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신발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원래 발이 다소 큰 데다 발바닥이 평족(平足)이었으니 아무리 멋진 신을 신어도 얼마 못 가 비뚤어지고 옆이 터진다. 자주 벗어내는 신발에 몹시 신경이 쓰였셨던지, 중학교 때인가 한 번은 아버님께서 시장에서 샀다면서 자동차 타이어를 잘라 밑바닥을 대고 위에는 헌 군화(軍靴)를 붙여 만든 구두를 사주셨는데, 발등 쪽은 괜찮은데 발바닥은 걸으면 바닥도 휘어져야 하는데 뻣뻣해서 마치 나막신을 신은 것 같았다. 괴롭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빨리 닳아야 다른 신발을 바꿀 건데 당최 타이어가 닳지를 않으니 혼자 있을 땐 벗어 시멘트 바닥에 박박 문지르기도 해봤다. 결국 바닥보다 위쪽이 먼저 헤져 버렸다.
아탈리아의 유명 도시(빨간 부분이 피사와 리보르노)
언젠가는 가물가물하지만 읽은 적이 있는 얘기다.
「A와 B가 같이 신발을 사 신었는데 한참을 지나도 A의 신발은 말짱한데 B의 것은 닳기 시작했다. B가 A에게 물었다. 어떻게 신기에 닳지 않느냐고? A가 “너는 우째 신는데?” 하고 되물었다.
B 왈 “나는 사람이 없을 때는 벗어들고 가고 사람들 있을 때만 신고 간다”고 했다. A 왈 “그러니까 빨리 닳지” 했다. 슬며시 화가 난 B가 그럼 “당신은 우째 신는데?” 하고 대들었다. “나는 사람 없을 때 벗어 들고 가는 것은 당신하고 같은데, 사람들이 있을 때는 신고 가만히 서 있다 지나가면 또 벗어들고 가지.”」 했다는 것이다.
참말 같기도 하고 우스개 같기도 한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아 믿어지니 않았지만 연신 고개만 갸웃하면서 어쩌면 참말일 것이라 생각도했다. 내 운동화 닳는 것 보면….
실은 옛말에 ‘거렁벵이 금탕 이루듯’ 얻은 운동환데 밤에는 품에 안고 잘 정도로 아꼈던 것이다. 하루 지나면 어디 상한 데가 없는가 살펴보곤 했었다.
사범 2학년 때, 한 해 선배인 박종달 형과 어쩌다 옛 대봉동 수도산 밑을 지나다 만났다. 수도산에서 명덕로타리 사이의 도로확장공사를 하던 여름철이라 땀도 닦으며 공사 중 밀쳐놓은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얘기하다 신발 얘기가 나왔다. 종달 형은 키도 컸으니 발도 나보다 더 컸다. 최대 문수의 신발인데 어떤 때는 터무니 없는 비싼 값으로, 어떤 때는 반값으로 신발을 사야 했다. 당시는 신발크기를 문수로 했다. 커서 팔리지 않아 뒷전에 밀려나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것은 그야말로 반값이었고, 발에 맞는 사이즈를 찾아 헤메다가 겨우 있는 집을 찾았을 때는 주인장이 부르는 게 값이었다는 얘기에 둘이서 공감을 했다.
지금도 그렇다. 가뜩이나 그런 형편에 늘그막엔 무지외반증이라나, 발가락이 농가의 깔꾸리처럼 벌어졌으니…. 할 수 없이 한 단계 위 사이즈의 구두를 신었더니 처음엔 편했는데 나중에는 구두가 헐렁헐렁 해졌다. 다행히 세월이 좋아 신발의 종류도 많고 꼭히 구두를 신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 편하기는 해도 나 혼자만의 불편함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한 켤레 2만원 남짓 하는 중국산 신발을 여러 켤레 사두고 번갈아 가며 신는 데 아주 편하고 좋다.
