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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제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습니다. 비행기는 아주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낮아졌다 높아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놀란 승객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비행기가 널을 뛸 때마다 너나할 것 없이 탄식을 터뜨렸습니다. 무의식중에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저 역시 두 손을 모은 상태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승객들 가운데 누구도 조종실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조종간을 빼앗으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조종사에게 비행기를 맡길 수 없다고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조종사가 비행기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종사를 믿고 온전히 맡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부인할 수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시고, 가장 잘 인도해 주실 수 있고, 가장 완벽하게 보호해 주실 수 있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고백까지 하는 하나님에게만큼은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경영하시도록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조종석에서 내려오라고 요구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조종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겠다고 외칩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환경과 상황과 조건, 부와 명예와 권세와 자랑과 건강 등은 하나님께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를 책임지시기 위해서 베풀어주시는 수단들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수단들이 단 한 가지도 남지 않고 다 사라져 버린 절대절망의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우리를 책임져 주실 수 있으십니다.
보호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풍요와 기름짐과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만족할 수 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참된 만족, 기쁨, 즐거움,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아침 안개 같은, 풀의 꽃 같은, 신기루 같은 수단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합니다. 매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수단들을 당신만의 방법으로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합니다.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바라볼 수 있어야합니다. 믿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순간순간, 무엇을 바라보십니까?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십니까? 환경입니까? 자신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십니까?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십니까? 절대 주권과 탁월한 섭리를 통해서 우리내 인생을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삶 전체를 통째로, 온전히 맡기셨습니까?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도 허물과 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대홍수를 통해서 심판을 받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하늘 높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도 얼마든지 삶을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을 당신 한 분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고, 맡길 수밖에 없는 의존적인 존재로 지으신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의도적인, 의지적인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했습니다. 결국 온 지면에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인류의 소망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제아무리 좋은 환경들이 갖추어져 있다할지라도 절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그 무엇을 통해서도 참된 만족과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도, 누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우상을 팔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 주셨습니다. “네 나라와 네 친척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나라로 만들어 주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너의 이름을 빛나게 할 것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주는 사람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내가 저주하겠다.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12:1-3)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 다시 당신이 친히 간섭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믿음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마1:1)라는 선포대로, 아브라함에서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완성되는 참된 구원과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당신의 창세전 작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작정을 마음에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상황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결코 잊지 말아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 수 있어야합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역사가 다윗에게 이어지기도 전인 사사 시대에 이르러 대가 끊어질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환경과 상황과 조건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수시로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너무나 자주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고 사신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친히 일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로 그때, 인류를 위해서 예비 되어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 스러지고 있던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당신의 절대주권을 나타내셨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기는커녕 자신의 생각에 옳은 대로만 행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지극히 육신적인 자신의 정욕만을 추구하고 있던 당신의 성민에게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영원히 당신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도록 저주하셨던 모압 백성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불러주셨습니다. 룻을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다윗에 이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당신이 친히 역사하셔서 완성하시는 신본주의 나라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부어진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된다 할지라도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혜 안에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가장 탁월한 하나님의 평강,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세상 모든 미사여구를 다 동원한다 할지라도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기름진 삶, 풍요로운 삶,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한편,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1:16-17)라고 말씀합니다.
룻은 고향으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재혼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편안한 안식처를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친척은 물론 자기 족속들이 섬기고 있던 신까지도 떠나기로 결단했습니다. 당장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늙은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기로 결단했습니다. 만에 하나 자신이 약속을 어기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벌을 내리신다 할지라도 기꺼이 받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효성과 애정이라는 차원을 뛰어넘는 완전한 자기 부인입니다. 어떤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 할지라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처녀 수태 고지를 받은 마리아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a)라는 고백을 연상할 수 있는, 참으로 놀라운 신앙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는 룻이 “여호와Jehovah”라는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해서 맹세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성호는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들만 사용하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고유한 명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이었던 룻이 사용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① 먼저,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② 또 자신을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백성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룻은 어디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절대 절망의 순간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라고 약속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의지하고 신뢰했습니다. 특히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라는 말씀에 따르면, 룻의 마음에 충만했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끊어져 있던 당신의 역사를 스스로 이어가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때와 마찬가지로, 신실한 룻의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기만 한 우리를 무제한적으로 책임져 주시는 당신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떠나버린 타락한 세상에서 당신만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안에 흘러넘치는 복을 부어주기 원하십니다. 우리를 유일하게 책임질 수 있는 당신을 붙잡기 원하십니다.
