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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
(창 50:19~21)
https://youtu.be/lt4NvXGtvxU
오늘 말씀은 오랫동안 어둔 그늘에 앉아
애통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영혼들
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라는 생
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요셉의 일생을 되짚어
가면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의지하고 결국에는 가족들을 구하는 구원자로
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볼까 합니다.
-- 어린 시절 --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형제
들의 눈총을 받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외면적으로 유복해보이는 모습
뒤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요셉의 어머니라헬은 그의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베냐민은 어머니의
얼굴도 보지못하고 출생하였고 요셉도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마음이 더욱 요셉에게 각별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요셉에게
극진한 사랑을 쏟았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우기에 무리였을 것
으로 보입니다.
때때로 동생의 손을 잡고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며 멀리 떠난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합니다.
무척 희망적이고 좋은 내용같아 보였지만
어린 아이가 그 꿈의 참 의미를 이해하기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꿈이야기를 합니다. 형들은 꿈이야기를 듣고
격분합니다.
이미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녀석이
자신들 위에서 호령하는 미래라니.. 도무지
용납할 수도 견딜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형들의 마음속엔 미움과 질투가
자라기 시작했고, 적당한 때가 왔을 때
오만방자한 녀석의 꿈이 이루어질지 시험
하고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들 요셉이 죽기까지 버려둘 생각은 아니었
을 것입니다. 쌓이고 쌓인 미움과 질투와
박탈감이 요셉의 비명과 호소에 귀를 닫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두고두고 후회할 일로
커져버리고 아버지의 마음에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기리라고는 아마 예측하기 힘들
었을 것입니다.
의기투합한 요셉의 형들은 공모하여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넣은 뒤 애처러운 부르짖음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를 용서하고 풀어
주기에는 이미 감정의 골이 돌이킬수 없이
깊어졌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이 충격적인 장면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 넷째 유다가 동생을 죽이지
말고 팔자고 제의 하였고 다들 마지못해 동의
하였습니다.
-- 애굽의 생활과 고난 --
요셉은 꿈의 사람, 비전의 사람으로 많이 묘사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총리로 등극하기 직전
까지 기약없는 절망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마도 바로 앞에 서기 전 날 밤에도 자신이
애굽 전국을 호령하는 최고 직위에 오를 것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선물은 뜻밖에 예기치 않게 찾아 옵니다.
처음엔 노예로 시작해서 주인에게 인정받고
자리를 잡을 만하게 되었습니다만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끊임없이 추파를 던졌고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남자를 향한
마음은 미움과 증오로 돌변하였습니다.
그녀의 계략으로 요셉은 하루아침에 지하
감옥에 갇힌 죄수로 전락합니다.
따지고 보면 요셉의 이력서는 보잘 것 없습니다.
노예에서 시작하여 추악한 꼬리표가 붙은 죄수의
가망없는 삶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어린시절의 꿈은 한낱 해프닝으로 결말을 맞이
하게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셉만 그렇게 덧없고 구비구비 굴곡있는 삶을
살았을까요?
우리의 삶도 별볼일 없는 인생임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가있습니다. 적당한 자리와 연봉과 명예를
옷입고 있다한들 사람의 본성은 아이처럼 어리석고,
인생이 뜻대로 잘 되지 않아 실로 덧없고 무익함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다들 요셉같은 해피엔딩을 원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습니다. 마치 로또 당첨자처럼
요셉은 그저 운좋은 극소수의 사람중 하나가 아닐
까요?
-- 보내심 받은 자 --
"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 105:17~19)
총신대학원 교수를 역임하시고 남포교회에서
35년간 사역하시다 원로목사가 되신 '하나님의
열심'의 저자인 박영선 목사님은 위 본문을 인용
하시면서 히브리 원어의 모든 동사가 수동태임을
지적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뜻과 달리 '팔리고' '사슬에 매이고'
'보냄받았'습니다.
이 말은 곧 스스로 원해서 가족들을 구원하려고
청운의 꿈을 품고 애굽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노예로 팔렸고, 한 여자의 왜곡된 사랑으로 누명을
쓰고 치욕스런 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는 단련받는 과정
즉 연단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충만한 때가 차지까지 요셉은 보잘것 없는
죄수의 몸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을 팔고 배신한 형들을 증오하며,
거짓으로 자신을 멸망의구렁텅이로 밀어넣은
한 여인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서서히 망가져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임재 곧
아버지의 함께하심이 늘 그의 곁에 함께하셔서
그를 도우셨습니다.
