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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08. 휘트먼(Whitman) [1993]
Gilles Deleuze, dans “비평과 임상”(Critique et clinique, 1993), 75-80.(P.191)
-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 미국 시인, 수필가, 기자.
들뢰즈는 왜 영미 문학가에 대한 관심이 많을까?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 밀러(Henry Miller, 1891-1980),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1940)]
들뢰즈가 시인 휘트먼에 대한 글을 쓴 것으로 보아, 영미에서 소설가 말고 시인을 하나 표본으로 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휘트먼은 헤겔주의자이다. 그런데 휘트먼이 그런 하나의 절대자에 매인 헤겔주의자가 아니라, 부분들 또는 요소들이 모두 모인 집합체로서 또는 인민들의 총체로서 절대자와 같은 것을 생각했다고 들뢰즈가 본다. 즉 모든 것이 각각의 고유성을 상실하지 않은 것, 온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이 각각의 소리로 노래하는 것, 자연의 아름다운 색체를 각각이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휘트먼이 시를 썼다고 들뢰즈는 생각하는 것 같다. 즉 미국은 합중국이지만 각각의 나라(주)가 고유성을 지닌 것으로 여기는 나라.
이 신생국에서 작가 휘트먼은 유럽과 다른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이민 온 후예들이 각각이 새로운 사회의 건설에 노력하는 다양체 같은 나라를 만들 수 있고, 그런 삶을 자연과 토지(지구)에 맞는 삶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던 시인이 휘트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형제애(la fraternité)보다 폭넓은 용어이며 사회공동체적인 의미의 동지애(Camaraderie)를 쓴다는 점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발명이 있을 것 같은데, 휘트먼은 남북 전쟁의 시기, 노예해방의 시기라 새로운 공동체보다 연맹체를 생각했던 것 같다. 시인이든 철학자든 시대의 아들이다. 그럼에도 들뢰즈가 표현했듯이 문학자는 시대의 징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치료하는 의사라고 한다. 즉 치료 받는 환자가 아니다. (54WME)
*** 내용 중에서 ***
「휘트먼(Whitman) [1993]」
자신 있고 침착하게 휘트먼(Whitman, 1819-1892)은 말하기를 글쓰기는 단편적[조각적]이라고, 그리고 미국작가는 단편들로(en fragments 조각들로)] 글을 써야 한다고 한다. (75)
횔더린(Hölderlin, 1770-1843)이 그리스인들과 유럽인 들 사이에 발견했던 차이를 상기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서 태생적(natal)이거나 천성적(inné)인 것이 유럽인들에게서는 획득된 것 또는 정복된 것이며,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75)
유럽인들과 미국인들과 사이에서도 ... 미국인은 단편에 대한 자연적(naturel)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우리는 일을 곤두박질하게 하고, 정교한 일을 더 잘 이야기하도록 서둘러서 조잡한 형식으로 내버려 둔다.” (75)
미국에 알맞은 것, 따라서 그것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것의 자발성이다: 즉 “자발성과 단편적인 것”이다 라고 위트먼이 말한다.미국에서 글쓰기는 자연적으로 경련적(convulsive)이다. (75)
만일 단편적인 것이 미국의 천성적이라면, 그 이유는 미국 자체가 연방국가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이민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76)
이것은 단편적 작품에 어떤 집단적인 언술(une énonciation)의 무매개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카프카는 소수 문학 속에, 즉 소수성에서, 사적 이야기란 무매개적으로 공공적이고 정치적이고 인민 대중적인 이야기라고 말하곤 했다. (76)
