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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천(四川) 백제의 고마성(固麻城)과 ‘오방성(五方城)-외곽 위성도시 ’
가. “웅진(熊津)이 백제의 수도였다.”는 오해
놀라운 것은 “웅진(熊津)이란 외곽-위성도시가 ‘고마성’이든 ‘거발성’이든지 간에 똑같이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외곽도시 “웅진(熊津)- 소위 ‘곰-나루’가 도대체 위성도시로써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따져보는 일입니다.
(2) 웅진(熊津)의 역할은 ‘모국어(母國語)를 유지하면서 국제교류(國際交流)하는 곳’이었다.
웅진(熊津)은 좌계가 볼때에는 이 ‘곰-나루’는 좌계가 이미 ‘(*) 동방천서(東方天書), 바이칼, 빙하기, 곰(熊, gomme)의 깊은 상관성’에서 밝혔듯이 ‘헬륨 가스(gas) 열기구’를 띠우면서 , 이런 열기구 밑에 ‘모국어(母國語)를 결승(結繩)으로써 시각화시켜 서로 빨리 익히기 쉽도록 서로 대화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결승(結繩)을 다루다가 혹시 잘못해서 떨어지더라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반드시 밑에 하천(河川)이 있는 그런 훈민(訓民)들이 모이는 곳인 것이지요.
이처럼 ‘모국어(母國語)를 쌍방향적으로 결승(結繩)으로써 시각화시키면서 다양한 언어를 쓰는 민족들이 ’물(강江)‘이란 안전지대 위에서 국제교류를 하는 것이 웅진(熊津)의 성격이기 때문에, 이러한 웅진(熊津)은 백제 수도 - 그것이 거발성(居拔城), 고마성(固麻城) 뿐만 아니라, 하남 위례성(尉禮城) - 나아가 대왜(大倭), 혹은 대한(大漢)인이 살던 한반도에도 필요한 것이지요. 한반도에도 웅진(熊津)이 있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봅니다.
즉 중국대륙 밖에서도 수없이 있을수 있는 겻이지요..
물론 백제의 수도(首都) - 그것이 고마성(固麻城)이든, 거발성(居拔城), 그리고 하남(河南) 위례성에는 ‘북방(北方)-외곽도시’로써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외곽도시 였음이 분명한 것이지요.
하남 위례성에 사성(蛇城)이란 것도 - 이런 결승(結繩)을 황하 주변에 거대한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결승(結繩)을 하는 마차(馬車)들이 몰려드는 통행로’로 보입니다.
따라서 현 한반도 공주(公州)가 웅진(熊津)인 것은 사실이겠지만, “역기가 백제의 수도(首都)였다.”는 것은 사료적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나. 사천(四川) 백제의 수도명칭이 고마성(固麻城)!
흔히들 웅진(熊津)이 ‘곰-나루’고 이는 ‘고마성’의 ‘고마’와 같기 때문에, 한반도 웅진이 ‘고마성’이라고 말합니다.
1) ‘고마(固麻)’의 기본적인 뜻은 ‘고맙다’이다.
그러나 ‘고마(固麻)’에는 ‘고맙다’는 기본적인 뜻이 있다.
그런데 이 고마성(固麻城)과 관련해서 우리가 유의해야할 것은 바로 ‘고마 웁다’ 혹은 ‘고마 와 같다.’는 표현입니다. 모두 곰여신 웅녀(熊女)에서 파생된 개념이긴 하지만, 그 뜻은 어쨌던 감사함과 고마움을 뜻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그런데 현 사천성 중경(重慶)의 이름 자체가 전래(傳來)되는 ‘쌍중희경(雙重喜慶)의 도시(都市)’라는 개념 -즉 ‘반가움과 경사(慶事)스럼이 겹치는 도시’를 축약해서 명명된 지명임을 유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백제의 수도가 이왕성(二王城)임을 기억하면, ‘겹친다’는 뜻으로 쌍중희경(雙重喜慶)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미 보아왔듯이 사천(四川)에는 백제의 수도가 있으면 반드시 있어야하는 몽산(蒙山)이 있고, 백제왕실에서 전매품으로 재배하는 몽정차(蒙頂茶), 또 아미산의 명차 - 설아차(雪芽茶)가 있고, 이는 백제가 멸망한 직후의 사람인 육우(陸羽)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 백제 수도 고마성(固麻城)은 현 사천성(四川省)일 수밖에 없는 이유
1) ‘其國東極<新羅>’의 함의
‘북사(北史)’에 들어난 백제 수도 고마성(固麻城)은 현 사천성에서 찾아야합니다.
왜 그런가?
