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9차 강원도 철원 복계산(2023. 7. 20)
오늘은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최북단 산이라는 철원의 복계산을 다녀왔습니다. 인터넷에 보니 매월당 김시섭이 이곳에 은거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는 군사분계선이 없었으니 지금처럼 먼 곳은 아니었을 겁니다. 복계산과 연결되어있는 대성산이 진정으로 최북단 산이지만 이곳은 군인들이 주둔한 곳이고, 동란 때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 출발지점인 수피령 등산로 입구에는 바로 이 대성산 전적비가 새워져 있더군요.
세월은 무심히 흘러 그 치열했던 전투를 지금 여기서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온 나라가 물난리로 야단이 났고 우리 청주에서도 지하차도에서 참혹한 일이 벌어졌지만, 오늘의 날씨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창하였습니다. 피로 얼룩지지 않은 산하가 이 지구의 어느 한 곳인들 있으랴만, 자연은 그런 것을 다 묻어버리고, 대지는 새싹을 내고, 산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강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가는 것이 자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이 그렇기에 우리가 과거를 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자연조차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표출한다면 그 위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복계산은 휴전선 근처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안내판도 비교적 잘 되어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의 일부 구간이 좀 험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무난한 코스였습니다. 다만, 김정기 부회장님이 수피령에서 복계산 정상까지는 ‘잠깐’이라는 말만 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부회장님의 말씀과는 달리 수피령에서 복계산 정상까지는 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습니다. 복계산 정상에서 보니 그렇게 멀지 않은 저편에 대성산이 보이더군요. 복계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계속 내리막길이었습니다. 만약 역방향으로 산행했다면 매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엄청 더운 알이었는데 산행을 하면서 그렇게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숲이 울창하고 가끔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역시 등산은 모든 날씨 조건을 등산객 편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겨울 산행은 추위를 몰아내고, 여름 산행은 더위를 몰아내는 마술을 부리는 것이 등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맛에 그 힘든 등산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래 골짜기에 내려오는 매월 폭포가 우리를 반가이 맞이하더군요. 많은 폭포를 보아왔지만, 이 더운 날씨에 폭포 바로 아래에서 맞이하는 폭포는 정말 좋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20여 미터가 채 안 되는 폭포이지만 시원하기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일부는 폭포수에 발을 담그고 일부는 등목을 하면서 시원함을 만끽했습니다.
자연과 우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지구의 이런 편안한 상태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아주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지금 만끽하는 이 자연이 너무 신비롭고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얼마나 오래 이 평화로운 자연이 지속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기나긴 우주의 역사 속에서 지금 여기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처럼 이 기적 같은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일 것입니다. 그 장구한 지구와 우주의 역사 속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멋진 산행을 마무리하고 내려오니 시원한 막걸리와 맛있는 도토리묵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오늘따라 더 시원하였습니다.
첫댓글 산행 다음날이 중복. 그다음다음날이 대서. 정말 염소뿔도 녹는다는 더위를 우리는 거뜬히 이김니다. 일지를 상세하게 써주시는 총장님께 늘 감사합니다 .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이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