須彌精舍 京仁佛敎大學
昇 鶴 山 中 須 彌 園
白 衣 觀 音 臥 禪 尊
切 磋 琢 磨 不 放 逸
慧 眼 通 透 皆 虛 呑
승학산 수미정사에는
폭포 속 백의관음과 참선에 든 세존 계시고
절차탁마에 게으르지 않으니
모두 지혜를 얻고 진리의 바다에 드네.
인천 문학동 승학산 수미정사에는 경인불교대학이 개설되어 있다. 주지 종연 스님의 포교 원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산 중턱에 있는 사찰까지는 접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신남신녀들은 산에 오른다. 불교학을 전공하신 주지 스님은 문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시인이시라 오로지 정법만을 말씀하신다. 법당 뒤편에 와불과 백의관음을 모시는 불사를 하셨다. 백의관음보살님은 해수관음을 상징하여 인공폭포를 설치하였다. 와선불은 부처님의 늘 깨어 있는 수행을 관음보살은 꾸밈없는 자비를 듬뿍 느끼게 한다. 백의관음은 자비의 상징이면서도 아니 가시는 곳이 없다는 뜻의 팔정도륜대가 있다. 또 학인들의 수학의 편의를 위해 법당을 넓혀 나가고 있다. 스님의 의지에 감복하였음인지 학인들의 열기는 더해 간다. 방일하지 않는 정진에 혜안이 열리고 모든 이들에게는 진리의 바다 허가 삼켜지는 경험을 한다. 허는 무엇일까. 빔이다. 비워지므로 이룸이 된다.
이 시의 기구는 문학산 중턱에 자리한 수미정사를 표현하고 있고 승구는 수미정사에 있는 시설물을 통해 대중의 수행좌표를 보여 주고 있다. 관음보살 가영이 생각나지 않는가. 白衣觀音無說說이라고 하였다. 백의관음은 설함없이 설한다. 와선불 또한 다르지 않다. 청정무구의 백의 속에는 수식을 떠난 순수를 와선존은 언설을 떠난 진여의 세계에 들어가고 있는 대중의 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정혜 삼학을 닦는 경인불교대학 학인의 배움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는 전구는 선에서 교로 이해한다고도 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없으나 설명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별이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던가. 불학에 방일하지 않고 정진하는 대중들은 결구에서처럼 혜안이 열리고 진리를 삼키게 된다. 진리를 삼키게 된다 함은 진리에 든다는 것. 결구의 허탄은 운통상 도치되었다.
2006. 5. 4. 불탄일을 앞에 두고 牛辿 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