북사 자체에 “백제는 동쪽에 신라라는 극점(極點)을 지니고 있다.(其國東極<新羅>)”라고 되어 있고, 본래 마한(馬韓)을 승계한 것이 백제이고, 양자강의 길목인 ‘영흥도’를 ‘길목의 왕(王)’이란 뜻의 ‘목지국(目支國)’을 마한에서 관장하고 있다면, 자연히 마한(馬韓)사람들 및 백제인들은 양자강의 뭇 지류(支流) 위에서 퍼지듯이(spray) 포진(布陣)해 있음이 들어 나고 있을 수밖에 없고, 양자강의 원류(原流)가 흐르는 사천성(四川省)에 백제의 수도가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2) ‘國西南, 人島居者十五所, 皆有城邑.’의 함의와 ‘연결할수 있는 지역’
또하나 고마성(固麻城)을 현 ‘사천성(四川省)’에서 찾아야할 이유는 이 ‘북사(北史)’에서 백제 8족 대성(大姓)을 말한 직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라의 서남(西南) 쪽으로 ‘사람이 사는 섬이 15개가 있는데, 모두 성읍(城邑)이 있었다.(國西南, 人島居者十五所, 皆有城邑)”는 표현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섬들 - 대만(臺灣), 해남도(海南島), 필리핀 군도 등등이 ‘백제 영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현 중국대륙의 해남도(海南島) 근처의 광동성은 자연히 백제 땅이 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백제 해군의 중요 주력부대’가 해남도 주변 광동성에 있었기 때문에, 이와 연결할 수 있는 사천성(四川省)이 고마성(固麻城)이 지정학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지요.
9. 사천성(四川省) 고마성(固麻城)에 대한 백제 수도의 오방(五方) - 외곽도시의 적용.
가. 입지조건
사천성(四川省)은 그 이름 자체가 강(江)이 네 개 모인 것 즉 - 금사강(金沙江), 민강(岷江 - 아래로부터 합류하는 대도하(大渡河) 포함, 퉈강(=순강(蕣江)), 또 자링강(=가릉강(嘉陵江))을 합쳐서 장강(長江) 즉 오늘날 양자강이 동쪽으로 흐르게 하는 지역입니다.
나. 일수도(一首都) 이왕성(二王城)의 조건에 합당
그런데 이미 보아왔듯이 일수도(一首都) 이왕성(二王城)의 원칙에서 보면, 현 중경(重慶)이 바로 ‘고마성(固麻城)’이고, 또한 현 아안현(雅安縣)의 몽산(蒙山)이 있는 대두왕성(大豆王城)이 바로 2개의 왕성이 되어 약간 동북쪽으로 수도가 놓이게 되는 형상을 띠게 됩니다.
양자강을 다 아룰르면서, 저 운남성, 광동성의 입구쪽으로 닥아설려면 자연히 백제 수도의 특징 남북이 900여리가 될 수밖에 없고, 또 동서는 450리로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충분한 것은 “이 서촉(西蜀)지방에 유비가 일으킨 촉한(蜀漢)에 전세(傳貰)내 주고도 백제 수도로써 운영할 충분한 넓이”라는 것이지요.
다. 사천(四川) 백제에의 오방(五方)-외곽도시 적용
1) 삼협(三峽) - 동방(東方)의 득안성(得安城)과 중방(中方)의 고사성(古沙城)
흔히들 중국에서 서촉(西蜀)으로 들어가는 장강(長江)의 입구가 삼협(三峽)인데, 험준하기 짝이 없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중류(中流)가 흐르는 중방(中方)인 고사성(古沙城)을 외곽도시로 둘수 있는 장소인 것이지요.
또한 사천(四川)으로 모인 강물이 동(東)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 삼협(三峽)에 동방(東方)에 있는 득안성(得安城)을 설치할 수가 있는 지형입니다.
득안성(得安城)을 삼협에 설치하고, 중방인 고사성(古沙城)을 똑같이 기호지세(騎虎之勢)로 자리잡게 하면, 사천(四川) 백제 자체에 ‘안정화를 얻게 하는’ 득안(得安)케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 이빈(=의빈(宜賓))은 ‘국제적인 축제’를 하기 좋은 구지하성(久知下城)
금사강(金沙江)은 브이(V) 자 모양으로 동남(東南)으로 흐르다가 꺽여서 중경(重慶)을 향하여 서북(西北)쪽으로 흐릅니다.
