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66권 기초공사(116)_복음에서 생명으로(2)_구속의 은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나아가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야합니다(요17:21-24) 주가 다스리는 것이 그 나라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기는 코러스도 있고요. 추임새도 있고 수술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참 이상하네. 고음이 아주 강해요. 여기는 저음이 없어요. 또 relu야 오늘 본문을 먼저 보죠. 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24절 맨날 노래하는 겁니다. 오늘 찬양한 게 바로 17장 21절에서 14절입니다. 178페이지 요한모음 17장 21절에서 24절 또박또박 읽어볼게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려 함이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신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의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아메. 지난 시간에 이제 드디어 복음에서 생명으로 첫 번째 시간을 나눴는데 예수님이 그 문을 열어 놓으시고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살게 하도록 누리게 하도록 우리에게 와 계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김은 아들 안에 거하는 하나님 안에 있는 아들 안에 거하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그 삶 자체를 말한다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고 마지막으로, 요양보험 24, 17장 24절을 말씀을 드리면서 그 사기문 연합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그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온전함을 이루는 것이고. 그게 복음의 궁극적인 목표다. 기억나시죠? 이건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 성경 구절의 베드로 전서 3장 18절이라고 또 말씀을 드렸죠. 오늘은 이 성경을 잘 보시면 신앙에도 완성이 있어요. 완성품이 있다고요. 우리가 막연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닙니다. 막연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정말 어리석은 거예요. 교회만 그냥 막 다니면 되는 게 아니고요. 신앙생활에 완성 지점이 있고 완성품이 있어요. 완성. 그게 바로 오늘 21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놀랍게도 그 완성품이 바로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너희가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하십니다. 온전함입니다. 온전함이 완성품이란 말입니다. 우리의 완성된 모습이 이거라는 거예요. 이게 뭐예요? 상호 우리가 지금 주일날 오전에 하는 나의 아내 거하라 그거예요. 그게 완성품이에요. 그래서 온전함이란 완성품인 뜻이고 이건 하나라 라고 그랬죠. 하나가 된 게 완성품이고 이게 온전함이라는 완성된 모습이 하나 상호 내주 내가 너희 안에 있어 하나 된 그 상태를 신앙의 완성품이에요. 완성 단계예요. 그게 이것을 그래서 영생이라고 합니다. 이건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루어야 할 우리의 사명이에요. 하나님의 언약이고 이걸 위해서 성령이 와 계신다고 그랬죠. 그래서 이것이 이 상태 완성품의 상태 완성품의 상태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느냐 실제로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느냐 바로 이렇게 이렇게 이걸로 나타난다. 사기입니다. 사기입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사귀고 있으면 이 상태에 있는 걸 증명하는 거야. 이해가시죠? 내가 그 안에 있는 상태를 내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 영생을 지금 내가 살고 있다. 라는 실제적인 삶을 말하는 거죠. 그게 완성품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교재는 실로 엄청난 거예요. 그 완성된 상태를 우리가 살아가는 거라는 말이죠. 이해 가시죠? 그래서 이 창고 성경 구절은 창세기 1장, 아니 창세기 2장 1절에 3절이요. 만물을 이루었도다. 다 이루었도다. 똑같은 단어예요. 다 이루었도다. 큰 거 코팅 기억나요? 부흥에 했잖아요. 다 이루었도다. 창세기 1장 2장 1절에 3절 또 요한복음 29에서 30도 계시로 4에서 7, 6에서 7 해도 돼요. 6절에 들어가 있어요. 완성 다이로트다. 다이로트다. 십자가에서 다이로트다. 완성품. 완성품 십자가에서 어떻게 다이로워요?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거처를 마련하라고 하노라 거처가 상호 내주잖아요. 십자가로 죽어야 제3을 받고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거처를 마련할 수 있죠. 그래서 십자가에서 완성됐다. 라는 거예요. 그럼 창세기 1장에 2장에 1절에 3절에 다 이루었다라는 그 완성품은 뭐 이게 일곱 날이지 일곱 날 일곱 날을 샤밭 샤바트 여기서부터 써야 됩니다. 샤바트. 샤바트 오른 이렇게 쓰는 게 버릇이 돼가지고 해가 동쪽에서 뜨잖아요. 이렇게 가는 거예요. 이렇게 적용해서 나의 안에서 반대로 이렇게 적용해서 가서 맞아떨어져야 돼요. 그게 히브리에요. 그건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져서 완성된 거예요. 완성. 이게 알파벳 마지막 글자잖아요. 오메가 완성 완성 완성인데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왕의 자리에 앉은 것이 완성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완성품의 완성품은 일을 했다라는 증거죠. 일을 해서 일을 하면 완성이 돼야 될 거 아니에요. 완성품이 바로 나라는거죠. 완성품이 됐는데 이거라는 거예요. 그게 완성품이 되었으면 이 완성품의 하나님 자리 자리에 올라가 좌정하는 상태가 완성품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의 끝은 완성품에 그 자리에 가서 하나님 자리에 앉는 그 상태가 완성품이에요. 그럼 하나님만 있으면 하나님 노릇 할 수 있어요. 그럼 백성이 있어요. 나는 내 자리에 나는 내 자리에 있어. 딱 이게 완성이 된 모습 이거죠. 이거 이걸 완성품 이걸 일곱 날이라고 해요. 이렇게 됐을 때 안식 그냥 쉼이야 쉼 더 이상 일이 없다는 거죠. 이게 완성품이에요. 여러분 우리 신학 목표는 여기 그럼 지금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다스리면 그게 완성품이에요.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순종하고 따라주는 상태죠. 하나님은 지시하고 나는 따라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마치 친구처럼 나를 그렇게 인도하는 상태가 되는 걸 말하죠. 그래서 그게 19장 요한복음 그다음에 계시록 21장에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새창조하노라 그리고 다 이루었다 이렇게 나와요. 그래서 완성이 되는 거예요. 그게 완성품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복음에서 이제 생명 안으로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완성이 돼야 돼요. 완성품까지 가야 돼요. 그러니까 이스크리스토께서 죽으신 이유는 적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인도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도록 우리는 우리 자리에서 하나님 대접을 해주는 그 상태가 딱 돼야 완성품이랍니다. 그래서 신앙의 완성품이 신앙에도 완성품이 있는 거예요.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기를 예수님께서 간절히 구했죠. 그래서 그 상태가 뭔가 하면 21절에 보면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도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영광이 뭐라는 거예요? 하나가 된 걸 영광이라고 그래요. 우리는 영광을 다른 걸로 알죠? 이게 영광이에요. 우리는 영광 주님께 영광. 주님께 영광 하나가 안 됐는데 제멋대로 하면서 주님께 영광 해보세요. 이건 놀리는 거예요. 성경을 모르면 이런 일이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아무리 멋진 일을 해서 주님께 영광해보세요. 영광이 되는 거 안 돼요. 여러분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는 거다. 그런다니까요. 완성품은 하나 된 상태를 말해요. 그리고 하나 된 상태를 영광이라고 그래요. 왜요? 하나님은 하나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나를 통해서 하나님만 나타나죠. 그런가요? 완전한 순종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완전한 순종 안에 있었죠. 그래서 예수님이 가면 하나님만 나타났죠. 그걸 영광이라고 그래요. 하나님만 나타나는데 어떤 게 나타났어요? 완전한 자기희생과 완전한 사랑이 나타나죠. 그래서 그 사랑이 나를 통해서 완전히 나타날 때를 하나님이 영광이라고 그럽니다. 