가장 개인적인 자서전도, 사람들이 볼프(Wolfe, 1900-1938)와 밀러(Miller, 1891-1980)에서 또한 보듯이, 필연적으로 집단적이다. .. 항상 분해되어 파편적이고 상대적인 앵글로색슨[아메리칸]의 자아(le moi)는 [대륙적인]유럽인들의 실체적이고 전체적이고 유아론적이며 주체(Je, 나)와 대립된다. (76) [미국에 들어간 유럽인(영국인이든 독일이든 이탈리아인이든 또는 유태인이든)은 이민자들로서 하나의 국가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각은 각각의 세계가 있고, 그 각각의 자아는 아메리카에서 단편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합중국을 만들려는 상부의 국가주의는 대륙적 사유를 빌려오려 할 것이다. (54WME)]
이질적 부분들의 일체[집합]으로서 세계: [이 세계는] 무한한 패치워크(patchwork)또는 건조한 돌로 된 무제한적인 벽(시멘트 벽 또는 퍼즐 조각들은 전체성을 재혼성(재구성)했다). 세계는 마치 견본집(échantillonnage) 같다. .. 나날의 견본들(Echantillon de jour), 즉 일상의 견본들(Specimen days)이라고 휘트먼이 말한다. (76)
단편들은 낱알들, “과립들”(granulations)이다. .. 단편들은 피흘리는 또는 평화로운 실재성의 “분해된 반사”이다. (77)
희트먼의 탄편적 글쓰기는 아포리즘이나 분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간격을 조정하는 문장의 특별한 유형에 의해 규정된다. (77)
때로는 그것은[구문론은] 카탈로그를 지향하는 열거적[나열] 문장, 즉 사례 열거[나열]의 문장이다. 때로는 그것은 국면들 또는 계기들의 원[초기]문장처럼 과정나열의 문장이다. [그런데] 그것은 거의 광기있는 문장인데, 문장의 방향의 변화들, 문장의 가지치기들, 문장의 단절들과 도약들, 문장의 늘이기들, 문장의 발아들, 문장의 갈호치기들이다. 멜빌은 미국인들이 영국인들처럼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목한다.미국인들은 영어를 해체해야 하며, 영어를 탈주선을 따라 길게 만들어가는 것이고, 경련적인 입말을 만드는 것이다. (77)
단편의 법칙은 마치 온이야기에서처럼 온자연(la Nature)에서, 온전쟁에서처럼 온지구(la Terre 온땅)에서도 가치 있다. (77)
온자연과 온전쟁 사이에는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 온자연은 군대처럼 열지어 분대별로 전진한다. (77-78)
경련하는 듯한 명상을 통해 그는 스스로 헤겔주의자로 자처한다. 미국만이 헤겔을 실현한다고, 그리고 유기적 총체의 초기적 권리들을 제시 한다고 주장한다. (78)
그러나 휘트먼이 자기 방식으로 자기 스타일로 말할 때, [거기에] 일종의 전체가 구성되는 것만 같다. 그 전제가 단편들 다음으로만오기 때문에 그 만큼 더 역설적이다. 그 전체는 단편들을 건드리지 않은 채 두고, 단편들을 전체로 만들기를 제안하지 않는다. (78) [단편들을 절대자로 또는 전체로 만들지 않고, 단편들로 나열되는 것 자체가 전체처럼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소수자들의 삶자체가 인정되는 사회.]
이런 복잡한 생각은 영국 철학에 소중한 원리에 의존한다. 그 영국철학에 미국인들은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발전들을 부여한다. (78)
미국문학의 대상은 미합중국의 지리적 다양 관계들, 미시시피, 산괴들과 초원들 등이다.(78)
대비들과 상보성들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항상 새로운 것이며, 이것들은 색채들의 관계로 구성된다. 아마도 휘트먼은 현존할 수 있는 가장 색채주의적 문학들 중의 하나를 만들었다. (79) 색채
온자연[다양체]은 형상이 아니고 오히려 관계맺는 과정이다. 온자연은 다성음(polyphonie)을 발명한다. 온자연은 총체(totalité)가 아니라 재통합(réunion)이며, “교황선거장(conclave)”, “총회/민회(assemblée pleinière)”이다. (79) - [인민의 합의를 통한 계약, 양도하지 않는 계약, 민회/총회 그것이 자연권이다. 자연권은 통치권력에 대립된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도 마찬가지 이다. (79)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인간은 타자(l’autre)[타인]와 자기와 관계도 발명해야 한다. “동지애(Camaraderie)”은, 인간의 가장 높은 관계를 지칭하기 위하여, 휘트먼 사용한 중요한 단어이다. (79) - [이 단어 때문에 프랑스 초기 공산주의자가 미시시피 강을 간 흔적을 찾아보았는데, 휘트먼과 직접 연관은 없는 것 같다.]
