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소소하거나 화려한 그들만의 수다 속으로/ 전 성훈
수다는 삶의 감초이며 감초는 음식의 풍미를 더해주는 조미료이다. 가장 맛있고 웃음꽃 피는 수다는 길을 나서며 주고받는 수다이다. 감칠맛이 넘치는 여행길의 수다는 삶을 풍족하게 꾸며주는 윤활유이다. 길과 함께하는 수다, 제주로 가는 하늘 길,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 하늘 길에서 시작된 수다, 하늘 길을 벗어나 푸르다 못해 서러움을 잔뜩 머금은 쪽빛 제주 바다를 내려다보며 나눈 수다, 뛰어 들어가고 싶은 쪽빛 바닷가 해변을 지나 할망이 걸어가던 골목길에서의 수다, 할바가 지나갔던 골짜기에서 마주하는 올레길에서 이어진 수다, 점잔을 빼면서도 자주 주책바가지가 되는 늙은이 여섯, 그들만의 제주 이야기, 아주 소소하거나 화려한 수다가 갓 잡아 올린 망둥이처럼 널뛴다.
4월 23일(화)
비가 뿌리는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순환버스를 타고 렌트카 회사를 찾았다. 렌트카를 타고 점심을 먹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돼지국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돼지 사골을 푹 곤 따뜻한 국수를 안주로 제주 막걸리 한 잔을 걸쳤다. 배부른 탓에 느긋한 기분으로 길을 나서다 ‘청춘 팔고 고기 판다’라는 정육점 간판을 보며 주인의 호객솜씨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 사이 4월의 비가 그쳐서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첫 방문지는 성이시돌 목장이었다. 파란 눈의 아일랜드 신부님이 제주에 선교사로 와서 제주사람이 되었다. 돼지 농사를 지으며 배타적인 섬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스페인 출신 이시돌 성인을 본받고자 목장 이름을 성이시돌로 지었다.
목장 옆에는 새미동산이 있었다. 샘이 흐르고 바닷물이 스며들지 않는 ‘새미소’에 ‘새미 은총의 동산’을 꾸몄다.
새미소를 라틴어로 Sanctus(거룩한), Anima(영혼), Evangelium(복음), Mediator(중재자), Imago Dei(하느님의 모양)라고 번역해 놓았다. 성이시돌 목장을 벗어나 정난주 마리아 기념 성지를 찾았다. 조선왕조 시절, 천주교 탄압 사실을 중국에 있는 주교에게 비단에 적어 [백서(帛書)] 전하려하다 발각된 ‘황사영 백서사건’이 있었다. 정난주 마리아는 정약현의 딸이자 황사영의 아내이다. 유배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 강진에서 귀양살이 했던 다산 정양용 선생이 그녀의 작은 아버지들이다.
저녁에 고등어회를 맛보려고 횟집을 찾았다. 맛집으로 소개된 곳이었다. 고등어회를 어떻게 먹으면 좋으냐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상추에 밥을 조금 얹어 고등어회 한 점 올려놓고 마늘과 강된장을 발라서 입으로 쏘옥 넣으세요’라고 가르쳐 주었다. 기대가 큰 탓에 평상심을 잃어버려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지 여하튼 가격에 비하여 고등어회 맛은 별로였다. 숙소인 중문단지 훼밀리 리조트로 가면서 수입맥주를 종류별로 그리고 한라산 소주도 여러 병 샀다. 정신을 놓을 정도로 술 파티를 즐기며 웃음과 박수 그리고 짧은 노래 가락 속에 늙은이들은 해방구의 기쁨을 만끽했다.