그 영광을 하나님이 성품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온전한 하나가 됐을 때 나타나는 거죠. 내 혼자 길길이 날뛰면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납니까? 뭔 성품이 나타나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런 거는 내가 봐도 마귀 같죠? 그런 것 같아요. 진짜 그런 것 같아. 그럼 마귀 같죠? 그리고 하나께 연구하면 되겠어요? 안 되는 거예요. 코러스롤 넣었어요.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는 상태까지 가지 않고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내가 나타나거든요. 나는 이미 부정하잖아요. 저주받은 자, 존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존재가 하나님께 영광을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어요. 아무리 멋진 일을 해도 하나님은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는 데다 거기에 걸려들어요. 없습니다. 아무래도 신앙의 완성품은 바로 이거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열어놓은 영원한 생명의 문이죠. 그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거예요. 히브리에서 이게 잘 나와 있죠. 히브리에서 10자. 어제 했던 거 다시 한번 볼까요? 10장 19절에서 22절을 보시죠. 이 말씀들은 서로 엮여서 잘 알고 계셔야 돼요. 이번에 10장 19절에서 22절 다시 읽어보죠. 363페이지 10장 19절에서 2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승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렸을 때 그 피를 가지고 피 안에서 우리가 승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잖아요. 그 안으로 들어가서 연합을 한다는 거죠. 연합하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 죽은 거예요. 그냥 제사함을 받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라고 죽은 게 아니고 들어가 연합해. 온전한 하나가 되는 거기까지 가게 하기 위해서 죽은 예수님. 그걸 위해 죽은 거예요. 아시겠어요? 제발. 여러분 이 땅에서 내 소원 성취를 위해서 나를 구원해 줬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그 안에 들어가 완성품이 되었을 때 내가 원하는 소원보다 훨씬 더 완벽한 게 거기 안에 있는 걸 말해요. 우리는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들어본 적도 없고 설교를 들어본 적도 없고 성경에서 그걸 묵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이상하게 어색하게 낯설게 들릴 뿐이에요. 잘못 배운 거죠. 담력을 얻었는데 그게 파르시아라고 그랬죠.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무조건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라는 거예요. 그럼 들어가야죠. 당연히 그 길을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놓은 길이라고요. 그런데 우리를 위하여 열어놓은 길인데 새롭고 산 길이고 휘장은 곧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김으로 열린 길이고 그렇죠?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심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에 악을 깨닫고 몸을 말고 물고 씻어 참 마음과 언제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 가자 이제 나아가자 나아가야 돼요. 여기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냥 나아가는 것으로 그냥 끝나는 게 아니고 나아가서 하나 돼야 돼요. 그게 완성품이야. 우리는 주니까 하나 된다고 하면은 뭐 이렇게 하나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 자리에 나는 내 자리에 있으므로 하나가 되는 태초의 에덴동산이 하나가 되어 있는 그 모습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를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했다고 그랬죠. 이게 하나님의 영광이에요. 그러니까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했다고요. 처음부터 그걸 위하여 우리를 창조한 거예요. 그걸 위하여 우리를 부른 거예요.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 내셨다. 구원해서 교회 열심히 다니느라고 부른 게 아니고 열심히 안 다녀도 좋으니까 이거 되세요. 좀 1년에 한 번 다녀도 좋으니까 이거 되세요? 되세요? 암에 그러면 인정해 드릴게요. 저는 안 돼서 매일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되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안 나와도 상관없지만, 저는 덜 돼서 자주 나와야 합니다. 가능하면 자주 자주 나오면 빨리 돼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마지막 22절의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프로셀코마이에요. 나아가자. 여기에 핵심이 사실은 있어요. 프로셀은 앞으로 엘코마이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예배하는 걸 말해요. 그러니까 그 앞에 나아가서 예배하라 섬기라 이런 뜻이에요. 이해 가시죠?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을 섬깁니까? 누구를 섬깁니까? 그럼 아기를 섬기는 거예요. 나를 섬기죠. 나를 내가 왕이잖아요. 그래서 잘못되는 거예요. 심판이 많은 거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이 수님께서 십자가에 날려서 죽었을 때 지성소의 휘장이 쫙 찢어졌죠. 그렇죠? 그게 이제 마태봉 27장 51절에 나왔던 그래서 피가 흐르고 그 피를 이제 믿고 의지하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한 구원의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죠. 그렇죠? 그래서 그 피는 영원해야죠. 영원하죠. 그리고 그 영원하신 성령도 영원하죠. 그래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피가 하나님께 사실 들어준 게 그게 히브레시스 9장 14절이었죠. 기억나시죠? 앞에 가서 다시 확인해 볼까요? 9장 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렸죠. 그러니까 이게 예수님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께 드리는 게 성령으로 말미암 성령과 능력이 기름부터 임하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우리에게도 성령과 능력이 기름부터 부호 강하게 임하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십자가를 통과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가서 연합하게 돼서 완성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죠. 그게 성령사역입니다. 성령이 없이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고역입니다. 고역. 신앙생활이 무거운 짐이 된다니까요. 여러분 무거운 짐 아니죠? 여기 오고 싶어 죽겠죠? 아닌가요? 그래서 오신 거 아닌가요? 오고 싶어 죽겠죠. 릴루야. 목소리가 좀 살아났네요. 역시 어떻게 저렇게 갑자기 개벽을 해버리네. 성령이 또 하신 거죠. 그렇죠? 이런 이게 이제 바로 히브리스 9장 14절처럼 성령의 사이이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예수님이 드려줬고 예수님은 그걸 온전히 순종함으로 죽기까지 복종해서 이루어졌고 다 이루었다. 그래서 이제 그 피를 보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주셔서 상호 내조하게 했다. 그게 거처가 된 거예요. 그게 언약이 완성된 거죠. 그래서 완성된 거예요. 하나가 된 거예요. 하나가 되어 있는데, 그 하나가 되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그랬죠. 그게 하나가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성품만 나타나게 되어야 되는 거예요. 완성품은 그럴 때가 영광이라고 그래요. 이해가시죠? 그래서 우리는 이제 가는 곳마다 사랑이 나타나고 희락이 나타나고 화평이 나타나고 이런 것들이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은 그걸 보고 영광을 얻는다. 아 예가의 스님처럼 드디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그럴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거예요. 왜 그런가요? 모든 사람이 이 사람을 보고 어떻게 이게 가능해? 하나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내가 너를 보니 하나님 본 것 같아. 이렇게 되는 거죠. 여러분도 그러죠? 이제 내가 집사님 보니 예수님 본 것 같아. 아멘 그러죠? 눈만 크게 뜨면 어떡해요? 그게 영광이라고요. 그러니까 손해봐도 즐거워하고 돼요. 그런데 곧 채워주시잖아요. 바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죠? 