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물 생산업 열림일지를 쓰면서
직장인한테 일요일은 마음도 몸도 쉬어가는 날이다. 또한, 주부에게는 방학 숙제처럼 미뤄두었던 일주일 치 집안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일요일 아침, 평화를 찢고 핸드폰이 울렸다. 바탕화면에 찍힌 남편 이름을 보고 순간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이 되고 말았다. 보나, 마나 농사일을 도우라는 남편의 전화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 산에 와서 임산물 생산업 산림경영일지에 올린 사진을 찍으라는 거였다.
농촌에 살면서 밭농사와 논농사를 하게 되면 나라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농업 직불금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작년부터 임업·산림 공익직접지불 사업으로 밤농사를 짓는 농가에 직불금 지급이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면서 임업을 하는 농부에게 임산물 생산업 영림일지를 쓰게 하였다. 말보다는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수확하는 지, 직불금에 대한 합당한 자료를 요구하였다.
임업일지를 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농업경영자인 본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앱을 통해 쓰는 것이다. 두 번째는 농촌의 고령화로 인해 스마트폰 사용을 잘하지 못하는 농가에서는 일지를 나눠줘 기재하는 거였다. 나는 스마트폰 사용을 잘하지만, 남편 휴대전화기는 효도폰이어서 우리 집은 일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2022년 7월부터 쓰게 된 산림경영일지가 횟수로는 한 살을 먹었다. 일지를 쓰기 전 밤 산은 수확 철에만 갔었다. 일지에 올릴 증빙 사진을 찍게 되면서 남편이 밤 산에 일하러 갈 때마다 종종 따라나서게 되었다. 그러면서 밤 산에서 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지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일 년 중 하우스를 하지 않는 한 노지에서 농사일은 6개월가량 하게 된다. 빈둥거리며 논다고 생각했던 밤 산일이 의외로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겨울을 지나 봄의 길목에 들어서자 언 땅이 녹기 무섭게 남편은 장화를 찾았다. 화물차에 전기톱과 가지치용 톱을 싣고 밤 산을 향하였다. 밤 산에 올라 겨우내 자란 가지를 자르기 시작하였다. 더러 죽은 나무는 전기톱을 이용해 잘라내었다. 나무마다 남편의 손이 미치자 여기저기 바닥에는 잘려진 나무가 나뒹굴었다. 나무는 이발한 듯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다음날에는 화물칸에 비료를 잔뜩 싣고 산에 올랐다. 어깨에 비료를 메고 나무마다 다니며 나눠놓았다. 장화 발로 경사진 길을 계단 오르듯 연신 오르락내리락했다. 남편이 비료 주고 온 날은 밤새 허벅지와 무릎 관절이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했다.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밤농사를 일지를 쓰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밤 한 톨을 수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함을, 덤불에 떨어진 밤 한 톨까지 샅샅이 주워내고야 마는 남편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봄부터 여름내 흘린 땀이 밤 한 톨도 자식처럼 여겨져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큰 손을 자랑하며 인심 쓰기에 바빴다. 뼛속까지 거름물이 든 남편에 비해 어쭙잖게 흙물이 든 나는 설익은 농부였다.
오늘도 남편의 전화를 받고 밤 산에 올랐다. 남편의 일하는 모습을 여러 장에 나눠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내 카톡에 전송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카톡에 담긴 사진을 파일로 저장했다. 일지에 올린 사진을 찾아 사진을 줄이고 인쇄했다. 가위로 잘라 일지에 붙여놓으니 밤 산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왠지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나야 컴퓨터 사용을 잘해서 사진을 인쇄해 밤 산에서 일한 증빙 사진을 붙인다지만, 연세 드신 분들은 어떻게 일지를 쓰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은 대로 공주로 나가 현상하라고. 어째 그건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우리의 페이지 속에는 가득하다.
2023.2.12
첫댓글 임산물생산 영림일지도 있었군요. 처음 들어 보지만 실지 작업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비탈진 곳을 오르내리며 거름도 주고 높이 솟은 가지전정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어쭙잖게 흙물이든 설익은 농부라고 하셨지만 수연님은 술포대남자의 온힘이요 활력입니다. 영림일지에서 생기가 넘쳐납니다.
일지를 쓰는 과정에서 참, 많은 걸 느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은 남자들 하는 일에 비하면 편합니다.
수연님은 하는일도 많아요~
난 재주 없으~ ㅎㅎㅎ
2호에 수필이나 시나 한편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