지금 신는 중국산 신발
이탈리아 리보르노(Livorno)항에서다. 영어로는 레그혼(Leghorn)이라고 되어 있어 한참 찾은 항명(港名)이기도 했다. 유명한 사탑(斜塔)이 있는 피사(Pisa)와는 가까워 운하로 연결되어 있으며, 원래 이 항구는 1017년에 피사를 방어하기 위해 해안 요새(要塞)로 만들어진 항구라고 했다. 덕분에 사탑을 구경했다.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부실공사’로, 기울지 않고 멀쩡한 탑이었다면 평범한 탑이 됐겠지만 기울어졌기 때문에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관광 명물로도 유명해진 건축물의 대명사다.
피사의 사탑은 117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공사 중에 기울어지기 시작, 소동이 벌어졌지만, 공사 중 전쟁 등으로 지연되었는데 도중에 자연적인 현상으로 지반이 굳어 기울어짐이 멈추었다고 한다. 아무튼 최종 완공은 200년이 지난 1372년도였다 한다. 그리고는 500여 년이 지난 20세기에 들어와서 전면적인 기울어짐 방지 공사를 했다고 한다.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종각(鐘閣)이라 내 키만한 높이의 큼직한 종이 설치되어 있지만 소리의 진동이 탑신에 영향을 줄까 봐 종을 사용하지 않고 종소리를 녹음하여 시간이 되면 마이크로 울리게 되어 있었다. 기울어진 탑을 올라가기도 그렇지만 꼭대기에 서서도 기분이 영 나빴다. 당장이라도 와락 넘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핀사의 사탑(윗쪽은 탑의 꼭대기 아레는 탑 아래)
리보르노(Livorno)항, 크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아담했다. 시내를 구경하다가 구두가 유난히 예쁘고 좋아서 한 켤레를 산 적이 있다. 진짜로 모양도 날씬하고 깔끔했다. 신어 봐도 된데서 신어보니 바닥도 말랑말랑한 게 발이 편했다. 주저됐지만 호랑이 가죽 보니 탐나는 격이었다. 내 발 모양 생각하면 턱도 없는 일인데 구두보니 탐이 났다. “에라, 안 되면 신발에 발을 맞추면 되지.” 하는 생각이 언뜻 떠올라 만만치 않은 대금을 치르고 샀다. 촌놈 읍내 장에 나온 김에 큰맘 먹은 꼴이다. 보통 때 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은데 우째 그날따라 무슨 귀신이라도 씌었는지 자꾸만 땡기었다.
구두 · 넥타이 · 손수건 · 핸드백 · 허리띠 등등 엑세사리 부분에서 세계적인 메이커인 이탈리아가 아닌가. 귀국하면 마누라나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보여줄 것이라 기대도 겸해서….
얼씨구나 하고 신고는 시내를 반 나절 걸었다. 오후에 귀선(歸船)하여 보니 어어! 양쪽 구두 뒤축이 반쯤, 그것도 삐딱하게 닳아버렸다. 겨우 반나절인데?
사범학교 갓 졸업하자마자 아버님이 “가자” 하시기에 따라간 곳이 양복점과 구두방이었다. 아들 넘이 졸업과 동시에 고향 바닥의 교사로 발령을 받았으니 내심 자랑스럽고 뿌듯하셨던 모양이었다. 양복과 구두부터 맞추었지만 내 의견이라고는 들어갈 틈도 없이 아버님 오더(Order)대로 였다.
양복쟁이는 체격이 ‘좋습니다’는 말로 자신이 기분 좋음을 표시했지만, 구두장이는 ‘발이 많이 큽니다’는 얘기로 내 발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어제까지 운동화 아니면 타이어 밑창의 신발 같은 것을 신다가 새 양복에 새 구두는 날벼락처럼 신기하고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래도 맞춤이었으니 편하고 웬만큼 신어도 끄떡없었다.
당시에 ‘고도방’이라는 구두가 있었다. 우리네야 언감생심, 꿈도 못 꾼 것이었다. 설핏 본 적은 있다. ‘파랭이(파리)가 앉으면 쫄딱 미끄러지겠다’는 농담처럼 빤짝반짝 한 것만 기억이 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왜 ‘고도방’ 이란 이름이 붙은 것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추측하기는 서양의 말인데 일본인들의 발음이 된 것 아닌가 싶다. 단, 고도방 구두는 약칠을 하지 않아도 반짝거린다고는 들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아시는 분은 댓글에 남겨주시면 한다.