이런 게 되는 거예요. 그걸 남들이 보면 이상하잖아요. 저는 분명히 손해 봐서 길길이 날뛰어야 되는데 다른 사람은 다 길길이 날뛰는데 쟤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렇게 하고 있으면 도대체 당신 누구요. 그래 아 나 예수 믿는 사람이요. 아 예수님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르긴 하네요. 그게 하나니까 영광이에요. 그 사람이 그게 한번 손해 보고 주니까 영광 안 해도 돼. 그 손해보는 자체가 영광이라는 거예요. 손해보면 길길이 날뛰는 건 막이고 안 날뛰는 건 하나님 그런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난 거잖아요. 그러니까 영광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절정이죠. 그 하나님의 성품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게 십자가잖아요. 그래서 십자가 하나님께 영광이에요. 고난이 아니고 영광이고 우리도 십자가가 영광인 거예요. 누구 앞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내가 죽는 게 영광이 되는 거예요. 거기로 우리를 초대하신 거예요. 그 영광의 자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시죠. 주니께 영광 이거 밥 먹듯이 하잖아요. 밥을 열심히 먹으면서 기도하고, 주니께 영광하면 좀 곤란하고 영광의 자리로 초대한 건 이제 아시겠죠? 제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다 용서하고 말리야. 이게 영광이죠. Amen, Hallelujah. 그렇게 되어가고 계시잖아요. 여러분 지금 점점 되어가고 있는 게 보여요. 그런데 그 피는 지금도 살아 역사거든요. 영원 안에서 흘린 피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그 피를 힘 있고 쏜살같이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여기로. 여기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연합되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모습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신 거예요. 그래서 온전함이 이르는 거예요. 온전함이 완전함에 이르는 거예요. 오직 보혈의 공로로 온전함에 이르죠. 보일이 없었으면 여기 막혀서 못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처소를 마련한다는 게 그거예요. 여기서 예수님이 죽어야 문이 열리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들어가서 그 안에 거할 때 처소가 되죠. 그게 처소예요. 천국이 아직 완성이 덜 된 게 아니고 내가 아직 처소를 완성하러 가느라. 그러니까 천국이 아직 완성이 덜 됐네. 아우 내 집은 아직 기초도 안 나아졌나 보다. 이런 환상 보고 와서 까불고 그러면은 그냥 꿀밤을 한 대 주세요.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지금 이미 완성되어 있는데, 천국이 하나님이 그럼 뭐 놀다가 아주 아이고 니 집에 아주 덜 지었다. 야 어떡하냐? 이런 하나님인가요? 영원 안에서 그게 어디 있어요? 이미 다 완성됐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자기 거는 높은 빌딩이라 하고 그렇죠? 그럼 어떡하라고 그랬어요? 제가? 아니요. 꿀밤 주고 나서 한마디 해야지. 아니야. 내가 지금 딱 가서 보니까 너는 없어. 거기 아예 이름도 없어. 이렇게 말해야 돼요. 아시겠어요? 어우 내가 생명록을 이렇게 발우공로로 시작해서 들어가 완성돼야 되는 거예요. 상호 내주고 지속적으로 우리는 그 안에 거하고 있다라는 게 실제로 완성됐잖아요. 우리를 불러 거하게 거하신 하나님. 그렇죠? 이미 완성돼. 그래서 계속 나는 그 안에 있다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되뇌라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될 때 그 안에 거한다라는 것은 주님의 뜻대로 내 삶이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다라는 걸 말하는 거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 영광을 보게 돼 있습니다. 세굴라 아메 그 백성에서의 지위를 우리가 가질 수가 있죠. 문제는 뭔가 하면 아직도 율법의 단계에 있는 많은 신앙인들이 어떻게 가는가 하면 여기를 피를 힘입어 가는 게 아니고 구원을 받고 여기서 열심히 종교활동을 해서 가는 걸로 열심히 종교활동을 해서 온전함에 이룰 수 있는 걸로 잘못 배워서 알고 있어요. 저도 그랬고요. 이제 구원받아서 말씀 보고 이렇게 하면서 열심히 다니면 점점 완성되어 가는 줄 알았어요. 완성된 게 아니고 점점 망했어요. 아주 시름시름 앓다가 꼿꼿이 죽어버렸어요. 완성품이 아니라 죽어서 왔어요. 완전히 죽어버렸어요. 완성품 안 돼요. 그거. 그게 마귀의 노림수라는 거예요. 그래서 마귀가 거짓 선지자를 통해서 율법을 강요해서 그 율법 아래에 있는 영혼들을 약탈하는 거예요. 도적이라고 하는 거예요. 도적질하고 죽이러 왔다고 그랬죠. 그래서 거짓 선지자로 가장을 해서 율법을 강요해서 온 몸과 마음, 재물 등등 모두를 헌신하게 만들어서 약탈하는 거예요. 그게 그 영혼은 점점 말라가죠. 그래서 아무리 다녀도 해갈이 안 됐던 거예요. 만족함이 없고 기쁨이 없어. 염려로부터 자유로웠어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웠어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웠어요. 불가능해요. 종교활동으로. 그래서 율법이나 계명이나 규칙 이런 것들을 잔뜩 만들어놔요. 교리를 없는 걸 잔뜩 만들어 놓고 주위를 밥 먹으러 가지 말라고 돈도 쓰지 말라고 그러고 이런 걸 막 만들어서 아주 얽매 놓는 거예요. 그게 사도바울리로 7장에 말하는 에피트미아 5절 8절 11절 5, 8, 11 다 외우고 계시죠? 5, 8, 11 율법이 어떻게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속여서 어떻게 한다고 그래요?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사망에 속여서 죽이기 말씀이 나를 속여서 죽인다고 그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은 여러분을 속여서 죽이는 사람이죠. 그게 바로 마귀. 그게 거짓 선지자라는 거예요. 진리가 아니고 거짓이니까. 그걸 믿으면 죽는 거죠. 그렇게 되는 거예요. 온전함에 못 나아가요. 하나님의 설정해 놓은 목표는 여기예요. 그런데 이거는 영원 안에서 이미 완성이 되어 있고요.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이걸 완성해 가는 거예요. 지금.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완성이 되어 가야 돼요. 그래서 와서 그냥 여기 앉아서 계속 왔다 갔다만 하고 있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여러분. 안 된대. 그건 큰일 난다니까요. 절대로 그러면 안 돼요. 계속 나가야 돼요. 완성품을 향해서 지속적으로 그게 성령이 하시는 사역이라고요. 성령이 오시니까 계속 우리를 몰아가잖아요. 계속 몰아가지 않던가요? 막 몰아가잖아요. 막 몰아가잖아요. 그게 성령사역이 어디로요? 완성품을 향하여 몰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완성이 돼서 지난 시간에 디도스 3장 7절처럼 그거를 맛보고 누리라고 지금 지금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누리라고 우리를 몰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율법 아래 있으면 그걸 지켜서 여기에 이르려고 막 노력하다가 아니면 나중에 죽어서 간다 이렇게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들어냈죠. 절대로 온전함에 못 이릅니다. 율법으로는 온전함을 죽었다 깨놔도 불가능합니다. 그건 그런 그런 율법으로는 온전함을 이룰 수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교회 안에서 그런 율법적인 행위나 종교활동이나 이런 걸 통해서 그게 이루려고 지금도 아둥바둥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런 사람들이 지금 보면 내가 아주 어우 어떡하면 좋아 그런 사람이 제가 하는 말 들으면 쟤 이렇다 쟤 혼자 저런다고 여기 버저스 예수님이 다 말씀하셨고 요한일서에 싹 다 나와 있고요. 지금까지 제가 다 지도서에도 나오고 맞나요? 요한일서 2장에도 나오고 싹 다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도 아직 이걸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열심히 해서 내가 종교활동을 해서 해보겠다고 그건 어떤 일인지 알아요? 어떤 신앙생활인지 압니까? 예수님을 정면 배신하는 십자가를 통과했으면 예수의 피로 인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자기 힘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예수님을 부정하는 거죠. 거기에는 철퇴가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 심판이요. 반드시 임합니다. 그래서 막 그렇게 율법의 신흥생활을 하면서 이걸 이루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어떤 뭐 하나의 원리를 확 발견하면 거기에 쏙 빠져 들어갑니다. 난리랍니다. 예를 들면 여기는 입신사역 하면 그것도 빠져. 여기에 전부 빨려갑니다. 그러다가 해보니까 별거 아니거든. 그럼 또 다른 영화한테 또 갑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여기는 과목도 많네. 이렇게 가다가 해보니까 또 별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또 다른 데로 가고 마치 처음에 가면 또 신선하게 느껴지잖아요. 