휘트먼의 말하듯이 동지애는 전체주의(totalisme) 또는 전제주의(totalitarisme)이 아니라 오히려 연방주의(Unionisme, 통합주의)이다.온민주주의조자 온예술조차 온자연과 관계 속에서만 하나의 전체를 형성할 뿐이다. (80)
동지들의 사회는 미국적 혁명의 꿈이다. 이 꿈에 대하여 휘트먼은 능력껏 기여했다. 그것은 소비에트 사회의 꿈에 바로 앞서 실망했던 꿈, 배반당한 꿈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미국 문학의 실재성이기도 하다. 한 측면은 자발성 또는 단편적인 것의 천성적 감정, 다른 한 측면은 매번 획득되고 창조되었던 살아있는 관계들의 반성이다. (80)
(3:34, 54WME)
# 인명록***
1770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독일 관념 철학자.
1770 횔더린(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1770-1843) 독일의 시인, 헤겔, 셸링, 실러 등과 친하였다.
1795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 영국 평론가, 역사가. 이상주의적인 사회 개혁을 제창하여 19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영웅 숭배론(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 1841), 《의상철학》,《프랑스 혁명사》, 《과거와 현재》
[1803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 미국 수필가. 초월주의. Nature (1836), 휘트먼은 “시인론”("The Poet", 1841-1843)에 영향을 입었으며, 에머슨은 휘트먼의 “풀잎”(1855)에 찬사를 보냈다.]
[1804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미국 단편소설가, 소설가. 주홍글씨(La Lettre écarlate (1850)]
1819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 미국의 소설가, 수필가, 시인. 모비딕("Moby-Dick", 1851)(이 작품은 호손에게 헌정되었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 1853) / Redburn: His First Voyage, 1949(tr.fr. Redburn, sa première croisière, confessions et souvenirs d'un fils de famille engagé comme mousse dans la marine marchande, 1949) / “D’où viens-tu, Hawthorne” ,
1819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 미국 시인, 수필가, 기자. 초월주의에서 사실주의로의 과도기를 대표하는 인물. 풀잎(Leaves of Grass)(1855, the first of seven editions through 1891)(Feuilles d’herbe)(FH), Specimen Days (1882)(Au fond des bois, tr.fr. J. Deleuze)(SD) - [Echantillons de jours et recueils (1882-1883)
[1835 마크 트웨인(Mark Twain) 클레먼스(Samuel Langhorne Clemens, 1835-1910), 미국의 소설가이다. 주요 작품에는 미시시피 강 유역의 삶이 있다.
1883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 으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 유대인 사회 속에서 성장했다.
1885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 영국 작가. 채털리부인의 연인(L’Amant de lady Chatterley(1927 (publié en 1972). Etudes sur la litterature classique americaine, 1948(영어 원제는 알 수 없음: Study of Thomas Hardy and other essays, critique littéraire, 1914.)
1890 쟈마티(Paul Jamati, 1890-1960) 프랑스 시인 Walt Whitman: une etude, un choix de poemes, 1948 루신의 아Q 정전로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1891 밀러(Henry Miller, 1891-1980) 미국 소설가, 북회귀선(北回歸線 1934) 남회귀선(南回歸線 1939)에서는 현대의 허망(虛妄)에서 탈출한 인간정신을 다루어, 성(性)을 신성시하지 않은 채 인간의 본질과 그것이 자유로이 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예술 속에 재생시키려 했다.
1900 볼프(Thomas Clayton Wolfe, 1900-1938)[서른여덟] 미국 작가. à Baltimore dans le Maryland, est un écrivain américain.
(4:40, 54WME)
# 참조1: fr.Wiki에서
* 미시시피(Mississippi (fleuve): 소개 속에 초기 공산주의자의 활동을 찾을 수 없었다.
