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61,9-11; 루카 2,41-51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입니다. 성모 성심에 대한 공경은 17세기에 요한 에우데스 성인의 노력으로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1942년 비오 12세 교황님이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하시면서 더욱 장려되었고, 1996년부터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 기념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성모 성심에 대한 공경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결합한 성모님의 인격에 대한 공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과 성모님, 성요셉은 파스카 축제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갑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예루살렘으로 순례하시고 당신의 죽음으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찾으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요즈음은 자녀 교육의 전문가로 오은영 선생님을 많이 꼽고 계십니다만, 20년 전에는 이민정 선생님이 유명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책에서 이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아이가 잘못했을 때 아이의 행동을 비난하지 말고 부모의 마음을 얘기해 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밤늦게 집에 들어왔을 때 “너 이렇게 늦게 다니려면 아예 나가버려!”라고 혼을 내면 아이는 다음부터 늦지는 않겠지만 속으로는 ‘엄마는 내가 정말 나가버리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불안해한답니다. 하지만, ‘네가 늦어서 아버지와 내가 걱정했어.’라고 엄마가 말하면, 아이는 ‘왜 괜한 걱정을 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답하더라도 속으로는 ‘부모님이 나를 걱정하는구나’하고 생각하고 다음부터는 부모님 마음을 생각해서 일찍 들어오려고 노력하게 된답니다.
자식 키우면서 이렇게 매번 이성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2천 년 전에 성모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성모님은 자녀 교육의 전문가처럼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성모님은 자녀 교육의 전문가시기에 예수님을 그처럼 키우셨겠지요.
어디 부모·자식 간의 대화만 그렇겠습니까. 어른들 사이의 수많은 대화도 실은 자기 마음을 얘기해야 좋을 때에 상대방의 행동을 비난하다가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많고, 또 화해를 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다가 또다시 서로를 비난하면서 되려 싸움이 커지는 일이 잦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많이 아팠어.” 이것은 화해로 나아가려는 말이고, “어떻게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 이것은 또다른 싸움으로 나가는 말입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는 성모님의 말씀에 예수님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대답하시는데요, 두 분 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쓰셨지만, 지칭하는 대상은 달랐습니다. 성모님은 성 요셉을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새로운 가족을 선포하시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도 반대말이고 ‘이 모든 일을 듣고는 다 잊어버렸다.’도 반대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일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거나 정반대로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성모님은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성모 성심입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당신의 마음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신 성모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도 갈등에 화해를, 어리석음에 지혜를, 분열에 일치를, 전쟁에 평화를 가져오는 일치와 평화의 사도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