그렇죠? 처음에 모르는 걸 하나 이렇게 깨달아봐요. 원리를 전체가 아니고 하나 부분을 하나 깨달아봐요. 윤사가 임해서 병을 고쳐버리고 일어나니까 내 원하는 게 딱 있잖아요. 아픈 사람은 멀쩡한 사람은 안 돼요. 안 통해 돈이 있어야 되는데 나는 몸은 멀쩡하고 돈은 없거든요. 그럼 병 고치는 집에 가겠어요? 안 갔지? 돈 벌어주는 데로 가야지. 돈 벌고 나니 어때요? 이제 몸이 병나네. 그럼 또 병나는 대로 가야지. 이래서 이제 매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막 아웃하게 놀아나다가 볼일 나보는 거예요. 새로운 프로그램을 또 도입해서 내적 치유 삼천리 반도를 또 흔들고 다녔어 한번 그렇죠? 또 묵상 미국의 모파로 인해서 묵상이 또 확 요셉처럼 우리도 됩니다. 이러면서 묵상이 또 한번 확 휩쓸고 갔고 다 어디 가버렸어요. 지금? 내적 치유를 지금 아무도 안 해. 차라리 감자탕이 빨리 감자탕 왜 안 날까요? 안 되는 거예요. 되었으면 난리 났지? 안 되는 거예요. 재정강의 좀 있어 보세요. 아마 난리 날 겁니다. 이제. 이단 시비 붙어가지고 그게 안 된다는 걸 그게 되면은 예수님이 필요 없어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탁월한 지도자들에게 막 난리를 하다가 안 되거든. 100% 다 돼야 되는데 안 되거든. 그러니까 또 시들시들 시들시들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가 하면 교회 다니는 게 점점 짐이 돼요. 짐이.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그렇죠? 자빠져도 뒤통수 터지고 결국은 온전함에 못 이루어요. 여기 죽어도 못 갑니다. 그 신앙으로는 여기는 오지간한 유일한 한결밖에 없어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통해서 들어가 연합하는 것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완성됐기 때문에 그러면 시간 안에서 그 길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따라오르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서 온전함의 완성품을 이루는 거예요. 이거예요. 이거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온전함으로 하나님께까지 나아가야 돼요. 선행이나 어떤 율법 지키는 걸 통해서 온전함에 이르지 못해요. 로마스에도 나오고 히브리스에도 그런 내용들이 히브리스 7장 가보죠. 히브리스 되게 중요합니다. 이미 다 했지만, 히브리스 7장, 8절, 19절 7장 18절 전의 계명이 연약하여 무익함으로 패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정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리라 율법은 온정케 못한다. 지금도 그 율법에 파생된 그런 것들을 지켜서 내 원하는 완전함에 이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버둥치고 있는지 아세요? 율법이 넘치는 교회 한번 가보세요. 숨도 쉬기 힘듭니다. 신 목사님이 잠깐 외유하고 왔잖아요. 거기 가서 가자마자 1년 스케줄을 쫙 주고 하라고 합니다. 요즘 곧 사순절이 와요. 빈틈없이 그렇게 죽어. 숨도 못 쉬어요. 그렇게 하면 성도들은 이미 거기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이미 길들여져 있어요. 나는 뭔가 했다라는 뿌듯한 마음을 갖고 속으로는 텅 비어요. 생명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거 하고 나서도 공허한 거예요. 여러분 다 겪어왔죠. 그걸. 그래서 소가 나는데도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요. 도저히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저도 얼마 전까지 그런 교회를 다녔었어요. 아무것도 온전치 못하게 온전케 못한대요. 이 온전케 이걸 말해요. 이 완성품을 말해요. 율법안에서 이게 가능하던가요? 이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저는 요한복은 수차례 읽었지만 죽어서 가는 정도로 이렇게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는데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더 좋은 소망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걸 말해요. 그러니까 온전케 하는 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걸 온전케 하는 거라고 그러는 거예요. 율법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더 좋은 생망이 생겼다. 그래서 신앙의 온전함에 이르는 길 단 한 가지 길 예수 그리스도라는 걸 지금 여기서 히브리스 7장에서도 말하고 있는 거예요. 더 좋은 소망 에스크리스도. 그래서 에스크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걸 지금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히브리스 7장이요. 이해가시죠? 하나님께 그래서 거기 아래 쭉 내려가서 25절에 보면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여기 온전합니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해서 완성한다는 거고, 위에는 율법으로 아무것도 안 된다라고 말했는데도 우리는 율법 안에서 주일날 밥도 안 사 먹어야 되고 이러면서 온전함에 이르려고 지금도 끔찍합니다. 여러분 그걸 라면 하면서 따라다니는 사람 보세요. 어떤가 사회적으로 아무리 성공을 할지라도 그 마음에는 비어 있어요. 회칠 회칠이라고요. 소망이 없다니까요. 염력을 심히 벗어날 일이 없어요. 한 번도 금방 그러다가 내가 조금만 잘못하면 번개 맞는 거 아니야? 이렇게 두려워서 못 살죠. 그렇게 가둬놔버린 거예요. 율법이. 그래서 올무가 되는 거예요. 사도발이. 그래서 율법 아래에서 죽었다고 자신을 표현했잖아요. 그런데 그걸 아직도 열심히 한다니까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제사를 단 한 번에 완성했죠. 그래서 그를 믿는 자를 번역했다고 그래요. 그게 10장 14절이에요. 10장 14절로 가볼까요? 지난 시간에도 했죠. 14절. 저가 한 재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정케 하셨는데 우리는 이미 영원히 온정케 된 사람들이에요. 시간 안에서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어 가는 거죠. 그게 지금 성령사역이라는 거. 그래서 온정케 된 게 영생이고요. 그걸 지금 맛보고 누리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때때로 자주 항상 그걸 아셔야 돼요. 그래서 누구든지 이제 22절이 그래서 22절 누구든지 22절이 그렇게 붙어 있는 거예요. 예수를 피를 힘입어 지성소로 들어가는 자,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나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온전한 신앙에 이르는 거예요. 온전함 아들 안에서 그 피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온전함을 이루는 완성 완성 우리는 그래서 계속 그 안에 있어서 온전함을 이루어야 돼요. 지금 죄가 있어서 멀어지는 것 같으면 곧바로 회개하고 다시 파르시아에서 온전함 안으로 있어 들어가야 돼요.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그래야 돼요. 항상 무조건 그래야 돼요. 무조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있다. 그 안에 들어가. 왜? 그러면 내가 지금 돌이킵니다. 주니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그 안에 있어야 돼요. 영적으로 그렇게 돼야 돼. 그게 완성품 안에 있어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돼서 나를 다스리고 나는 그 백성의 자격을 가지고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걸 지금 언제든지 누릴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죽어서 할 바에. 그럼 지금 뭐하러 이 고행을 합니까? 안 그래요. 성경은 전부 현재 시점인데 전부 미래 시점으로 해서 이 우매한 백성들의 시간과 물질과 다른 여러 가지를 그냥 착취한 거예요. 칼 막스가 나왔으면 한마디 할 건데 이때 왜냐하면, 그것들은 도적질하고 죽인다고 그랬거든요. 누구 걸 도적질해요? 어디 지나가는 똥개 훔쳐갑니까? 아니요. 여러분을 훔쳐가는 거예요. 왜 훔쳐가요? 죽이려고요. 그래서 영혼이 여러분의 영혼을 훔치는 거예요. 거짓 선제자들이 율법을 가지고 율법으로 온전하면 못 이러잖아요. 그래서 지켜라 강조하면서 막 이렇게 여러분을 묶어놓고 그냥 꼼짝 못하게 흔드는 거죠. 그리고 무서워서 못 가거든요. 안 지키면 큰일 나고 순종 안 오면 너 죽어 해보세요. 그렇죠? 겁나서 못한다니까요. 간이 커서 그렇게 한 거예요. 지금까지 아멘 이게 강이 쪼그러들어서 안 되겠죠. 이게 바로 요한모범 17장원의 본문이에요.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어.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된다. 온전함과 하나는 같은 거예요. 같은. 같은 뜻이에요. 온전함. 이게 하나예요. 하나가 되었을 때는 완성품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은 하나님 자리에 나는 내 자리에 있는 게 일곱 날의 완성품. 그래서 일곱 날 그게 온전함이 완성된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더 이상 할 일이 없죠. 그래서 이러신 거예요. 끝난 거예요. 여러분에게는 좀 바쁘죠? 