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송년산행] 문산회 ♣ 남한산성(南漢山城) ▶ 2014년 12월 13일 (토요일)
* [남한산성 라운드 트레킹] * 성남시민공원→ 지화문(남문)→ 영춘정→ 수어장대(482m)→ 우익문(서문)→ 북장대지→ 전승문(북문)→ 해태바위[遭遇]→ 동장대터(암문)→ 암문(장경사지 십자옹성, 432.4m)→ 장경사→ 좌익문(동문)→ 제3옹성암문→ 제2옹성암문→ 제1옹성암문→지화문(남문)→ 성남시민공원(은행동) 하산
☆… 오늘은 올해의 산행을 마감하는 12월 송년 산행일이다.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시 은행동 남한산성 입구 시민공원에서 집결했다. 오늘은 호산아 회장, 정용호 부회장, 채홍철 총무를 비롯하여, 이정식, 이근무, 김명식, 김희선, 이동우, 김창복, 김덕임, 한영옥 님 등이 참석했다. 오전 10시 20분, 산행에 돌입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바람이 심하게 불지는 않지만 영하의 차가운 공기가 볼을 아프게 찔렀다. 간밤에 약간의 눈에 내려 산록은 잔설이 남아 있었고, 응달진 산길에도 얇은 눈이 덮여 있었다. 약간 미끄럽긴 했지만 아이젠을 차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청랑한 겨울공기가 산뜻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대원들은 골짜기에서 산의 능선 길을 치고 올라 지화문(至和門, 南門)에 이르렀다. 오늘은 남한산성 성곽 길을 따라서 산행하는 날이다. 대원(隊員)들은 남문(南門)을 기점으로 하여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을 거쳐 서문(西門)→ 북문(北門)으로 가는 방향으로 산행을 했다.
지화문(至和門, 南門))
☆… 후발(後發)의 호산아 회장은 지화문(至和門, 南門)에서 남쪽의 제1-2-3옹성암문(甕城暗門)을 경유하여 좌익문(左翼門, 東門)으로 내려왔다가 동장대(東將臺)로 오르는 코스를 탔다. 간밤 모처에 휴대전화를 두고 온 관계로 연락이 되지 않아,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이었다. 차가운 겨울의 산길은 한산했다. 산길의 어느 지점에서 대원들과 조우(遭遇)할 것을 확신하며, 고독한 속보의 산행을 감행했다. 대원들이 이 길을 앞서 갔다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면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했으나, 그렇게 잰걸음으로 달려 나가도 대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성곽 길을 따라서 이어진 산길, 응달진 곳에는 일전에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간간히 한두 사람이 지나갈 뿐 산길에는 인적(人迹)이 뜸했다.
제1옹성암문(甕城暗門)
정비된 성곽길
좌익문(左翼門, 東門)
☆… 낮 12시 30분, 북문과 동장대 사이의 중간 쯤(해태바위 근처)에 호산아 회장과 대원들이 조우(遭遇)했다. 반대 방향에서 마주 오면서 만난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남짓 지난 시간이었다. 장대한 노송(老松)이 드리워진 눈 쌓인 성곽 길에서였다. 악수를 하고 만남의 반가움을 사진에 담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서 내려갔다. 햇살 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 바람이 불지 않는 아늑한 산록(山麓), 공기는 차갑지만 대원들이 둘러앉아 나누는 점심은 더 없이 정겹고 따스했다. 눈이 녹아 낙엽이 수북이 쌓인 자리에서 막걸리가 한 순배 돌고, 창복이 집에서 ‘거시기 몰래’ 가져온 진황색의 야관문 술을 내놓아 훈훈한 인정을 더했다. 야관문(夜關門)이 무엇인가? 우리나라 깊은 산록에 자생하는 산야초로 밤에 문의 빗장을 열어주는 약초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니, 술로 담가 마시면 남자의 양기(陽氣)를 돋우는 데 특효가 있다고 알려진 식물이다. 부작용이 없는 천연 비아그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귀한 술을 한 잔 받아 마셨다. 금방 가슴이 따뜻해졌다.
☆… 오후 1시 15분, 점심식사 후 산행이 계속되었다. 동장대(東將臺)로 올라가는 비교적 가파를 오름길이었다. 당시의 성문이 남아 있는 동장대 터 앞에서 숨을 고르고 서서 쉬었다.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이 서쪽의 고지(高地)라면, 이곳 동장대는 동북쪽의 고지(高地)에 해당한다. 성곽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아주 차갑게 옷깃을 파고들었다. 저 아래 한강변 삼전도에 포진하고 있는 20만 청나라 군막이 내려다 보이는 곳, 매서운 북서풍을 그대로 맞받는 지점이다. 싸늘한 바람결에 몸이 오싹해 온다. 호산아 회장이 말했다. “아아, 그해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 바로 1636년, 그해 겨울에 당한 병자호란(丙子胡亂), 그 당시의 남한산성은 말할 수 없이 처절한 상황이었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었다.” 아픈 역사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
동장태터 성문
남한산성, 그 아픈 역사를 들으며
옹성(甕城)의 모습... 항아리(독) 모양으로 나와 있다
☆… 방한복(防寒服)이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한 채 성곽을 수비하던 병졸(兵卒)들의 동사자(凍死者)가 속출하는 참상(慘狀)이 연일 계속되었다. 적(敵)과의 싸움으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배고프고 추워서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산성은 천혜의 요새(要塞)였다. 조선의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었다. 석촌호 부근에 진을 치고 있는 20만 청나라의 군사와 한 달 보름을 대치하며 조선을 지켰다. 그러나 보급이 끊긴 산성은 고립되어 있었고 청의 군사력을 당해 낼 능력은 이미 없었다.
