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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무예 여행 스크랩 고수를 찾아서 <14> 동이무예택견 박성호 회장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712 13.08.31 11: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수를 찾아서 <14> 동이무예택견 박성호 회장
세인의 비난 모두 잠재운 신비의 비각술(飛脚術), 일곱 살 때 산 속 들어가 98세 노인에게서 13년동안 비법 전수
공격적 성향 강한 평북 택견 맥 이어… "약한 무예는 모두 가라"


네 살 때 양친을 잃은 소년이 있었다. 충남 아산의 외갓집으로 내려온 소년은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는게 하루 일과였다.

일곱 살 때 칡을 캐기 위해 동네 뒷산에 올랐던 소년은 움막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아흔 여덟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마치 60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근력도 젊은이 못지않았다.

 
  박성호 동이무예택견연구회 회장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상대방을 강타하는 비각술을 선보이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노인의 몸짓과 발짓은 마치 학이 춤을 추는 듯 했다.

이런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소년은 놀기 삼아 움막을 드나들다 아예 노인의 집으로 들어간다.

소년은 노인을 따라 산으로 약초를 캐러다니고 물지게를 나르면서 그의 몸짓과 발짓을 배운다. 꼬박 13년을 그렇게 했다.

어느 날 노인이 소년을 불렀다. 노인은 "처음 먹었던 마음이 끝까지 변치 않기 바란다"며 "네가 닦은 무예는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것인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몇 개월 뒤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마 돌아가실 것을 아셨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려고 하신 것 같아요. 그 뒤에는 스승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 스승의 나이가 111세였습니다."

스승과 결별한 뒤 계속 이 산 저 산을 떠돌아다니던 그는 1993년 마침내 세상으로 나온다. 그가 '동이무예택견' 고수 박성호(50) 씨다.


# 무인의 길을 간다

    동이무예택견의 손동작 "거창의 어느 산에서 수련을 할 때였습니다. 산 속에 무술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거창고등학교 교사들이 찾아와서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고 하더군요. 도시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아 여러 번 거절했는데 어느 교사가 '전통 문화를 당신 혼자 갖고 가면 그건 도둑질이 아니냐'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산에서 내려왔죠. 그게 화근(?)이 돼 지금까지 이러고 있습니다."

동이무예택견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박 회장은 여러모로 특이한 무술인이다. 수련 과정이 영화에서나 나올법하게 극적이며 살아온 역정 역시 보통 사람들과 판이하다. 게다가 그의 분신과도 같은 동이무예택견 자체도 다른 무술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을 갖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각 지방마다 택견이 있었고 박 회장의 무예는 평안북도 택견이다. 송덕기~신한승 선생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택견과는 전혀 다르다. 그 자신도 그 점은 분명히 한다. 가르쳐 준 사람이 다르고 배운 수도 완연하게 구별이 된다는 것이다. 우선 보법에서 차이가 있다. 동의택견에는 네 가지의 '얼르기(기존 택견의 품밟기)'가 있다. '갈지(之)자' '디귿자' '품(品)자' '삼수'보법이다. 이 가운데 동이무예택견은 '갈지자' 보법을 중요시한다.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보법인 까닭이다. 보법이 정확해야만 수련 효과가 극대화된다.

동이무예택견의 두드러진 것 중 하나는 현란한 발기술에 있다. 박 회장은 이를 '비각술(飛脚術)'이라고 부른다. 종류만도 깎아내리기 올리기 차기 걸기 당기기 밀기 솟구치기 난간치기 휘몰차기 도리깨질 쟁기차기 등 수십 종을 헤아린다.

"비각술은 평북 태견의 특징이죠. '날파람'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빠르다는 뜻입니다. 붕 날아가서 상대를 박치기로 제압하는 시라소니(평북 신의주 태생)도 비각술을 수련했다고 봐야죠."

동이무예택견은 수련방법도 남다르다. 일반 기술 전수 외에 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거나 산세를 익히는 방법도 배운다. 이는 박 회장 자신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 무예뿐 아니라 약초공부 등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한 데서 비롯된다. 육체적인 기술은 쉽게 터득이 가능하지만 인격 수양은 본인이 부딪쳐 공부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이유도 있다.