전1000 아메리카 중부 지역 종족: Les Mound Builders (« bâtisseurs de tumulus ») sont un ensemble de peuples amérindiens disparus avant l'arrivée des Européens, dans toute la moitié orientale des États-Unis actuels.
종족들: les Sioux au nord, les Quapaws à l'embouchure de l'Arkensas, les Tamarois (en) au confluent du Missouri, les Chactas sur le Mississippi inférieur ou encore les Bayagoulas (en) dans le delta.
1496 소토(Hernando de Soto, 1496/1497-1542), 스페인 탐험가, 유럽인으로서 미시시피강 첫째 도달자.
1645 졸리에(Louis Jolliet, 1645-1700) 카나다 태생, 퀘벡거주, 프랑스 상인, 1673년 미시시피까지 여행, 동반자 마르께뜨(Jacques Marquette, 1637-1675)는 제수이트 신부였다.
1643 슈발리에 라 살(René-Robert Cavelier de La Salle, 1643-1687) 프랑스 여행가 탐험가.
1649 토니(Henri de Tonti, 1649-1704) 이탈리아 군인출신, 프랑스 공급 모피 상인. .
1661 이베르빌(Pierre Le Moyne d'Iberville et d’Ardillières, 1661-1706) 퀘벡 태생, 프랑스 항해가, 상인, 해적, 탐험가.
1682 슈발리에 라 살과 앙리드 토니는 미시시피 델타지역까지 내려갔다.
1698 이베르빌은 미시시피강 하구를 탐험하다. 그리고 그의 동생 비앵빌(Jean-Baptiste Le Moyne de Bienville)이 오를레앙공의 이름을 딴 뉴올리언즈(La Nouvelle-Orléans)를 건설하였다.
1713 유트레이트 조약(Les traités d'Utrecht, 1713)
1763 7년 전쟁이 끝난 후, 파리조약(Le traité de Paris 1763)에서 미시시피 동쪽 부분을 영국에 양도.
1768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 1768-1848), 프랑스 작가는 18세기말 아메리카 북부를 여행했다. 그의 글 속에, Les Natchez Atala (1801) René (1802) 등에 남아있다.
[1778 카베(Etienne Cabet 1778-1856) 프랑스 사회주의자, 1788년에 프랑스 디종(Dijon)에서 태어나 1856년(68살) 미국의 미주리(Missouri)주의 세인트 루이스(Saint Louis)에서 떠나다. 카르본느리(Charbonnerie)당의 신봉자. 그는 1830년(52살)에 군주제에 반대하여 봉기운동에 가담하였다. 난 공산주의자(Comment je suis communiste, 1840), 이카리 여행(Voyage en Icarie, 1842), 미국에서 이카리(Les Icaries) 공동체를 150명으로 결성(1847년). 다음해 파리에서 250명 오다. « À chacun suivant ses besoins. De chacun suivant ses forces » 이 구호가 루이 블랑(Louis Blanc)에 의해 « De chacun selon ses facultés, à chacun selon ses besoins » 그다음 맑스에 의해 « De chacun selon ses capacités, à chacun selon ses besoins. ».
- 쉴리(Charles Sully, s.d.) 프랑스 노동자, 1844-1845년 런던으로 추방당함, 1847년 카베를 도움, 1848년 카베의 기획에 동의, 미시시피 유역으로 도시 건설하며 살다. 실패로 끝나고, 쉴리는 뉴욕으로 갔다고 한다.
- 메르카디에(Benjamin Mercadier, 1828경-1883후), 툴루즈 태생, 카베의 이카리 공동체 계승자.]]
[1806 John Murrell (parfois écrit Murel ou Murrel, 1806-1844) 미시시피 강변 따라 도둑패거리.]
1835 마크 트웨인(Mark Twain / 클레먼스: Samuel Langhorne Clemens, 1835-1910), 미국의 소설가, 유머가. 주요 작품에는 미시시피 강 유역의 삶이 있다.
1861-1865 남북 전쟁(La guerre de Sécession ou guerre civile américaine: « The Civil War », « la Guerre civile » aux États-Unis) /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재임(1861-1865) 미국 16번째 대통령.
