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색 가죽 리크라이너
-Bodie Elephant Leather Rocker Recliner
거칠은 등가죽이지만
한번 앉아 있으면 내려오기 싫다
우람한 코끼리를 타고 있는 듯
나는 흔들거린다
요람처럼 편안한 삶이 된다
헤이 코끼리!
밀림 속을 떠나와
동고동락한지 이십년을 넘었다
너른 품 같은 등짝에 진한 사랑을 느꼈다
언젠가부터 피부가 트기 시작했다
상처가 깊어지면서 진물이 배어나는 가죽이다
알코올로 소독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짓무른 상처는 심해진다
무릎께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흔들거릴 때 마다 아파한다
늙은 등에 올라타는 것이 조심스럽다
잠시 거꾸로 눕히고 무릎을 살펴보니
수백 개의 관절을 갖고 있었다
고관절은 아직 튼튼하지만
낡은 관절들이 아픔을 호소한다
3M 프리미엄 K-70 윤활유를 물파스처럼 발라주었다
물소 떼가 노니는 곳에 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등을 내주다가
아무도 모르게 쓰레기장으로 사라진다는 성자다.
파랑주의보
-말(言), 또는 말(馬)
바다는 푸른 말이다
말 갈퀴를 휘날리는 기마군단이다
파도는 수 만 개의 말발굽이다
기마병들이 아우성치며 내 안을 쳐 들어온다
파도소리는 말들의 포효다
편자자국이 화인火印처럼 모래사장에 찍힌다
풍랑은 고삐 풀린 말의 분노다
달빛도 말발자국에 짓밟히고 있다
바람의 날개도 찢어지고 있다
모래톱은 학익진鶴翼陣을 펼치며 파도를 썰어보지만
톱밥만 남긴 채 물거품처럼 물러서기만 한다
밀물은 점령군의 무리다
술병에 바다를 담아보기도 한다
파도소리를 알약처럼 약병에 담아두기도 한다
달려오는 말, 말, 말발굽
함성은 지축을 끊을 듯 달려오는 질풍노도다
등대는 방안의 기마인물형 신라토기를 비춘다
한 생애의 바다에 파랑주의보가 내려졌다
원고지를 찢어버리며
목숨의 방파제로 뛰쳐나온 시인이 있다.
약력
1989년 <시대문학>등단, 시집 ‘왕버들나무고아원’ 등 5권, 시선집 ‘시의 감옥에 갇히다’, 산문집 ‘문화를 생명으로 읽다’ 외 1권, 교양서 ‘예술 속의 약학’, 강원도문화상, 춘천예술상 대상 등, 전 춘천문인협회장, 춘천수향시회원, A4동인, 표현시동인회 회장, 강원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