이탈리아에서 어렵게 산 구두가 반나절 만에 이렇게 닳았으니 부아부터 치민다. 속은 것도 같고 가짜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방면에 밝은 기관장에게 물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형 · 아우 하는 지기(知己) 사이기도 했다
“어디 봅시다. 이 구두 가짜 아이가? 히히히” 하면서 보더니 혼자서 한바탕 웃었다.
“캡틴, 이거 무신 구둔 줄이나 알고 나 샀오?” 했다.
“아! 이태리 고도방 구두 아이가?”
“이 구두 신고 시내 시멘바닥을 걸었단 말이오?”
“비싼 값 주고 싼 건데 폼 한번 냈지.”
“사기는 잘 샀는데 신기는 영 잘못 신었네요.”
이 친구도 내 발이 크고 모양새가 없다는 건 알고 있기에, 또 발 때문인가 해서 더럭 겁이 났다.
“뭐라고? 잘 못 신었다니?”
“이거는 아무데서나 신는 게 아니고 카펫트 깔린 바닥에서만 신는 구두요, 뒷창이 코르크로 된거요.”
“뭐라꼬, 코르크? 그 빙마개 하는 그 나무 말이가?” 그렇단다. 어구야!
그러고 보니 생각은 난다. ‘007 제임스 본드’ 같은 영화의 화려한 파티장에서 본 장면들이다. 남자들이야 정장에 나비넥타이 차림이지만 구두야 빤질하게 닦인 것 말고는 볼 수 없지만, 여인들의 드레스! 나이롱 옷감이 처음 나왔을 때 입이 걸죽한 이웃집 할머니가 “아이구야 이거 물똥방구 껍데기로 만들었나 우찌 이리얇노”해서 주위의 며느리들을 한바탕 웃긴 적이 있었다.
진짜 그런 걸로 만든 것인지, 입으로 불어도 날아갈 듯한 얇은 옷에다 뵐 듯 말듯 아슬아슬한 차림새, 아무리 봐도 젖가리개는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고, 팬티는, 만약에 입었다면 분명 옷감이 아닌 끈으로 만들었을 거라는 상상만을 했었던, 그런 곳에서 본 빨간 천이 쫙 깔린 바닥이다. 그 위에서 나비 날 듯 춤을 추거나 칵텔잔을 들고 나불데는 커플들이 있다. 그 자리에서 신사들이 신는 구두라니!
“씨팔! 촌넘이 그런 거까지 있는지는 꿈엔들 알았나.” 나 혼자 치민 부아를 다스린 소리였다. 하기야 살 때 상점 주인이 잘 알아듣지도 못 하는 말 속에 ‘코르크 코르크’라는 말은 들었다는 생각은 났다.
그 다음부터는 선내(船內)에서도 마음대로 신지 못했다. 이미 소문이 나버려 선원들 보기도 남사스러웠다. “선장이라는 게 쥐뿔도 모르고…”, “아이고 이 등신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부득이 ‘Capt. Cabin(선장실)’에서만 신다 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아깝다. 그놈의 코르크 구두!
그때 산 전기 스탠드
이때 또 하나 산 것이 피사의 사탑 모양의 소형 스탠드인데 이것은 지금도 내 방의 야간등으로 매일밤 불침번을 서고 있다
첫댓글 시종일관 웃느라 마지막 쯤 '내가 뭘 읽었지?
삐딱이 발이 이렇게 웃길 수 있다니 ....^^
새 해 첫 주 부터 웃느라 진을 뺏으니 올 해는 대운을 따논 당상.
늑점이 자네 걸어온 경험담 글을 읽으면 소설을 한편 읽었는것 같고 너무 재미 있고 우스워
혼자 웃고 있는데 마님이 하는 말 "당신 요즘 좀 돌았는 것 같소"란 말도 들었네.
한편의 단편 소설을 잘 읽었네.
