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자작나무’ 초대로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 초등음악수업연구회가 <이야기가 있는 양양 나들이>에 여러 사람이 모였다. 시, 글쓰기, 토론, 노래가 함께 하는 자리였다.
“또 하자.”
이번에는 토론과 글쓰기회에서 준비했다. 곽노근, 한재경, 주한경 선생님이 날짜, 일정, 안내 종이, 모음, 준비물 사는 몫까지 다 맡았다. 학기 초 학급살이도 바빴을 텐데 하나하나 꼼꼼하게 잘 챙겨 고마운 마음이 크다.
양양에서의 따뜻함과 깊은 이야기를 양평에서 시작한다. 산이 두른 곳은 자그마한 내가 하얗고 연분홍 꽃들 사이로 졸졸 흐른다. 물 따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가 흐른다. 노래가 흐른다. 술잔 따라 삶이 흐른다.
오후 3시에 자작나무 박성진 선생님 이야기다. 아쉽다. 봄나들이 길이라 차들이 길을 가득 매웠다. 1시 30분 도착한다는 길 알리미 말이 3시간이나 더 늦다. 서른 날을 ‘오늘 발표 뭐 하지?’ 하며 준비했다는 성진이(나는 이렇게 부른다. 성진이는 날 히야, 라 한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칠 무렵 성진이가 해 준 말은 오래 남는다.
“시를 만나기 전 그 사람과 시를 만난 뒤 그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큰 울림을 준 이야기에 이어, 내가 말할 차례다. 사실 이렇게 좋은 자리, 이렇게 좋은 사람들 앞에서 토론이니 글쓰기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삶을 나누고 싶었다. 어쩔까 하다가, 오는 분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만나기 전에 물어주셨고, 그 대답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만나서 말했다.
1. 첫사랑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내 이야기다.
2. 교사가 안 되었다면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꿈을 묻는 건 가끔 폭력이라는 생각도 한다. 지금에 충실하는 게 늘 마음에 있다.
3. 내가 가장 이뻐 보일 때
그런 적 없다. 다만 수민이는 나를 이쁘다고 한다.
4. 1년을 쉬게 된다면 하고 싶은 것
2011년 희문이와 한 달 여행한 곳을 그대로 정순 샘과 한 달 여행 여행과 수민이와 한 달 여행을 하고 싶다.
5. 나의 버킷리스트 10가지
이런 걸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세 가지는 있다. 정순 샘과 여행, 메시 축구 직관, 어머니와 장인-장모님이 모두 함께 울릉도(우리 신혼여행지)를 가고 싶다.
6. 다시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간다면
대학 1학년에 만나 4년을 함께 했던 상길이와 그때처럼 다시 놀며 보고 싶다.
7. 내가 꿈꾸는 학교
관리자 없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선생을 마치고 정순 샘과 학년 구분 없이 한 반만 있는 교실을 하나 해도 좋겠다.
8. 교사로서 가장 쪽팔렸던 순간
1학년을 할 때 부모님 앞에서 아이를 혼냈던 일, 헤어지는 2월에 잘 지낸 제자에게 화를 내 관계가 끊어진 일이다.
9. 교사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
선생으로 살수록 더 행복하다.
10. 좋아하는 노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많이 부른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좋아해 자주 부른다. 대학 친구가 좋아하던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노래를 자주 부른다. 큰누나가 생각나는 <앉은뱅이꽃>도 부른다.
11. 힘
다른 사람이 체력이 좋다는데 그럴 수 있다. 축구를 많이 하니. 다른 하나는 내 모자람이다. 선생 준비가 없었기에 초등참사랑을 열심히 했다. 아이들 말과 글이 안 남으니 날마다 아이들 말과 글을 다 쓰려 한다. 욕심도 한 몫 한다. 뭔가를 더 잘하고픈 욕심이 있다.
*마치니 발가벗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눈물로 힘들었던 어린 영근이를 위로해주셨다. 서툴지만 나름 애써 걸어온 이야기에는 고개 끄덕이며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내 마음이 많이 따뜻했다. 내 모습을 다 말한 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승모 선생님이 아카펠라를 한다. 모두와 함께 노래를 맞춘다. 승모는 어디든, 누구든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탁월함이 있다. 나와 토론 선생 몇은 밖에서 고기를 굽고 먹을 찬을 만든다고 바빴다. 목살 10킬로, 막창 4킬로를 미리 초벌한다. 아카펠라를 마칠 때 숯불에서 구워서 나눈다. 다 먹었다.
생일 축하를 보냈다. 주한경 선생님과 김영록 선생님이 같은 날 생일이다. 함께 노래하며 축하했다. 생일 축하로 뒤풀이는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뒤풀이 담당이기도 했다. 노래를 많이 불렀다. 여러 선생님들 노래와 함께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 이주영 선생님께서도 노래해주셨다. <산중호걸>과 <퐁당퐁당>으로 율동 곁들인 선생님 율동은 귀엽고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감동이다. 어디서든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멋짐에 푹 빠졌다. 변채우 선생님의 개인 연극, 별의 별의 아카펠라로 축하 뒤풀이를 마쳤다. 초대 받은 자작나무 탁동철, 박성진 선생님 두 분이 노래로 대답한다. 황시백 선생님을 주제로 세 곡 불러주셨다.
뒤풀이는 12시를 넘긴다. 도란도란 이야기는 깊어간다. 2시를 지난다. 노래는 흥에 겨워 계속 잇는다. 4시를 보냈다. 꾸벅꾸벅 졸다가도 이야기 듣고 말한다. 나는 5시가 조금 남겨두고 누웠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공기가 참 맑다. 모두가 조금씩 움직이며 준비한다. 남은 먹을거리를 먼저 가는 차에 싣는다. 남은 사람들이 나눠서 먹으며 이야기를 조금 더 한다. 노래도 잇는다.
남은 사람들이 이선구 선생님이 있는 서종초등학교에 갔다. 강이 창 너머로 보인다. 창에 앉아서 잠시 생각을 잊고 강물을 봤다. 우리 학교는 뒤가 산이다. 산이든 강이든 이렇게 자연을 가까이 두고 있다면, 자연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 이선구 선생님 교실에 갔다. 선구 샘 말을 듣는다. 작년 한 해 6학년 아이들, 양평 글쓰기 선생님들과 문집 만든 이야기를 들었다. 갈래(글, 시, 이야기)로 나눠 묶은 문집에 일곱 권이다. 문집은 ‘애씀’과 ‘보람’이다. 일곱 권을 갈래로 나눠(그렇게 여러 빛깔로 삶을 꾸린 셈이다) 묶은 애씀과 삶을 올곧이 담아낸 보람이 가득했을 것 같다. 교실을 나와 강을 따라서 잠시 걸었다. 나는 정순 샘과 잠시 앉아서 쉬었다. 둘은 우리 학교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학교를 보며 우리 학교를 본다.
헤어지는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마음은 행복이 가득이다.
애쓴 분들에게 밥이라도 드린다.
가을에 춘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돌아보면 이제껏 만남으로도 좋다.
첫댓글 저도 후기 써야하는데 그래야 나한테 남는데 하며 조금 쓰다 말았어요. 늘 배웁니다. 좋은 사진과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