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漢字)의 기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문자는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산의 모양을 본떠 만든 뫼 산(山), 해의 모양을 본떠 만든 날 일(日), 달의 모양을 그대로 그렸다가 약식으로 달 월(月), 나무를 그대로 그렸다가 점점 약식화된 나무 목(木), 대문의 모양도 문의 모양을 나타낸 것이 문 문(門), 수레바퀴 두 개가 달리고 사람이 끌고 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수레 차(車), 입의 모양을 그대로 그려서 간단히 나타낸 입구(口), 귀의 모양을 그대로 그린 귀 이(耳)와 같이, 한자에는 상형문자가 아주 많습니다.
두 번째로 한자를 이루는 것이, 추상적인 뜻을 부호로 나타낸 지사문자(指事文字)입니다. 나무토막 한 개를 나타내는 한 일(一), 나무토막 두 개를 나타내는 두 이(二), 나무토막 세 개를 나타내는 석 삼(三), 수평선 위에 점을 찍어서 윗 상(上), 수평선 아래에 점을 찍어서 아래 하(下)가 되고, 나무토막 한가운데 송곳을 정확하게 찔러서 가운데 중(中), 혓바닥 중에 제일 앞부분이 단맛을 느끼는 부분인데, 생리학적으로 근래에 밝혀진 일을 중국 사람들은 수 천년 전에 알아서 혓바닥의 앞부분을 그렸던 것을 간단히 해서 달 감(甘)입니다.
다음은 두 개 이상의 글자를 조립한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날 일(日)과 달 월(月)이, 즉 해와 달이 합쳐져서 밝을 명(明), 나무(木)가 여러 그루 있어서 숲이 되었다 해서 수풀 림(林), 불(火)이 번쩍 번쩍거린다고 해서 불꽃 염(炎), 차(車)들이 많이 다녀서 시끄럽다고 소리 굉(轟), 대문(門)앞에 입(口)을 갖다대고 여기가 어디입니까? 라고 물어서 물을 문(問), 대문(門)에 귀(耳)를 갖다대고 뭐라고요? 라고 듣는 들을 문(聞), 대문(門)이 살짝 열려서 햇빛(日)이 새어나오니까 사이가 벌어졌다고 해서 사이 간(間)입니다.
네 번째는 여러 가지 글자를 조립한 것인데, 뜻을 나타내는 것과 발음을 나타내는 것이 모여서 된 형성문자(形聲文字)입니다. 청할 청(請) 말을 해서 청한다, 뜻은 말씀 언(言)이지만 발음은 푸를 청(靑)입니다. 뜻을 나타내는 것이 따로 있고, 음(音)을 나타내는 것이 따로 있는 글자가 형성문자(形聲文字)입니다.
다섯 번째는 전주문자(轉注文字)입니다. 이미 있는 글자의 본래 의미로부터 유추하여 다른 음(音)이나 뜻으로 전환시킨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음악(音樂) 할 때 풍류 악(樂)을 산을 좋아한다, 물을 좋아한다 할 때는 요산요수(樂山樂水), 요(樂)로 읽습니다. 악(樂), 요(樂)가 같은 글자입니다. 오락(娛樂)을 한다 할 때 즐길 락(樂), 악(樂)자나 락(樂)자나 요(樂)자나 하나의 글자인데 여러 가지로 응용시켜서 바꾼 글자를 전주문자(轉注文字)라고 합니다.
여섯 번째로 가차문자(假借文字)는 본래 글자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 음(音)만 같으면 글자를 빌려 쓰는 것을 말합니다. 주로 외래어(外來語)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서 '프랑스'라는 말이 중국에는 없었는데 프랑스와 교역을 하면서 '프랑스(佛蘭西)'란 말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복합을 시켜서 발음기호(發音記號)처럼 합친 것입니다. 한국말로 읽으면 '불란서(佛蘭西)'이지만 중국 사람이 읽으면, '프랑스'가 됩니다. '피득(彼得)'이라고 우리는 읽지만 중국사람들은 '피터(베드로)'로 읽습니다. '이불소(以弗所)'도 중국사람들이 읽으면 '에베소'가 됩니다. '희백래(希伯來)'도 중국사람들이 읽으면 '히브라이'가 됩니다.
앞에서 보신 바와 같이 여러 가지의 글자로 만들어진 것이 한자(漢字)인데요, 처음에 수많은 한자(漢字)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그 기원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B.C. 86년경의 중국의 한문학자인 허신(許愼)이었습니다. 한자의 기원을 밝혀내서 쓴 책이 설문해자(設文解字)라는 책인데, 지금까지 알려진 4000여 개의 갑골문자 중에서 1000개 정도의 기원을 서술하였습니다. 허신(許愼) 나름대로의 기원을 밝힌 것인데 이때는 이미 도교(道敎)사상이 만연하던 때여서 도교(道敎)적 선입관을 가지고 한자(漢字)의 기원을 밝혔기 때문에, 진짜 한자(漢字)의 기원(起源)이라고는 간주할 수 없습니다. 한자(漢字)의 진짜 기원은 미궁(迷宮)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문자인 갑골문자(甲骨文字)입니다. 갑(甲)은 거북이 껍질이고요, 골(骨)은 짐승들의 뼈, 뼈 중에 넓적한 뼈에 여러 가지 글자를 만들어 쓴 것이 최초의 글자인 갑골문자(甲骨文字)인데 그 기원(起源)은 잘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갑골문자 뿐 아니라, 청동기(靑銅器) 그릇에도 글자를 새겨 썼습니다. 중국 최초의 한자(漢字)는 갑골문자(甲骨文字)나 청동기(靑銅器) 문자로서 존재해오고 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나라는 하(夏)나라이고, 중국의 두 번째 국가는 은(殷)나라, 즉, 상(商)나라라고도 부르는데, 오랜 세월동안 잊혀져오다가, 상(商)나라 시대의 갑골문자(甲骨文字)와 청동기(靑銅器) 문자가 지금부터 불과 100년 전에 중국에서 발굴되게 되었고, 그것이 가장 오래된 한자(漢字)입니다. 글자자체는 은(殷)나라 이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중국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중국의 시대를 전설(傳說)시대라고 합니다. 전설시대 다섯 왕은 황제, 전욱, 제곡, 요(堯), 순(舜)임금 다섯 왕이 있었고, 그 다음 왕조가 처음 시작된 것이 하(夏)나라인데, B.C. 2200년경에 세워져 500년 간 지속되다가 두 번째 나라인 은(殷)나라, 즉 상(商)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은(殷)나라 시대의 많은 문명이 은허(殷墟), 즉 은(殷)나라 폐허(廢墟)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夏)나라 시대의 것은 발견된 것이 없고, 글자는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으로부터 3700여년 전에 중국인들이 기록해 놓은 갑골문자(甲骨文字), 청동기(靑銅器)문자가 가장 오래된 한자(漢字)입니다. 하(夏)나라, 그전에 순(舜)임금 시대에 이미 한자(漢字)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200년 전에 한자가 처음 만들어졌다고 보는데, 놀라운 사실은 순(舜)임금 시대는 세계사(世界史)적으로 보면, 불과 수십 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바벨탑 사건이 터진 때입니다. 중국 최초의 전설적인 요(堯), 순(舜) 임금시대는 바벨탑 사건으로부터 수십 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바벨탑 사건이나 그 이전 노아 홍수 사건, 창세기 사건에 대해 생생하게 들었거나, 직접 체험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순(舜)임금은, 하늘의 임금, 즉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공자(孔子)의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제사(祭祀)에 대한 기록인데, 순(舜)임금 시대에 이미 제사를 드렸고, 그 때부터 상제(上帝)에게 드리는 제사가 40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왔습니다.