하나님 바쁘게 일하고 계시죠? 저도 그래요. 아면 하고 그래요. 그래서 히브리에스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파레시아. 그 다음에 하나는 온전함이에요. 온전함. 이게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 앞에 나아가야 온전함을 이룬다. 이게 히브리스가 유대교에서 그리스도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쓴 편지죠. 그런가요? 그중에 일부는 구원받았다고 그러고 그러면서도 온전함에 못 이룬 거예요. 이 당시에. 그래서 쓴 편지거든요. 그래서 왜 온전함에 못 이루고 중간에 타락하고 때로는 배도 해석하고 한 번 빛임을 보고 도망가고 배도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온전한가에 못 간 거예요. 왜 못 갔겠어요? 방해하니까 막 이들이 방해하고 핍박을 하고 또 이상한 교리들이 들어오고 이렇게 해서 방해하니까 중간에 넘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온전함에 이루지 못하고 실족한 거예요. 그런 걸 실족이라고 그래요. 계속 걸어가야 되는데 실족한 거예요. 히브리스 선 기자가 수신자들을 향해서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온전함에 이르라고 막 말한 거예요. 그게 바로 히브레스 5장 6장에 나오는 내용이었죠. 히브레스 5장에 가보면 5장 12절 지난번에 자세하게 한 가지만 다시 볼게요. 5장 12절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테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차가 되었도다. 예 여기 히브리스 읽는 사람들이 이 꼬라지를 하고 있다. 지금쯤은 이제 장성해서 좀 이렇게 제대로 알고 누구 보면 가르치기도 하고 이렇게 돼야 될 사람인데 맨날 엄마 젖져 엄마 젖져. 맨날 저 타령만 하고 있다라는 걸 말하죠. 그게 그래서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어버렸대요.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회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의회의 말씀은 바로 이걸 말해요. 온전하면 나아가는 이 상태를 여기에 못 나가고 계속 여기서 앉아서 주세요. 주세요. 맨날 그거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맨날 기초만 배워요. 맨날 기초만. 이제 기초 안 해요. 여러분 기초공사 거의 끝나가요 이제 기초를 프린트 내놨다가 또 기초공사를 또 했잖아요. 제가 그래서 왠지 아세요? 맨날 어린아이 수절에 머물러서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맨날 달라 달라 달라 맨날 이거 하고 있으니까 또 한 거예요. 기초공사 이제 안 할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이제 어린아이 데려오면 여러분이 다 가르치세요. 아시겠어요? 아멘 왜 아멘 안 해요? 아멘 저도 가르쳤으니까 여러분도 가르쳐야죠. 방장님들도 가르쳐야 되고 훈장님들도 가르쳐야 되고 꼰대님들도 가르쳐야 되고 다 가르쳐야 돼요. 아멘 아무도 아멘을 안 해요. 그래 그건 하기 싫다라는 거죠. 그러면 그리스도의 도예 초보만 계속 배울 거예요. 여기서로 어린아이가 되어 의회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해서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도해 초벌을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겨울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가. 아직도 세례가 뭐고 안수가 뭐고, 부활이 뭐고 영화는 심판이 뭐고 이런 초보에 계속 매여서 이게 뭡니까? 저게 뭡니까? 이거나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10년 지났는데도 초보인가요? 3년 지나면 3학년 돼야지 3년 지났는데 아직도 코수건 달고 다니면 어떡해요?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하는데 안 나아가고 있더라는 거예요. 이불에서 편지 받는 사람들이 그렇죠? 제가 아직도 10년째 기초공사하고 있으니까 어떤 일입니까? 이거 도대체 큰일이죠. 기초공사에 뭐 하는지는 알아요? 혹시 모르죠? 심각한 거죠. 기초공사 뭐하는 기초공사였어요? 틀을 닦았어요. 그래서 그러니까 이 히브리스 기사는 믿은 지 오래됐는데 아직도 온전하면 못 이르고 여전히 가르침을 받아야 어린아이 같더라는 거예요. 그들의 그런 실행 기초공사가 아직도 머물러서 겨우 맨날 이게 뭐예요? 저거 뭐예요? 이렇게 하고 있는 사람 뭐라는 거예요? 훅 불면 다 넘어져버려요. 그래서 넘어져 가지고 엉뚱한 데로 가버리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초가 없으니까 그래요. 기초공사가 안 돼 있는 거죠. 이게 바로 힘을 세요. 여러분 그 완전하지 완전하면 이루지 못한 거예요. 완전하게 이루려면은 말씀을 지속적으로 묵상하면서 내 안에 있는 어둠을 보고 십자가에 가서 죽고 연합하고 또 죽고 연합하고 우리가 하는 말씀 열기와 그다음에 그 말씀 안의 교재와 이런 걸 통해서 계속적으로 죽고 연합하고 이게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계속 이루어져야 점점 완성품에 다다르잖아요. 이거. 아니 그러니까 십자가는 이미 팽개쳤고 아직도 여기 앉아서 기초 배우면서 달라달라 하는 신앙이에요. 그래서 옛날 습관으로 자꾸 열심히 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아직도 그러고요. 여기 와서도 그거 하면 안 되죠. 아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열린 말씀을 가지고 나를 비춰보고 깨뜨려 죽이고 다시 부활해서 연합하고 이 복음에 참여해서 생명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복음은 다 이미 알잖아. 이미 다 알잖아. 보급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다 안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다 됐다고 이제 필요한 것 달라고 달라고 그런 기술인을 습득하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에 못 들어가서 완성품에 못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 세굴라 못 누리니까 인생이 텁텁한 거예요. 그래서 조금만 외풍이 불고 옆에서 뭐라고 이렇게 톡 찌르면 튀어나오는 겁니다. 뭐가 튀어나오는지 아세요? 이게 튀어나온 거야. 막 이러면서 분기탱천 분기탱천 뭔지 아세요? 아니 분이 터져서 하늘에 닿는 걸 말해요. 이러면서 이게 이 분기탱천이야 막 뿜어냈어요. 이런 일이 일어난 온전한 데 못 가고 계속 제자리걸음하고 걸음마 기어다니고 있어요. 조금만 바람이 불면 휘청휘청 넘어가는 거예요. 다 알죠? 그런 것들. 누구나 옆에 보면 다 알잖아요. 제가 지금 휘청거리는구나. 제가 젖을 못 먹었구나 이런 거죠. 제가 계속 젖만 주면 되겠어요. 안 나와. 이제 말랐어. 말랐어. 안 나와. 나는 지금 도토리를 던지는 사람이 있어요. 단단한 식물. 여러분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던지고 있는 중이에요. 아메 저 달러 하지 마세요. 이제 방장님한테 가서 젖 달라 하시고 저한테는 젖 달라. 그런 분들 저에게 방장님들을 오게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젖을 직접 드리세요. 거기서 방장선에서 해결하셔야지. 문제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어떤 신앙인가 하면 언제든지 넘어지고 타락할 수가 있고 그다음에 온전함에 나아가는 것을 몰라요. 그리고 모른 채 여기 아래서 계속 신앙행위들을 하는 거예요. 신앙행위를 종교활동을 하는데 맹목적으로 합니다. 맹목적으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게 어떤 아는 범위 내에서 그걸 지키는 데만 몰두하는 거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속아서. 그렇게 하면 좋은 날이 옵니다. 나중에 좋은 데 가는 게 영생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런 신앙을 하면서 속아서 다 틀리는 거예요. 영혼이 다 털털 틀리는 거예요. 마귀 얘기.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자꾸 초보만 반복하더라는 거예요. 지금 계속 초보만 반복하고 있고 온전한테 안 나아가고 계속 앉아서 초보만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온전한데 나아가라 예수님이 피 흘려 죽었잖냐 열렸잖냐 그걸 힘입어 나아가라 6장에 보면 그 다음부터 나아가라 나아가라 나아가라 나아가라 계속 그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계속 올라가 올라가 올라가 계속 그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제 뭔지 아시겠죠? 이제 아시겠죠? 이제도 모르시나? 그래서 계속 초보만 반복하고 배우고 또 까먹고 반복하고 배우고 또 까먹고 훅 불면 넘어졌다가 겨우 또 일어났다가 빼고 이런 식의 이게 반복되는 거예요. 이해 가시나요? 그러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에 있으면 신앙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 오늘 한 가지 모르는 거. 영적인 지식 열렸잖아요. 배웠잖아요. 그걸로 이런 게 다 있었네. 그리고 거기에 머물러 버립니다. 거기서 머물러 뭘 안 하고 있는 거죠. 비추지 않는 거예요. 그 깨달은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고 그 어린아이와 같은 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부활연합해서 장성해서 가야 되는데 그거 안 하는 거예요. 