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변경 (신명기 28:7~10)
복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 예시. 7 적군들이 우리를 치러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한다. 17:1로 싸워도 이긴다는 내용. 8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요즘 말로 대박. 가게 오픈하면 바로 대박. 구리 소고기 무한리필 식당. 한달 순이익이 천오백.
이렇게 잘 되는 복이 좋다. 우리는 이런 복을 사모. 교회 열었는데 바로 교인 백 명. 문제는 실제 이런 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는가? 그렇지 못하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 가운데서 망했다.
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의 이름이 뜬금없이 나온다. 앞에 있는 이런 복들을 말씀하신 이유 여호와의 이름 때문. 여호와의 이름 때문에 너희들이 누리고 있다 입증하기 위해 복 받는 백성이 등장
성경에 나오는 모든 복은 유보되다가 마지막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내 이름의 명예 자랑거리 위해 이 복을 원한다.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이 복을 약속. 우리 이름을 위해서는 안 쓰겠다는 것.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자기 이름 삭제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한 백성이 나타나는데 그 백성을 위해 이 복 주어진다. 요한계시록 가야 완성. 그전까지 맛배기로 주어진다. 마트 시식코너. 성경에 나온 모든 복들이 역사에 등장할 때는 맛보기 식으로. 나머지 완성은 요한계시록 이 땅 끝장내고.
왜 주님께서는 여호와의 이름과 그 여호와의 이름에 합류된 사람들에게만 복을 주시는가. 어떻게 우리는 우리 이름 자체를 스스로 버릴 수 있는가? 사람은 다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
여호와의 이름에 반하는, 여호와의 이름과 대등하게 살려는 우리 이름 자체를 주께서 버린다. 왜 그토록 인간의 이름 주장하는 것이 문제인지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어야. 이름은 아빠 엄마가 준 것. 엄밀히 말해 육적인 존재들이 육적인 존재에 희망을 담아 지어준 것.
육적 인간 육적 부모가 육적인 소망을 담아 아이 이름 지어준 것. 나는 비록 못살았지만 너는 잘 되라. 잘될 턱이 없다. 사람은 자기 이름의 가치를 느낀 다음부터는 이름을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의 이름으로서는 영생에 이를 수 없다.
어릴 때 아기들은 자기라는 자아의식 없다. 엄마가 울면 같이 운다. 웃으면 같이 웃고. 엄마가 곧 자기 자아. 엄마와 자기 동일시. 그러다 서서히 엄마의 몸과 내 몸이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별도의 자아의식 형성. 그리고 그 마지막에 브랜드를 붙이는 것이 이름. 나이키.
자기 자아에 나름의 이름 갖다 붙이고 그 이름의 가치를 위해 계속 자기 자아 발전시키려고 애쓴다. 강아지 키우는 분. 가장 머리 좋은 강아지 푸들. 그런 강아지 정도의 지능. 주인과 자기의 결별에 대한 두려움. 강아지는 자기를 일체화시킨다. 아기는 엄마와 자기를 동일시. 엄마 없이 살 수 없다. 나중에 별도의 자리를 인식하고 엄마와 떨어진 새로운 삶.
주님과 우리가 별도의 자리로 대등하게 존재하는 것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 이름의 한 부분으로. 독립적 내 이름의 세계 말고 그리스도 예수 이름에 합류된 백성을 주께서 원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왜 쉽지 않냐면 사람이 조금 지능이 생기고 나서는 자기 이름의 세계를 꿈꾼다.
자기 이름의 가치를 위해 평생 살다가 결국 죽는다. 나이 먹으면 자기 이름 잊고 내 이름이 뭐냐고 묻기도. 성경에서는 너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네 이름으로 성취한 업적 아니고 다른 분이 성취한 것을 너에게 준다는 것을 얘기.
그 앞에 붙는 조건. 우리 이름 가치를 계속해서 부정.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은 이런 복을 받았지만 약속대로 복 누린다고 생각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누리지 못한다. 야곱. 양들 얼룩것 아롱진 것. 나뭇가지를 세웠다고 정말 양들이 바뀜? 여호와 이름의 개입.
여호와 이름으로 받은 복을 야곱은 자기 것으로 생각. 내게 들어온 내꺼라 생각하기 위해 그걸 지키기 위해 애쓴다. 사실은 주님 것. 주님이 주신 주의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는 순간 내가 지켜야 하는 큰 부담감에 시달린다.
하나님이 찾아와 야곱과 씨름하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꾼다. 그전에 야곱의 환도뼈를 부러뜨리고. 이스라엘의 뜻?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다리 부러진 병신이 누굴 이김? 주님께서는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네가 이겼어 라고 말한다.
연예인 싸움순위 1위 강호동? 갈비뼈 다섯 개 부러뜨린 다음 오히려 이겼다 손 들어주는 것과 비슷. 하나님 앞에서는 갈비뼈 몇 대 부러진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승리자. 하나님 심판 앞에서도 설 수 있는 자가 이긴 자. 하나님 심판 통과하는 자.
