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염(紅焰) (1927) - 최서해 -
민근홍 국어교실
[줄거리]
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귀퉁이에 있는 가난한 촌락 '빼허(白河)'에 겨울이 찾아들며, 남부여대하고 찾아들어 사는 조선인들의 귀틀집 다섯 채가 흩어져 있다. 몹시 추운 날 아침 문서방이 집을 나서려 하자 한 관청이 찾아와서 그들은 되놈이기 때문에 일절 욕을 하지 말라고 하며, 문서방은 분개하면서 출발한다. 언덕길을 올라 강가에 이르자 중국 파리꾼들이 문서방을 보고 욕을 하지만, 문서방은 허둥지둥 빙판을 건너서 사위 인가가 사는 달리소라는 땅에 올라선다. 죽어가는 아내가 용례를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던 것을 생각한다.
문서방은 경기도에서 소작인 생활 10년에 겨죽만 먹다가 이곳에 와서도 흉년으로 소작료를 갚지 못해서 매까지 맞은 일을 생각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가을볕이 쨍쨍한 마당에서 깨를 떨던 아내는 인가가 오는 것을 보고 근심하며, 인가는 올해는 빚을 갚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인가가 억센 손으로 문서방을 때리자 아내는 인가의 팔에 매달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인가는 그녀가 오늘부터 자기 아내라고 데려가겠다고 끌고간다. 방안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용례가 달려가서 어머니의 팔을 잡은 인가의 손을 물어 뜯는다. 용례를 본 인가는 문서방의 아내 대신 용례를 붙들고 데려간다.
용례가 인가의 손에 들어가고 며칠 후 문서방은 땅날갈이나 받고 지금의 빼허로 이주하며, 이후 이가는 절대로 용례를 문서방 내외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문서방이 인가의 집대문에 들어서가 개무리가 덤벼들어 그를 에워싸며, 일꾼이 나타나 개들을 쫓아 버리고 그를 수수깡이 지저분하게 널린 방으로 안내를 한다. 인가는 웬일인지 서투른 대로 곧잘하던 조선말을 하지 않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말을 하면서 담뱃대를 문서방 앞에 내밀며, 문서방은 다시 딸아이를 보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게 된다. 인가는 끝내 백조짜리 석장을 주고 그냥 가라고 한다. 집에 돌아오니, 부뚜막에는 문서방의 아내가 누덕이불에 싸여 누웠고, 그 옆에는 이웃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지금 막 달리소의 인가네서 돌아온 문서방은 아내의 손을 잡는다. 아내는 용례를 부르다가 오장육부가 쏟아지게 소리를 지른 뒤, 검붉은 핏덩이를 왈칵 쏟으면서 쓰러지며, 한 관청이 귀신을 쫓는 경문을 서투르게 읽어 내려간다. 손발이 식어가고 낯빛이 파랗게 질려가던 아내는 무엇을 노려보면서 죽으며, 문서방의 울음소리는 고요한 방안의 불빛 속에 바람소리와 함께 처량하게 흐른다.
문서방의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에도 바람이 몹시 불며 우렁찬 바람에 휘날리는 눈발 속에 달리소 언덕으로 올라가는 그림자는 인가네집 울타리 뒤로 돌아간다. 개짖는 소리에 인가의 집에서는 마적이나 들어오는가 해서 헛총질을 하며, 그림자가 휙 돌아서서 고기를 던지자 개들은 서로 물어뜯고 빼앗기에 정신이 없다. 보리 짚더미에 불을 붙이자 불은 울타리를 타고 집으로 옮겨 붙으며 인가가 도망치는 것을 발견한 문서방은 인가를 도끼로 찍어 죽이며 딸을 부둥켜 안고 운다.
[인물의 성격]
문서방 → 경기도에서 소작인 생활을 하다가 남부여대하고 간도로 이주해온 조선인 소작농이다. 빚을 갚지 못해 지주인 인가에게 딸을 빼앗기며 죽기 전에 딸을 보고 싶어하는 아내를 위해 인가의 집에 갔다가 거절당하고 돌아온다. 아내가 죽자 그는 인가의 집에 찾아가 불을 지르고 인가를 살해한다.