당신 한 분만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맡겨주신 자리를 지키기 원하십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오직 당신 한 분만을 위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떨어진 이삭을 주워 허기진 배를 채울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도 괜찮습니다. 바로 그때, 믿음으로 서 있는 그 자리에 당신의 기업이 이어지고, 생명이 피어나고, 당신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당신 한 분만 붙잡는 믿음의 사람들을 당신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 역사의 중심에 세워주십니다. “자기 신뢰”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불신입니다.
노아는 홍수가 육지 전체를 덮었을 때 항해 일지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항해하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단 우리가, 병들고 왜곡된 자아 신뢰로부터 벗어나면 한계가 없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한하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했던 삼손은 당나귀 턱뼈 하나만으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쳐 죽였습니다. 그가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한 대적들의 숫자가 많든 적든, 무기가 좋든 나쁘든 결과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승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지독하게 증오하면서도 감히 대적하겠다는 마음 자체를 갖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가 나타났다는 소식만 들려와도 극도의 긴장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떨었습니다. 그를 피하여 숨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는 그와 함께 동행 해 주시는 한, 그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는 매달려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궤도를 따라서 부드럽게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지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20:1)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적들의 잘 훈련된 군사력과 풍부한 군수 물자와 조직적인 힘 등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당신이 친히 사랑하는 백성들의 군대장관이 되셔서 싸워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병거와 군사들이 싸우려고 달려 나올지라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에 대한 흔들지 않는 믿음으로 무장했던 모세는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던 백성들을 향해서 “두려워하지 마시오! 굳게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베푸실 구원을 보시오. 오늘이 지나면 이 이집트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될 것이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워 주실 것이오.”(출14:13b-14)라고 외쳤습니다. 두려워 떨지도 말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잠잠히 서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놀라운 구원 역사를 지켜보기만 하라고 외쳤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희한한 광경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서셨습니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흑암 속에 집어넣으셨습니다. 창일하게 흐르고 있던 물을 세우셨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젖어 있던 땅을 말리셨습니다. 홍해 한 가운데로 길을 내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사방이 꽉 막혔던 환난으로부터 건져 주셨습니다.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탑스칼프Topscalp 개업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반석이십니다. 구원이십니다. 산성이십니다.
피난처이십니다. 생명의 길을 여십니다. 지치고 곤한 인생이 벼랑 끝에 섰을 때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가 계획하는 것마다 잘될 때는 물론 아무것도 되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조차 없는 외롭고 고독한 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의 곁을 지켜주십니다. 당신을 인정하실 때는 물론 당신을 뒷전으로 외면할 때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동행 해 주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당신을 구박하는 동안에도 떠나실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항상 떠나지 않으시고 곁을 지켜주십니다.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무수히 많은 환난과 시험을 넉넉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십니다. 우리는 부와 명예와 권세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집중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허락해 주신 기회입니다. 탑스칼프Topscalp를 통해서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게 될지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위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만을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는 믿음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만 투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든, 이유를 따지지도 묻지도 않을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위험과 수고와 어려움이 클수록 어떤 제한도 없으신 하나님을 더욱 더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께 더욱 더 철저하게 헌신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수시로 올라와 유혹하는 가장 강력한 대적 곧 “자기 신뢰”라는 원수와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자신의 인생은 물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탑스칼프Topscalp의 운영까지도 모두 다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드릴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탑스칼프Topscalp의 주인 되셔서 운영해 주시는 복,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필요까지도 충분하게 풍성하게 윤택하게 기름지게 채워주시는 복, 바로 그 복을 필요한 열방을 향해서 흘려보내는 놀라운 복, 무엇보다 탑스칼프Topscalp를 섬기는 모든 순간 참된 만족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