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에 있는 전통사찰은 8곳이다.
보문사(보문면), 한천사(감천면), 동/서악사(예천읍), 청룡사/용문사(용문면), 장안사(용궁면).
이번 여행에서 장안사 외 모두 들렸다. 위 글의 순서대로. 봤던 순서대로 방문기를 기록한다.
장안사는 문경시와 가깝다. 문경 여행할 때 용궁면의 장안사와 화룡포 등을 들릴 것이다.
학가산 보문사(鶴駕山普門寺)
- 경북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1185년(명종 15)에 지눌(知訥)이 중창, 지눌이 『화엄론』을 읽다가 오도한 사찰로도 유명하다.
보문사는 고려왕조의 사고(史庫)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1381년(우왕 7) 7월 충주 개천사(開天寺)로 사고(史庫)를 옮겼다.
1407년(태종 7) 교종에 예속되었고, 1569년(선조 2)에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뒤 1791년(정조 15)에 중창하였다. 1882년(고종 19) 강주(講主) 금해(錦海)가 머물러 있을 때만 하여도 극락보전(極樂寶殿)을 비롯하여 노전(爐殿)·선당(禪堂)·조실(祖室)·범종각·나한전·보조영당(普照影堂)·산신각·칠성각·운계암(雲溪庵) 등의 당우(堂宇)들이 있었다.
대중의 수효도 보문사에 50여 명, 운계암에 30여 명이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 황폐, 1926년에 주지 최성환(崔成煥)이 불전과 승당을 중수, 1967년에 주지 화운(華雲)이 보수, 단청하여 현재 이르고 있음.
(다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수정)
677년(신라 문무왕 17) 의상대사가 개창하였다 한다.
1184년(고려 명종 14) 보조국사가 중창, 1407년(조선 태종 7) 교종에 예속.
1569년(선조 2년) 법우(法宇)화상이 불전과 당우를 중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극락보전과 염불당 등은 남고 대부분 소실.
보문사에 보관하던 사적은 왜구를 피해 1381년(고려 우왕 7) 7월 충주 개천사로 옮겼고, 1383년 6월 안성 칠장사로 옮김.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1926년 보산(普山)화상이 불전과 요사를 중수, 1980년 도문(道門)화상이 삼성각 신축, 단청하였음. 1988년 염불당을 해체, 중수함.
1991년 도량을 정비, 적묵당을 신축함. 1992년 극락보전을 중수함.
산내 암자인 운계암(1992년), 불타암(1993년) 중창,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문사 입구 사적 안내판 내용 정리)
예천IC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다. 도한 깊은 산 중에 있는 사찰이 아니다.
이른 시각, 사찰은 조용하다. 절을 지키는 승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좌의정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이 고향인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안내판도 있다.
사적기
작은 연못을 만들고 마애약사여래불을 봉안하였다.
극락보전.....보문사 극락전 /경북 문화재자료 제203호
보문사 극락전 아미타삼존상 /경북 문화재자료 제519호
보문사 극락전 삼장보살도 /보물 제1958호
염불당....ㅁ자형 건물이다.
적묵당
삼성각
조사전
나한전
보문사 삼층석탑 /경북 유형문화재 제186호
----------
보문사에서 몇 십미터 걸으면 '원명사' 나온다.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단촐한 사찰이다.
------------
예천 간방리 삼층석탑 /경북 유형문화재 제188호(예천군 보문면 간방리)
마을 안에 석탑이 있다. 이곳에 큰 절이 있었다 한다. 즉 지금의 마을이 예전엔 절이었다는 것.
-------------
주마산 한천사(走馬山寒天寺)
- 경북 예천군 감천군 증거리
678년(문무왕 18) 의상(義湘)이 창건.
의상이 영주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할 때 기둥을 설주하고 지붕을 덮으면 빈번히 넘어졌다.