☆… 결국 조선(朝鮮)은 주화파(主和派) 최명길(崔鳴吉)을 통하여 청(淸)에게 화의(和議)를 청했다. 인조 임금은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맞으며 북문(北門)을 통해 내려가 삼전도에 위치한 청 태종 누루하치 앞에 나아가 항복(降伏)의 예(禮)를 행했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三拜九叩頭禮]를 한 것이다. 청은 조선의 화의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11개 항목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혹독했다. 무릎을 꿇은 조선은 그 처절한 굴욕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청(淸)은 그 내용을 비석에 새겨 그 자리에 세우도록 했다. 지금 석촌동 주택가 작은 공원에 있는 삼전도비(三田島碑)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청은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빈궁(嬪宮), 그리고 봉림대군(鳳林大君, 후에 孝宗)비롯하여, 척화(斥和)의 주모자인 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 등 삼학사를 잡아 철군했다. 수많은 부녀자와 양민도 인질로 붙잡아 갔다.
☆… 아아, 이렇게 비극적 역사가 만들어진 남한산성을 어떤 곳인가.
▶ 남한산성(南漢山城)은 원래 한성백제(漢城百濟) 시대의 성산(聖山)이요 진산(鎭山)이었다. 시조 온조대왕의 사당 숭열전(경기도문화재 2호)이 있는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주장성(晝藏城)으로 불렸으며, 한강 유역의 주요 산성으로 발전하였다. 고려(高麗) 시대에는 몽고군의 침략을 물리친 요새였다.
▶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으로,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6년(인조 2년) 7월에 축성하였다.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총 둘레의 길이가 9.05km의 성곽에, 동서남북 4개의 문(門)과 8개의 암문(暗門)을 내고, 성내에는 행궁(行宮)을 비롯하여 수어장대(守禦將臺)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는 모든 시설을 갖추었다. 특히 남문(南門)은 성의 서남쪽 곡저부(谷底部) 해발 37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여 지화문(至和門)으로 칭하였고 네 개의 문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유일하게 당시의 <至和門>이라는 현판(懸板)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한다.
▶ 조선시대 인조(仁祖) 14년(1632년) 청나라 누루하치가 침략[丙子胡亂]해오자 인조 임금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45일간 항전했다. 이시백(李時白)이 축성 뒤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1636년(인조 14)에 1만 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결국 임금이 성문을 열고 나가 청에 화의(和議)를 청하고 항복했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뼈아픈 역사의 기록을 남겼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어장대(守禦將臺)
☆… 오후 1시 30분, 우리들의 산행은 계속되었다. 눈 덮인 겨울의 남한산성, 산록을 타고 오르내리는 성곽은 거대한 교룡(蛟龍)이 용틀임하며 산을 타고 오르는 형상이었다. 장경사 앞 광장을 지나, 성남-광주간 지방도로가 지나는 좌익문(左翼門, 東門)을 지나 성곽의 남쪽 산록을 따라 급경사를 타고 올랐다. 공기는 매섭게 차갑지만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12월의 햇살은 화창했다. 성곽의 가까운 응달진 길은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제3옹성암문까지는 계속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이다.
다시 동문(東門, 左翼門)
☆… 동에서 서쪽으로 이어져 나가는 성곽에는 세 개의 옹성암문이 있다. 옹성(甕城)은 성곽에서 앞으로 툭 튀어나오게 내다 쌓은 성곽으로 적을 공격을 하기에 좋은 구조물이다. 암문(暗門)은 성곽을 출입하는 비밀 문이다.
암문에 서서
화창하다!!
☆… 오후 2시 50분, 일행은 남문(南門)에 도착했다. 출발지에 다시 돌아왔으니 원점(原點) 회귀(回歸)의 라운드 트레킹을 한 것이다. 오후의 겨울 햇살이 내리는 지화문(至和門), 성남골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아주 찼다. 눈밭에 서 있는 장대한 느티나무 몇 그루가 변함없이 성문(城門)을 지키고 있었다. 수령 500년이 넘는 성남시 보호수이다. 아침, 올라올 때 산길에 깔려 있던 눈은 다 녹아버렸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양지 바른 곳은 눈이 다 녹은 것이다. 성남시 은행동 시민공원으로 하산을 완료했다. 공원의 광장에는 ‘사랑의 열매’를 팔기 위해 홀로 공연하는 음악이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창복이 작은 성금을 내고 빨간 열매를 받아 모자에 꽂았다.
지화문으로 원점 회귀
☆… 오늘은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 산행(送年山行)을 했다. 남한산성 남문에서 성남시 은행동 시가지로 내려와 조용한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다. 자글자글 별미 ‘곱창’을 구워놓고 따뜻하게 건배를 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덕담을 나누었다. 정용호 부회장이 내년 7~8월 중 적당한 때를 정하여 경기도 광주(廣州)의 장계산을 산행할 것을 제의했다. 그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자신의 별장이 있으니 그 정원 마당에서 야외 바비큐파티를 하자는 것이었다. 모두 유쾌하게 환영했다. 올 한 해 1년 동안 산행의 고락을 함께 했던 모든 대원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특히 정용호 부회장은 매월 산행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여 가장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채홍철 총무는 산악회 운영에 헌신적으로 활동하여, 그 고마움을 여기에 전하는 바이다. 우리 문산회 대원들, 다가오는 새해에도 계속 건승하시기를 빈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