순(舜)임금 때부터 드려오던 중국인 최고의 제사(祭祀), 즉 상제(上帝)에게 드리던 제사는 여름에는 북쪽 끝에서 드리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끝에서 드려서 국경제사(國境祭祀)라고 하는데, 요(堯), 순(舜) 시대부터 시작한 그 국경제사(國境祭祀)때 상제(上帝)에게 드리던 제사문(祭祀文)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된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을 한번 보실까요? "지극히 오래 전 태초에 공허하고 흑암의 큰 혼돈이 있었사옵니다. 다섯 행성은 아직 운행되지 않았었고 태양도 달도 빛을 발하지 않았었습니다. 거룩하신 신 상제(上帝)께서 이곳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모든 만물을 만드셨사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셨사옵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만물이 지음을 받았사옵니다."
위의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과 기독교인이 믿는 경전인 성경(聖經) 창세기(創世記) 1장의 내용과 비교해 볼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리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1절-27절) 상제(上帝)를 창조(創造)의 신(神)으로 묘사함으로서,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의 내용과 창세기(創世記)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국경제사문(國境祭祀文) 입니다. "모든 생물들이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았나이다. 上帝시여, 인간도 만물도 모두가 당신의 사랑으로 이 낙원에 살게 되었나이다. 모든 생명체가 당신의 선하심으로 지음 받았사오니, 그 축복은 당신으로 말미암음이옵니다. 오 주시여, 당신만이 이 모든 만물의 참 어버이가 되시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기독교 이외에는 이런 기도문이 없습니다. 제사문이라는 것이 결국 신(神)에게 드리는 기도문(祈禱文)인데, 바벨탑 사건이후 하나님을 기억하던 백성들이 동방으로 이주해온 후 하나님을 기억하며 드렸던 기도문으로 생각됩니다. 진시황(秦始皇)이 진(秦)나라를 세우던 B.C. 200년경까지 중국인은 2000여년 동안이나 유일신(唯一神)이요, 창조(創造)의 신(神)인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믿어왔습니다. 상제(上帝)는 중국식 발음으로, '샹따이(혹은 샹띠)'인데 유대인이 부르는 하나님의 칭호(稱號) 중에서 '산(山)에 있는 하나님'을 '엘 샤따이'라고 부릅니다. 샤따이, 샹따이, 발음이 거의 같지요. 바벨탑 사건이후 혀가 꼬부라져 '샤따이'가 샹따이로 변한 것 같습니다.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믿던 샤따이 하나님을 최초의 중국사람들이 그대로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벨론과의 무역으로 막강한 부(富)를 축적하고 사병(私兵)을 길렀던 장사꾼 '여불위'의 아들 '여정'이 진시황(秦始皇)으로 즉위하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유일신(唯一神), 즉 상제(上帝)하나님을 없애야 진시황이 중앙집권 통치하기가 쉽다고 해서 엄청난 문화 종교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과거부터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믿어오던 중국인들, 특히 학자(學者)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서 굉장한 반대를 하자, 진시황은 가차없는 숙청을 단행했는데, 이것이 바로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입니다. 과거에서부터 내려왔던, 모든 책을 불태워 버렸는데 그 책들 중에는 상제(上帝)하나님에 관한 기록, 바벨탑의 기록, 창세기의 기록이 많이 있었을 것인데, 그 책들을 태워 버리고, 그래도 살아있던 학자들이 계속 저항을 하자 생매장해서 죽여 버렸습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신앙적 차원으로 볼 때는 유일신(唯一神)을 잘 믿던 중국이 바벨론적인 바알적인 신앙으로 완전히 떠나버린 사건입니다. 그러고도 여기저기서 유일신 사상이 들어올까 봐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여러 정보, 즉, "민주화 하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 하는 소리들을 차단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국민들을 강제노동 시킴으로써 반역을 일으킬 소지를 없애고,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했던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적-정치적 목적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은 것입니다.