따라서 중경(重慶)에서 보면, 이 강(江)의 흐름은 결국 남서(南西) 쪽에 있는데, 외곽도시인 남(南)쪽으로 봐도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금사강(金沙江)이 민강(岷江)가 만나는 지점에 바로 이빈시(=의빈(宜賓))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흔히들 ‘여기부터 양자강(=장강(長江))의 머리(=두(頭))로 여기는데, 중요한 것은 이 시의 명칭입니다. 의빈(宜賓) - 이는 ’마땅히 맞이하여야 할 손님‘이란 뜻이지요.
고마성 남방(南方)의 위성도시 명칭이 구지하(久知下) 즉 저 남해도 주변의 광동지방에서 오는 다양한 외래 종족들을 손님으로 맞이하여 ‘굿’ - 다시말하여 ‘국제적인 축제’를 벌리기 좋은 도시이지요.
3) 조어성(釣魚城) - ‘곰-나루(웅진(熊津))’을 설치하기 좋은 북쪽지역
가릉강(嘉陵江)은 중경(重慶)에서 북북서(北北西) 방향으로 흘러들어오는 강이어서, 고마성 북방(北方) 외곽도시가 들어설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강입니다.
또 이 강의 이름이 주역(周易)의 ‘형통(亨通)하게 하는 것은 기꺼히 만남이다.(亨者 嘉之會也)’의 뜻과 연결되어 있어서, 여러 민족이 ‘모국어(母國語)를 쌍방향으로 결승 형태로 하기 좋은 즉 ’기꺼운 만남‘을 이룰수 있는 강(江)이란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경에서 약 70키로 떨어져 있는 곳에, 가릉강(嘉陵江)과 배강(涪江),거강(渠江)이 만나는 물돌이 되는 지역이 있는데, 길고 긴 천연적인 절벽이 있고, 이 위에 세워진 조어성(釣魚城)이란 유명한 요새(要塞)가 있습니다.
‘도자기 로드’를 통해 유럽의 모든 부(富)를 획득한 송(宋)과 원(元)나라가 격전(激戰)을 치룬 아주 유명한 장소이지요.
바로 여기서 백제가 ‘곰-나루’ 즉 ‘모국어를 쌍방향적으로 결승(結繩)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배우는 장소’였던 것이지요.
이 조어성은 세 강의 합류지점이기 때문에, 남, 북, 서의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고, 지세가 아주 험준하다. 여기는 산수가 험준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수로와 육로교통이 연결되어 사천성의 각지로 연결되는 교통요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러 민족이 모여들기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도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백제의 수도의 거리인 ‘남북 900여리로 잡아보면, 대두왕성(大豆王城)인 아안현(雅安縣)과 고마성(固麻城)인 ’중경‘의 중심을 잡더라도, 이는 백제 수도 ’안‘에 들어오는 영역이지 결코, 외곽도시라고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지요. 이는 백제 수도에 모두 외곽도시에 웅진(熊津)을 두었지만, 백제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웅진(熊津)임이 들어납니다.
따라서 백제 사람들은 웅진(熊津) 하면, 일단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조어성(釣魚城) - 웅진이었고, 삼국사기는 “고마성(固麻城)으로 천도한 것을 웅진(熊津)으로 천도한 것”으로 대체기록 된 것으로 보입니다.
나. 사천(四川)에 숨어있는 고대의 또다른 ‘하이-테크’의 재료
이런 사천(四川) 백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하이-테크(high-tech)’재료 가운데, ‘대나무’가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습니다.
사천성(四川省)에서 대나무(=竹)가 왕성하게 자라는 지역입니다.
대가 무척 크고 빨리 자라서, 자고로 “화북에서는 석탄(石炭)을, 남방에서는 목탄(木炭)을, 그리고 서촉(西蜀)에서는 죽탄(竹炭)을 쓴다. ”고 할 정도로 사천성의 ‘대나무’는 연료로써 유명한 것이지요.
가) 항주-경주가 쓴 숮은 사천성 죽탄(竹炭)이다.
“항주-경주가 숱을 썼다.”는 것도 사실, 이 사천성이 죽탄(竹炭)을 그대로 양자강에 뗏목으로 흘러내렸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목탄(木炭)이었다면 금방 항주(杭州) 주변의 산이 폐허가 됨)
나) 무한(無限)히 올라갈 수 있는 비계(飛階)
이 대나무로 비계(飛階)를 쌓는 것은 오늘날 중국에서 4-50 층 빌딩에서도 대나무-비계(飛階)를 사용하여 올라가 공사를 할정도로 대나무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다) 석유(石油)와 ‘천연 개스(Gas)’를 시추하는 쇠공이를 끌어올리는 ‘대나무-올실-로프’의 위력
놀라운 것은 ‘조셉 니담’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보면, 이 대나무를 가늘게 올실을 내어서 꼬은 것은 거의 강철(鋼鐵) 강도가 나기 때문에, 사천성(四川省)에서 고대에 석유를 시추할때에 시추하는 쇠덩어리를 이 ‘대나무-올실’로 만들어진 ‘로프(rope)’로써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대나무의 위력은 놀라운 것입니다.