배우는 거에만 만족을 하고 이런 말씀이 이런 뜻도 있었네. 별 게 다 있어. 여기는 그리고 좋아하다가 다음 주에 오면 또 다 까먹고 또 새로운 걸 오 이런 게 다 있었네. 그리고 또 좋아라 하고 나가면서 다 까먹고 또 열심히 또 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하고 이렇게 그게 초보예요. 토예요. 완전함에 나아갈 생각도 안 합니다. 여러분 그냥 그 수준에서 이제 한 10년 들었으니까 다 한다고 그래. 그렇죠? 똑같은 말 또 한다고 그래. 들은 것 같기는 하거든. 그런데 내 몸에 실제로 적용이 돼서 일어났나요? 영생이 지금 적용되어서 살고 계신가요? 누가 콕 찔러도 꼼짝 안 해요. 안 찔러도 알아서 넘어져 버리는데 무슨 찔러 찔러? 애들 그런 말 하다가 이렇게 일을 하다가 아이고 넘어져서 알아서 그러고 있네. 아이고. 그래서 또 젖 더 먹어야 되겠다. 이러고 있죠. 아무도 안 찔러. 자기 혼자 하다가 찔려가지고 쿵 넘어져버려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옆에서 찌르면 못 일어나요. 영영 못 일어나요. 그래서 안 찌르잖아요. 저는 안 찌르잖아요. 찔리면 다행이죠. 안 찔러요. 완전함이 뭔지를 몰라요. 완성된 이거 이거 지금까지 했던 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 여기에 개념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배워왔던 습관대로 계속 교회만 열심히 다니는 거 낭패입니다. 이건 여러분 제발 열심히 다니는 것만 하지 마시고 똑바로 알고 내 목표 지점이 어딘지 알고 가세요. 제발 똑바로요. 그냥 열심히 다녀주는 곳이 아니고요. 똑바로 알고 똑바로 일어서서 여기에 이르러서 이걸 좀 누려보세요. 제발 누려보시라고요. 그 영생의 풍성함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요. 그걸 실제화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방 교제, 골방 교제를 통해서 산 가운데 나타나는 게 영원한 생명을 지금 현재로 살아내는 거라고 처음부터 말씀드렸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 들은 이야기 또 하죠. 제가 성경이 그거밖에 안 나오니까 또 하는데 실제로 내 삶은 그거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어린애처럼 또 기어다니면서 젖 주세요. 초보 또 배우고 있는 거예요. 초보를 배우는데 새롭죠? 또 처음 듣는 것 같죠? 이건 낭패예요. 낭패. 어떡하면 좋아요. 여러분은 아니에요. 수준이 많이 높아졌어요. 제가 아주 행복할 정도로 수준이 많이 높아졌어요. 지식적으로 삶의 실제가 지금 안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제 성령님이 그거 아침에 교제 시작 사랑방 교제 하려니까 율법이라고 그러고 그래서 그것도 신비한 거 이런 건 또 좋아하잖아요. 사람들이 이런 거 이런 거 그거라도 해서 하라고 그거라도 해서 아메 너무 짜증나요? 여러분 아우 좀 하세요. 그러니까 또 야세하면 율법이잖아. 하시옵소서. 그러면 부탁이잖아. 아멘 묵상을 좀 하시옵소서. 그건 율법이 아니죠. 부탁이잖아요. 아멘 십자가에서 좀 돌아가시옵소서. 자기 부인 좀 하시옵소서 아멘 그러면 율법이라 안 그러겠죠? 그런가요? 문제는 아무리 정확한 신앙 지식을 알고 있고 심지어 복음을 받아들였다. 해도 그 자체에 머물러 있으면 언제든지 타락합니다. 언제든지 배교해요. 여기 히브리에서 여기 나와 있는 사람들처럼 순식간에 넘어갑니다. 여러분. 신학이 변질되고 타락하는 이유가 뭔가 하면은 첫 번째 세상에 제 세력이 아직 있잖아. 로마스 6장 12절 제 세력이 죽을 몸의 역사에서 계속 제 아래로 끌고 가죠. 그래서 안 되고 두 번째는 뭔가 하면은 오늘 배우고 집에 가면 내일까지는 좀 이게 남아 있어. 화요일 수요일 되면 이제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해. 선도가 점점 떨어져서 이제 다음 날 와서 똑같은 거 하는데 처음 듣는 것 같아. 또 그래서 장성 못하는 거예요. 변질되는 거예요. 주야로 묵상을 하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철저하게 깨달으셔야 돼요. 그래서 이러이러한 문제들은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온전함을 이룸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해요. 제발 지식적으로 저와 같이 벌써 10년 지났다고 아는 척하지 마세요. 다 안다고 하시는 분은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진짜 아는 사람들은 안다고 안 해요. 내가 아는 게 정말 없는 것 같아요. 이래야 맞아요. 저도. 그렇죠. 저도 거의 이게 성경 좀 엄청 많이 했잖아요. 벌써. 하면 할수록 너무 엄청난 것들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아는 건 아주 눈곱만큼도 안 되구나 이런 생각밖에 안 저도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 눈덩이만큼 알죠? 안다고 하는 분들은 다 헛방이에요. 모르는 게 정확하게 맞아요. 미천합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는 표현이에요. 우리가 이 광대하신 하나님을 알면 얼마나 알까요? 병아리 눈물만큼이나 알까요? 그게 맞죠. 그런데 한 10년 저랑 계속 따라다니는 분들은 많이 들었으니까 이제 이거 말하면 다 아는 것 같아. 그리고 아는 것도 하네. 아유 오늘 좀 쉬어도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하나도 모르는 분들이에요. 아는 사람이 여기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아는 거예요. 아는 건 야다죠. 야다 코인원이야. 지금 현재로 일어나고 있어야 돼. 그래서 한 가운데 그런 것들이 팍팍 떠오르면서 삶이 해결되어지고 삶의 어떤 동기가 부여되면서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고 계시에 따라 움직여주고 이런 것들이 그대로 일어나면서 거기에서 나타나는 결과를 가지고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넘치고 이런 삶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머리를 좀 아는 사람들은 묵상하라고 하면 귀찮은 것이지. 드디어 다 아는 거예요. 왜 하라고 하냐고. 내가 그 정도 알고 깨달았으면 됐지. 뭘 또 하라고 하냐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게을러서 모르는 한 번도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비춰서 십자가를 통과해서 연합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그런 말 절대로 못 합니다. 할 수가 없어요. 자기 모습을 보니까 너무 부끄럽거든요. 아무리 봐도 그 광대함 앞에서 자기를 비춰보면 너무 창피하거든요. 저도. 그래서 이렇게 큰소리 하는 거 정말 힘들어요. 정말 너무 모르는 거예요. 그거 할 때마다. 아침에 할 때마다 성형님이 엊그저께 주신 말씀이 뭐였는가 하면 나는 내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그 말씀을 주셨어요. 아브라함한테나 주는 거지 나한테 그 정도로 제가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이거거든요. 니 생각 1도 넣지 말라 이런 뜻이거든요. 사실은 그 뭐예요? 내가 그만큼 아직도 내 생각대로 행하는 게 많다 이런 뜻이잖아요. 하나님 열받은 거죠. 뭔지 아시겠어요? 그 정도로 강대하신 분이에요. 여러분 여러분 좀 안다 생각되시면 그냥 머리를 땅으로 내려. 그래서 이 신앙의 흔들림과 넘어짐은 이 안으로 들어감으로써만 해결이 가능해요. 다른 방법 없어요. 열심도 안 되고요. 자기 힘도 안 되고 율법적인 노력이나 종교적인 활동이나 교회에서 요구하는 어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그런 걸로도 되는 게 아니고요. 오직 그 말씀을 나에게 비춰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만 가능한 거예요. 그게 말씀열이에요. 그래서 히브리 4장 기억나죠? 12절부터 16절까지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이 벌거벗은 듯 탁 드러나야 되고 그래서 그게 오면은 주님 앞에 가서 주님 내가 이 모습이니 나를 용서하소서 라고 돌이킬 때 그 피를 힘입고 여기에 갈 수 있잖아요. 나아가 연합할 수 있잖아요. 그걸 계속해야 실제화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다 안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 옆에서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거 맞고 넘어져 버려요. 못 일어나는 거예요. 그게 다 아는 사람인가요?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죠. 그러니까 지식적인 동의는 했으되 그냥 신선도가 떨어진 거예요. 자기 몸으로 체화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까 신앙이 밖에서 겉돌고 있는 거예요. 지식적으로 겉돌고 있는 거죠. 그래서 실패하면서 안 되니까. 3년 반 해도 안 되고 욕하고 들어가는 거죠. 여러분 왜 안 안 떠나가고 계신 거죠? 떠나가면 혹시 번개 맞을까? 봐 그런 거는 아니죠.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걸 자기 나름대로 다 됐다. 생각하면 그때부터 큰 코 다치는 거죠. 히브리 3장 13절, 14절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광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작업들이 끝까지 견고히 잡고가 돼요. 그래서 먼저 해야 할 것이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얼마 전에 이거 나눠드린 거 있죠. 