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리는 면의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동쪽은 미원면 미원리, 남은 미원면 성대리 서 쪽은 추정리, 북쪽은 호정리와 귀래리에 접해 있다.
연혁
관정리는 본래 청주군 산내이상면 지역으로 조선 영조 후반(1750-1776) 관기리 묵정 리가 새로이 조성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직전에는 묵정. 관기 호산. 감당. 호동 로 이 루어저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 로 감당리를 미원면 성대리 호동의 일부를 호 정리로 넘겨 주고 관기리와 묵정리의 이름을 따서 관정리라 하였으며, 활뫼,담 안. 재 실을 1리로 머그미.장자불. 절골을 2리로 분구 하였다.
자연마을
활뫼(活山) : 관정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며, 1956년 이전에 琅城面事務所 있던 마을
관터(官基) : 활산 앞에 있는 마을로 백제때 娘臂城의 고을터라 함.
재실 : 활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경주김씨 재실이 있음.
담안 : 재실 동쪽에 있는 마을
칠여골 : 활산 북쪽에 있는 마을
묵정(墨井) : 머그미. 먹우물이라고도 하며 활미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이곳 우물 빛이 먹물처럼 검게 보였다는 전설이 있음.
장자불 : 머그미 동쪽에 있는 마을
절골 : 머그미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오래전에 절이 있었으며 1989년 관정사 절이 다시 신축 되었음.
묵정영당은 조선 순조(純祖) 30년(1830)에 세조(世祖)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신(左翼功臣) 1등으로 책록되고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에 봉해진 영의정 문충공(文忠公)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 1417∼1474)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으로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향사하고 있다.
영정은 영조(英祖) 25년(1749)에 가덕면 인차리의 구봉영당(九峰影堂)에 있는 원본(보물 제613호)을 모사(模寫)한 관복(官服)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113cm, 세로 225cm의 설채견본(設彩絹本)인데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가 쓴 화상찬(畵像讚)이 있다.
지금의 영당은 1984년에 중건하고 1989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쌍문을 달고 좌우에 퇴간을 두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묵정영당(墨井影堂)" 이란 편액을 걸었고 마당 앞에 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