[휘트먼(Whitman)이 미시시피와 연관 있을 것이라고 왜 생각했을까? “영.위키”에는 그가 미주리 지역과 미시시피강 하구 뉴 올리언즈를 여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온자연(la Nature)” 또는 “동지애(la Camaraderie)” 때문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54WLI)]
###* 참조2: 국내 번역 시집 두 권에서 ****
# 휘트먼 시선
월트 휘트먼, 윤명옥 역,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2020년 04월, P.204.
타고난 그대로의 순간들
타고난 그대로의 순간들 – 그대들이 내게 다가왔을 때 – 아, 그대들이 지금은
여기에 있구나,
내게 선정적인 기쁨만을 다오,
나를 열정에 흠뻑 젖게 하고, 내게 음란하고 천박한 삶을 다오,
나는 오늘 날에 자연의 연인들과 합입을 이루고, 오늘밤에도 그러하리라,
나는 방종한 쾌락을 믿는 자들의 편이고, 젊은이들의 한 밤중의 난잡한 연회도 함께 한다,
나는 춤추는 자들과 함께 춤추고, 마시는 자들과 함께 마신다,
메아리는 우리의 상스런 외침을 따라 울리고, 나는 친한 친구들 중에서 천박한 친구를 골라낸다,
그는 무법자고, 무례하고, 무식하며, 나쁜 소행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리라,
내가 이런 짓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왜 내가 스스로 친구들로부터 추방되려 하는 거지?
오, 그대들, 배척당하는 이들이여, 적어도 나는 그대들을 배척하지 않으리라,
나는 그대들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 그대들의 시인이 되리라,
나는 다른 누구에게보다 그대들에게 더 소중한 사람이 되리라. (8-9쪽, 전문)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광대한 야망을 품었지만, 이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최전선에서 쓰러진 이름 없는 병사들을 위해
침착하고, 헌신적인 기술자들을 위해 – 너무나 열렬한 여행가들을 위해 – 배를 탄 항해사들을 위해
인정받지 못한 수많은 고상한 노래들과 그림들을 위해 – 내가 월계수 잎이 덮인 기념비를 세우리라,
높이, 다른 어떤 것보다 드높이 – 때를 만나기 전에 사그라진 모두를 위해,
어떤 기이한 불의 혼령에 사로잡혔으나,
때 이른 죽음으로 꺼져 간 사람들을 위해. (154, 전문)
* 해설 (191-197)– 윤명옥
말하자면 미국은 계급적이고 정형화된 유럽과 달리 보통 사람의 사회이기 때문에 미국의 시인은 유럽 사회를 노래하는 데 합당했던 과거의 정형시를 버리고, 광활한 미국의 자연과 민주성을 노래하는 데 적합한 자유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가 나무나 꽃처럼 자연스럽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시의 흐름은 운율의 패턴에 지배 받을 것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생각이나 느낌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유시를 바다에 비유하면서, 시란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쳐 거칠기도 하고, 언제나 움직이기 때문에 그 크기나 율동이 결코 같을 수 없는, 끝없이 솟아올랐다가 부서지며 굽이치는 유동적인 파도와 같다고 했다. .. 이는 그가 평소 좋아했던 오페라처럼 시에 같은 소리의 반복, 같은 문장 구조의 반복, 같은 생각의 반복, 나열법을 사용함으로써 음악성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5-196)
# 밤의 해변에서 혼자(On the Beach at Night Alone),
월트 휘트먼, 황유원, 읻다, 2019년 11월 20일, P.199.
밤의 해변에서 혼자 (64-67: 영문 대 번역)
노모가 목 쉰 노래 부르며 앞뒤로 몸 흔들 때
나는 별들이 환히 빛나는 모습 바라보며, 밤의 해변에서 혼자,
온 우주와 미래의 비밀을 풀 열쇠에 대해 생각한다.