그게 누구? 하나님 손에 의해 환도뼈가 작살나는 사람. 야곱이라는 육적 이름 인간적 이름은 그 이름의 가치 유지 위해 알맹이가 필요. 야곱의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환도뼈. 미용실 원장님의 이름의 가치는 미용 기술로 유지.
어느날 원장님이 큰 사고 나서 팔 부러졌다? 그러면 브라운 리라는 이름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죽은 자. 야곱이라는 사람은 환도뼈가 살아있어서 튼튼한 환도뼈로 우물 뚜껑 열고. 야곱은 굉장한 장사. 강호동. 이영애 얼굴 화상 입었다. 이영애 가치 날아가는 것.
우리는 다 우리 이름의 가치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이름의 가치를 지탱할 수 있는 삶의 기반을 쳐버린다. 우리 이름으로 채우는 가치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분량에 도달할 수 없다.
많은 분들이 거룩한 삶 위해 애쓰는데 오늘 거룩한 이름이 내일까지 간다고 보장 불가. 박정희 대통령. 살아있을 때 그 이름석자의 무시무시한 힘 아무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은 조롱 멸시. 어떤 이름도 자기 이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보할 수 없다. 그걸 확인시키는 게 이스라엘.
너희는 항상 환도뼈가 부러져서 이름이 삭제당하는. 성도는 자기 개별적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체가 하나님에 의해 부러진다. 세월 지나면 내가 지금껏 살아온 것이 내 환도뼈의 힘과 내 이름의 가치로 살아온 것 아니었고 여호와의 이름 – 신약으로 가면 주의 이름 – 으로 주어진 혜택임을 알게 된다.
대표적으로 자기 환도뼈 부러지고 자기 이름 날아가고 오직 주의 이름으로 뭔가 이뤘던 사람 베드로와 요한 기도하다 만난 앉은 뱅이. 환도뼈 나간 사람. 더 이상 구걸밖에 할 게 없다.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나님이 치신 환도뼈를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다시 세운다. 사람들 열광. 니들은 지금 환도뼈 붙어있다 이미 주의 은혜 받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 우리 개인의 경건 능력으로 이 사람 낫게 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한 덩어리. 예배라는 것은 목사 혼자가 아니다. 준비찬송 기도. 인간은 다 아담 족속. 아담족속이라는 뉴런이 인류를 덮고 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아담족속의 모든 신경세포가 연결. 누가 졸면 같이 존다. 우리는 빠져나올 수 없다.
오직 새로운 종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새로운 뇌세포를 허락한다. 날마다 우리 환도뼈를 쳐서. 그 환도뼈로는 우리 이름 유지불가. 부끄러운 이름. 거지의 대명사 나사로.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어디를 쳤기에. 웬만하면 노동할 수 있는데.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의 흐름. 끝없이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는 작업을진행. 이스라엘이 되어야 비로소 주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복이 그들 속에 담기게 된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 치료하는 그 놀라운 권능을 가지고 곧바로 베드로 요한 병원 세우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목사님들은 병 나았다 하면 광고해서 교인들 몰려온다. 안수기도. 다 안 낫는다. 정성부족 기도부족 돈 부족. 장사. 베드로 요한은 극구 부인하며 주의 이름으로 나았다. 그리고 홀연히 끌려간다. 베드로는 감옥.
그 대단한 능력이 자기들 것이었다면 이미 유명해지고 떼돈 벌었을 것. 자기들 것 아니기 때문에. 주의 이름이 그들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베드로 요한 이름 매일 삭제당하고 그 환도뼈 매일 나자빠지는 사건 속에 들어가는 것을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매일 죽는 것이 바울의 자랑. 마찬가지로 야곱의 환도뼈 날아가는 그것이 야곱의 자랑. 그게 날아가야 하나님 볼 수 있으니까. 우리 개인의 이름 지탱하는 개인의 힘과 권능 부서지고 날아가야 우리를 살리시는 새로운 이름 여호와의 이름을 새롭게 볼 수 있다
그 주의 이름이 적들이 나를 치러 올 때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여기서 문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으로 당겨 쓰면 다시 주의 이름이 환도뼈를 치신다. 적이 왔다가 도망가지 않고 우릴 죽이면 죽어야.
주의 이름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인다. 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두려워함. 세례요한은 왕을 책망. 나중엔 목을 잘라버림. 살려달라 빌지 않았다.
다니엘과 친구들 풀무. 주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성도를 보고 세상은 두려워한다. 그런 자유함과 담대한 능력이 주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백성의 삶. 그들에게 있어 이런 복의 내용들이 순간순간 이루어진다.
복을 내릴 때가 있고 때로는 엄청난 저주. 그 모든 것이 예수와 함께 죽고 사는 십자가 여정. 그렇게 우리 모든 삶이 매순간 우리 이름 삭제당하고 주의 이름으로 사는 전환의 순간에 축복.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이름 석자 가치 위해 살지만 마침내 우리 이름은 허상이라는 사실 드러나고 이름 담았던 우리 육체까지 다 사라지게 됨을 보게 하여 주옵시고 영원히 사는 이름 죽음 이기고 사신 예수이름이 우리 이름 되게. 그리스도 예수의 것으로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