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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정리 ♣ |
▣ 김원일 : 1942. 3. 15 경남 김해~. 소설가.
☞ 분단문제를 다룬 소설을 많이 썼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마치고 1963년 대구에서 6개월 동안 전기내선공 견습생활을 했다. 청구대학교 국문과 3학년에 편입하여 대학신문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1966년 대구매일신문사가 주최하는 매일문학상에〈1961년 알제리아〉가 당선된 뒤, 이듬해 〈현대문학〉에서 주최하는 제1회 장편소설공모에 〈어둠의 축제〉가 준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뒤 소설집 〈겨울 골짜기〉(1987)·〈마당깊은 집〉(1989)·〈늘 푸른 소나무〉(1990)를 펴내는 등 쉬지 않고 글을 썼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소시민의 속성과 분단상황에서 파생된 현실의 모순이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며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소설집 〈어둠의 혼〉·〈노을〉(1978)·〈불의 제전〉(1983) 등에 잘 나타나 있다. 1974년 현대문학상, 1978년 한국소설문학상, 1979년 대한민국문학상과 창작문학상, 1983년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2년에는 제34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 갈래 : 단편소설
▣ 주제 :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
▣ 시점 : 1인칭 관찰자
▣ 갈등 : 이념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 미망(未亡) : 잊지 못함 - ‘나’의 아버지의 부재
미망의 대상 = 아버지 : 일제하에서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해방후에는 좌익 운동에, 6․25 후에는 종적을 감춤
┣ ① 할머니에게의 미망 - 귀하고 자랑스런 영원한 아들
┗ ② 어머니에게의 미망 - 어머니에게는 무책임한 가장이고, 부정적 인물
┗ (아버지의 좌익 활동으로 인해 순사에게 시달림. 남편의 부재로 가난에 의한 한의 세월을 삶)
⇒ 고부간의 갈등이 중심된 것이 아니라 이념으로 인한 시대적 갈등을 다루고자 한 소설.
▣ 구성
┣ 발단 : 할머니는 늙은 홀아비였던 할아버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음
┣ 전개 :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아버지는 농민운동과 야학 활동을 함)
┣ 위기 : 광복 후 좌익 운동을 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고초를 겪음
┣ 절정 : ‘나’의 집에 살게 된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이 시작됨
┗ 결말 :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에서 아버지의 보도연맹 가입증일 발견됨
▣ 특징
① 아버지의 좌익 활동은 할머니와 어머니, 즉 여성의 시선으로 묘사되고 있다.
② 일제 식민지와 해방후의 6.25로 인한 분단의 시기에 다리를 두고 있는 이 소설은 이데올로기의 질곡에 희생된 이대의 이야기를 삼대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③ 화자가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으나 아버지에 대한 내용은 여자의 관점에서 전달되고 있다.
▣ 줄거리
작품에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화자인 손자의 집에 머무르는 것을 현재 시점으로 하여, 화자가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으나, 이곳에선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간 순대로 글을 재구성하여 줄거리를 작성하였다.
[하서라는 갯마을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홀어머니와 여동생 셋이서 함께 힘들게 살다가 열아홉되던 해에 모화 땅에서 상처한 서른 하나의 늙은 홀아비였던 할아버지와 혼인하게 된다. 아들 둘을 잃고 세 번째 얻은 아들이 영특하다고 기뻐했으나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좋은 직장 마다하고 야학당을 개설하여 농민운동을 시작해 왜경들의 감시를 받게 된다.
그러자 결혼하면 아들 마음이 잡힐까 하여 혼인을 시키지만 혼인하기 일주일 전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아들 또한 농민 운동을 그만 두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 후 좌익 활동을 하여 어머니는 지서 순경에게 연행되는 일이 잦아지고 할머니는 그런 어머니를 버려 두고 고모네 집에 가서 돌아오질 않다가 아버지의 자수 후에나 돌아온다.
하지만 6.25가 일어나자 다시 아버지는 종적을 감춰버리고 할머니는 다시 고모 댁으로 가버리자 어머니는 화자와 동생을 데리고 모화 땅을 떠나 울산에서 걸뱅이짓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고모 댁에 머무르던 할머니는 고모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손자인 화자의 집에 와서 살게 되고, 울산에서 장사하던 어머니도 작은아들이 해외로 2년간 떠나있게 되자 큰아들인 화자의 집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는 다섯 달 동안 여섯 번을 싸울 정도로 사이가 안 좋고 싸움은 어머니의 일방적인 험담에 할머니의 침묵이 일관되는 이상한 싸움이며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진지를 드시지 않고 어머니는 할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중재하기 위해 이 방 저 방을 왕래하던 화자는 여느 때처럼 두 사람을 화해시키지 못하고 출근하지만 회사로 할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화자는 집으로 급히 돌아온다.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는 애써 자신의 시름을 감추며 냉담하게 말을 하지만, 할머니를 위해 갈치를 두 마리를 사 가지고 온다. 하지만 벌써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이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고모는 할머니가 사십여 년을 차고 다닌 주머니에서 아버지의 조그마한 사진이 붙여진 보도연맹 가입증을 발견한다.]
☺ 감상의 길잡이 ☺ |
未忘의 뜻은 “잊지 못함”이다. 결국 어머니의 미망과 할머니의 미망이 얽혀 만들어진 글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큰 격변기였고 슬픔이었던 일제 식민지와 해방후의 6.25로 인한 분단의 시기에 다리를 두고 있는 이 소설은 이데올로기의 질곡에 희생된 이대의 이야기를 삼대의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작가 김원일은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을 소설 속에서나마 화해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소설을 쓴 동기라 했다.