마님이 잘 보셨네요. 돌기는 돌았오, 내가 봐도. 나는 성이 나 죽을지경인에 남의 속도 모르고 웃었으니까 돈거 아니요? ㅎㅎㅎ 건강하소. 부산넘
장암이 왜그리 배를 잡고 웃느냐고 묻네요. "서완수가 완수가....." 눈치 채고 모바일을 들더니 "짜식 입담이 대단해"
"여봉. 고도방이 뭔데요?"
"으응, 대구 향촌동의 킹양화점에 가면 말 엉덩이 가죽으로 만든 수제화를 주문하는데 고도방구두라고 하지.
최고급 가죽 구두란 뜻이야"
"왜 고도방이래?" "코로도바(??기억삼삼)를 일본것들이 고도방이라고 발음한다고 사장이 그러데"
?
?
저녁밥을 먹으면서 폭풍검색. {코로도바&코르도바}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바 람 새.
밥이 목구멍에 걸렸다. 늑점이 땜시.ㅋㅋㅋ
늑점이도 이쯤되면 검색해 보면 알것쥐.ㅎㅎㅎ
와았다. 역시 왕년에 그 바닥을 누빈 장암 성님이네요. '대구 향촌동. 킹양화점. 말 엉덩이 가죽.수제화' 60년만에 처음 알았네요. 고맙소
다음 대구 가면 한 번 찾아봐야것소. 아직 있다네요. 더 검색할 것도 없오. 고도방! 그 보다 내 코르크 구두 요새 파는데 없는가 장암 성한데 물어보소.
그 구두만 생각함 이가 갈림다. ㅎㅎㅎ 부사넘
ㅋㅋ코르크 구두하면 바람새도 할말 있습니다.
장암이 2014년에 미국에서 구입했었습니다. 가볍다고 그것만 신는데 아들이
"아버지~~ 그 신을 아무데나 신고 다니면 어떻해요."
"임마 차 속에서, 잔디에서만 있는데 흙을 밟을 일이 있냐" 하데요. 못 말려.^^
@김능자 거기도 사기는 잘 샀는데 신기는 잘못 신었는 갑네요. 흙이 아니고 세멘트 바닥에서 신어봐야 알지요.
그래도 아들이 알기나 했지만, 나는 귀경도 못 시켰음다. ㅎㅎㅎ 부산넘
@늑점이 내 남편이 별라다 속 끓였는데 남자들의 속성인가 봅니다.
ㅎㅎㅎ^ㅎ 석암 ! 자네는 경력이 다양하지마는 문장력, 표현력이 뛰어나서 긴 글을 단숨에 읽고
오랜만에 얼마나 웃었는지 배꼽 빠진다는 말이 생각 나드라. 후배들 댓글도 자네의 우수작에 어울리는 것 같아서
역시 명문 출신의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한 장면을 꾸며준 후배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선배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장력이나 표현력이 좋아서가 아니고 그냥 실제로 겪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마음 그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야할 구두가 아닌데 귀신에게 홀렸는자 비싸게 주고 산 것이 코르크라 반나절 신고
반 이상이나 뒷축이 닳았는데 무식함에 앞서 성이 안나고 욕이 안나오겠습니까?
1977~9년도 아프리카 나이제리아의 관문 라고스항에는 약 200여척의 외항선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나라 사정이
그랬었지요. 다행히 저는 식품을 적재했었기에 길게는 한 달 정도면 됐지만 어느 한국 배는 시멘트를 싣고 가 1년을 대기하다
밤중에 몰래 저한테만 얘기하고 달아난 예가 있습조? 그때 특히 일본선박은 무조건 '히로시마마루'를 찾으라고 소문이 났을
정도였습니다. 언젠가 이 기사도 쓰야겠네요. '명문출신의 자부심'이라니.... . 그냥 살기위한 노력일뿐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부산넘.
@늑점이 한달도 길게 느낄텐데 일년씩이나.
낯 선 곳에세 버티기가....
곳곳에서 힘겨운 삶을 즐기는 묘책이라도???
구두 특히 코르크 구두에 대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솜씨가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