진시황(秦始皇)은 자기가 신(神)인 것처럼 살았고, 살려고 노력했지만, 중국인의 마음에 유일신(唯一神) 상제(上帝)사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회유책으로 상제(上帝) 신(神)도 인정하면서, 동서남북(東西南北) 각각에 더 중요한 신(神)이 있고 또 그 위에 태을신(太乙神)이 있고...... 라고 하면서 희석(稀釋)작전으로 들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말살(抹殺)정책을 폈지만, 2000여년 동안이나 믿어오던 신앙이 없어지지 않자, 상제(上帝) 신(神)을 격하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서남북의 신과 태을신(太乙神) 등 여러 신을 만들어서 거기에 더 매력을 느끼도록 국가에서 주도를 해 버리자, 세월이 점점 흘러감에 따라 중국 사람들은 여러 잡신(雜神)들 중에 하나가 샹따이(上帝) 신(神)인 것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진시황의 작전이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진시황 자신은 어마어마한 진시황릉을 만들고 수많은 장수들의 토용(土俑)을 만들고 죽었지만, 진시황 당대로 끝나버리고 다른 나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진시황의 정책 이외에도 중국인의 종교심을 많이 변질되게 만든 사상 중 하나가 B.C. 500년경에 시작된 노자(老子)와 장자(長子)(위 그림이 노자와 장자의 초상입니다.)를 중심으로 한 도교사상(道敎思想), 즉 Taoism입니다. 그리고 B.C. 500년경에 공자(孔子)가 태어나고 공자(孔子)의 유학(儒學)사상도 시작되고, 멀리 인도에서는 부처, 석가모니도 이 때쯤에 태어났습니다. 유교(儒敎)와 도교(道敎)는 진시황때 이미 300여년 유행하였고, 불교(佛敎)는 오랫동안 들어오지 못하다가 한(漢)나라 초, B.C. 100년경에 중국에 들어 왔습니다. 가장 늦게 들어온 사상이 불교(佛敎)입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모든 종교적 기록을 다 불태운 줄 알았으나, 그 후 세월이 흘러 공자(孔子)의 허물어진 집을 수리하다가 벽 속에 숨겨둔 공자(孔子)의 기록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위 그림과 같이 대나무에 글씨를 써서 여러 개를 엮은 것이지요. 책(冊)字가 이래서 생겨난 것입니다.
공자는 산동성(山東城) 곡부(曲埠)의 동이족(東夷族) 출신 학자인데, 그의 저서(著書) '중용(中庸)'에서 제사(祭祀)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많은 학문을 토대로 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드리는 모든 제사의식들을 통해 사람이 상제(上帝)를 섬기느니라." 결국 제사(祭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샹따이(上帝)'를 섬기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공자의 제자(弟子)중에 하나인 계로(중국말로는 치루)가 공자(孔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감히 죽음(死)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삶(生)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서 논할 수 있겠느뇨?"(孔子, 論語 11-11) 또 다른 제자가 물었습니다. "神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십시오." 라고 하자,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神에 대해서 논하겠느뇨?" 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孔子는 이처럼 겸손하고도 上帝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상제(上帝)하나님은 잊어버린 체, 공자를 신(神)처럼 받들고 이 유교사상 하나로 이조 500년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남녀노소를 괴롭히고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기독교를 믿지 않는 양반 집안에서는 아직도 유교사상으로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진짜 공자(孔子)가 존중한 사상은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간절히 바라던 제사와, 조상(祖上)숭배와, 효(孝)의 진짜 근본이 무엇이냐?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시는 창조의 신(神) 상제(上帝)하나님을 그렇게 섬겨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조상(祖上)만을 섬기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동안 큰 혼란에 빠져 있던 중국이 평정되고 정리되면서 상제(上帝) 숭배사상은 다시 제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명(明)나라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회복하게 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황제(皇帝)나 왕족(王族)이라는 특권층이 그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것을 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위 사진은 중국의 황제가 살던 자금성(紫禁城) 한 중간에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祭壇)입니다. 하늘 천(天), 제단 단(壇)을 써서 천단(天壇)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천단(天壇)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우리나라는 더욱 더 상제(上帝)하나님을 잘 섬기던 나라였습니다. 고조선(古朝鮮)의 풍습이 상제(上帝)하나님을 섬기는 풍습이었고, 고구려(高句麗)의 국가 축제인 동맹(東盟)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부여(夫餘)의 영고(迎鼓)라든가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등... 우리 민족의 고유한 행사와 사상에는 전부 상제(上帝)하나님을 섬기던 사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중국인의 종교적 배경으로 보나 역사적 배경으로 보나, 미궁에 빠졌던 갑골문자의 기원이 기독교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어있는 인류 공통의 사건과 관련되어서 만들어졌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연구분석 결과 수많은 갑골문자의 기원이 창세기의 사건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여기 고인돌이 있습니다. 높이 솟아 있는 북방(北方)식 고인돌입니다. 밑에 다리가 짧고 딱 붙어 있는 것은 남방(南方)식입니다. 고인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가장 정통한 고인돌의 용도는 제단이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즉 여기서 제사를 지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오던 원로(元老)가 돌아가시면 그 제단에 정들었던 사람이니까 그 분을 고인돌 밑에 묻어 드렸습니다. 그래서 무덤이었다는 학설로 바뀌었습니다. 사실은 제단(祭壇)이었는데, 원로(元老)를 묻던 무덤으로도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옛날의 제사(祭祀)는 샹따이(上帝)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한자(漢字)의 기원에서 하나님(神)에 관한 한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시(示) 또는 보일 시(示)자의 원래 글자는 이것입니다. 고인돌의 돌판이고 이것은 다리이고, 그 위에 제사 지낼 때 놓은 음식입니다. 고인돌 제단 그대로를 그린 것입니다. 고인돌에서 제사 지낼 때 누구에게 지내느냐 하나님께 지낸다, 제사 지낼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을 하고 자신을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시(示), 보일 시(示) 자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칠 신(申)자의 갑골문자는 이것인데, 중간의 막대기는 인간이고, 좌우의 두 개는 위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인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 신(神)자를 보면, 원래 신(神)이란 하나님밖에 없었는데, 그 후에 사람들이 신(神)을 격하시켜서 귀신 신(神)자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신 신(神)자입니다. 신 신(神)자는 하나님 시(示)자에 가르칠 신(申)자를 합친 것입니다. 즉 고인돌에서 제사지낼 때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을 가르치시던 존재가 바로 신(神)입니다. 또 신령 령(靈)자는 물(水)을 뜻하는 비 우(雨)자에 입 구(口)자 세 개 (口口口) 더하기 하나님 시(示)자로 되어 있습니다. 세 명의 존재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靈)은 수면(水面) 위에 운행(運行)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영(靈)이 수면(水面) 위에 운행(運行)하시는 것입니다. 중국어 성경에는 '上帝的靈 運行在水面上 (상제적 영, 운행 재 수면상)'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신령 영(靈)자의 기원과 기독교 창세기(創世記)의 기록이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창조와 깊이 관계된 한자(漢字)를 보면, 흙 토(土)의 원래 갑골 문자는 위 그림과 같습니다. 즉 땅에서부터 성인남자를 끌어올렸다 라는 것이 흙 토(土)자의 고유의 뜻입니다. 중국인의 머릿속에는 흙은 사람을 만든 재료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흙에서부터 성인남자를 창조하는 모습 그대로를 그렸습니다. 날 생(生)자는 흙(土)에서 사람(人)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설 립(立)자는 흙에서 나온 인간이 땅을 딛고 당당히 서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순간, 잠깐을 뜻하는 유(臾)자는 위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손이 땅에서 인간을 한순간에 확 뽑아 올렸다는 중국인의 생각을 나타낸 것입니다. 순간 유(臾)자를 다른 여러 가지로 나타낼 수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흙에서 하나님의 손이 인간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그려놓고 순간,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수천 년 후에 다윈처럼 인간이 점진적으로 서서히 생겨났다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흔들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과 중국인들의 흙에 관계된 글자와는 공통성이 너무나 많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는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적혀 있는데, 형상(形象)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 성경 원전에는 '첼렘(위 그림 속의 히브리 문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첼렘'이라는 뜻은 '새긴 형태'라는 뜻입니다. 한자(漢字)를 보시면 명령할 령(令)자는 하나님의 입에서 인간의 입으로 생기가 들어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면서 하나님께서 생기를 인간의 코(입)에 불어 넣으셔서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게 하신 모습 그대로입니다. 도장 인(印)자의 갑골문자는 위 그림과 같이 생겼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온 손, 하나님의 손이 인간의 입이 있는 얼굴을, 하나님이 인간을 손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형상이 첼렘, 즉 새긴 형태라고 하였지요. 어떻게 중국인과 히브리인의 생각이 이렇게 같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히브리인이 새긴 형태로 인간을 만드셨다, 중국인도 도장 찍듯이 하나님의 형태로 인간의 얼굴에 새기셨다, 그것이 도장 인(印)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도장, 인간의 얼굴에 새기신 겁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이미지(image) 그것이 확 박혀 들어갔겠지요.
