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박물관의 인간
남아프리카 부족 여성, 187년간 파리서 박제로 전시됐죠
입력 : 2023.10.25 03:30
박물관의 인간
▲ 사르키 바트만의 모습을 그린 그림. /브리태니커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은 전시 중인 인체 유해 1만2000여 점을 모두 철거하기로 했어요. 인간 유해 전시가 윤리·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래요. 개관 이래 첫 흑인 박물관장인 숀 디케이터는 "과거 학계에서 인종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는 우생학(優生學)을 위해 유해를 수집·분석하거나, 동의받지 않은 유해를 전시해 근본적으로 윤리적 결함을 갖게 됐다"고 이러한 결정 이유를 밝혔다고 해요.
우생학은 인류의 유전적 개량을 다루는 학문이에요. 쉽게 말하면, 유전적으로 우수하고 뛰어난 인간은 늘리고 소질이 열등한 인간은 줄이는 게 목적이죠. 19세기 등장한 우생학은 오랫동안 인종주의와 결합해 백인 우월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쓰였어요. 또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 나치가 우생학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펴면서 수많은 유대인이 희생되는 등 극단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했죠. 그런데 박물관에는 우생학적 목적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인간이 전시돼 있어요. 어떤 사람들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지 알아볼까요?
내세의 행복 바란 이집트 미라
미라는 사람이나 동물 사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보존한 것을 말해요. 우연히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인간이 일부러 만든 미라가 많죠. 내세가 있다고 믿는 문화권에서는 고인(故人)이 죽은 다음 세계에서도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미라를 만들었어요. 특히 이집트 문명에서는 '영혼 불멸'을 믿었는데, 죽은 직후 몸을 떠난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부활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시신을 방부 처리해 미라로 만들었어요.
미라 만들기는 70일 넘게 걸리는 길고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부패하기 쉬운 장기를 제거하고 신체를 방부 처리해 말린 뒤 붕대로 감아 관에 넣었죠. 그러고 생전 모습으로 만든 가면을 씌워 영혼이 돌아올 때 알아볼 수 있도록 했어요. 무덤 안에는 저승으로 가는 안내서 '사자의 서'를 비롯해 음식·옷·가구·무기 등도 넣어 주었대요.
이집트에는 미라를 만드는 전문가가 있었는데, 사람뿐 아니라 새·개·고양이·악어 등도 미라로 만들었어요.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000년쯤부터 3세기까지 이렇게 다양한 미라를 만들어 현재 발굴된 양도 어마어마해요. 영원한 삶을 위해 만든 미라는 현재 이집트의 수많은 박물관과 유적지에 전시돼 있어요. 당시 생활과 문화를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와 관광 자원이 되고 있죠.
이집트 미라는 이후 고대 로마 문명권으로 이어졌는데, 로마에서는 시신을 붕대로 감은 뒤 석고나 회반죽을 발라 시신 모습이 드러나도록 굳혀 미라를 만들었어요. 관을 쓰지 않아서 석고 위를 채색하거나 일상복을 입히고 문양이 있는 붕대로 다시 감기도 했대요.
화산 폭발 순간, 석고로 굳혀 전시
화산 폭발로 한순간 도시 전체가 멈추고, 그 순간 모습이 그대로 화산재 속에서 굳어버린 도시가 있어요. 바로 이탈리아 남부 폼페이예요. 기원후 79년 폼페이에서는 나폴리 동쪽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18시간에 걸쳐 100억t에 이르는 화산재가 쌓였어요. 그 결과 높이 6~7m 화산재 속에 도시 전체가 파묻혔죠. 주민 약 2000명도 그대로 화산재에 묻혀 '인간 화석'이 됐어요.
폼페이는 16세기 말 터널을 파던 건축가가 발견해 18세기에 발굴이 시작됐지만, 본격 발굴은 19세기 이탈리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가 주도해 진행했어요. 그는 화산재 속 시신이 부패된 공간에 석고를 부어 넣어 신체 주형(鑄型)을 뜨는 방법을 고안했죠. 폼페이 인간 화석은 사실 화석이 아니라 그들이 존재했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폼페이 사람들의 공포에 질린 표정과 고통스러운 몸짓을 그대로 담고 있죠.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된 폼페이 사람들은 '한 도시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생생히 보여줘요. 폼페이 사람들의 흔적과 유적은 그리스·로마 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예요.
아우슈비츠엔 희생자 유해 있어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에는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이 만든 최악의 학살 수용소가 있었어요. 수용소를 운영한 1940년부터 1945년 1월까지 나치 독일이 이곳에서 살해한 유대인은 250만~400만명에 이른다고 추정돼요. 수용소는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어요. 박물관에는 당시 시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유대인들의 참혹한 생활을 간접 경험할 수 있죠.
전시장에는 어떻게 유대인들이 전 유럽에서 강제로 끌려오게 됐는지, 수용소에 들어온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들의 신상과 사진이 걸려 있어요. '노동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들이 어떻게 가스실로 향했고, 죽음의 길로 가게 됐는지도 자세히 설명돼 있죠.
당시 끔찍한 상황을 보여주는 전시품으로 희생자 유해와 머리카락이 있어요. 전쟁이 끝난 후 수용소 화장장 근처에서 희생자 유해를 모은 납골 단지와 2t이나 되는 머리카락 더미죠. 독일은 잡혀 온 유대인의 머리카락을 잘라 직물과 펠트 재료로 독일 기업에 팔았어요. 이때 모아뒀던 머리카락을 전시하고 있는 거죠. 아우슈비츠는 일반적 의미의 박물관이 아니라, 20세기 인류 최악의 악행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기억의 장소라고 볼 수 있어요.
파리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된 사르키 바트만
19세기 우생학과 인종주의가 결합하면서 유행처럼 퍼진 이른바 '인종 전시'는 주로 원주민이나 유색인을 구경거리로 만들었어요. '인간 동물원'과 다를 바 없었죠. 19세기 가장 유명한 인간 전시는 바로 '사르키 바트만'이었어요. 사르키 바트만은 남아프리카 호텐토트 부족 여성으로, 유럽인들이 보기에 몸매가 특이했어요. 1789년생인 그녀는 1815년 사망했지만, 생을 마감한 이후에도 무려 187년 동안이나 파리 인류학 박물관에 박제된 채 전시됐어요. 백인과 유색인종을 비교해 우월감을 드러내고자 했던 이들에게 오랫동안 이용당한 거죠. '유물'로 전시됐던 그녀는 고향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와 인권 단체의 노력으로 2002년에야 고국으로 돌아가 묻혔습니다.
▲ 이탈리아 폼페이 고고학 공원에서 전시 중인 석고 모형. /폼페이 고고학 공원
▲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온 아이들의 사진과 소지품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박물관에 전시돼 있어요. /아우슈비츠 박물관
▲ 고대 이집트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이 미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 고대 이집트 사제의 미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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