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圭峰의 科段解釋]ㅡㅡ
無比스님 번역
金剛經五家解
ㅡㅡ[규봉의 과단해석]ㅡㅡ
장차 이 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본文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義門을 펴서
간략히 四段을 열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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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敎의 인연을 말하고,
㉮二. 經의 宗體를 밝힘이요
㉮三. 모인 장소를 分別하고,
㉮四. 글뜻을 해석하여 通하게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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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에 둘이 있으니,
㉯一. 첫째는
■모든 가르침을 논함이니
인연에 답하고,
請함에 답해서 이치를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
만약
부처님의 본뜻에 의거한다면
오직 一大事因緣으로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주게 함이요,
㉯二. 둘째는
■이 경을 달리 나타냄이라.
그 중에 5가지가 있으니
●㉰一.
我執과 法執(二執)을 없애기 위함이니,
이 두 가지
집착으로 말미암아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일으키니
♧번뇌장은
마음을 장애하기 때문에
마음이 해탈하지 못해서
업을 짓고 생을 받으니
五道[六道中]에 윤회함이다.
♧所知障은
지혜를 장애하기 때문에
지혜가 해탈하지 못하여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고
諸法의
性相[본질과 현상]을 통달하지 못하니
비록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또한 二乘에 머물면서
성불하지 못하므로 障이라 名하였다.
만약
二執[두 가지 집착]을 없애면
두 가지 장애가 저절로 끊어짐이니
二執을 없애기 위하여
이 경을 설함이라.
●㉰二.
종자(種子)와 현행(現行)의
두 가지 의심을 차단하기 위함이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종자의 번뇌를 막고
현재 일어난
現行의 의심을 끊는 것을 말함이니,
경 가운데
물은 것은 답하시고
문득 자취를 밟아서
구절구절 이심을 끊어줌이니
경을 마칠 때까지
이십칠의단(二十七疑斷)이다.
●㉰三.
무겁고 가벼운
두 가지 業을 굴려서
滅하게(轉滅)함이니
무거운 業은 굴려 가볍게 받고,
가벼운 것은
멸하여 받지 않게 하였다.
●㉰四.
福과 智慧의
두 가지 인(因)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니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어
반야경을 설하기 전에는
중생이 妙慧[묘한 지혜]가 없으므로
보시를 해도
相에 주하여
다 有漏를 이루고
혹은
二乘에 머무는 까닭에
반야를 설하여
묘혜를 나타내보임으로써
법신의 인을 삼고
五度[五바라밀]로
應身[化身]의 인을 삼으니
만약
반야가 없다면
곧 보시 등의 5가지가
바라밀이 되지 못함이라.
부처님의
종자(씨)라고 말하지 못하므로
복과 혜 두 가지 장엄을 갖춰야
바아흐로
양족존(兩足尊)을 이루는 것이다.
●㉰五.
眞身과 應身의 二果를 밝히기 위함이니
반야를 들기 전에는
다만
부처님 모습(色相)
그대로가 부처님이라고 하고
응신, 화신이
오직 眞의 그림자임을 알지 못해서
여실히
진신과 응신을 보지 못하므로
이 二果를 밝혀서
앞의 二因[복과 혜]을 증득하여 알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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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經의 종체(宗體)를 밝히는 것 중에서
둘이 있으니,
㉯一. 첫째
■宗이란 것은
모든 佛敎를 通論하면
因緣法이 종(宗)이 되거니와
이 경을 달리 표현하면
實相般若와
觀照般若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으로써
그 宗을 삼는다.
진리의 모습
그대로(卽理之智)의 지혜로써
모든 相을 관조하는 것이니
이는 금강이 능히
일체를 끊는 것과 같고,
지혜에 즉한 이치(卽智之理)가
바로 실상이므로
금강이 아주 견고해서
다른 것이 깨뜨리기 어려움과 같으니
만행 가운데 낱낱이
이것[반야]을 昧하지 않게 하기 위한 고로
합하여 경의 종을 삼은 것이다.
㉯二. 둘째
■體란
문자반야가 곧 경의 體이니
문자는 곧
聲, 名, 句, 文을 포함하니
문자의 성품이 공함을 반야라 한다.
별다른 문자의 체가 없으므로
그것을 다 포함해서
이치가 다하지 않음이 없어서
통틀어
가르침의 체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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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처회(處會)를 분별한 것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부처님이 說하신
大部(般若 六百部)의 處와
會를 모두 밝힌 가운데 둘이니
㉯一. 첫째,
■六百卷의 글은
네 곳과
十六會에 說하시니
㉱一.