여자(女子)의 창조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창세기 2장 20-22절에서,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라고 적혀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이 여자와 관계되는 한자(漢字)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중국사람들이 고기 육(肉)자를 만들 때, 옛날 글자를 보면 사람 인(人)자가 있고, 사람 안에 하나님의 손이 쑥 들어가 있고요, 여자가 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사람은 남자, 즉 아담입니다. 아담의 몸에 하나님이 손을 넣으셔서 여자를 뽑아내시는 모습입니다. 여자는 세포라는, 그것도 보통 세포가 아닌 사람 세포라는 어마어마한 고급 재료, 유기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여자입니다. 남자와는 천지 차이입니다. 흙가루와 인간고기의 차이입니다. 흙이라는 최초의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흙에서 태어난 남자, 아담이란 뜻이거든요. 고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기란 뜻이 아담의 몸에서 잡아 빼낸 고기덩어리로 만든 여자란 뜻입니다. 저녁 안(晏)자를 한번 보십시오. 저녁이란 뜻을 나타내는데 중국사람들이 하나님의 손, 성인 어른, 남자 밑에 숨어 있는 여자를 그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에게 손을 뻗쳐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여자를 빼내신 그때가 저녁이었단 말입니다. 중국사람들이 창세기의 이야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저녁 안(晏)자를 이브 만들던 그 때를 생각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고기 육(肉)자를 보시면, 고기 육(肉)자의 고대 글씨와 저녁 석(夕)자의 고대글씨가 똑같습니다. 고기 그것은 여자를 뜻하는 것이고, 고기, 여자 그것은 저녁에 만든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공통개념으로 이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기 육(肉)자와 저녁 석(夕)자의 갑골문자를 똑같게 그린 것입니다.
그 다음에 흙과 고기에서 출발한 아담과 이브, 그 아담과 이브에 대해서 만들어진 한자(漢字)도 많습니다. 불화(火)자를 보시면 흙이 있고 흙에서 사람이 솟아 있고, 흙에서 뽑아낸 성인 남자가 빛이 났었다, 불 화(火) 자가 나무 쌓아 놓고 불나는 그림이 아닙니다. 불 화(火)자의 진짜 의미는 흙 토(土)에 빛나는 것을 그려 놓고 불 화(火)라고 불렀습니다. 최초로 창조된 인간 아담은 광채(光彩)가 났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변화산(變化山)에 오르셨을 때 광채(光彩)가 나셔서 번개와 같이 희어지셨습니다. 이와 같이 죄짓기 전의 최초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김 받은 인간은 광채(光彩) 나는 멋있는 인간이었습니다. 그걸 중국사람들이 불 화(火)자에 써 놓았고, 그것뿐만 아닙니다. 빛 광(光)자에 보시면 더 명백하게 그려놓았습니다. 빛 광(光)자가 남자 머리에 빛나는 그림, 여자 머리에 빛나는 그림, 이렇게 두 종류의 빛 광(光)자가 있습니다. 남자인 아담도 빛났고, 여자인 이브도 빛났습니다. 아담의 빛은 좀 장중하고, 여자의 빛은 좀 예쁘게 여자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중국인들이 최초의 남자와 여자는 빛이 났었다고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붉을 적(赤)자를 보시면 남자가 서있고, 불 화(火)자가 빛나는 것을 그렸습니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져 솟아났을 때, 빛나고 있었다는 모습입니다. 아우를 병(竝)자는 아담과 이브가 둘이 손잡고, 에덴 동산을 거니는 정다운 모습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다닐 여(旅)자도 남자 여자 둘이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최초의 여행은 하나님께 경배 드리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집 가(家)자도 하늘에 경배 드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최초 갑골문자에서의 집 가(家)자의 뜻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신앙 있는 가정,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곳이 가정이라는 뜻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집 가(家)자에서 하나님을 빼버리고 집에 돼지도 키우고 하니 집 가(家)자 밑에 돼지를 그려 놓았습니다. 완전히 집 가(家)자의 글자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잘 살고 있던 아담과 이브가 엄청난 비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善惡果) 사건인데, 하나님이 인간을 판단력을 가진 이성적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자유(自由)를 주시고 또한 책임(責任)도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 (아담)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시니라.' 이것이 한자(漢字)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금할 금(禁)자는 두 나무 사이에 하나님을 그려놓고, 금할 금 자라고 썼습니다. 최초의 한문학자인 허신(許愼)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 뜻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이야기를 적용하면, 선악과 나무(木)와 영생과 나무(木) 사이에 하나님(示)이 나타나셔서 금지명령을 내리신 그 광경 그대로 그려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한할 속(束)자를 보시면 나무(木)에 입(口)이 달려 있습니다. 나무(木)에 입(口)이 붙어있는게 왜 제한할 속(束)인지, 허신(許愼)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선악과나무를 두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입, 즉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제한해 놓으신 것입니다. 법 법(法)자의 갑골문자를 보시면 입 구(口)자, 나무 목(木)자, 하나님 시(示)자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나무를 두고 하신 말씀, 즉 "이것을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것이 법이다."라는 뜻입니다. 한문학자들이 풀지 못했던 것을 창세기(創世記) 기록을 적용하면 그 신비에 싸여있던 한자(漢字)들의 뜻이 분명하고 오해 없이 이해(理解)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법(法)을 선언하셨는데 엉뚱한 존재가 나타납니다. 창세기 3장 1절-4절에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뱀(마귀)의 유혹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만 말씀하셨거든요. "집안의 모든 법칙은 남편이 말해야 된다. 이브에게는 네가 분명히 말해라."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대충 이야기해서인지 뱀(마귀)이 이것을 알고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참으로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라고 하니까. 여자가 뱀에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시더라."며 빈정거렸습니다. 못마땅해하는 이브의 빈 마음을 정확하게 뱀(마귀)이 파고 들어갔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가로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광경이 한자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닐 불(弗)자의 갑골문자를 보시면, 두 나무 사이에 뱀이 딱 감고 서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왜 '아니다'와 관계가 있을까? '설문해자'에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善惡果) 나무와 생명나무 사이에서 뱀이 이브에게 하는 소리입니다. "아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최초의 거짓말을 선언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아닐 불(弗)자입니다.
