 이윤기(자전거생활 여행사업부 이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