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수필
수필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에서 수필을 읽는다.
수필가, 그는.
수필가의 자세는 노련한 배우의 숙련된 연기 같아야 한다.
배우가 고정된 스타일의 연기만을 오래 지속할 경우 생명이 짧다. 맡은 역할에 따라 변신하는 배우들이 있다.
로버트 드니로는 ‘분노의 주먹’에서 이십대에서 오십대까지의 권투 선수역을 맡아 수 십 킬로의 몸무게를 늘리고, ‘퐁네프의 연인들’의 데니 라방은 다리 위의 거지 역할을 위해 몇 달씩 목욕을 하지 않았다. 성격 배우들의 깊은 내면 연기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이 갖다 준 결과이다.
영화에서 환자의 역을 맡고 촬영이 끝나면 배역에 몰입한 배우는 얼마동안 심하게 앓는다. 이런 철저한 프로 정신에서 한편의 수필이 태어나야 한다. 수필을 쓸 때 고뇌와 함께 흘리는 땀과 피는 값지다.
수필가의 눈
영화를 촬영하듯 수필을 쓴다면, 수필가의 눈은 카메라 렌즈여야 한다.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찍는다. 인물과 배경은 고정적인 구도에 머물지 않고 카메라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고 창조된다. 피사체와는 클로즈업과 롱 숏으로 함께 호흡하며 움직임의 변화를 포착한다.
수필에서도 인간과 자연을 보는 마음을 카메라가 피사체를 찍듯이 다양하고 깊이 있게 표현해야 한다. 인간에 밀착하여 본성 그대로를 그려내기도 하며,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의 눈도 가져야 한다. 자연을 볼 때는 숲도 보지만, 작은 꽃 한 송이에서 꽃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서 그 미세한 움직임에도 눈길을 주어야 한다.
이런 눈을 가진 마음으로 쓴 잊혀지지 않는 몇 줄의 문장을 위해 맑게 닦여진 투명한 렌즈를 준비한다.
수필의 색.
수필에 색깔을 칠한다.
과거를 추억하는 꿈같은 서정의 파스텔 색만이 아닌 다양한 색을 입힌다. 흑백 화면의 모노톤이 깊이는 있지만, 컬러가 쓰이고 영화가 더 발전했듯이 온갖 색깔의 다양한 수필이 나와야 한다. 어릴 적 12가지 크레용만 쓰다가 36가지 크레파스를 선물 받고는 그날 밤, 잠을 못 이루었다. 그 후 수채화를 쓰기 시작하고는 빨강 다음에 주황만 있는게 아니고, 빨강과 주황을 같은 농도로 섞으면 스카렛이란 색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무한한 색의 수만큼 인간과 자연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천의 이야기를 수필에 옮긴다.
수필의 어둠과 밝음.
수필은, 삶이 어둠과 밝음의 시소놀이 같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영화는 조명의 예술이기도 하다. 조명에 따라 화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빛의 강도에 따라 하이 키와 로우 키로 구분하여, 빛과 그림자의 비율로 조명을 조정한다. 수필에서도 인생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모두 표현되어야 한다. 삶의 아름다운 면만 보이면 빛이 너무 밝아 화면에 어떤 것도 찾을 수 없고, 어두운 면만 쓰면 암전된 화면 같아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빛과 그림자의 조화로 삶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수필의 목소리.
수필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그 수필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영화에서의 음악은 영상만큼 중요하다. 배우와 감독은 잊어도 주제 음악은 몇 십년이 흘러도 기억나는 영화가 많다. <닥터지바고>에서 ‘라라의 테마음악’은 러시아의 설원이 생각나게 하고, ‘calling you'가 들리면 <바그다드 카페>의 서툰 마술이 보고 싶어진다. <서편제>에서 김수철의 음악은 한국의 산과 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들려준다.
좋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눌 때 음악과 함께 하는 얘기는 지루하지 않듯이 수필에서도 멜로디가 흘러야 한다. 악기전체가 어우러지는 교향악의 하모니거나, 귀족의 품위가 느껴지는 실내악도 좋고, 가끔은 인간의 살 냄새 풍기는 유행가라도 좋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작품의 주제가가 있으면 좋겠다.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하듯, 작가의 개성과 고유한 목소리가 수필에 스며 있어야 한다.
수필의 나이.
수필에서는 신선한 과일 향이 풍겨야 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10분이 지나면 영화의 흐름과 전개 결말까지도 다 알 것 같은 영화도 있고, 개봉관에서 상영도 못하고 버려지는 것들도 많다. 감독은 두 시간 동안 어둠 속에서 관객을 몰입시켜야 하고, 새롭고 재미있으며 미래 지향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일본의 삼십대 감독 이와이 슈운지를 좋아한다.
그는 ‘러브레터’에서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사랑과 아픔을 풋사과의 맛처럼 신선하게 표현했다. 강요하며 힘주어 말하려하지 않고, 억지로 꾸미지 않은 영화는 신세대의 미소를 닮았다.
수필도 새로운 주제와 형식의 추구로 젊어져야 한다.
중년이 되어 지난 시간만을 회상하거나 교훈을 외치는 식상한 글이 아닌, 이십대와 함께 읽고 대화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영화에서 상업성과 예술성이 충돌하 듯 수필에서도 메시지와 재미가 갈등한다.
연필을 놓으며.
퇴고하지 않은 수필은 편집하지 않은 영화와 같다. 촬영을 끝낸 영화는 편집 작업에 들어간다. 부적절한 장면, 불필요한 앵글을 없애고 필요한 장면들을 남긴다. 편집기사는 배열과 리듬, 영상과 소리와의 관계를 중시하며 필름을 잘라내고 삽입한다. 이 편집 과정에서 군살이 없는 인체, 잘 전지된 나무처럼 한 편의 명화가 탄생한다.
수필에서 퇴고의 과정이 글을 쓸 때보다 더 힘들 때가 있다. 처음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던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때때로 엉뚱한 문장이 들어가 있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다른 사람이 읽을 때는 환히 드러나 보인다. 나의 결점은 모르고 타인의 결점은 한눈에 보이는 교만한 모습이, 수필에 쓸수록 느껴져 퇴고를 하며 겸손을 배운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 같은 수필 - 타인의 가슴에 남아 있을 한 편의 이야기는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