귀신이라는 글자 속에도 중국인들이 창세기 사건을 그려 놓았습니다. 밭 전(田)자의 어원은 밭에 칸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샘이 솟아나서 네 가닥의 강이 흐르고 경계를 지어서 살던 아름다운 동산 에덴동산을 뜻합니다. 그 에덴 동산에 흉측한 모습의, 인간도 아닌 듯한 인간이 에덴 동산에 은밀하게 침입한 존재가 귀신 귀(鬼)자입니다. 마귀 마(魔)자는 더 생생합니다. 귀신이 두 나무사이에 덮개를 덮어쓰고 귀신이 아닌 것처럼 변장해서 두 나무사이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마귀 마(魔)자입니다. 창세기 사건을 그대로 그려 넣었습니다.
거기에 여자가 넘어가 버렸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을 보시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이 광경을 중국인들이 갑골문자에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놓았습니다. 아름다울 와( )자의 갑골문자(위 그림)를 보시면, 여자가 나무 앞에 꿇어 앉아있는데, 나무에 아름다운 과일들이 열려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그 과일을 여자가 쳐다보면서 아름답구나, 먹을까 말까 하는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탐할 탐( )자(위 그림)를 보시면, 두 나무 사이에 여자가 한쪽 나무를 쳐다보고, 선악과(善惡果)나무를 보고 여자가 탐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실과를 따먹고 이 세상에는 불행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창세기 3장 6절)" 찾을 색(索)자의 갑골문자는 나무(木)에 입(口) 달린 것, 즉 하나님이 나무를 두고 하신 말씀, 제한해 놓은 금단의 나무(束)에, 밑에서 위로 올라간 손, 인간의 손, 즉 이브의 손이 이것을 따먹을까 저것을 따먹을까 찾는 손입니다. 슬플 초(楚)자는 두 나무(木 木) 사이에 앉은 여자가 한쪽 나무에 손을 내밀어, 과일을 따려는 그 순간을 그려놓고 슬플 초(楚)자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금단의 열매에 손대는 순간에 인간의 비극이, 슬픔이, 사망이 오게된 거죠. 얼마나 슬픈 사건입니까? 그 후손들이 그 소리를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아담과 이브가 끝없이 이야기했겠지요. 비로소 시(始)자는 더 생생합니다. 과일이 여자의 목구멍에 넘어가는 그 순간 비로소 이 세상에 비극과, 슬픔과, 죄악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망령될 망(妄)자는 "여자 때문에 망했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6-7절에 보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것에 관계된 한자인 벌거숭이 라(裸)자를 보면, 옷 의(衣)자와 과실 과(果)자가 합쳐져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생각한다면 과일하고 옷하고 아무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허신과 공자는 도저히 그 의미를 풀 수 없었지요. 그러나 창세기 기록을 보면 그 뜻을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성인 남녀의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고 살아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는데, 선악과 과일을 따먹고 죄악이 들어감으로써, 부끄러운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글자로 만든 것입니다. "과일을 쳐다보니 옷 생각이 나네!" 라고 그려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사 창세기 3장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처음 초(初)자를 보면, 옷의(衣)와 칼도(刀)입니다. 짐승을 하나님의 번개 칼로 재단하셔서 가죽옷을 최초로 지어 입히신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아담에게 벌을 내리시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3장 17, 19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낙원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실락원(失樂園)에 관계된 한자(漢字)를 보겠습니다. 사내 남(男)자는 밭 전(田)자와 힘 력(力)자가 합쳐진 것으로서, 밭에 가서 힘을 써서 수고를 해야만 먹고 살수 있는 존재가 남자입니다. 그리고 수고할 곤(困)자를 보시면 제한된 동산, 에덴동산 안에 있는 나무, 즉 선악과를 생각할 때마다, 아담이 고생하는 것은 그 선악과 때문이구나 라고, 곤할 곤(困)자를 썼습니다. 슬플 조(弔)자의 갑골문자를 보시면 인간의 몸에 뱀이 감고 있습니다. 실제로 뱀이 감지는 않았지만, 뱀의 위력으로 이브가 감긴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것 때문에 모든 비극과 슬픔이 오게 된 것입니다. 생각할 사(思)자는 고생하면서, 항상 에덴 동산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心)이 항상 에덴동산(田)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사 의식에 관계해서는 성경(聖經) 레위기, 신명기, 히브리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를 흘려야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었는데, 제사(祭祀)에 관한 한자(漢字)를 한번 볼까요?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를 사시(巳時)라고 하는데, 아침 9시에 고인돌 제단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대화해 주셨다는 것이, 제사 사(祀)자입니다. 제사 제(祭)자는, 고기(肉)를 제단(示)에 또(又), 정기적으로 갖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고기는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고, 피를 흘리고, 하나님께 바치던 제물이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악화(惡化)된 지구환경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처음으로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셨고, 노아 홍수 이전까지만 해도 고기는 사람들이 먹지 않고, 제사의 물건이었을 따름입니다. 또 제사 제(祭)자는 높으신 삼위일체(三位一體) 존재께 인간이 손을 내밀고, 염원하고 빌고 하던 것이 제사입니다. 고기를 갖다 바치고 빌기도 했을 것입니다. 피 혈(血)자는 밑에 있는 것은 그릇 맹(皿)자이고, 점(,)찍은 것은 피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를 따로 담아서, 하나님께 갖다 바쳤습니다. 제사 지낼 때 쓰던 것이 피였죠. 유대인이나 중국인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레위기와 히브리서에 똑같이 나오는 말씀인데, 히브리서 9장 19절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정결케 하고 제사 지냈습니다. 제사 지낼 때 주로 염소, 송아지, 양을 썼습니다.