♧왕사성
취봉산(王舍城 鷲峯山)에서 七회와
山中에서 四회며
山頂에서 三회이고
㉱二.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 七회요
㉱三.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의
마니보장전(摩尼寶藏殿)에서 一회요
㉱四.
♧왕사성죽림원(王舍城 竹林園)
백로 연못가에서 一회다.
다음에 이 경[金剛經]은
第二處 第九會이니
第五七七卷에 해당된다.
㉯二. 이 經은
■번역한 때와 사람을 밝힘이니
前後의 여섯 분이 있다.
㉰一.
●後秦의 구마라즙(鳩摩羅什)이요
㉰二.
●後魏의 菩提流支는
천친론 三권과 같이 번역했고
㉰三.
●陳朝의 眞諦는
금강선론(金剛仙論)과
本記四卷을 같이 번역했고
㉰四.
●隋朝의 笈多는
무착론(無着論) 二卷을 같이 번역했고
㉰五.
●唐初의 玄奘과 日照三藏은
功德施論 二권을 번역하고
㉰六.
●大周의 義淨은
天親論 三卷을 아울러 다시 번역하니
위의 여섯 분은
(經 · 律 · 論에 달통한 자)이시다.
지금 전하는 것은
구마라즙이 弘始四年에
장안 초당사에서 번역한 것이다
천축의 무착(無着)보살이 있어
日光定(일광삼매)에 들어가시어
兜率天에 오르사
미륵보살을 친견하여
八十行의 게송을 받으셨다.
또 이 偈를 天親에게 전수하였고
天親은 長行의 해석을 지어서
三卷論을 이루어
의심[二十七斷]과
집착 끊음을 가지고 해석하셨다.
무착은 또 따로
양권의 논을 지어서
간략히 행위(十八住)를 나타내어 해석하셨다.
지금의 경을 科目한 것은
오직 天親의
해석한 뜻을 가지고 과목한 것이니,
즉 無着을 겸한 것이며
또한 다른 논문에서도 구했고
다른 疏도 채집함이니
제목에
纂要[요점만 모았다]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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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글 뜻을 해석한 가운데
둘이 있으니
㉯一.
■첫째 경의 제목을 해석함이다.
金剛이란
梵語로 발사라(跋折羅)이니
力士가 갖고 있는 金剛杵(방망이)가
곧 이 보배인 것이다.
쇠 중에서 가장 강해서
金剛이라 부르니
제석천이 그것을 지니고 있으며
박복한 사람은 보기 어렵다고 한다.
지극히 견고하고 날카로워서
般若에 비유하니
어떤 物件으로도
能히 이를 부수지 못하지만
또한 다른 것을
능히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涅槃經에서 비유하건대
금강을 능히 깨뜨릴 것이 없으며
금강은 능히
일체 모든 物件을
깨뜨릴 수 있음과 같다고 한다.
無着이 이르되
金剛 금강은 파괴하기 어렵다 하고
또 能히 다른 것을 끊는다고 한다.
또한 金剛이란
섬세하고 견고하다고 하니
섬세하다함은 지혜의 씨앗이요
견고하다함은 파괴할 수 없다고 하시니
이는
견고로써 般若의 體에 비유하고
예리한 것으로써
般若의 작용(用)에 비유한 것이다.
또 眞諦記에
六種의 金剛을 說하시니
㉰一.
●靑色은 能히 재액을 소멸하니
般若가 업장을 녹이는데 비유하고
㉰二.
●黃色은 사람의 구하는 바를 따름이니
無漏功德[새지 않는 공덕]에 비유하고
㉰三.
●赤色은 해가 불을 내니
慧가 本覺에서 無生의 智火를 냄이요
㉰四.
●白色은 흐린 물을 맑히니
般若가 의심의 흐린 물을 맑힐 수 있음이요
㉰五.
●空色은 사람으로 하여금
空에서 行하고 坐하게 하니
智慧가 法執을 파하여
眞空의 이치를 머물게 함이요
㉰六.
●碧色은 모든 毒을 能히 녹일 수 있으니
智慧가 三毒을 녹임이라.
곁으로 겸한 것은 가하거니와
굳고 날카로움의 본래 비유는 아니다.
般若란
바로 번역하면 慧이니,
곧 오온(五蘊)이 공함을 비추어
본각의 혜에 상응함이 이것이다.
만일
學者의 얕은 데서부터
깊은 데까지 묶어서 말하자면
곧 聞, 思, 修
三慧를 섭수하면 모두 반야가 됨이다.
그러므로 무착이 이르되
능단이란
반야바라밀 중의 聞, 思, 修요
所斷은
金剛의 끊을 곳을 끊음과 같다고 한다.