4월 24일(수)
우도로 가는 길, 우도행 터미널에서 승선수속을 하면서 몇 번씩이나 달리기를 했다. 승선신청서에 일행의 이름을 쓰고 생일은 아는 사람까지만 적어 1부 작성했는데 담당자는 2부를 작성해 오라했다. 2부 작성하여 다른 창구 직원에게 주었더니 일행 모두의 생년월일과 연락처를 반드시 적으라고 한다. 기재사항을 모두 적은 다음 또 다른 창구로 가자 이번에는 승선자 전원의 주민등록증을 가져오라고 한다. 한 번에 모두 가르쳐주었으면 고생을 덜 하였을 텐데. 흐릿한 날씨에도 봄바람에 싱숭생숭해진 여인의 마음처럼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몸차림은 날렵하였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 가볍게 입은 옷깃을 꽉 여몄다.
우여곡절 끝에 우도에 도착하니 우리나라가 아닌 이국의 땅에 도착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동차를 가지고 갔기에 해안 일주 도로와 마을길을 마음대로 다녔다. 섬이 크지 않아서 한 바뀌기 도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국의 정취에 취하여 탄성을 질렀다. 그야말로 슬로시티였다. 이런 곳에서 일주일 정도 푹 쉬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 살라고 하면 못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그마한 섬 우도에 친환경 가스 자동차와 이륜 오토바이와 자전거까지 차고 넘친다. 여름철 관광객이 쏟아지면 좁은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할 것 같다.
점심때가 되어 ‘물꼬해녀의 집’이라는 곳에서 보말국수를 먹었다. 보말국수 국물은 감칠맛이 있어 멸치국수나 사골국수 또는 바지락칼국수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보말은 ‘고둥’의 제주도 방언이다. 식사를 마치고 우도 성당을 찾았다. 공소를 지키다가 성당을 짓고 있는 공소회장 부부의 열정에 감탄하면서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돌아섰다. 성당을 나서자 우도땅콩 막걸리 제조공장이 눈에 띄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막걸리 제조공장을 찾으니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가 숱한 역경을 겪으며 씨름하고 있었다. 주인의 용기를 살려주려고 땅콩 막걸리와 땅콩두부 맛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도 땅콩은 토질 영향 때문에 육지에서는 재배가 안 된다고 한다.
우도를 떠나 성산일출봉을 찾았다. 65세 이상은 무료입장이나 일행 중 주민증을 자동차에 두고 온 사람에게 입장료를 꼬박꼬박 받는 여직원의 표정이 단호하였다.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다른 곳에서는 일행 모두의 주민증을 보자고 하는 곳이 없었다. 성산일출봉 정상까지 계단을 오르고 내려오려면 상당히 힘들었다. 다행히 등산용 지팡이가 있어 무척 도움이 되었다.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고 멋진 경치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성상일출봉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상일출봉을 내려와 이십 년도 훨씬 오래 전 TV 연속극 ‘ALL IN'으로 유명해진 ’섭지코지‘를 찾았다. 하지만 연속극에서 본 경치와 실물이 전혀 달라서 실망이 컸다. 조금 씁쓸한 기분으로 주차장으로 내려와 해삼물 파는 아주머니 가게에서 한라산 소주에 마음을 달랬다. 숙소로 돌아와서 정력에 좋다는 능이오리백숙에 한라산 소주를 곁들여 맛있게 먹으며 하루의 피곤함을 떨치고 웃음꽃을 피웠다.
4월 25일(목)
한라산 1100고지 가는 길, 안개가 심하게 끼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길바닥의 하얀 차선 표시를 보며 친구가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조수석에 앉은 친구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엄살을 떨었다. 어느 구간에 이르자 그토록 뿌옇던 안개가 사라지고 한 순간에 찬란한 햇볕이 비쳤다. 그러자 저 멀리 한라산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변한다는 한라산의 날씨를 알 것 같았다.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숲속에는 봄물이 오르는 나무들의 연초록색 물결이 눈부셨다. 자동차 창문을 열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윙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새 생명을 잉태한 새싹들의 합창소리 그리고 숲속의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1100고지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코스를 걸으며 ‘자연은 있는 그대로’보호하고 보존하는 게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걸 느꼈다. 1100고지를 벗어나 어리목으로 갔다. 이곳에서 한라산 정상까지 걸어서 올라야 하는데, 허리와 무릎이 아픈 내 몸 상태로 정상에 오르는 건 불가능하였다. 아주 천천히 걸어서 1200고지 팻말을 확인한 다음 미련을 버리고 뒤로 돌아서 내려왔다. 한라산을 벗어나 길을 달리다가 ‘도깨비도로’ 이정표를 만나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제주 관아였던 관덕정과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를 찾았다. 관덕정에서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중국처녀들과 영어와 한자로 필담으로 하고 사진 한 장 찍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면서 비용도 절감하고 음식점을 했던 친구의 솜씨도 보고 싶어서 흙돼지 삼겹살 몇 근을 샀다. 요리사 친구 덕분에 된장을 넣고 푹 삶은 흙돼지 수육을 먹으며 한라산 소주와 맥주를 몇 병이나 비웠다.