중국 사람들과 유대인의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양 양(羊)자를 보시면, 양을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는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았고, 자기 자신을 나타낼 때 쓰는 나 아(我)자를 보시면, 손(手)에 창(戈)을 들고 있는 모습(我)이 나 자신이라고 썼습니다. 옳을 의(義)자를 보시면, "내 앞에 내(我) 대신에 양(羊)이 가 있을 때 나는 옳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내 대신 갖다 바친 양을 보고, 나를 옳게(義) 여겨 주셨다."가 옳을 의(義)자입니다. 상서로울 상(祥)자는 하나님에게 갖다 바치는 양(羊), 양을 갖다 바칠 때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양(羊)을 갖다 바칠 때 상세하게 이야기(言)를 다 했는가 봅니다. 그래서 자세할 상(詳)자입니다. 아름다울 미(美)자는 양 양(羊)자 밑에 사람이 있습니다. 큰 대(大)자가 아니고 사람입니다. 사람대신 양을 갖다 바칠 때 하나님께서, 추한 인간이지만 아름답게 보신 것이 아름다울 미(美)자입니다. 희생 희(犧)자를 보시면, 옛날에 양(羊)만 갖다 바친 것이 아니라 뿔이 난 소(牛)도 갖다 바쳤고, 양이나 소 중에 가장 흠 없고 완전한, 빼어난 것(秀)을 창(戈)으로 찔러 바친 것이, 희생 희(犧)자입니다. 흠 없는 양과 소를 창으로 찔러 바친다는 것, 이것도 중국인과 유대인의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최초의 장자권자(長子權者)인 카인이 불신앙(不信仰)으로, 신앙에 바로 섰던 동생 아벨을 시기해서 죽임으로써 비극이 시작됩니다. 카인과 아벨에 관계된 漢字를 살펴보겠습니다. 형이란 뜻의 한자는 맏 형(兄)입니다. 인간(人) 중에 입(口)달린 인간이 형(兄)입니다. 모든 사람이 입이 달려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너희 집안에서 장자권자(長子權者)만이 나한테 와서 이야기해라." 즉 장자의 입만이 하나님께 말하는 입입니다. 사람 중에 하나님께 말하는 입달린 사람이 맏 형(兄)입니다. 빌 축(祝)자는 입 달린 사람 형(兄)이 고인돌(示)앞에 가서 하나님께 집안 일을 말하고 빌 때, 복(福) 비는 말을 했습니다. 복 비는 것이 정상적인 형의 기능이었습니다. 아우 제(弟)자는 인간은 인간인데, 머리 땋고 활 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우(弟)였습니다.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세기 4장 5절-8절) 중국 글자 죽일 살(殺)자를 보시면, 열 십(十)자, 불똥 주( ), 나무 목(木), 칠 수( )자 입니다(위 그림). 손에 나무를 쥐고, 열번 불똥이 튀도록 때렸더니, 죽었다는 것입니다. 카인이 들에 있을 때 아벨을 쳐 죽이니라, 중국사람들의 머리에는 통탄할 살인 사건으로 후손에게 전해졌겠죠. 그 다음 글자에도 또 그 모습이 나옵니다.
아벨을 죽이고 숲에 던져 놓았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시체가 앙상한 뼈로 남아 있어서, 앙상할뼈 알( )자가 고대 글자에 해골 그대로 그려놓은 것입니다(위 그림). 그것이 눈과 코 이마로 남다가 점점 간단해져서 알( )자가 된 것입니다. 죽을 사(死)자는 해골하고 몸이 꼬부라져 말라 비틀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아벨의 얼굴이 해골처럼 썩었고, 몸이 말라 꼬부라져 있는 모습을 숲에서 발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골과 삐뚤어진 모습의 몸을 밑에 받침을 받쳐서 위에 풀을 덮어서 장사지낸 모습이 장사할 장(葬)자입니다.
흉악할 흉(兇)자를 보시면, 맏 형(兄)자인데 위에 입이 툭 터졌습니다. 말해야 할 입은 고장나서 터지고, 엉뚱한 흉악한 표가 얼굴에 하나 붙어 있는 그 모습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창세기 4장 15절) 카인에게 표를 주셨다는 그 표가 한자(漢字)에 찍혀 있습니다. 원래 형(兄)이 해야할 입의 기능, 즉 축복하는 기능은 파괴되고, 엉뚱한 표(凶)가 찍혀 있는 악한 모습의 형, 그것이 카인을 뜻하는 형입니다. 흉악할 흉(兇) 자의 갑골문자를 보시면 더 적나라하게 되어있습니다. 입은 터지고 이마에 흉 붙은 사람(兇)이 손을 내밀어 동생 아벨을 붙들고, 때리고 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내려오다가 노아의 홍수사건이 터지는데, 한자(漢字)에는 노아의 홍수에 관한 글자가 많이 있습니다. "곧 그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창세기 6장 13절)" 성경(聖經)에는 노아의 홍수때 여덟 명이 거대한 배에 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작은 배를 뜻할 때는 배 주(舟)자를 쓰는데, 보트에 쭉 그인 것은 '노'이고, 양쪽으로 사람이 앉아서, 노를 젖는 모습입니다. 보트(舟)에 여덟(八) 명의 입(口)이 탄 큰 배를 뜻할 때, 배 선(船)자를 그리고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이 탔다는 것이 한자(漢字)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7장 18절에 보시면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방주는 노도 없이 떠다니던 거대한 배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이 떠내려 갈 연(沿)자를 만들 때, 이 '파도치는 물( )에 여덟(八) 명의 입(口)이 탄 방주가 떠내려 다녔다' 라고, 노아의 여덟 명의 가족이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사진 출처 - http://news.media.daum.net/culture/art/200608/10/hani/v13658128.html)
그리고 방주는 정처 없이 떠내려 가다가 하나님의 뜻으로 터키의 아라랏 산(山)에 도착하였습니다. 5200미터 정도 되는 굉장히 높은 산입니다.
