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 배낭을 들고 삼막계곡으로 향했다. 경인교대 교정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호암산 삼성산 학우봉을 한 바퀴 돌 요량이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배낭을 챙겨 내리는데 집에서 모자를 챙기지 않았다. 날이 그리 춥지 않고 바람도 없어 다행이다. 정각 8시에 삼막천을 건너서 학우봉 능선을 등지고 호암산 쪽으로 발을 내딛는다.
까치들이 칵칵 호들갑스런 인사를 건넨다. 하늘에선 비행기들이 지나는 길답게 간간이 굉음이 울려온다. 능선 허리를 질러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안양 시가지와 수리산이 온전한 모습을 보이고 반대편 능선 위로 태양도 온전히 얼굴을 내밀었다.
채 30분이 되지않아 서울과 안양의 경계를 이루는 호암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 자락에 올라섰다. 관악의 이웃답게 능선 곳곳에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눈길을 잡는다.
호암산 남쪽에 해당하는 이곳 능선에 '호암산성' 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6C 후반에서 7C초 신라가 통일기에 조성한 호암산을 둘러싼 1.5km여 길이의 산성으로 우물터 두 곳, 건물터, 석구상 등과 함께 청동제 숟가락, 철제 도끼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단다.
능선 왼편 가파른 비탈에 거대한 바위기둥 두 개가 어깨를 맞대고 우뚝 솟아 있다. 애틋한 사랑 얘기를 간직한 '신랑각시 바위'다. 그 꼭대기에 앉았던 까마귀 한 쌍이 사랑 놀음에 방해하지 말라는 듯 까악 까악 몇 차례 소리를 치다가 넓은 허공으로 날개 짓하며 날아간다.
미세먼지는 타원형 장막을 둘러치고 그 안쪽의 한 조각 도시에 시야를 가둬 두려한다. 애써 먼 곳으로 눈을 들면 시흥과 금천, 안양천 너머로 광명 소하리 K자동차공장,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 줄기와 어우러진 아파트 군락, 비행접시 마냥 아파트들 틈새에 비집고 앉은 고척동 돔구장 등이 눈에 들어온다.
도읍지인 한양을 향해 웅크리고 앉은 호랑이 모양의 호암산 기세를 누르기 위해 산 북쪽에 묻었다는 돌 사자상과 함께 남쪽인 이곳에 묻었다는 석구상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되어 능선을 살짝 비켜 앉혀 놓았다. 그 모습은 개를 닮았다기보다 해태상에 가깝고 익살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이번 설 특선으로 TV방영된 영화 '명당'이 떠올랐다. 후손 중 왕이 나온다는 음택을 둘러싼 몰락한 왕족 흥선과 세도가 장동 김씨의 다툼을 그린 영화다. 천 년간 나라를 지킨 사찰을 불사르고 그 곳에 부친의 묘를 이장하는 광기를 보이는 영화 속 흥선의 얘기는 사실에 픽션을 버무렸을 것이다. 어쨌거나 풍수지리는 아직도 우리들 삶 속 곳곳에 기능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평탄한 능산길 좌측 바로 아래에 있는 불영암과 한우물은 자칫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놓치지 않고 느긋한 걸음으로 둘러보았다. 불영암에서 호암산 가는 능선 길 해는 구름 속에 숨었고 바람은 제법 차다.
위압적인 바위로 덮인 호암산과 민주동산국기봉을 차례로 올라서면 파노라마처럼 길게 펼쳐진 관악산 능선과 한강 남산 등이 눈에 들어온다. 호암산에서 삼성산으로 휘도는 능선 바로 아래 찬우물 샘터는 가문 날이 길었는데도 물줄기가 바닥까지 이어지며 약수를 토해낸다. 1991년 신미년 5.15일 단장했다는 음각된 글이 선명하다.
산행 길 앞을 턱턱 막아섰거나 좌우에 늘어선 돌고래, 펭귄, 물개, 귀신고래, 키스하는 연인, 물개, 거북, 자라 등을 닮은 특이한 모양새의 바위에 눈길을 주며 한참 발을 멈추기도 한다.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을 초로의 산객들은 암릉 길을 잘도 걷는다. 아찔하게 솟은 깃대봉국기봉으로 기어오른 몇몇 산객들은 태극기와 함께 인증샷을 남기며 즐거운 모습이다.
해발 481미터 삼성산의 정상 표지석은 "중요시설물 관계로 이동하여 세웠다"는 설명과 함께 통신탑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정상 남쪽 암봉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훌쩍 세 시간이 지났다.
