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한 사람의 철학자가 있어 우주의 조화를 말해주지 않을 때 육지에는 13개 사단의 병사가 가는 곳마다 검을 휘두르고, 들에 한 사람의 시인이 있어 국민의 우수를 달래주지 않을 때 바다에는 26만톤의 함대가 바다 위 도처에서 파도를 일으킨다. 가정의 유린은 극에 달해 부자가 서로 미워하고, 형제가 서로 비난하며 고부가 서로 비웃는 이때, 밖으로 향해서는 동양의 벚꽃 나라, 세계의 군자국이라고 자랑한다. 우리의 ‘제국주의’라는 것은 실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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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가 쓴 <제국주의>(1901)라는 책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가 쓴 서문이다. 고토쿠 슈스이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로서 천황 암살 계획을 꾸몄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인물이다.
우치무라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신랄한 야유와 비판을 퍼붓는다. 철학자와 시인의 정신적 감화 없는 군사력은 어린아이 손에 칼을 쥐어준 격이며, 대내적으로 콩가루 집안인 주제에 밖에서 대일본제국이라고 폼잡아봤자 말짱 허당이라는 것이다.
고토쿠 슈스이는 사형판결 받고 옥중에서 역사적 존재로서의 예수를 부정하는 <기독말살론>(1910)을 쓸 정도로 철저한 유물론자!
우치무라 간조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독교인으로 함석헌, 김교신의 스승이기도 하다! 골수 기독교인이 골수 사회주의자의 책에 서문을 써준 것이다. 반(反)제국주의의 대의(大義)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쪼잔한 한국 개신교와는 비교조차 불가하다. (우치무라의 제자인 김교신도 공산주의자 한림과 극진한 우정을 나누었으니, 사제 공히 스케일이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