4월 26일(금)
제주 올레길 걷는 날, 여섯 명 중 대표 선수 3명이 나섰다. 제주 올레 8코스 일부와 9코스를 걸었다.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모자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었다. 바닷가와 산길을 걸으며 순간순간 떠오른 시상을 열심히 외우고 메모하였다. 코스 방향을 알려주는 파랑색과 붉은색의 올레 이정표는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차가운 바닷바람은 끝없이 불고 아무리 옷깃을 여며도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산길을 걷다가 따 먹은 산딸기, 달콤한 산딸기를 맛본 지가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조차 없어 가물가물하였다. 산딸기의 향내를 음미하며 걸어가자 왼쪽으로 바다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가만히 바라보자 수평선 너머로 섬 하나가 보였다. 먼 바다 외롭게 떠있는 섬 하나, 이름도 아름다운 ‘마라도’, 마라도 너머 우리 영혼 안에 살아 숨쉬는 ‘이어도’의 아지랑이가 보일 듯 말 듯, 잃어버린 전설 이야기가 들릴 듯 말 듯 하였다. 올레 9코스를 완주하고 월라봉으로 내려와 자동차로 이동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산방산을 지나 일본으로 가려던 배가 태풍으로 밀려와서 조선을 유럽에 알린 ‘하멜’이 도착했다는 용머리 해안을 찾았다. 용머리해안 식당에서 뜨거운 해물탕에 한라산 소주와 재회하니 추위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4월 27일(토)
집으로 가는 날, 바다로 떨어지는 정방폭포를 찾았더니 매표소 문을 열지 않았다.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찾아가서 바다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를 보니 속이 시원하였다. 정방폭포 부근에 서복기념관이 있다. 중국 진시황제의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받고 동방으로 떠났다는 ‘서복’의 전설, 20대 이하의 젊은 남녀 500명을 배에 태워 서복이 도착한 곳이 오늘날 서귀포 부근이라고 한다. 제주공항으로 가는 길에 ‘제주 4.3 평화공원’에 들렸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원망과 절망 그리고 화해의 손짓을 보았다.
만나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수다로 시작해서 수다로 끝난 여행, 눈을 뜬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빠지지 않고 우리 곁을 지켜준 영원한 애인인 주(酒)님까지 함께한 4박5일간의 제주 여행, 가족과 친구, 눈에 들어오는 자연의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끝없는 수다 속에 터져 나온 웃음, 기쁨, 애환, 한숨 게다가 한 주먹에 들어갈 만큼 이런저런 약봉지를 수북이 가진 망가진 몸에 나이 듦의 덧없음까지 훌훌 털어 한라산 정상으로 던져버린 늙은 용들의 소소한 제주나들이는 이렇게 그 화려한 막을 내렸다. 여행은 삶의 시작이자 종착역이며 종착역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아랍어 라피끄(Rafik)는 " 먼 길을 함께 하는 동반자 “라는 의미이다. 친구야, 우리 다시 떠날 준비를 해보면 어떨까? 한 번도 가 보지 않아 알 수 없는 길,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날을 위하여 이제는 나 홀로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2019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