생소한 무술이다 보니 박 회장은 전수관을 열었을 무렵, 정통성 논란에 휩싸였다. 박 회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동이무예택견을 알지 못하는 데다 100세 가까운 노인으로부터 비술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른 까닭이다. 더구나 스승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세간에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사이비 무술이라는 극단적인 비난도 나왔다. 박 회장이 애초부터 세상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억울하기 이를데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동이무예택견 홈페이지에 비방 글이 올라와도 무시할만큼 면역이 됐지만 한 때 박 회장은 택견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회의를 가진 적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택견의 대중화로 인해 남녀노소 누구나가 쉽게 배울 수 있게 되자 '택견은 약한 무술'이라는 인식이 강해져 동이무예택견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애초에 동이무예택견이라고 한 것은 택견을 하는 사람들이 보다 좋은 기술을 서로 교환하면서 멋진 전통무예로 만들어보자는 뜻에서였는데 기존 택견과 다르다고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바람에 차라리 이름을 달리 쓸 것을 그랬구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통 택견은 세간에 알려진 것 처럼 결코 약한 무술이 아닙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택견입니다. 기존의 택견을 하시는 분들이 택견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대중화한 공로는 인정하나 오히려 역효과가 난데 대해서는 아깝고 원통합니다."


# 실력이 세간의 소문을 잠재우다

    동이무예택견의 발동작 비주류의 한계를 딛고 박 회장이 이만큼의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가공할 동이무예택견의 위력과 무술인의 자존심 덕분이다.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의 동작을 보는 것이 나은 법. 박 회장이 도복차림으로 몸을 일으켰다. 대전에 있는 동이택견무예연구회 도장에서였다. 박 회장은 최근까지 전북 전주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다 1개월여 전에 대전에 정착했다.

박 회장의 자세가 심상찮다. 갈짓자 행보를 하며 몇 번 몸을 풀더니 발질을 선보인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 비각술이다. 눈이 핑핑 돌만한 빠른 속도다. 공중으로 몸을 휙 던지는가 싶더니 번개같은 발차기가 상대 사범의 머리를 강타한다. 이건 또 뭔가. 몸이 마치 물구나무를 선듯한 상태가 되더니 쏜살처럼 발질로 이어진다.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뼈를 제대로 추스리기 힘들 것 같다는 오싹함이 밀려 온다. 공중에서 훨훨 날아다닌다는 표현 외에 다른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대여섯 번 계속해서 이어지는 발질은 쭉쭉 뻗어 나간다. 가슴을 맞은 사범은 단번에 서너 발자국 뒤로 밀려나간다. 30대 무렵 뛰어가는 토끼도 따라가 잡은 적이 있다는 믿기지 않는 박 회장의 일화가 그제서야 곧이곧대로 들린다.

큰 동작은 반드시 허점이 있는 법. 혹시 정확한 타격이 빗나간다면 상대에게 역습을 당하지는 않을까. 박 회장의 답이 간단명료하다. "맞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야말로 고수다운 자신감이다.

박 회장이 격파에 들어갔다. 튼실한 각목 두 개다. 사범이 11자로 나란히 세웠다. 기합 소리가 한 번 터져나오더니 정확한 발질이 각목을 때린다. 각목이 거짓말처럼 두 동강이 나버렸다. 가격 부위는 발등도 아닌 정강이뼈.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군홧발에 정강이뼈를 맞는 이른바 '쪼인트를 까인' 경험이 있을 터. 부딪히기만 해도 아픈 그 정강이뼈로 각목을 부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수련이 필요했을까. 박 회장은 각목 12개를 한 번의 발질로 부러뜨린 적도 있다. 이날 만남에서는 직접 접하지 못했지만 그가 발질로 대나무를 칼 보다 더 예리하게 싹뚝 잘라버리는 모습은 지금도 동이무예택견연구회 홈페이지나 인터넷 무술사이트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격파는 속도와 힘이 있어야 가능하죠. 만약 사람을 저렇게 찼다면 내상을 입었을 겁니다. 그리고 격파를 할 때는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영원히 깰 수가 없죠."

박 회장은 자신의 무예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어디서나 "동이무예택견 111대 수련자"라고 내세운다. 쉬 받아 들이기 힘든 말. 그렇지만 그의 비각술을 한 번이라도 직접 봤다면 애써 무시하기도 힘들 법하다. 어쩌면 이런 내공이야말로 박 회장이 주위의 온갖 비난을 물리친 바탕이 되었을 수도 있다.

"전 지금까지 제가 고수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남들이 모르는 길을 먼저 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진짜 고수란 초능력자가 아니라 한 길을 가면서 남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오랜 세월을 산 속에서 살아온 박 회장. 그에게는 산으로 돌아가고픈 소박한 소망이 있다. 어설프게 세상에 발을 내밀었다가 영악한 사람들에게 당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다. 현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저는 산사람입니다. 앞으로 산 속에다 20~30평 가량의 살림집과 운동을 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을 만들어 제자를 가르치는 게 꿈입니다. 뭐 안되도 할 수 없지요. 제 대(代)에서 안되면 제자들이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전수관이 잘 되지 않아도 별 미련은 없습니다. 저는 정도를 걷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저마다 본분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걸 찾았고 그리고 그 길을 가는 중입니다. 무인으로서는 무인의 길이 마지막 길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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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三流人生 원문보기 글쓴이: 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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