우선 소설의 주축을 이루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성격을 살펴보도록 하자.
어머니는 여장부답게 몸집이 크고 외모가 말상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이며 성격 또한 드세고 괄괄하며 남달리 부지런해 앉은자리에서라도 낮에 눈을 붙이지 앉는 성격이다. 성격 따라 식성이듯이 폭식주의로 입이 걸어 아무음식이나 잘 드시지만 고혈압에도 불구하고 돼지고기와 두루치기를 즐겨 드신다. 반면 할머니는 여자 중에서도 왜소한 체구였고 성격도 꼼꼼하고 찬찬하며 어떤 면에서는 게으른 편이라 점심식사 뒤 꼭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다. 식성 또한 소식주의로 하루 세끼의 식사량이 일정하며 간 갈치나 간 고등어 등을 구어 놓은 것이나 짠 젓갈 종류를 즐겨 드신다.
이와 같은 성격 대조는 두 사람의 부조화를 알려주는 한 단면일 것이다. 아버지의 농민운동이나 좌익운동에 대한 감시로 지서의 순경들이 집에 드나들면서 할머니가 고모네로 대피해 있었던 것은 일부 그런 성격이 반영된 것이다. 어머니의 애원에도 귀신한테 씌운 것처럼 어머니 얼굴조차 보길 거부했던 할머니 또한 이것이 어머니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의 주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단지 성격 때문에 어머니를 내버려두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혼인을 시켰지만 혼인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와의 약주후 토사곽란으로 돌아가셨고 아들 또한 혼인 후에도 여전히 농민운동과 좌익운동에 가담하여 불안함을 남겨준 것은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믿음이나 사랑을 쏟도록 하진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할머니에게 자신이 기대했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쓸모 없고 부족하고 밉상스런 존재였던 것이다. 게다가 판이한 성격의 대조 혹은 소심하고 겁 많은 할머니의 성격 역시 어머니의 애원과 존재를 무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고모 집이 어렵게 되어 손자 집에 머무르게 되고 기어이 며느리인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자 할머니는 어머니의 존재를 인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한 과거 며느리에 대한 무관심과 소홀했던 행동 그리고 현재 자신의 아들의 부재는 자신을 구박하는 며느리에 대한 섭섭함이나 원망보다는 순응하게 만들고 기죽게 만든다. 그렇기에 며느리의 험담을 다 듣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험담 뒤에 덧붙이는 혼잣말로 보아 그 이면엔 자신의 신세에 대한 원망도 있고 한편에선 며느리에게 괜한 투정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삶 내내 아들을 기다리는데 그것은 할머니의 유품에서 나온 ‘보도가입 증명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아들이 되돌아오면 사람들에게 내 아들은 이미 자수를 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했기 때문에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자 평생을 간직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에게 아들이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자신이 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가지게 해주었던 아들이었고 아들이 되돌아오면 다시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화자가 물어본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란 질문을 잊지 않고 이웃집 아주머니와의 대화에서 꺼내신 것은 아닐까?
이에 비해 어머니는 일찍이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기다림이나 원망보다는 할머니에 대한 기다림과 원망이 더 컸을 것이다. 남편은 의지하고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남겨두지 않았고 이미 죽었을 것이라 단정지은 반면 할머니에게 많은 의지를 하였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같이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같은 배를 탄 사람이었기에 자신과 같이 있어주길 바랬고 의지처가 되 주길 바랬지만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을 내버려두었기에 더욱 그 배반감은 컸다. 결국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마음의 저변에는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의지가 전제 된 것이다.
이것을 소설 속에서 찾아보면 어머니의 험구를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어머니가 입을 닫은 뒤엔 혼잣말처럼 「그래 그래 니 말이 맞지러. ......내가 자슥을 잘 낳았나... 잘 키웠나...고모집으로 가야지...」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더욱 발끈하여 화를 내시는데 이것은 할머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머니가 남편의 부재에 대한 원한보다는 할머니의 무관심에 혹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할머니에 대해 더욱 화가 나있음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할머니와 싸웠을 때도 그 악으로 할머니를 내쳐도 될 것을 굳이 자신이 이불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나
할머니의 죽음이 가까워옴을 알고 화자가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듣게 되는 어머니의 냉담한 말 뒤의 시름에 실린 눈길과 「한분 눈감으모 그만인 목숨, 모질고 질긴 게 명줄이라...니 할메도 사무친 원한이 앞산만큼 높아 하눌님도 차마 박정하게 숨질을 못 끊는 모양 같고......」라고 하는 말에서 알 수 있으리라. 또한 마지막에 다들 할머니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알고 장례걱정 혹은 한탄이나 하는 중에 어머니만은 죽음이전에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한번 드시고 가시라고 갈치를 사오는 것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이 작가가 원한 화해의 장면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당하는 슬픔에 묻힌 개인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저 고부간의 갈등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는 이 소설의 갈등은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되었던 모든 이들의 아픔인 것이다. 이 소설의 갈등의 발단 원인이 아버지의 가출이고 아버지의 가출은 사회의 흐름 속에서 나온 이데올로기의 오해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의 아픔은 우리의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윤흥길의 「장마」에서 보여주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갈등이나 「미망」에서 보여지는 갈등이나 물론 다르기는 하지만 사회의 산물이란 점에서 그리고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아픔이라는 것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그런 이야기를 역사의 격변기에서 약간은 벗어난 세대라고 할 수 있는 화자를 통해 보여주는 것 또한 현재 우리 모습의 반영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언어교실>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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