(창 39:3,23)
임마누엘의 축복은 믿는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은혜입니다. 보잘것 없는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지하철에서 자작시집을 팔며 연명하는
장애를 가진 시인의 글을 인용해 볼까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무척 사랑하시거든요
난 자신있어요"
요셉은 시위대장의 집에서도 감옥의 간수
에게서도 모든 권한을 위임받고 간섭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형통케 하심을
그들의 눈으로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두르고 있는 사람에게는
믿지 않는 자라도 그 분의 임재를 느끼고
인정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영광이요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 성숙해 가는 요셉 --
아버지 집에 있을 때 기이한 꿈을 받고서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의식에 가득차
의기양양했던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되는 삶의 추락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런 형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고 견고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애굽에 보내신 비극적인 사건
의 배후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예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깊은 밤같은 어두운 지하감옥에서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앞에서
올바르게 살기위해 선택한 일이 왜 재앙으로
보답받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보통 기도의 응답은 때가 이르기까지 속시원한
대답을 얻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 대답은
나무가 자라듯 성숙의 결과인 인격의 열매로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깨달음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오랜시간이 지나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면 그제서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보호하심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을 알게됩니다
-- 요셉이 베푸는 용서와 긍휼 --
형님들을 만난 요셉은 오랜 고민 끝에 깨달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생각의 열매를, 복수의
두려움에 떠는 그의 형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창45:7~8)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
이시라'라는 말을 합니다. 요셉을 총리의 자리에
세우신 것은 자신을 팔아넘긴 형님들과 그들의
가족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큰 뜻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높은 자리에 올라 원수를 갚기엔 이미
하나님의 높은 뜻과 계획을 너무 많이 깨달아
버렸습니다.
형님들의 시기와 분노와 악행은 사실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였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존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면서 형들에게 원수를 갚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형들을 죽인
다면 자신을 애굽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정면
으로 대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유지하고
번영시키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혈통을 통해서만 고대하던 메시야께서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이익과
손해를 따진다면 원수갚을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계획임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원수갚는 일은 무의미해집니다.
오히려 주의 손에 들려 쓰임받는 어리석은 자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긍휼의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1. 심판자 하나님의 자리(19절)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겠냐고 묻습니다.
심판자께서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면 또 원수
갚는 일이 무의미함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앞에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롬 12: 19)
2.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전화위복의 계획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내게서 돌아섰을
때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은 나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축복과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
(요16:21)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비록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욥과 같은 밤이
계속 된다고 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고통과 연단에 대한
상급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원대한 강의 흐름이며 큰 그림입니다.
3. 원수를 은혜로 갚은 사람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자리에 나아간 사람은 더 이상
원수를 갚을 이유도 권한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물과 피를 흘려 모든 죄를 씻으셨
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더 이상 묻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오기를
밤낮없이 기다리십니다. 거룩하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끄시려고 끊임없이 권고
하시고, 격려하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
며, 매일 매순간 우리를 붙드십니다.
이런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원수
갚을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남은 일은
요셉처럼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라는 말뿐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만나기도 전에
악을 선으로 갚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 결 론 ]
요셉과 그의 형들은 심리적으로 동생을 팔았던
과거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넣었지만 사실은 그 구덩이에 자신들이
들어간 셈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죄책감과 불안,
그리고 죄의 결과를 짊어져야만 했습니다.
요셉은 오히려 복수와 원망의 구덩이에서 빠져
나와 용서와 하나님의 경륜을 바라보는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리만 높은 직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인생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한 통찰력
을 얻게 되었습니다.
형님들을 만날 때 과거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아니라 죄책감의 구렁텅이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인생들을 바라보는 용서하는 자, 은혜를
베푸는 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위치를
보여줍니다. 비록 죽음의 구덩이에 빠졌으나
높이 들려 영광중에 계시면서 만민으로부터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분, 그리고 자신을 희생
하여 열방 모든 민족에게 양식을 주시는 구원자
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요셉과 예수님의 공통점을몇가지 발견할 수 있습
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여 팔리셨다는
것, 귀한 아들의 모습에서 노예의 모습으로
낮아지심, 그리고 오해와 비방을 감수해야만
하셨던 것, 어둠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신 것,
높이 들려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고 만민을 심판
하실 분이시지만 용서하시고 그들을 은혜로
살리시는 것, 영육간의 양식을 공급하며 모든
가족들에게까지 구원이 미치게 한 것, 아버지에게는
죽은 아들로서 슬픔을 드린 것, 등 예수님의 예표로서
요셉은 그의 인생을 통해 천국의 비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심판자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 오신
분이 어떤 분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용서와 자비와 긍휼로 자신을
선대하신 하나님앞에서, 앙갚음대신 은혜 베풀기를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사람의 마땅히
행할바 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