말씀앞에. 서서 말씀을 나에게 비추고 그리고 그리스도 십자가에 함께 연합하고 부활연합해서 여기에 온전하게 이뤄야 되잖아요. 그거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고난 가운데 나를 안 비춥니다. 전부 환경을 쟤 때문에 그렇다, 이것 때문에 이렇다. 이 사람 때문에 그렇다. 내가 재수가 없어. 이렇다. 뭐 때문에? 내가 이 꼬라지가 됐다. 이렇게 하고 자신을 안 비춰요. 결정적인 순간에 의하면 그렇게 해서 넘어져 버립니다. 배교합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 와서 내가 이 모양이 됐다. 이렇게 말합니다. 놀랍게도 그렇게 되는 거죠. 잘 되고 있는 여러분은 뭔가요? 그럼 전부 다 안 돼야 되는 거 아닌가요? 말이 안 맞습니다. 앞뒤가 안 맞아요.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내 자신을 비춰 죄를 깨닫고 그게 둘째, 날이죠. 빛이 있으라 첫째, 날 말씀이 들어온 거잖아요. 그럼 깨달아서 내 게 보이면 갈라내고 그게 물러가야죠. 그게 십자가에서 묻혀내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는 셋째, 날에 싹이 올라와요. 생명. 이게 연합하는 싹이에요. 이게 그 일이 일어나야죠 그걸 지금 시간 안에서 어떻게 계속 나를 비춰서 내 죄가 드러나면은 회개하고 보혈을 응시할 때 바레시아 하라고 그러잖아요. 담대하게 나 왜? 그가 죄를 다 짊어졌기 때문에 그 보혈을 힘입어 나아가라고 그러잖아요. 어디로 나아가서 온전함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이잖아요. 연합해서 하나 되도록 들어가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다 안다고 그러잖아요. 10년을 넘게 배웠으니 다 안다고요. 아멘. 그래서 모르는 거예요. 나아가서 연합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결함을 받아서 이제 보여를 힘입어 나아가면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되는 영생을 지금 누리는 거예요. 지금 실제로 누리는 거예요. 천국을 지금 누리는 거예요. 그게 교제라는 거예요. 코에논이야. 이해 가시죠? 그래서 그런 성도들이 많으면 그런 성도들끼리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누린 것들을 서로 누리면서 또 서로 이게 누려지게 되는 거죠. 그게 우리의 사랑방이에요. 그래서 수직 코인원이냐 수평 코인원이냐 말씀을 드렸죠. 각자가 누린 하나님과의 교재를 서로 나눔을 통해서 그게 내 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그런데 그거 나눈 거를 비춰보고 내게 임한 그런 것들 쓰라 하니까 그것도 율법이라고 하네요. 아니 그냥 안 써도 돼요. 여러분 율법이라고는 하지 마시고 그냥 내가 게을러서 하기 싫습니다. 내지는 나는 시간이 없어서 그거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야지 그거 왜 하라고 하냐고 율법이라고 하고 공격은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심판을 당할 수도 있어요. 그러지 마세요. 율법이 아니에요. 이걸 누리기 위한 과정이죠. 묵상을 하면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거를 교재로 나누라고 하는 거예요. 성경에는 요한일서 입장이 그거예요. 서로 나누고 서로 사귀자고 한 거예요. 그거 하라고 그러는데 왜 그거 율법을. 그럼 성경책 찢어버려야지 그거. 아닌가요? 묵상하라고 그러면 율법인가요? 그럼 성경을 왜 읽어요? 다 율법이지. 말도 안 되죠.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율법이죠. 그래서 나는 사랑 안 할래? 뭐하러 해? 율법인데 그렇죠? 서로 사랑하시옵소서 부탁하면 되겠죠? 아멘 저야로 묵상을 하시시옵소서. 그러면 되겠어요? 그러면 좀 하겠어요? 여러분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제가 그래서 그렇게 나누고 수직으로 나누고 수평으로 나누다 보면 그게 내 안에 생명으로 자리를 잡아요. 그러면 점점 여기 나아가는 거예요. 그거 안 한 사람들은 여기 앉아서 자꾸 초보 초보 초보 가르쳐 달라고 져 달라고 져 달라고 하다가 바람이 조금만 불면 확 넘어가. 그래서 사도 우리 지난 시간에 했던 것처럼 골레세스 3장의 위의 것을 찾아라. 바로 그런 내용이에요. 위의 것은 그 아들 안에 거하는 삶이잖아요. 아들 안에 거하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영생을 말하고 그걸 지금 이 땅에서 그걸 찾으라 라는 것은 지금 이 땅에서 그 영생을 지금 살면서 누리게 하는 것을 찾으라 그 말이죠. 그건 뭐예요? 지금 내 삶을 말하는 거예요. 그게 내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지금 이걸 지금 여기서 누리고 있어야 되는 걸 말해요. 그걸 위의 것을 찾으라 라고 그 한 단어에 들어가 있다. 라는 거죠. 이해 가시죠? 영생의 삶이 지금 실제 현재로 일어나도록 하라. 니 삶이 되도록 하라. 그게 제가 삶이라고 누누이 말했죠. 그럼 다 안다고 하면서 또 안 비춰요. 그러면서 아침에 잠잠한 것만 또 하려고 물론 그래서 안 비추면 잠잠한 거 하면 비춰요. 너 회개 안 했지? 이렇게 비춰줘요. 그러면 잘못 들었나? 내가 이집사가 할 걸 왜 이렇게 또 가? 그래서 이런 그러니까 이 위의 것을 찾는 신앙은 매일 말씀을 묵상함을 통해서 현재화되는 현재 그게 말씀묵상이 주야로 말씀묵상하면서 말씀하는 교제하는 것이 영생의 교제잖아요. 그래서 그게 현재 실제로 이루어지는 삶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면 내 길이 형통하리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가 무엇을 하든지 네가 형통하리라. 여수가 1장 8절 잠언 1장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 안 하고 들어서 맨날 초보 앞에 초보 수준에 앉아서 왜 나는 안 이루어집니까? 내가 3년 반 넘었는데 왜 나는 안 됩니까? 욕하는 거예요. 그래서 착실하게 하신 분들은 다 되고 있는데, 안 된다고 욕하는 거야. 아주 끔찍합니다. 여러분 끔찍해. 제가 보면 다시는 안 된다. 해보세요. 그냥 꿀밤을 그래서 말순묵상과 교제를 통해서 이 삶이 현실이 되는 거예요. 현실이 될 제발 머리로만 알고 계시지 마시고 제발 좀 해 보십시오. 해보십시오. 그거는 명령이 아니죠. 해보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그러면 율법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매일 일상에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바로 영생의 공동체인 초대 교회에서 일어났던 그런 일들이 그냥 일어나는 그거 바로 영적인 부유함이라고 합니다. 제발 놓치지 마시고 우리는 지금 이제 기초의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어요. 더 이상 성경을 할 게 없어요. 사실 계속 안에 들어가면 그게 반복이에요. 그 내용이 반복되는 거요. 그럼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잖아요. 신인류. 신인류처럼 살아야지 자꾸 옛날 사람처럼
# 설교 요약 ### 주제 **신앙의 완성품: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통한 영생의 실제화** 이 설교는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가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율법적 행위나 종교활동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상호내주(相互內住)를 이루는 것이 신앙의 완성품이며,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서 누려야 할 영원한 생명임을 선포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의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매일의 말씀 묵상과 십자가를 통한 자기 부인으로 온전함에 이를 것을 촉구합니다. ### 성경 구절 - **요한복음 17:21-24** (핵심 본문) - 히브리서 7:18-19, 25 - 히브리서 10:14, 19-22 - 히브리서 5:12-14, 6:1-3 - 히브리서 9:14 - 창세기 2:1-3 - 베드로전서 3:18 - 골로새서 3장 - 로마서 6:12 - 로마서 7:5, 8, 11 ### 주요 내용 #### 1. 신앙의 완성품: 온전함과 하나 됨 - 신앙생활에는 명확한 완성 지점과 완성품이 있는데, 그것은 **온전함(完全)**입니다. [02:46 경] - 온전함이란 **하나님과 상호내주(相互內住)하여 하나가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요한복음 17:23)이 바로 완성품입니다. [03:47 경] - 이 완성품의 상태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사귐(교제, 코이노니아)**입니다. 하나님과 사귀고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상태를 증명하는 것이며, 이것이 영생을 지금 살고 있다는 실제적인 삶입니다. [04:39 경] - 창세기 2:1-3의 "다 이루었도다"와 요한복음 19:30의 십자가에서의 "다 이루었도다"는 같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로 죽어야 성령을 받고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거처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5:38 경] #### 2. 