그 아라랏 산에 얽힌 한자도 많습니다. 창세기 8장 3절-4절에 보시면,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이 사실을 중국사람들이 한자(漢字)로 만들면서 여덟 명이 탔던 배가 거대한 바위반석 위에 앉았다 라고 해서 반석 반(磐)자입니다. 그 반석이 바로 아라랏 산입니다. 그 아라랏 산(山)에서부터 사람(人)들이 내려 왔는데, 인류의 조상이며, 신선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선 선(仙)자입니다. 그리고 방주(舟)에 여덟(八) 명이 탔다는 노아 홍수 얘기를, 사람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이 이야기를 하고, 또(又) 했기 때문에, 이것이 곧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반(般)자가 되었습니다. 영어로 'generally speaking'입니다.
아라랏 산에서 내려와서 장자권자(長子權者)인 셈의 자손들은 산(山) 근처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머물렀을 겁니다.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 즉 '산(山)의 하나님'이라는 말만 봐도 초기의 노아 후손들이 아라랏 산 근처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섬긴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벨탑 사건 이후 중국으로 이주해간 사람들에 의해 '샹따이(上帝)' 하나님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막내로 내려 갈수록 점점 자유분방하게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로 내려와서 농사지어서 장자권자(長子權者)에게 바치며 살았을 겁니다. 가을 추(秋)자를 보시면 벼이삭 익은 모습(禾) 그대로 인데, 그것을 불(火)에 밥해먹는 때가 가을(秋)입니다. 장자권자(長子權者)는 하나님께 좋은 말하고 하나님께 아우들의 복(福)을 빌고, 아우(弟)들은 활 매고 다니면서 여러 짐승들을 잡아오고, 농사지은 것의 일부를 형(兄)에게 바치고, 형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며 살아오다가, 장자권자(長子權者)이고, 하나님을 직접 만난다는 교만에 빠져 기세 등등하여진 형들이 동생들을 점점 압제(壓制)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이 가을(秋)만 되면 근심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근심 수(愁)자를 보시면 가을 추(秋)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쳐져 있습니다. '마음이 가을에 가 있다.' 가을만 생각하면 '못된 형들이 산에서 내려와 농사도 잘 되지 않았는데 모두 빼앗아 가겠구나!'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弟)의 얼굴에 물( )이 흘렀으니 이것이 눈물 체(涕)자입니다. 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걱정하기 시작하자, 많은 동생들의 부인들이 서너 명씩 모여서 "형님들만 남자고 당신은 남자가 아니냐?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거냐?"하면서 형에게 덤벼들자고 모의를 해서 간사할 간(姦)자를 보면 여자(女)가 수두룩하게 모여있는(女 女 女) 것입니다. 그리고 말은 형(兄)만 해야 되는데, 형이 알아서 복을 빌어야 하는데, 형(兄) 앞에 나타난 입(口)은 형(兄)에게 대들고자, 저주하고자 나타난 입입니다. 이것이 저주할 주(呪)입니다. 한자의 기원에는 이와 같은 인류역사의 흐름이 다 쓰여 있는데, 성경(聖經)을 모르던 한문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동생들은 어느날 대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노아의 막내아들인 '함'의 아들이 '구스'이고, '구스'의 넷째 아들 '니므롯'이라는 그 시대 최고의 영걸(英傑)이 태어나서 모든 동생들의 집안을 규합해서 형들의 집안을 쳐부수고, 니므롯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전쟁에서 져서 죽거나 장자권(長子權)을 빼앗긴 것을 너무나 부끄럽게 여기다가,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의 땅인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해 돋는 나라 동방으로 동방으로 머나먼 대장정을 거쳐, 만주(滿洲)의 하얼빈 부근에 도착해서 송화강, 즉 아리라 유역에 신시(神市), 즉 하나님의 나라를 베풀고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잘 살아가자."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 즉 '아가페 정신'으로 세운 나라가 고조선(古朝鮮)을 중심으로한 대(大) 동이족(東夷族)의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떠나는 기점이 되는 사건이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을 쌓아 올리다가 수많은 말로 갈라지고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1, 3, 4절에 보시면 '온 땅의 구음(口音)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서로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 광경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합할 합(合)자는 인간(人)의 입(말, 口)이 하나(一)여서 모든 인간이 힘을 합(合)하여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탑 탑(塔)자를 보시면, 인간의 입이 하나로 뜻을 합(合)해 흙(土)에 풀( ), 짚을 넣고 말려서 벽돌을 만들어 쌓았더니 바벨탑이 되었더라, 이렇게 탑 탑(塔)자에 바벨탑 사건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습니다. 창세기 11장 9절에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난리를 뜻할 때 '입을 천(千) 개의 입(口)으로 굽혀 버렸더니 난리가 저절로 나더라.' 이것이 어지러울 란( )자입니다. "벽돌 한 장 올려줘."하니까. "What did you say?" "!(도모 와까리마셍: 도무지 모르겠다는 일본어)" 이러니 난리가 났겠죠. 그래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뿔뿔이 흩어져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동방으로 이동할 때 셈족만이 아니라 약간의 함족과 야벳 족속들이 함께 이동을 해왔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야벳족이고 우리 한국사람은 셈족인데, 그 이동하던 모습을 그대로 한자에 그려놓았습니다. 창세기 11장 9절에 "여호와께서 거기(바벨)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중국 사람들은 동방으로 왔기 때문에 옮길 천(遷)자를 만들 때 서(西)쪽에 거대(大)한 분산( )이 일어나서 걸어서 걸어서( ) 왔노라. 중국에서 볼 때 메소포타미아는 서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족(家族) 안에서는 말이 바뀌지 않도록 혈연관계를 고려해서 말을 갈라놓으셨습니다. 흩을 산(散)자를 보시면 모두 함께(共) 가족 단위( )로 따라서( ) 왔노라, 흩었다는 것의 기본단위는 가족(家族)이었습니다. 서쪽에서부터 대장정의 길을 걸어서 중원(中原)대륙까지 왔다는 것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다시 보면, 고대 전설(傳說)시대의 다섯 왕 황제, 전욱, 제곡, 요(堯), 순(舜) 임금인데, 실제적으로 중원대륙에서 왕으로 군림한 사람은 순(舜)임금이었습니다. 순(舜)임금은 중국역사에서 B.C. 2230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공자(孔子)의 서경(書經)에 보면 순(舜)임금 시대 때 이미 샹따이(上帝) 하나님께 제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이 B.C. 2250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데, 순임금이 통치하던 시기는 바벨탑 사건이후 불과 20년 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생생하게 바벨탑 사건을 기록했겠습니까? 그러다 어느 정도 왕권이 갖추어진 것이 하(夏)나라이고, 더욱더 문명(文明)이 발달된 것이 은(殷)나라, 즉 상(商)나라 때입니다. 이 시대에 갑골에 새긴 글씨가 바로 갑골문자(甲骨文字)인데,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한자(漢字)입니다. 이 때는 순(舜)임금 시대에 비해 500여년이 지난 시대입니다. 한자(漢字)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창힐이라는 사람인데, 어느날 비가 오고 난 뒤에 까마귀가 축축한 땅위를 걸어다니면서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힐은 동방족, 즉 동이족(東夷族)이었다고 합니다. 동이족(東夷族)은 중국사람들이 한국(韓國)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한자(漢字)의 최초 저작자는 사실은 한국(韓國)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국문학자들은 한자(漢字)를 한자(韓字)라고 씁니다. 한의학(漢醫學)을 한의학(韓醫學)이라고 하듯이요.
