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의 신전》 근처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담 루아얄, 그리고 왕세자 / 외젠 바타이유
이 그림은 베르트뮐러의 그림을 외젠 바타이유가 복제한 것인데 복제한 계기는 이렇다.
아돌프 율리크 베르트뮐러는 궁전 관리부로부터 마리 앙투아네트의 대형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당시에는 왕비에 대한 여론이 상당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위압적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느낌이 강한 초상화를
제작함으로써, 왕비 역시 한 가정의 따뜻한 어머니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이듬해 살롱이 열리기 전날 완성되어, 관례대로 공식 초상화가 놓이는 가장 좋은 자리에 전시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제 각각의 평가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왕비 본인조차도
"어떻게 이것이 나란 말인가?"라며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궁정과 파리의 관습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던 베르트뮐러가 주제와 목적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초상화를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다시 말하면, 대례복을 입고 있는 왕비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공식 초상화 속에
거의 평민과 같은 차림을 한 평범한 여성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베르트뮐러는 살롱이 끝난 뒤 이 작품을 정성 들여 수정해야 했으며, 파리 주재 스웨덴 대사인 스타엘-홀슈타인 남작을 통해 1786년에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왕 구스타브 3세에게 선물로 전달되었다.
스웨덴의 왕실 소장품이 된 이 초상화는 이후 스웨덴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1867년 베르사이유에 머물렀던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외제니 황후는 외젠 바타이유에게 베르트뮐러의 초상화를 토대로 지금 전시되어 있는 이 복제화를 제작할 것을 주문했으며, 바타이유는 이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봤을땐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무리 왕비라고 하지만 이런 평민과 같은 차림을 한 모습이
훨씬 다가가기 쉽고 평민들을 잘 이해줄것이라는 인상이 드는데, 그래서 공식 초상화로서 더 적절하단 생각이 든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땐 그저 포근한 가정적인 모습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그린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림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아는 순간 그림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좀 더 흥미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