조셉니담이 제공한 사진(寫眞)을 보면 6-7층 동양식 고층건물 옆에 3-4배로 이 시추공이를 올릴수 있는 비계(飛階)가 있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시추공이 암반을 쪼개면 ‘돌가루’가 생기는데, 이를 빨아들이는 작용도 ‘대나무를 연결’해서 했다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라) 천장공로(川藏公路)의 고대 무역제품은 차(茶)뿐만이 아니라, 죽(竹)도 있었다.
오늘날 천장공로(川藏公路) - 고대에 “‘티베트’의 말과 사천성을 통해서 공급되는 중국의 차(茶)를 교역하는 차마지로(茶馬之路)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티베트에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차(茶)뿐만이 아니라, ‘대나무-올실-로프’도 있었던 것입니다.
티베트의 천애절벽을 서로 연결하는 색도(索道)는 모두 ‘대나무-올실-로프’였던 것이고, 또 초한지에서 보다시피, 서촉(西蜀)의 잔도(棧道) 역시 ‘대나무-올실-로프’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이지요.
2)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조어성(釣魚城)-곰나루’가 되었던 까닭
가) 가장 높은 곳에서의 결승(結繩)을 통한 대화
원래 조어성(釣魚城) 주변은 자연절벽이 있는데 다가, 대나무-비계(飛階)로써 그 높이를 백여미터 가량 올릴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인공적인 높이를 더한 대나무-비계에서 수만길을 내려오면서 ‘번지-점프’를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결승을 통한 대화’를 하였으니 가장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겠지요.
나) 가라(물고기, 나라)와 조어(釣魚)의 메타포
‘낙시대에 줄이 달여있고, 그 끝에 물고기가 있는 것’이 바로 조어(釣魚)의 모습이라면, 이처럼 천길-만길 ‘대나무-올실-로프’에 의지 떨어지는 것은, 결국 사람이 마치 ‘물고기’처럼 매어달려 있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어학자들은 ‘가라’가 ‘드라비다’언어로 ‘물고기’인 동시에 ‘나라(국가)’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언어의 상호 유통’을 통해 결국 나라를 낚었던 것이지요.
다) 가장 많은 종류의 언어가 소통된 지역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남만(南蠻)지역과 ‘티베트’지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이 수많은 종족의 사람이 소통되는 지역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모국어를 결승형태로 서로 대화하면서 상대방 언어를 배우는 고대 최고의 ‘언어 교육장’이 바로 ‘조어성-곰나루’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 의해서, 이 사천(四川)의 ‘조어성(釣魚城)-곰나루’는 국제적 곰나루였고, 사천 백제의 수도(首都) 즉 왕실의 직할지에서 관리할 정도로 유명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다. 마지막으로 사천(四川) 백제의 서방(西方) 외곽도시인 ‘도선성(刀先城)’은 무엇을 지키는 절대 금지구역(禁止區域)이었나?
1) 성도(成都) 주변의 천연 개스(gas)와 석유 채굴지를 지키는 도선성(刀先城)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성도(成都) 주변에서 나는 석유(石油)와 ‘천연 개스(gas)’입니다.
이 천연개스 속에는 좌계가 이미 말했듯이 ‘헬륨 가스’가 있어서, 열기구(熱器具)를 만드는 필수품인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천연개스와 석유 채굴지에는 도선성(刀先城)들을 설치해서 ‘절대금지 구역’으로 백제가 관리했음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북사(北史)는 “서방(西方)에 도선성(刀先城)을 위성도시로써 설치했다.”고 만 했지, 그것이 단 하나의 성(城)이라고 언급은 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럿이 있을수 있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백제 수도가 들어서는 곳에 반드시 거대 연료 매장지가 있다.”는 원칙과 잘 어울립니다.
2) 청성산(靑城山)
또 하나 도선성(刀先城)으로 지켜야할 곳이 바로 청성산(靑城山)입니다.
이 산은 ‘늘 푸르러서’ ‘푸른 성(城)과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성(省)이름인데, 도가(道家)성지(聖地)로 유명한 산입니다.