창세기의 일곱째 날과 완성 - 창세기 2장의 일곱째 날(샤바트)은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 안에 이루어진 완성**을 의미합니다. [06:38 경] - 완성품이란 하나님이 일을 해서 이룬 결과물로, **하나님이 그분의 자리(왕좌)에 앉으신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리에 계시고, 백성은 백성의 자리에 있는 것이 완성입니다. [07:37 경] - 이렇게 되었을 때가 **안식(쉼)**인데,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다스리고,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순종하고 따라주는 상태가 완성품입니다. [08:35 경] #### 3. 영광의 참된 의미 - 요한복음 17:22에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려 함"이라고 했는데, **하나가 된 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10:31 경] - 영광이란 **하나님만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순종 안에 계셨기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만 나타났고, 그것이 영광입니다. [11:30 경] - 하나님의 성품(완전한 자기희생과 사랑)이 나를 통해 완전히 나타날 때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온전히 하나가 되었을 때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11:30 경] - "내가 집사님을 보니 예수님 본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을 때, 손해를 보고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영광입니다. [20:25 경] #### 4. 히브리서의 핵심: 파레시아와 온전함 - 히브리서 10:19-22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하나님이 계신 곳)에 담력(파레시아)을 얻어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13:29 경] -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여 **하나님이 하나님 되도록, 우리가 우리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접하는 상태**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09:32 경] - 히브리서 9:14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를 말하는데,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를 통과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18:29 경] - 히브리서 7:18-19는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고 선포합니다. [35:20 경] #### 5. 율법의 한계와 십자가의 길 - 율법이나 계명, 규칙, 종교활동을 통해서는 **결코 온전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7:19는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고 명확히 말합니다. [34:30 경] - 많은 신자들이 구원받은 후 열심히 종교활동을 해서 온전함에 이르려고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피가 아닌 자기 힘으로 들어가려는 것**으로 예수님을 정면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29:57 경] - 로마서 7:5, 8, 11의 에피튀미아(욕망)는 율법이 사람들을 **속여서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려는 시도가 오히려 죽음을 가져옵니다. [27:10 경] - 율법 아래 있는 교회는 각종 규칙으로 성도들을 얽매어 놓아 **숨도 쉬기 힘들게** 만듭니다. 사순절 같은 기간에 빈틈없는 일정으로 성도들을 압박하지만, 이는 생명이 없는 공허한 활동입니다. [35:20 경] #### 6. 어린아이 신앙에서 장성한 신앙으로 - 히브리서 5:12-14는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터인데...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책망합니다. [44:43 경] - 많은 신자들이 10년, 20년을 믿어도 여전히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저게 뭡니까?" 하면서 계속 기초공사만 반복합니다. [46:33 경] - 히브리서 6:1-2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고 촉구합니다. [47:29 경] - 어린아이 같은 신앙은 **언제든지 넘어지고 타락하며 배교할 수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만 알고 실제 삶에 적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1:06 경] #### 7. 매일의 말씀 묵상과 십자가 - 신앙의 완성은 **매일 말씀을 묵상하여 자신을 비추고, 죄를 깨닫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연합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48:25 경] - 히브리서 3:13-14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64:52 경] - 말씀 묵상의 과정은: - **첫째 날(빛)**: 말씀이 들어옴 - **둘째 날(분리)**: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 죄를 깨닫고 갈라냄 - **셋째 날(생명)**: 십자가에 묻히고 부활하여 연합의 싹이 올라옴 [65:52 경] - 많은 신자들이 고난 중에 **자신을 비추지 않고 환경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다가 넘어집니다. [65:52 경] #### 8. 사랑방 교제의 중요성 - 각자가 하나님과 수직적으로 교제(코이노니아)한 것을 **사랑방에서 수평적으로 나눔**으로써 영생이 실제화됩니다. [67:50 경] - 요한일서의 핵심은 **"서로 나누고 서로 사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영적 부유함입니다. [72:37 경] - 묵상한 내용을 나누고 기록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영생을 누리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생명이 내 안에 자리잡고 온전함에 나아갑니다. [68:48 경] - "다 안다"고 하면서 묵상과 나눔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진정 아는 사람은 "내가 아는 게 정말 없는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59:08 경] #### 9. 지금 여기서의 영생 - 영생은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루어야 할 우리의 사명**입니다. 성령이 오신 목적이 바로 이것을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04:39 경] - 디도서 3:7처럼 지금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누리라**고 성령님이 우리를 몰아가십니다. [29:01 경] - 골로새서 3장의 "위의 것을 찾으라"는 명령은 **아들 안에 거하는 영생을 지금 이 땅에서 살면서 누리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69:44 경] - 말씀 묵상을 통해 영생의 교제가 현재 실제로 이루어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수아 1:8과 시편 1편의 "네 길이 형통하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70:40 경] #### 10. 경고와 권면 -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큰 코를 다칩니다**. 지식적 동의만 했을 뿐 체화하지 못한 신앙은 조그마한 외풍에도 넘어집니다. [63:52 경] - 신선도가 떨어진 지식은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배운 것을 수요일쯤 되면 까먹고, 다음 주에는 처음 듣는 것 같아하는 것이 초보 신앙의 특징입니다. [58:16 경] - 히브리서 기자가 편지를 쓴 이유는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타락하거나 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3:58 경] - 하나님이 "나는 네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창세기 17장)고 말씀하신 것은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61:59 경] ### 적용 및 결단 -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초보 단계에 머물지 말고,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 매일 말씀을 묵상하여 자신을 비추고, 십자가를 통과하여 하나님과 연합하는 실제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다 안다"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생의 풍성함을 누려야 합니다. - 사랑방 교제를 통해 서로의 영적 체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 율법적 종교활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담대히(파레시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을 살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