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북경의 남동성당에서 서양식 원근법과 음영법으로 그려진 성모상과 서양화 기법을 보았다.
용주사에 서양식 후불탱화가 그려진 이야기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신 정조의 원찰이 되었다.그런 연유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 명필서예가.건축가. 궁중화가들이 용주사 불사에 참여하였다.
그 중에서도 단원 김홍도는정조의 명을 받들어 부모은중경 변상도를 그렸으며 사곡 병풍을 남겼다.특히 대웅보전은 정조대왕의 어필이다.
그리고 대웅보전에 모셔진 후불탱화는 국내 유일한 김홍도가 직접 제작한 탱화로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약사여래불 삼세여래불을 본존으로 모신 삼세여래불 탱화이다.삼세여래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사천왕을 모시고 8대보살 10대 제자를 안배하여 모신 아름다운 불화이다.
세종대왕이 내불당에 모신 삼존불과 같은 구도이다.
일반 탱화와 다른 점은 서양화 기법에서 보이는 음영법과 원근법을 이용하여 제작된 불화라는 점이다.특히 김홍도는 탱화 제작을 앞두고 북경의 4대 성당중 하나인 남동성당의 성모상과 서양식 성화들을 보고 불화제작에 그 기법들을 적용한 것이다.
탱화라는 말은 본래 티벳말 탕카에서 유래된 것이다.불전에 후불탱화가 그려진 곳은 티벳.몽골.한국뿐이다.중국.일본은 불상뒤에 광배만 있지 탱화는 없다.불상 뒤로 탱화를. 그리는 것은 밀교양식인 것이다.우리나라도 신라.고려때는 후불탱화가 없었다.부석사 무량수전 처럼 고려 법당에는 광배만 있고 후불탱화는 없었다.고려말 몽골지배를 받으면서 티벳불교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문화는 중국의 영향 못지 않게 몽골.티벳으로 이어지는 문화벨트가 한 축을 이룬다.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아 대승불교 미술과 조각들이 형성되었듯이 성당의 서양식 성모상 성화의 영향을 받아 용주사 후불탱화가 이루어 진것이다.
불화를 그리는 사람을 불모.혹은 금어라고 부른다.부처를 만들어 내는 부처의 어머니 라는 뜻이다.
문화는 교류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불교도 이 땅에 전해져서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지만 또한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불교의 모습도 많이 변하게 된다.
사람도 살아 가면서 누구를 인연 맺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큰 변화를 격게 마련이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짓는 가장 큰 죄는 상대방을 실망 시킨 죄 라고 한다.나의 잘못된 생각과 거친 말과 어리석은 행동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실망을 주게 된다.
착한 생각과 지혜로운 말 훌륭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불심을 심어줄수 있다면.‥우리 삶이 복을 짓고 지혜를 닦는 아름다운 복전이 될것이다.
사진 1.2.3.4번‥서양화 기법으로 그려진 용주사의 후불 탱화와 부분도이다.
사진 5번은 김홍도가 그린 신중탱화와 본존 동진보살 부분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