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뭐꼬의 중편소설 - <열번 찍어도>
첫 번째 만남 - 1996년 9월 6일(금)
김교수의 일생에서 가장 파문이 컸던 연애 사건이 시작된 날은 금요일이었다. 오래 전부터 5일 근무를 하는 미국에서는 금요일은 일주일의 끝날로서 금요일 오후에는 TGIF라는 파티가 있다. 그것은 원어로는 “Thank God! It's Friday!”라는 감탄어의 머리글자를 모은 약자로서 우리말로 풀이하면 “휴, 살았다. 오늘이 기다리던 금요일이구나!”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즉 5일 동안 힘들게 일하고 금요일을 끝내면서 조촐하게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먹으면서 파티를 하는 풍습이 TGIF이다. 미국에 있는 유명한 음식점이나 체인점은 요즘에 거의 대부분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어느 날 서울의 강남에서 어느 편의점의 간판이 TGIF인 것을 보고서 “별게 다 들어왔네!” 하면서 고소를 금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토요일에 격주로 휴무하는 연구소, 기업체 등이 늘어나서 금요일이 일주일의 끝날이 되는 직장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대학교를 제외하고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토요일에도 열심히 공부를 시키기 때문에 토요일 아침에 온가족이 등산을 떠난다든가 여행을 떠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도 토요일은 반나절만 근무하는 이른바 반공일(半空日)이기 때문에 전날인 금요일은 심리적으로 약간 느슨해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금요일에는 모임이 많고 술집같은 데도 보면 금요일에 손님이 제일 많단다.
그날 오후 4시경 김교수는 박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다른 약속이 없으면 자기가 오늘 저녁을 사겠다는 제의였다. 두 사람은 40대 중반으로서 나이도 비슷하고 또 같은 동네에 살며, 더욱이 몇 년 동안 카풀을 같이 하여 매우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학과는 다르지만 출신 대학도 같으며 나이는 박교수가 한 살 위이었다. 웬만하면 서로 말을 놓을 수도 있겠지만, 김교수는 교수끼리는 반드시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고집한다. 더욱이 학생들 앞에서는 아무리 후배 교수라도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교수 사회에서 한 10년 후배라면 으레 말을 놓는 교수들이 많지만 김교수가 그렇지 않은 것은, 무어랄까, 김교수의 개성이었다.
두사람은 퇴근하면서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가끔 가던 보신탕 집에 들러서 소주를 곁들여 몸보신을 하였다. 더러는 보신탕을 ‘혐오식품’이라고 호칭하며 보신탕을 먹는 사람은 ‘야만인’ 운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김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보신탕이야말로 신토불이 전통음식으로서, 미국의 농산물 수입개방 압력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매우 훌륭한 전략 식품이라는 것이다. 차마 보신탕 시장에 미국이 뛰어 들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소주를 마시면서 보신탕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김교수는 보신탕을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보신탕 예찬론자라고 할 정도이다. 보신탕 고기는 단백질의 성분이 사람의 단백질과 가장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흡수가 빠르다는 영양학적인 분석이 보고되었다고 한다. 영양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보신탕의 고단백질이 흡수가 빠르고 콜레스테롤이 적고 등등 전문용어를 동원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런가보다 라고 막연히 이해할 뿐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김교수의 경험에 의하면 점심에 보신탕을 먹은 날에는 저녁에 퇴근하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한다. 또 보신탕 먹은 날 밤에는 40대 중반을 넘으면서 시들해가는 남성이 어김없이 기능을 발휘하여 아내도 즐겁고 더불어 본인도 즐겁다니, 그 한 가지만으로도 보신탕은 매우 좋은 식품임에는 틀림없다.
김교수는 이렇게 국가적으로도 유용하고 가정적으로는 원만한 부부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식품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 이미 그 효과를 체득한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교수는 주변에서 보신탕 못 먹는 사람을 설득하여 10명 이상의 새로운 보신탕주의자를 만든 것을 자랑하곤 한다. 길가에 보면 더러는 사철탕 또는 영양탕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설명을 하면 사철탕이나 영양탕은 보신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88올림픽 때인가, 외국인이 올림픽 구경하러 우루루 몰려오는데 그들이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면 국가적인 수치라고 하여 길거리의 보신탕집을 단속한 적이 있다. 그때에 대부분의 음식점에서는 이름을 사철탕으로 바꾸어 단속을 슬쩍 피해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나간 짓이었다. 우리가 유사 이래로 먹어온 음식이 뭐가 부끄럽다고 단속까지 한단 말인가? 지극히 사대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첫댓글 이 중편 소설은 15년 전에 써두었으나 다움에 있는 개인 블로그에 저장해 두기만 했지 공개는 하지 않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97년 IMF 이전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기 시작하였고, 술집도 한창 번창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교수는 매우 좋은 직업이던 시절이었습니다. 2014년 현재와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매우 다른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한 마디로 살기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연재는 약 4달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김교수가 누구냐고 묻지는 마시기를 . . .
소설이란 반쯤의 사실과 반쯤의 허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공연분야에서 작품을 처음 선보이는 것을 초연이라고 하던데.....
문학작품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을 무어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곳 교협 카폐에서 첫공개를 하신다니 고맙습니다.
앞으로 즐겁게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