안양유원지 계곡을 굽어보며 국기봉 암봉 아래 절벽에 기대어 앉은 상불암에 들렀다. 순백 석가모니불과 붉은 입술의 협시불이 아름답다. 닭 벼슬 처럼 좁고 길게 솟은 해발 477미터 삼성산국기봉 바위틈을 마주 오는 산객들을 비켜 아슬아슬 지났다.
학우봉으로 이어진 능선에서 빠져나와 삼막사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삼막사는 신라 문무왕 17년인 677년에 원효·의상·윤필 등이 이곳에 막(幕)을 치고 수도하다가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중창한 사찰이라 한다. 영조 때 지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나옹·무학·지공 세 스님이 수도한 곳이라 삼성산(三聖山)이라 이름 했다고 한다.
재작년 가을 서울둘레길 탐방 때 호암산 북쪽 능선 자락에 있는 삼성산 성지, 1839년 기해박해로 한강변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모방·샤스탕 세 프랑스 신부의 무덤이 있던 자리를 지났었다. 벽안의 순교 신부 세 분을 기념하는 성소도 품었으니 삼성산은 두루 성스러운 산임에 틀림없다.
삼막사 위쪽 200m 지점 병풍 마냥 뒤에 우뚝 선 국기봉 아래 암벽에 새긴 마애삼존불을 모신 칠보전이 자리한다. 전각 안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가 양 옆에서 합장한 일광 월광 두 협시보살과 나란히 가부좌하고 있다.
호압사에서 내리뻗은 석수능선 자락 '신선길' 주변의 많은 돌탑들은 해 별 달 돌 등 우주만물을 신으로 모시던 시흥 지역 민간신앙의 기도처 였다고 한다. 도교에서 밤하늘의 가장 밝게 빛나는 북극성을 이르는 치성광, 불교가 재래 칠성신앙을 흡수해서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른 것이라고 한다.
난간이 있는 돌 계단 길을 따라 내려가서 육관음전 산신각 원효굴 범종각 등을 둘러보았다. 경기도 지정문화로 지정되었던 대웅전과 동종은 90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세우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도 있지만 씁쓸하다.
사찰 마당이 아니라 전각 뒤 비탈에 3미터 남짓 높이의 삼층석탑이 서 있는 것이 특이했다. 1232년 몽고의 2차 침입 때 삼막사 승도였던 김윤후가 용인 처인성에서 적장 살리타를 죽이고 승전한 것을 기념해서 세웠다고 한다. 재작년 겨울 충주 계명산 산행 후에 적었던 산행기가 생각난다.
"들머리 계단을 오르면 마즈막재 고개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언덕 위에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1253년 이 지역 군관 승려 농민 노비 등이 방호별감 김윤후의 지휘 하에 혼연일체로 결사 항전하여 몽고군의 제5차 침입을 격퇴시킨 쾌거를 전하는 탑이다."
1231~1259년 중 6차에 걸친 몽고의 침략에 맞서 제2차 침입 때의 처인성 전투와 제5차 침략 때의 충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고려의 영웅 김윤후 장군의 흔적을 이곳에서 마주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삼막사 마당을 가로지르며 원효대사가 심었다는 비탈에 늘어선 하늘에 닿을 듯 높은 느티나무들을 번갈아 가며 한참을 올려다봤다. 앞 벽면 유리창문 너머로 사이좋게 경계를 긋고 있는 능선과 하늘이 보이 해우소에 들렀다가 학우봉으로 발을 옮긴다.
바위 절벽에 열린 긴 고드름 아래로 물이 흐르고 태양 빛에 제 몸무게를 견디기 힘든지 얼음 조각을 땅으로 뚝뚝 떨어트리기도 한다. 학우봉에 다다를 무렵 헬기가 국기봉 부근을 맴돌다가 굉음을 내며 눈앞으로 다가오며 학우봉 너머로 사라진다. 설 연휴 중 도봉산 Y계곡에서 등산객 추락 사망 소식이 있었는데 구난 출동이 아니면 좋겠다.
오후 1시가 지난 시각 건너편으로 삼막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학우봉 아래 편편한 바위에 자리를 틀고 앉아 허기를 달랬다. 능선 좌우 숲 여기저기에서 산객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산새들 소리처럼 들린다.
학우봉 아래에서 삼막천 쪽으로 난 계곡 길은 희미하고 땅은 녹아 미끄럽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지만 울어야 새벽이 올 리 만무한 한낮, 계곡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난데없는 닭 울음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다.
가뭄에 말라버려 물소리가 없는 계곡은 적막하다. 여러 사찰과 암자를 품고 있는 삼성산에서 염불 소리는 고사하고 풍경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다. 바야흐로 성인들과 영웅들이 모두 자취를 감춘 삼성산에는 산객들 발길만 분주히 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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