거대한 유사성이 만유(萬有)를 서로 맞물리게 하는구나
성숙하고, 미성숙하고, 작고, 커다란 모든 천체(天體)들, 태양, 달, 행성 들을,
끝없이 광범위한 공간의 모든 거리들을,
모든 시간의 간격들, 무생물인 모든 형태들을,
비록 서로 완전히 다르거나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일지라도 모든 영혼들과 모든 살아 있는 육신들을,
모든 기화, 액화, 식물화, 광물화 과정들과, 물고기들, 짐승들을,
모든 국가, 인종, 야만성, 문명, 언어들을,
이 지구상에, 또는 다른 별에 존재해왔거나, 존재할지도 모를, 모든 주체적인 존재들을,
이 거대한 유상은 서로 이어지게 하고 언제나 이어지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지게 하여 그것들을 꼭 끌어안은 채 빽빽이 에워주리라. (65-67: 전문) (54WMD)
* 해설: 우주로 흘러가는 드넓은 바다의 시 (191-199)– 황유원
부록으로 실린 산문들은 휘트먼의 산문집 표본적인 날들(Specimen Days, 1882)에서 바다와 해변과 관련된 세 편을 가려 뽑은 것이다. 바다와 해변이 실제로 휘트먼의 시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을, 어떤 의미에서는 수록된 시들과 짝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을 산문들이다. (198)
*** *** ***
(미국) 월트 휘트먼 시 모음 | 카테고리 없음
Simon 2015. 9. 15. 18:00 http://blog.daum.net/phb3075/14712
[1855년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발표.]
시집 '풀잎' 서문에 쓴 시
땅과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필요한 모든 이에게 자선을 베풀라.
어리석거나 제 정신이 아닌 일이면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돌려라.
신에 대해 논쟁하지 말라.
사람들에게는 참고 너그럽게 대하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또는
사람 수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라.
아는 것은 적어도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과 함께 가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전문] (54WME)
** 나 자신의 노래 44편 중에서 첫편
[나 자신의 노래 1]
나는 나를 예찬하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
그리고 내 것은 네 것이기도 하다.
대체로 내게 속하는 일체의 원자는
마찬가지로 네게도 속하는 것이다.
나는 빈둥빈둥 시간 보내며, 나의 영혼을 초대한다.
나는 마음 편히 몸을 기대고,
빈둥대며 여름 풀의 싹을 응시한다.
나의 혀, 내 피 속의 일체의 원자는
이 땅에서, 이 대기에서 만들어진 것,
나는 여기에서 내 양친에게서 생겼고,
양친은 또 그 양친에게서, 또 그들은 양친에게서,
나는 지금 37세의 완전한 건강체로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중단 없기를 바라면서.
종파나 학파는 잠시 두어 두고,
그것이 어떻든 지금 상태로 족하니, 잠시 거기에서 물러나,
그러나 결코 잊진 않고
나는 선악을 다 용납하고 만난을 무릅쓰고 마음껏 말하련다,
본유의 정력으로 거리낌 없이 자연을, 나의 천성을
(lu 54WMD)
* 참조: 미국 쪽에서 **
# The Uses of Literature: Gilles Deleuze's American Rhizome, 2010
쾨너(Michelle Renae Koerner, s.d.) 미국 듀크(Duke University) 대학의 논문.
- 쾨너는 들뢰즈가 리좀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작가 네 명을 다룬다: Walt Whitman, Herman Melville, George Jackson(1941-1971) and William S. Burroughs(1914-1997), 그런데 조지 잭슨을 들뢰즈가 어디서 다루었을까? (54WME)
# “비평과 임상”(Critique et clinique, 1993)의 영어판 소개에서, Herman Melville, Walt Whitman, D. H. Lawrence, T. E. Lawrence, Samuel Beckett, Leopold von Sacher-Masoch, Alfred Jarry, and Lewis Carroll, as well as philosophers such as Plato, Spinoza, Kant, Nietzsche, and Heidegger. As Proust .. 등을 다룬다고 소개한다. 그런데 이 소개에서 미국 작가 볼프슨(Louis Wolfson)을 빠뜨렸는데, 프랑스어로 썼기 때문일까? (54W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