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하루 풍경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해탈의 길)
마음이 괴로운 날에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괴로움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뿐,
무엇이 그 괴로움을 붙잡고 있는지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해탈을 먼 미래의 일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해탈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이 지금 일어나듯, 갈애도 지금 일어나고, 집착도 지금 일어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현재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만,
삶을 바꾸는 힘은 오직 지금 일어나는 마음에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을 바르게 보면 삶 전체를 이해할 수 있고,
지금 일어나는 작은 집착 하나를 보면 괴로움이 어떻게 자라고 반복되는지도 함께 보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괴로움은 붙잡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재산을 붙잡고, 사람을 붙잡고, 명예를 붙잡고,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붙잡습니다.
이미 지나간 기억과 사라진 자리까지도 '나'라고 여기며 놓지 못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오래 지키려 하며,
더 높이 오르려 할수록 다툼도 깊어지고 괴로움도 커집니다.
그러나 한 번만 조용히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십시오.
무엇을 그토록 붙잡고 있습니까?
몸입니까.
느낌입니까.
생각입니까.
우리는 몸을 '나'라고 붙잡고, 느낌을 '내 마음'이라 여기며, 생각과 의지,
의식까지도 모두 '나'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 어느 것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조건이 갖추어지면 나타나고, 조건이 흩어지면 사라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흘러가는 것 위에 '나'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 애씁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하니 두려움이 생기고,
괴로움도 깊어집니다.
괴로움은 세상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탈은 새로운 무엇을 얻는 일이 아닙니다.
붙잡던 것을 놓는 일입니다.
삶의 바탕에는 삼귀의와 오계가 있습니다.
삼귀의는 밖에서 의지할 대상을 찾는 일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와 청정함을 내 삶 속에서 길러 가겠다는 서원입니다.
그 서원을 지켜 주는 울타리가 오계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에서 멀어지는 삶입니다.
이는 규범이 아니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행동으로 이어져 괴로움을 키우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길입니다.
계를 지킨다는 것은 억지로 참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바르게 다스리는 일입니다.
지혜가 자라고 자비가 깊어지며 마음이 청정해질수록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의지처가 내 안에 세워집니다.
그런 사람은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비난에도 무너지지 않으며,
얻어도 교만하지 않고 잃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해탈은 먼 훗날 도착하는 목적지가 아닙니다.
본래 '나'라고 붙잡을 것이 없음을 분명히 보는 일입니다.
붙잡을 것이 없음을 알면 잃을 것도 없습니다.
잃을 것이 없으면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 자유를 열반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해탈은 죽은 뒤에 만나는 세계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갈애를 보고,
집착을 보고,
'나'라는 착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한 생각을 바르게 보는 것.
그 한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생사의 흐름도 바뀝니다.
지금 이 한 생각을 바르게 보는 것.
그러므로 해탈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마음을 바르게 보는 사람에게 이미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떠납니다.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죽음의 문을 함께 건너지 못합니다.
생명을 아끼던 자비는 남습니다.
청정하게 지킨 계율은 남습니다.
깨어 있었던 사띠는 남습니다.
이 공덕은 죽음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예경/발원:
이마-야- 담마-누담마빠띠빠띠야- 붓당 뿌-제미.
imāyā dhammānudhammapaṭipattiyā buddhaṃ pūjemi.
법답게 법(담마)을 닦아 부처님께 예경 드립니다.
이마-야- 담마-누담마빠띠빳띠야- 담망 뿌-제미
imāyā dhammānudhammapaṭipattiyā dhammaṃ pūjemi.
법답게 법(담마)을 닦아 담마에 예경 드립니다.
이마-야- 담마-누담마빠띠빳띠야- 상강 뿌-제미
imāyā dhammānudhammapaṭipattiyā saṃghaṃ pūjemi.
법답게 법(담마)을 닦아 상가에 예경 드립니다.
앗다- 이마-야 빠띠빳띠야- 자-띠자라-뱌-디마라남하- 빠리뭇찟사-미
addhā imāya paṭipattiyā jātijarābyādhimaraṇamhā parimuccissāmi.
이 도를 닦아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이당 메 뿐냥 아-사와카야- 와항 호뚜.
idaṃ me puññaṃ āsavakkhayā' vaham hotu.
나의 이 공덕으로 번뇌를 소멸할 수 있기를.
이당 메 뿐냥 닙바-낫사 빳짜요 호뚜.
idaṃ me puññaṃ nibbānassa paccayo hotu.
나의 이 공덕으로 닙바나를 성취할 수 있기를.
공덕 회향:
엣따-와따- 짜 암헤히 삼바땅 뿐냐삼빠당,
ettāvatā ca amhehi sambhataṃ puññasampadaṃ,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성취 공덕을
삽베 데와-, 삽베 부따-, 삽베 삿따-
sabbe devā, sabbe bhutā, sabbe sattā
모든 신, 모든 생명, 모든 존재들에게도
아누모단뚜 삽바삼빳띠 싯디야-.
anumodantu sabbasampatti siddhiyā.
함께 나누고 모두가 성취하기를.
우리는 이번 달에도
보시의 공덕
계율의 공덕
수행의 공덕이라는 무너지지 않는
선업의 재산을 쌓았습니다.
우리들이 행한 보시의 공덕과 계율의 공덕과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
재난의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일들이 만나지지 않기를!
우리들이 행한 보시의 공덕과 계율의 공덕과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
질병의 고통과 성냄의 원인들을 생겨나지 않기를!
우리들이 행한 보시의 공덕과 지계의 공덕과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
번뇌가 소멸되고 하루속히 열반에 이를 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지기를!
서원합니다!
서원합니다!
서원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행한 보시의 공덕을 나의 가족, 나의 친척, 나의 스승과 친구와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떠나가신 조상 님들에게 회향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행한 보시의 공덕을
눈에 보이는 존재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도 회향합니다
오늘 우리가 행한 선업의 공덕 몫을 모두 회향하오니
모든 위험들 사라지고 여러 장애 들에서 벗어나
오늘 우리가 행한 선업의 공덕 몫을 모두 회향하오니
보이는 존재 보이지 않는 존재
태어난 존재 태어날 존재들 모두는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sādhu! sādhu! sādhu!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