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과연 선진국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리가 멀다. 중진국은 된다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그냥 ‘어중간한 나라’다.
선진국이 되려면 먼저 ‘모두가 지키는 룰(Rule)’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수치화된 경제 성적이나 산업 규모가 아니라 ‘각 개인의 효율적인 삶’을 더 중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기 위해선 이런 것들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음모론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려는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다.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이후 무분별하게 확산된 음모론에 지배를 받고 있다. 시중에 떠도는 음모론의 내용은 제 각각이지만 핵심은 ‘누군가 룰을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음모론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꼼수’나 ‘천안함의 진실’, ‘화폐전쟁’이다.
사회가 음모론을 다룬 콘텐츠에 열광하면서 ‘사실(Fact)’과 ‘현실(Real World)’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으며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배후세력에 분노한다. 음모론이 사회를 휩쓸자 언론도 설 자리를 잃었다. 일부 언론은 음모론에 부화뇌동하며 ‘적들-음모론의 배후세력’을 찾아냈고 사람들은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열린사회의 적’으로 지목된 대상을 짓밟았다. 본인은 물론, 그 가족마저 짓밟았다. ‘적’으로 규정된 상대에게는 인권이나 인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적’에게 유리하다고 입맛대로 판단한 제도는 악법으로 치부했다.
그 결과 40년 동안 한강의 기적을 이끌던 룰은 쓰레기 취급을 받고 다수의 국민들이 절대적 평등과 명분만 찾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부도덕한 일을 ‘비도덕’이라 부르며 자기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한편 이 같은 사회의 변화를 보면서 웃음 짓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개인적인 욕구를 그럴싸한 학식과 수사(修辭)로 감쌌다. 대중의 분노로 생긴 부수적 피해는 ‘우리 사회의 책임’으로 돌렸다.
음모론 광풍 속에서 그들은 짭짤한 이익을 챙겼다. 사람들의 신망과 존경까지 덤으로 얻었다. 욕설과 폄하 등으로 적당히 포장한 천박함은 ‘서민적’이라는 이미지로 탈바꿈해 인기를 얻도록 만들었다.
이 같은 타락에서 왜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 못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음모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뭘까. 바로 ‘모든 잘못은 남의 탓’이라는 접근 태도다. 또한 ‘룰은 남에게만 적용하라’는 이기적 발상도 한 몫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터넷을 떠돌다 오프라인에도 영향을 끼쳤던 ‘천안함의 진실’을 돌이켜 보자. 루머에 불과했던 이 내용은 순식간에 진실이 확산되며 논란을 일으켰다. ‘나꼼수’도 ‘천안함의 진실’을 다뤘다.
천안함 폭파 사건의 내용은 이랬다. 2010년 3월 26일 밤 우리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한과 인접한 서북도서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물론 여러 가능성이 제기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북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음모론자들은 좌초설, 피로 파괴설, 미군 잠수함 공격설, 미군 잠수함 충돌설,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 등 검증되지 않은 ‘설’을 쏟아냈다. 군과 정부가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 억 원의 예산을 들여 북한의 소행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바다 속에서 찾아냈다. 다국적 조사단 또한 우리 군과 정부가 제시한 증거, 당시 상황, 현장 등을 돌아보고선 ‘북한의 공격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음모론자들은 이 모든 증거를 부정했다. 증거가 나오자 “왜곡된 증거”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참여연대 등은 UN에 서한을 보내 ‘진실을 밝혀달라’는 소동까지 벌였다. 결국 이 일로 음모론자는 물론, 우리나라까지 국제적 망신을 샀다.
세계 각국에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거나 과거에 그런 경험을 지닌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의 특징은 뭘까. 그 나라를 이끌어가는, 또는 앞으로 이끌어갈 사람들은 책임감이 투철하다. 음모론을 접한다 하더라도 사실 관계부터 확실하게 파악해서 행동의 방향을 판단한다.
문제가 생기면 누구 잘못인가를 따지기보다 먼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모든 행동과 판단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히 사회 공통의 룰이다.
반면 우리나라,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은 어떤가. 모든 문제가 남 때문이다. 자기에겐 잘못이 없단다. 이런 이들을 오피니언 리더라고 불러주니 다수의 국민들도 사회적 룰을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무시할 수밖에.
혹시 ‘선진국’의 어원을 찾아봤는가. 20세기까지의 선진국은 단순히 공업화된 나라를 의미했다. 21세기의 선진국은 경제는 물론 법질서와 도덕성, 문화적인 특성까지 아우른다. 그 중에서도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문제를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는 나라가 선진국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존하는 문제마저 덮으려 하거나 자기편에 속하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리더라는 사람일수록 겉포장하기에만 급급한 홍보에 집착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오피니언 리더로 꼽히는 대부분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에 초점을 맞추며 알맹이 없는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 자신의 미래에는 관심이 많지만 거시적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과제는 음모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뜬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먼저 사실 확인을 통한 이성적 판단이 중요하다. 그 다음은 문제가 있다고 확인됐을 때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공통의 룰을 지키고 적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뉴데일리 기자 전경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