의상이 관법으로 보니 소백산맥 남쪽 이곳 뒷산이 '말이 바람을 가르면 힘차게 달리는 주마형국의 머리 부분'이라
주마산의 말머리를 진압하기 위해 이 절을 창건, 부석사를 건립할 수 있었다 한다.
(「한대사연화기(寒大寺緣化記)」(고종 12년/1875)의 기록으로 한천사의 창건 설화이다.
1803년(순조 3) 근천(謹天)이 법당을 중건, 1808년 불량계(佛糧契)의 도움을 받아 선당(禪堂)을 중건하였다.
1932년 주지 취운(翠雲)이 요사채를 중건, 1934년 주지 덕기(德奇)가 법당을 중수하였다.
원래 한대사(寒大寺)라고 불렸던 사찰로 불량계·등촉계(燈燭契)·위선계(爲先契) 등을 통하여 사찰의 발전과 수행을 도모했던
대표적인 곳이며, 지금도 그에 관련된 서문(序文) 등이 남아 있다.
(인타넷 검색, 한천사 사적 안내판 등 참조)
한천사가 있는 주마산의 모습이다.
초행이라 한천사를 찾아가면서 조금 헤맸다. 네비게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한천사의 모습
요사채
여기도 요사채, 공양간.
한천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호
대적광전
한천사 철조 비로자나불상 /보물 제667호
865년(경문왕 5)에 건립된 도피안사(到彼岸寺)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다 연대가 더 오래되고, 우아하다.
약사전
삼성각
이날 보지 못한 한천사 문화재는 <금동 자물쇠 및 쇠북 /보물 제1141호>이다. 직지사 성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한천사는 아직 불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단아한 맛이 있다. 규모도 그리 크지않다.
도착했을 때 대적광전에서는 49재를 지내고 있었다. 비로자나불상을 보려면 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왔다리갔다리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재를 긑내고 음식물을 정리하던 비구니가 내게 들어오라고 한다.
불신자가 아니라 참배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하니, 사진 찍지마라고 한다. '사진촬영금지' 경고문은 없다.
우선 들어가서 봤다. 몸매가 아름답다.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음식물을 다 정리하기를 기다렸다. 사진을 직지않고 가려니 등이 간지럽다.
삼성각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법당이 빈다. 들어가 사진 몇 장 찍었다.
---------------------------
예천박물관
- 예천군 감천면 포리
한천사 가는 길에 봤다. 한천사를 보고 나오는 길에 들렸다.
박물관 관람은 생각하지 못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보지 못한 문화재도 볼 수 있다.
예천에 아직까지 공군비행장이 있나?
금동 보살좌상 /복제, 원본은 국립대구박물관. 풍양면 와룡리에서 출토된 라마 형식의 불상.
금동 여래입상 /풍양면 흔효리사지에서 출토된 여래입상. 국립대구박물관. 설명판에 복제란 글이 없다.
보문사 삼장보살도 /보물 제1958호, 복제. 오전에 보문사에서 본 것이 진품일까?
보문사 아미타불회도/복제. 오전 보문사 아미타삼존불 후불탱이 이 그림이다.
신라조사본사창주두운선사지영....안내판의 글 그대로 옮겼다. 지영이 아닌 진영의 오기일까?
제목 밑의 설명문은 '진영'을 사용했다. 1809년 제작된 진영이다.
탁본은 '중수용문사기'이고, 두운선사는 용문사 창건주이다.
전(傳) 용문사 청동 은입사 향완 /국립중앙박물관, 복제.
소조 나한상 /국립대구박물관, 복제. 예천읍 남본리에서 출토.
용문사 대장전에서 볼 수 있는 윤장대와 목각 후불탱. 사진이다.
개심사지 오층석탑
보은 법주사 자정국존비 탁본
칠송정 동회도 /복제.
대동운부군옥 -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처음 알았다. 이 목판이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줄.
예천청단놀음-무언의 탈놀이/여섯 마당
기획 전시, 예천과 독도
기단과 대형 맷돌, 야외에 있다.
첫댓글 잘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