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몇 년 만에 형제들이 다 모였다. 그동안 제각기 사정이 있어 한 둘이 빠졌다. 고향에 내려가 귀촌 생활에 적응한 남동생과 직장 생활을 하는 여동생까지 오남매가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간을 채운다.
음식 준비는 손이 적게 가는 중심으로 차린다. 번거로운 튀김은 가짓수를 줄인다. 과일과 떡은 미리 챙겼다. 어느 때부터인가 제를 올리는 시간이 빨라졌다. 자정을 넘겨 제를 올리던 것은 옛일이고 저녁 시간을 맞춰 제를 올린다. 아버지 제사다. 일찍이 젊은 날에 어머니와 어린 자식을 남겨 두고 하늘로 먼저 떠나셨다. 남은 식구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다.
시골 생활을 접고 도시로 이사하여 단칸 방에서 여섯 가족이 웅크리며 지냈다. 어린 시절 형제의 정이 성인이 되면서 점점 사라지는 느낌은 왠지 서글퍼다. 제기에 음식을 담아낸다. 맨 앞줄은 과일, 둘째 줄은 생선, 격식에 맞추어 순서를 따르는데 주방 쪽에서 아내와 여동생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사상에 올릴 문어가 빠졌다는 것이다. 문어가 준비 안 된 것에 이럴 수가 있느냐며 언쟁이 오간다. 제 올리기 직전에 확인이 되었으니 도리가 없다. 이 시간에 살 수도 없고 난처한 상황이다. 두 사람 중 어느 누구하나 양보가 없다. 한 사람이라도 받아들이면 정리가 되겠는데 말싸움이 길어진다. 둘을 다독거려도 끝이 없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나가’하고 여동생에게 소리를 질렀다. 순간적으로 뱉었다. 동생은 그러지 않아도 나가려고 했다며 가방을 챙겨 집을 나갔다. 막내도 따라 나선다.
잠시 시간을 두고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돌아오라고 하였으나 여동생은 그냥 갔다고 한다. 동생에게 전화를 하였으나 신호만 가고 받지 않는다. 제사를 모시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상을 차렸으니 제는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제를 지내고 동생에게 문자를 보낸다. 서로 한발씩만 양보하고 준비 안 된 부분은 잘못되었으니 이해하고 넘어가 주었으면 한다고.
음복을 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몇 년 만에 자식들이 모여 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자리가 싸움터가 되었다. 서로 할 말이 많단다. 무엇이 그동안의 불만으로 쌓였는지 모르겠다. 작은 불신이 모여 오늘의 폭발로 이어졌으리라. 형제들이 만나는 가족 행사가 몇 아니다. 명절 제사는 금년 추석부터 지내지 않기로 하였으니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문어를 준비하지 못한 것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장을 보는 우리의 잘못이다. 꼼꼼하게 챙겼다면 이런 소란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저지른 실수를 가벼운 말로 넘어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못마땅한 일이 한꺼번에 터졌는지 모른다.
성장할 때 아옹다옹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며 지내던 형제의 정은 오간데 없고, 단점만 들추는 시간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일찍 돌아가신 부모의 역할이 부족하여 손윗사람에게 쉽게 여기는 모습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아니면 자격지심으로 스스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인가. 제사 이후 내내 개운치 못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어가면 너그럽고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고, 차분해져야 하는데 욱하는 성격이 아직도 남아있다. 철이 들려면 멀었는가 보다. 뒷정리 후 집을 나서는 동생들을 배웅하면서, 오늘 일은 잘못 되었노라며 제수씨에게 고개를 숙인다.
작은 일에도 안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형제간 만남의 자리가 옛 시절을 떠올리며 서로의 건강을 챙기고 좋은 감정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가까운 시일에 자리를 따로 마련해야지. 지나간 묵은 감정을 씻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