인(殷)가 → 중국인 지주로 빚을 이유로 문서방의 아내를 탈취하려다가 대신 딸 용례를 자기집으로 끌고 가서 아내를 삼은 악덕 지주이다. 끝내 문서방에게 죽임을 당한다.
문서방의 아내 → 용례를 인가에게 빼앗긴 후 홧병이 들어 용례를 보고 싶어 하다가 죽는다.
[구성 단계]
발단 : 소작인 문서방이 서간도로 이주하여 인가의 소작인이 됨.
전개, 위기 : 소작료 체납으로 인가에게 딸 용례를 빼앗김. 이로 인하여 아내가 죽음
절정, 결말 : 문서방은 인가의 집에 방화를 하고 인가를 죽이게 됨.
[이해와 감상]
◈ 1927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간도를 배경으로 조선인 소작인과 중국인 지주 사이의 갈등을 그린 것으로, 신경향파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계급의식에 입각한 인물설정과 소작인의 지주에 대한 계급적 투쟁 그리고 방화와 살인에 의한 결말 처리 등은 프로문학적 창작방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빈곤→빚의 대가로 딸을 빼앗김→그로 인한 아내의 죽음→반항적 폭력으로서의 방화와 살인의 선택'이 그것이다. '방화와 살인'이라고 하는 대응방식은 극적이기는 하나,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바람직한 대안이 아닌 자포자기 상태에서의 충동적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신경향파 문학의 한계로 지적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제목인 '홍염'은 '붉은 불꽃'이라는 뜻으로, 기존의 질서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항거의 정신이 방화와 살인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되는 파괴적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문서방은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온갖 수탈과 멸시에 대해서도 인내해 왔다. 그런데 그 가난 때문에 딸까지 빼앗기는 처참한 상황에 이르게 되고, 그로 인해 아내까지 죽게 된다. 그 순간 문서방은 내면적인 각성을 하게 된다. 그것은 사회적 자아의 발견이며, 적극적 항거의 태도이다. 홧김에 불을 지는 낭만적 대응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분노와 누적된 울분이 폭발되어 '불꽃(홍염)'으로 상징화되었다.
◈ 신경향파 문학 → 1920년대 한국 문학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 신경향파 문학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시작된 계급주의 사상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문학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것이 신경향파 문학이다. 신경향파 문학의 특징은 첫째, 소재를 궁핍한 데서 찾은 것, 둘째, 지주 대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 노동자의 대립을 중심 플롯으로 한 것, 셋째, 살인과 방화로 끝나는 것 등이다. 작가 최서해는 스스로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발표하면서 각광을 받게 되며, 극심한 빈곤과 기아가 인간의 감정 및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소설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신경향파 소설
▶ 배경 : 시간적 → 1920년대 일제 식민지 치하
공간적 → 중국 서간도 빼허(白河), 조선인 이주민 마을
사상적 → 사회주의 사상과 계급사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속도감과 강한 인상을 주는 간결체의 문장
남성적이고 폭력적인 속성
▶ 주제 ⇒ 간도에서의 조선인 이주민들의 비참한 삶과 악덕 지주에 대한 그들의 저항
간도 이민 생활의 곤궁과 지주에 대한 울분과 징계
▶ 출전 : <조선문단>(1927)에 발표됨.
[생각해 볼 문제]
1. 서두의 배경 묘사는 어떤 효과를 주는지 말해 보자.
⇒ 서간도로 이주한 농민들의 참상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줌.
2. 제목 '홍염'으로 의미하려는 바를 말해 보자.
⇒ 잘못된 사회 질서와 모순에 찬 현실에 대한 부정과 항거의 정신을 고취함과 동시에 그런 항거의 정신이 실제의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한다는 주제를 '불꽃'의 이미지로 드러내려는 의도이다.
3. 이 소설의 결말과 <탈출기>의 결말 처리는 어떤 차이점을 지니는지 살펴 보자.
⇒ 이 작품의 해결책은 '살인과 방화'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폭력에 항거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탈출기>에서는 이런 개인적 차원의 대응이 아니라, 사회적 조직적 차원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