또 經은 智慧의 씨앗인 故로
智의 因은 곧 慧이다.
智度論에 의하면
因位를 般若라 명하고
果位를 智라고 했은즉
聞, 思, 修를 다 섬세하다 하니,
섬세하고 妙한 慧가
부처님의 智慧의 因이다.
般若는 능단(能斷)이어서
因位에 있고
佛果는 無斷이므로
굴려서 智라고 이름한다.
만일 大品經에 의하면
若字는
智와 慧 두 가지 뜻에 통함이니
智와 慧가
이름과 뜻은 조금 다르나
體性은 다름이 없다.
波羅蜜이란 彼岸到이고
응당
到彼岸이라 이르니
生死의 이 언덕을 떠나서
煩惱의 흐름을 건너
涅槃의 저 언덕에 다달음을 말한다.
열반이란
圓寂이며 또한 멸도니
일체중생이 곧
寂滅相이라서
다시 더 멸할 것이 없지만
다만 미혹과 전도(顚倒) 때문에
망령되이 생사를 보므로
이 언덕에 있다고 하거니와
만일 生死가 본래 空하여
원래 圓寂[열반]함을 깨달으면
저 언덕에 이르렀다 한다.
만약 반야를 달리 말하면
응당 도피안혜[到彼岸慧
(저 언덕에 이르는 智慧)]라 이른다.
經이란 梵音으로 修多羅인데
뜻으로 번역하면
계경(契經)이다.
계는
뜻과 이치를 말로써 표현하여
사람의 마음에 계합하니
곧 이치에도 계합하고
근기에도 계합하여
契라 이름하였다.
經이란
佛地論에 이르되
能히 꿰기도 하고 섭수하기도 해서
經이라 했으니,
부처님의 성스런 가르침으로써
응당히 說하신 뜻을 꿰어서
교화할 衆生을 포섭해 가는 까닭이다.
이 疏는 본래
이 經을 평론하는 자를 위하여
그 科段을 가리킴이니
비록 차례로 경을 科目했으나
차례로 글을 해석하지 않고
다만 어려운 곳만 간략히
節目만 들었을 뿐이고
뜻을 갖추어서 서술하지는 못하였다.
(금강경의) 뜻은
傳하고 보이는(示) 이의
口訣에 다 있는 것이요
疏中에 있지 않으니
다만 疏를
해석하는 것으로 강의하지 말라.
강의하는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깊고 오묘한 뜻으로
經文을 해석할지니
어려운 곳은
疏를 가지고 할 것이요
쉬운 곳은 바로 說할지니라.
첫댓글 모든 가르침을 논함이니
인연에 답하고,
請함에 답해서 이치를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
만약
부처님의 본뜻에 의거한다면
오직 一大事因緣으로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주게 함이요,
我執과 法執(二執)을 없애기 위함이니,
이 두 가지
집착으로 말미암아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일으키니
♧번뇌장은
마음을 장애하기 때문에
마음이 해탈하지 못해서 업을 짓고 생을 받으니
五道[六道中]에 윤회함이다.
♧所知障은
지혜를 장애하기 때문에
지혜가 해탈하지 못하여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고
諸法의 性相[본질과 현상]을 통달하지 못하니
비록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또한 二乘에 머물면서
성불하지 못하므로 障이라 名하였다.
만약
二執[두 가지 집착]을 없애면
두 가지 장애가 저절로 끊어짐이니
二執을 없애기 위하여
이 경을 설함이라.
반야를 설하여
묘혜를 나타내보임으로써
법신의 인을 삼고
五度[五바라밀]로
應身[化身]의 인을 삼으니
만약
반야가 없다면
곧 보시 등의 5가지가
바라밀이 되지 못함이라.
부처님의
종자(씨)라고 말하지 못하므로
복과 혜 두 가지 장엄을 갖춰야
바아흐로
양족존(兩足尊)을 이루는 것이다.
金剛이란
梵語로 발사라(跋折羅)이니
力士가 갖고 있는 金剛杵(방망이)가
곧 이 보배인 것이다.
쇠 중에서 가장 강해서
金剛이라 부르니
제석천이 그것을 지니고 있으며
박복한 사람은 보기 어렵다고 한다.
지극히 견고하고 날카로워서
般若에 비유하니
어떤 物件으로도
能히 이를 부수지 못하지만
또한 다른 것을 능히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涅槃經에서 비유하건대
금강을 능히 깨뜨릴 것이 없으며
금강은 능히
일체 모든 物件을 깨뜨릴 수 있음과 같다고 한다.
無着이 이르되
金剛 금강은 파괴하기 어렵다 하고
또 能히 다른 것을 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