그런데 백제에서 ‘헬럼 가스(gas) 열기구’를 띄울 때에는 그 모습을 붕(鵬)새, 혹은 천룡(天龍), 봉황새 등의 모양으로 만들어서 띄웠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전설적인 ‘하늘을 나는 짐승’모양을 해야, ‘궁금증에 의해서 추적당하는 폐단’을 없앨수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혹 어떤 사람이 “천룡이 나는 것을 보았다.”, “봉황새가 나는 것을 보았다.”하여도, “그런 성산(聖山)에는 ‘원래 그런 신물(神物)이 산다.” “거룩한 조짐이다.”라고 정보 추적에서 보호되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열기구가 착륙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호수(湖水)가 있어야, 연착륙 즉 soft-landing할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청성산은 월성지(月城池)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헬륨 가스 열기구’를 띄울수 있는 적지(適地)입니다.
그러기에 이 청성산(靑城山) 주변에 도선성(刀先城)을 지어서 ‘백제의 최대 하이-테크 를- 이는 고구리, 신라의 공동 하이-테크’이기도 하지만 - 지킬수 있는 것이지요.
‘먼저 칼을 써도 되는’ 도선성(刀先城)은 ‘헬륨 가스’ 채취원, 또 열기구 비행장하고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사실 산이름 자체가 ‘푸른 성(=청성(靑城)’인 것은 어쩌면 백제가 최대의 산성(山城)으로 삼은 것이 원인이 돼서, 내려오는 이름인지도 모릅니다.
10. ‘고마(固麻)의 길’ : 사천성(四川省) 고마성 - 운남(雲南) 천룡사 - 광동성
가. ‘고무나무 즙액’을 독점(獨占)하는 중요한 백제의 수도
결국 좌계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백제는 ‘고마(固麻)의 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천성 고마성에서 그 서방(西方) 도선성(刀先城)인 청성산(靑城山)에 외부 모습이 붕새, 봉황, 혹은 천룡으로 된 ‘헬륨-가스-열기구’를 타고, 운남(雲南) 점창산 이해(耳海)에 중간에 휴식을 취하고, 이윽고 광동성 혹은 해남도(海南島)가는 ‘하늘의 길’이 있었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이런 ‘하늘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백제는 ‘헬륨-가스-열기구’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고무나무-즙액’을 오늘날 월남, 인도등등의 대륙에서 독점할수 있었던 것이고, 백가제해(百家濟海)할수 있는 광동성 해운(海運)의 길도 열수 있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나. 운남(雲南) 보이차 - 백제 왕실이 직접 관리했던 대륙 삼국의 요충지
오늘날 보이차(普洱茶)의 명산지는 바로 운남 점창산으로 둘러쌓인 이해(耳海) 주변의 천룡사(天龍寺)에서 납니다.
문자 그대로 ‘아미산’발 천룡(天龍)이 머무르는 중간 기착지이지요.
그런데, 차(茶)는 지질(地質)의 영향을 받는 식물이고, 지질(地質)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옛날이나 지금이나 명차(名茶)가 나는 곳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다경(茶經)에서 육우(陸羽)가 말하는 백제 왕실차는 결국 세가지입니다.
하나는 사천(四川) 백제의 왕성(王城)이 있었던 아안현(雅安縣)의 몽정차(蒙頂茶), 또 아미산(峨眉山)의 설아차(雪芽茶), 그리고 ‘고마의 길’의 중간 비행장인 운남(雲南)의 보이차를 뜻하는 것이지요.
결국 다경(茶經)이라는 책을 통해서 들어나는 것은 사천(四川) 백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며,
이 책이 고구리, 백제가 망한 직후에 육우(陸羽)가 저술한 것이기에, 당시대 때 중국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고구리, 백제, 신라의 수도(首都)들이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또 화백회의라는 세계체제의 악(樂)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경삼국(管境三國)의 왕실에서 내놓는 차(茶)를 일반백성 - 즉 천독(天毒)들이 마시면서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으리라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천독(天毒) 안에는 북사(北史) 이야기대로 중국인(中國人)도 있었기 때문에, “ 고구리, 백제, 신라 왕실 차가 ‘고급 차(茶)이다.”라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었다는 것이지요.
아마...육우(陸羽)가 다경을 쓸 때에는 “고구리, 백제, 신라 차(茶)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문화인이라 할수 없다.”라는 인식까지 있었으리라고 좌계는 봅니다.
[출처] 몽정차(蒙頂茶)와 사천(四川) 백제(百濟) (2) |작성자 흑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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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군께서 대륙조선설이 이해가 갑니다
뚜이~
푸른 성 청성산
자연을 방패삼아 히말라야 대단군의 홍익인간의
정신을 실천하고
제세이화 세상을 이롭고 널리 베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