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무진·하늬해변의 비경 느끼실 텐가…기꺼이 내 어깨 빌려 드리리
내 이름은 백령. 흰 백(白)에 날개 령(翎)을 쓴다. 조선시대, 황해도의 가난한 선비와 사랑에 빠진 사또의 딸을 편지로 맺어준 흰 날개 따오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근래 속세 사람들은 천안함 폭침 등으로 먼저 떠올리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나 자신. 그 비극적 폭침이 있기 최소 1만년 전부터 나는 황해를 지키고 있었다.
제4 빙하기만 해도 어머니 한반도와 한몸이었지만, 대략 1만년 전 후빙기에 들어와 빙하가 녹고 바닷물 수위가 높아지면서 나는 결심했다. 황해도 옹진반도에서 떨어져나가 스스로 섬이 되기로.
엊그제 내 주변 북방한계선(NLL)을 향해 130발의 해안포를 쏜 자들 들어라. 가소롭다. 그까짓 경거망동으로 만년 동안 지녀온 나의 비경(비境)과 자부심이 무너지리라 생각하는가. 여전히 인천여객터미널은 나를 보려고 배에 오르는 사람들로 붐빈다.
인당수를 기억하는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심청이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그 바다. 여기서 북쪽 바다로 17㎞만 올라가면 거기가 인당수다. 황해도 장산곶 바로 왼쪽, 소용돌이 물살로 악명높은 뱃길이다. 이곳 사람들은 그 효녀를 기려 내 오른쪽 어깨 한 귀퉁이에 심청각을 짓고 효를 숭상하더군. 하지만 오늘 내 요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뱃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빠르고 험한 물살과 거센 파도가 만년 넘게 내 육신을 깎고 새겼다. 특히 내 왼쪽 어깨에는 한반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암괴석을 빚어냈다. 세속에서는 이를 두무진(頭武津)이라 부른다.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광해군이 "늙은 신(神)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한 선대암·형제바위·코끼리바위·신선암 등 기기묘묘한 괴석들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입이 쩍 벌어지는 풍광으로 나타난다. 금강산을 다녀온 이들은 두무진을 서해의 해금강(海金剛)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더군.
- ▲ 빠른 물살과 바람이 만 년 동안 자신의 흔적을 새겨 넣은 곳. 백령도 두무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하늬해변의 상륙저지용 쇠기둥, 용치(龍齒). / 백령도=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하늬해변에 오면 용치(龍齒·Dragon Teeth)를 보라. 용의 이빨을 닮았다고 해병대가 붙여준 이름이다. 수십년 전 적의 해상침략을 막기 위해 해병대가 바닷가에 박아 넣은 수백 개의 쇠기둥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해삼·전복·굴의 안식처가 됐다. 또 석양 어스름이 피어날 무렵엔 하루종일 바쁘게 퍼덕거렸던 갈매기와 가마우지들이 한 기둥씩 차고 앉아 지친 몸을 가눈다. 빼어난 자연환경과 국가안보의 당위가 만나 그려낸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여의도 다섯 배 크기인 내 몸뚱이에는 4000명이 넘는 주민과 그에 육박하는 해병대 장병들이 살고 있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민간인 반, 군인 반. 안보와 비경이 공존하는 특이한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내 앞바다에 살고 있는 광어·우럭·놀래미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백령도 앞바다, 그 차갑고 빠른 물살을 이겨낸 탱탱한 육질을 상상해 보라.
지난 며칠, 하늘은 우울했다. 거미줄 같은 여우비가 계속되더니 폭포 같은 소나기가 느닷없이 퍼부었고, 빗방울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잔뜩 찌푸렸었다. 지금, 오랜만에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두무진 신선암과 태양을 잇는 최단거리로 한 줄기 햇살이 직선을 긋는다. 한 사내가 가파른 각도의 신선암을 기어오른다. 아예 빈틈없는 90도라면 포기했을 텐데, 발끝의 여지를 가까스로 몇 남겨 놓은 내가 잘못했던 것일까. 아니, 잔인했던 것일까. 욕망에 들뜬 그 사내가 나를 오른다. 내 이름은 백령. 흰 날개에 올라타, 나를 느끼시라.
어제(8월 11일)부터 백령도는 관광 비수기를 선언했다. 천안함, 서해 해상 훈련 등으로 곤란을 겪은 여행업계가 예년보다 닷새 혹은 열흘 일찍 '할인 요금' 체제로 돌입했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dom. icferry.or.kr·032-885-0180)에서 백령도행 여객선을 탄다. 4시간~4시간30분. 성수기 편도 요금은 6만3700원이었지만, 11일부터는 5만7400원이다. 백령여행사(032-836-6662)에서는 평일은 비수기 요금에서 추가로 20% 할인한다. 멀미에 취약한 사람은 꼭 약을 챙길 것. 선상 매점에서도 판매한다.
백령도는 펜션과 민박이 대세다. 체류 기간 동안 백령아일랜드캐슬(032-836-6700)에서 묵었다. 한국관광공사가 중가 숙박시설 중 우수숙박업소를 상대로 '굿스테이' 인증을 하고 있는데, 백령도에서 유일하게 인증을 받은 곳이다. 취사 불가. 4인실 6만원, 6인실 8만원.
백령도는 렌터카 여행이 불편한 편이다. 내비게이션과 휴대전화가 통하지 않는 곳이 많고, 이정표도 친절하지 않다. 관광안내지도를 잘 이용하고, 자주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나나 렌터카(032-836-6699)는 아반떼 8만원, 소나타 1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