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여름, 총 길이가 약 10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상어 화석이 미국에서 발견됐다. 당시 언론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상어 화석 중 길이가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된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화석이 비교적 선명하게 발굴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어의 전체적인 윤곽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상어는 골격이 모두 연골로 돼 있어서 화석이 되더라도 골격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어나 가오리 같은 연골어류들은 죽어서 화석이 되면 대부분 이빨이나 턱뼈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연골은 상어의 실생활에서 상당히 유리한 장점이 된다.
물렁뼈인 연골로 되어 있는 상어는 몸의 유연성이 일반 경골어류보다 훨씬 좋다. 따라서 입을 훨씬 크게 벌릴 수 있어서 턱으로 먹잇감을 공격하기에 유리하고, 한 번 물면 크게 흔들어 치명상을 안길 수 있다.
▲ 연골은 상어의 실생활에서 상당히 유리한 장점이 된다. ⓒmorgueFile free photo
상어 종류 중에는 최고 수심 5천 미터의 해저에 사는 종류도 있는데, 이것도 연골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물속에서는 10미터 내려갈 때마다 1기압 정도씩 높아지므로 수심 5천 미터에서는 약 500기압의 압력을 받게 된다.
이처럼 심한 압력을 받는 곳에서는 단단한 경골일수록 충격이 커서 부러지기 쉽지만, 상어는 연골이므로 고압을 이겨내기에 훨씬 수월하다. 무엇이든 단단한 것보다는 연할수록 충격에는 오히려 강하기 때문이다.
심해저에 사는 물고기들을 잡아서 곧바로 물위로 끌어올리면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수압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부레 속의 기체가 팽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해저에 사는 생물들은 아예 부레를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골어류인 상어는 부레도 아예 없다. 단단한 뼈를 지닌 경골어류는 부레에 공기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물속에서 부력을 확보하지만, 연골어류는 체내에 가벼운 지방을 축적해 그것을 부력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어는 부레로 부력을 조절해 물속에 떠 있을 수 없으므로 지느러미와 근육을 사용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또한 스스로 아가미로 물을 보낼 수도 없기 때문에 아가미로 물을 보내 산소를 꾸준히 섭취하기 위해서라도 상어는 계속 헤엄을 쳐야 한다.
상어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상어의 연골은 상어가 평생 질병에 잘 걸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미국의 월리엄 레인 박사는 상어에 대한 각종 연구업적을 토대로 1992년에 ‘상어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그에 따르면 상어 연골을 수술이 불가능한 복부종양 환자들에게 매일 복용시킨 결과, 종양의 크기가 작아졌을 뿐만 아니라 암의 성장도 멈췄다는 것. 그밖에 상어 연골은 자궁암 및 폐암, 유방암, 류머티즘, 관절염 등 각종 질환에 대해서도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상어 연골에는 콘드로이친과 히알루론산, 콜라겐 등의 단백질이 함유돼 있다. 콘드로이친은 뼈를 이루고 각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히알루론산은 체내에서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또한 관절의 연골과 인대조직을 구성하는 콜라겐은 관절염과 골다공증 완화 및 피부 미백 효과를 낸다.
이처럼 체내 영양분을 공급하고 면역력 강화 및 상처 치유 능력이 있는 연골 덕분에 상어는 질병에 강하고 비교적 오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왜 상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뼈가 없는 연골어류로 남아 있는 것일까.
지난 9일 발간된 네이처 지의 표지를 장식한 논문에서 그에 대한 해답이 제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및 싱가포르 등의 국제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그 논문은 주둥이가 앞으로 튀어나온 파격적인 용모를 지닌 퉁소상어의 게놈 분석결과이다.
옆으로 납작한 몸과 긴 트렁크 모양의 주둥이를 가진 퉁소상어는 코 모양이 코끼리 같아서 서구에서는 ‘코끼리 상어(elephant shark)’로 불린다.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질랜드 남부 등 남반구의 냉·온대 해역의 대륙붕에 서식하며, 독특한 주둥이를 이용해 모래 속에 묻혀 있는 조개류를 사냥해서 먹고산다.
상어 및 가오리, 홍어 등이 속해 있는 연골어류의 게놈이 분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이 그중에서도 퉁소상어를 선택한 이유는 지난 4억2천만년 동안 변한 게 거의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퉁소상어와 다른 척추동물의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하면 상어가 왜 연골로 된 골격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퉁소상어의 경우 게놈 크기가 인간 유전체의 약 3분의 1 정도로 적다는 점도 연구진들의 결정을 도왔다.
퉁소상어는 면역반응 조절 시스템 없어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8개 종의 경골어류 및 칠성장어 등의 게놈 분석을 통해 골격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어가 진화 과정에서 골격 형성 능력을 상실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골격 형성 능력을 보유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이번에 최초로 밝혀진 퉁소상어의 게놈 분석 결과에 의하면, 뼈를 단단하게 형성토록 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하나의 유전자군이 부족하여 연골어류는 연골을 뼈로 전환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연구진이 열대어인 제브라피시에서 이들 유전자 중 하나를 제거시키자 제브라피시의 골격 생성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퉁소상어는 킬러T세포는 보유하고 있지만 헬퍼T세포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킬러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파괴하여 죽이는 역할을 하며, 헬퍼T세포는 감염에 대한 면역반응을 전반적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퉁소상어는 한 번 감염됐던 병원체를 면역계가 기억해 병원균이 다시 침입했을 때 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상어가 질병에 강하며, 어떻게 병원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한편, 상어가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못된 믿음인 것으로 이미 밝혀졌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오스트랜더 박사팀은 돔발상어, 타이거상어 등 상어와 연관된 종들에게서 42종류의 종양이 발생하며, 특히 상어 연골 자체에서도 종양이 발생된 사례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말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이 ‘어류 질병’이란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백상어 및 무태상어가 커다란 종양을 달고 있는 사진이 게재된 바 있다. 상어뿐만 아니라 다른 해양동물에서도 최근 들어 암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인간의 해양오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