그래서 순(舜)임금 때부터 중국사람들은 아라랏 산(山)에서부터 섬기던 '엘 샤따이', 즉 '산(山)의 하나님'을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으로 믿고 수천년 동안 상제(上帝)를 섬기며 살아 왔던 것입니다. 상제(上帝) 숭배 사상의 또 다른 제사문(祭祀文)을 읽어보겠습니다. "주 상제(上帝)께서 말씀하시니 하늘과 땅과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들과 만물들을 두시고, 궁창을 펼치셨습니다. 상제(上帝)께서 높은 하늘을 펼치시고 땅을 만드셨나이다. 그 통치가 영원하시기를..." 다시는 니므롯과 같은 인간이 나타나지 않고 평화롭게 살기를 갈망(渴望)하면서, 특히 동방의 주도권을 쥐어 왔던 동이족(東夷族), 즉, 고조선(古朝鮮)과 부여(夫餘)와 여러 나라들은 임금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사무엘까지 임금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셨죠. 그러나 죄악에 빠지면서 사울을 왕(王)으로 세우면서 나라가 망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우리민족은 수천년 동안 임금 없이 그저 제사와 통치를 겸한 제사장(祭司長)들이 통치하던 시대를 산 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입니다. 정통파 셈의 역사를 이끌어온 것이 우리나라의 고대(古代)역사(歷史)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이 장자권(長子權)을 지키지 못해 메소포타미아에서 영원히 떠나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은 끝까지 중동(中東)지역에 남아있던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의 민족을 다시 일으키셨지만, 동방으로 떠나온 동이족(東夷族)과 그 옆에 따라왔던 동생 야벳의 집안, 즉 중국사람들은, 성령(聖靈)의 감동(感動)으로 언젠가는 영생(永生)과 구원(救援)을 얻으리라는 소망이 있었던가 봅니다. 그것이 한자(漢字)에 남아 있습니다. 길 영(永)자를 보시면 갑골문자에 강물이 흘러가는 속에 인간이 물에 엎드려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 내려오는 생명의 강에 엎드리고 그 물을 마실 때 그 인간은 영원한 것을 얻는다'는 것이 중국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목숨(장수) 수(壽)자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강물이 흘려 내려와서 그 강가에 수많은 입들이 와서 마시면 영원히 장수(長壽)할 것이로다'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6,7절 22장 1절을 보시면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생명수의 강물을 누구든지 값없이 마시게끔 했던 이것이 중국인과 멀리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에 남아있던 유대인에게 내리신 계시였는데, 영원할 영(永)자와 목숨 수(壽)자 속에 그 계시가 그대로 들어있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 7장 10절, 22장 3,5절을 보시면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이 말씀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렵고 힘들고 한 많은 세상에 믿음을 잘 지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실 기쁨의 선물로 생각하고 살고 있죠. 그런데 중국사람들이 그대로 그 생각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원할 광(匡)자의 갑골문자는 강력한 옹벽이 둘러싸서 보호를 하고 있고 한 중간에 양(羊)이 앉아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양, 그 바깥의 단단한 성벽(城壁) 안에, 믿는 우리들을 모아서 세세토록 왕노릇 하며 살리로다, 이와 같이 중국사람들과 히브리 사람들의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모습입니다. 수십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은 최초의 조상 요(堯), 순(舜)임금 때부터 산(山)의 하나님, 샹따이(上帝)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그들의 조상은 그들의 글자 속에 자기들이 지었던 죄악과, 흘러갔던 역사와, 앞으로 다가올 구원의 약속까지도 글자에 새겨서 수천 년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중국에 선교하러 들어갔던 서양의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하고 두루두루 알아본 결과, 옛날부터 상제(上帝)하나님이란 개념으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말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이란 이름을 상제(上帝)라는 이름을 써서 중국어(中國語) 성경(聖經)에 그대로 인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어(中國語) 성경(聖經) 창세기(創世記) 1장1절-2절을 그대로 써놓은 것입니다. 太初上帝創造天地 地是空虛混沌深面黑暗上帝的靈運行在水面上 이것을 한문 읽는 방식으로 운률을 얹어서 읽으면 제사문(祭祀文)처럼 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이름을 상제(上帝), 즉 '샹따이'로 기록하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썼습니다. 중국인의 정서에 그대로 와 닿았기 때문이죠. 한자와 창세기를 비교 분석해 볼 때 고대(古代) 중국의 조상들은 중동(中東)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벨탑사건 이후 동쪽으로 동쪽으로 대장정을 행하여 중원(中原) 대륙(大陸)에 도착한 사람들이 분명하며, 이들은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 글쓴이 - 의학박사 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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