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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이사야 7:1–17 (참조: 역대하 28:1–8, 마태복음 1:18–25, 로마서 8:31–39)
핵심 명제: 성도의 진정한 위기는 외적 군사적 포위망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속 권력(앗수르)을 의지하려는 불신앙의 공포에 있으며, 표적을 거부하는 인간의 완악함과 종교적 위선을 뚫고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 속에 내던지신 주권적 구원의 닻은 처녀(알마)의 복중을 통해 성육신하신 영원한 동행, 곧 임마누엘(עִמָּנוּ אֵל)이다.
1. 서론: 바람에 흔들리는 삼림과 예루살렘의 공포
이사야 6장에서 제단의 불타는 숯불로 입술을 정결케 함을 받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힌네니 쉘라헤니)” 자원했던 이사야는, 이제 역사의 가장 어둡고 위태로운 정치적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파송받습니다(1강).
때는 주전 734년경, 웃시야의 손자이자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Ahaz)’가 남유다의 왕위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은 팽창하는 앗수르 제국(디글랏 빌레셀 3세)의 무자비한 철권통치 아래 전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북방의 아람 왕 르신(Rezin)과 북이스라엘의 왕 르말리야의 아들 베가(Pekah)가 반(反)앗수르 군사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그들은 남유다를 이 동맹에 강제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아하스가 주저하자, 연합군을 결성하여 남유다를 침공해 다윗 왕조를 폐위시키고 꼭두각시 군주인 ‘다브엘의 아들’을 유다의 왕으로 옹립하려는 정권 전복 쿠데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알라 레친 멜렉-아람 우-페카흐 벤-레말리아후... 알-예루샬람)" (사 7:1)
아람의 군대가 유다의 북쪽 국경인 에브라임에 진을 쳤다는 소식이 왕실에 전해졌을 때,
성경 기자는 다윗 왕실과 백성들이 느꼈던 원초적 공포를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와야누아 레바보 우-레바브 암모 케-노아 아체이-야알 미-페네이-루아흐)" (사 7:2)
다윗 왕조의 등불이 꺼질 위기였습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당당히 섰던 조상 다윗의 담대함(다윗 1강)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태풍 앞에 바들바들 떠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성전 곳간의 은금을 털어 잔인한 앗수르 제국 황제에게 뇌물로 바치며
구원을 구걸할 비열한 외교적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왕하 16:7–8).
바로 그 배도의 문턱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사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저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라!"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아하스의 비틀린 불신앙을 꺾으시기 위해,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네가 원하는 대로 기적의 표적(오트)'을 구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위선적인 경건의 가면을 쓰고
"나는 표적을 구하지 않겠나이다" 거절했던 아하스!
그 완악한 불신앙의 흑암을 뚫고,
온 인류 구속사의 지평을 뒤흔드는 영원한 구원의 닻이
선지자 이사야의 입술을 통해 역사 속에 투하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제2강은 숲이 바람에 흔들리듯 무너진 믿음의 실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맏아들 '스알야숩(שְׁאָר יָשׁוּב)'의 표적적 동행, 연기 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들의 허망함, 아하스의 가짜 경건과 표적 거부의 죄악, 히브리어 동정녀 '알마(עַלְמָה)'의 신학적·언어학적 규명,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복음의 심장 '임마누엘(עִמָּנוּ אֵל)'의 구속사적 신비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윗못 수도 끝의 만남(1) 케-노아 아체이-야알(כְּנ֥וֹעַ עֲצֵי־יַ֖עַר): 공포에 질린 왕실 (사 7:2)
누아 (נוּעַ $\longrightarrow$ 와야누아):
'휘청거리다, 떨다, 비틀거리다(Shook/Trembled)'.
케-노아 아체이-야알 미-페네이-루아흐:
"거센 돌풍(루아흐) 앞에 숲의 나무들(아체이-야알)이 뿌리째 뽑힐 듯 흔들림 같이."
아하스 왕의 심장(레바브)과 백성들의 마음이 공포의 강풍에 사정없이 흔들렸습니다.
왜 흔들립니까?
보이지 않는 영원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은 인생은, 눈앞에 닥친 문제의 바람 한 줄기에도 영혼 전체가 산산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갈대와 같기 때문입니다.
(2) 스알야숩을 데리고 나아가라 (사 7:3)
하나님은 흔들리는 아하스를 찾아가라 이사야에게 명하시며, 뜻밖의 동행자를 지정하십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앗타 웨-쉐아르 야슈브 베네카)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체 리크라트 아하즈)" (사 7:3)
세탁자의 밭 큰길: 예루살렘 성벽 밖, 포위 작전에 대비하여 수도 공급망을 점검하던 군사적 긴장의 현장.
스알야숩 (שְׁאָר יָשׁוּב, She’ar-jashub):
이사야의 맏아들의 이름으로, "남은 자가 반드시 돌아오리라(A remnant shall return)"는 뜻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1강에서 선포되었던 '거룩한 씨, 그루터기 사상(사 6:13)'의 살아있는 시각적 표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오는 선지자의 모습을 통해 아하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셨습니다:
"아하스야, 전쟁이 일어나도 심판 속에서 남은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다윗 왕조는 결코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3. 핵심 원어 강해: 우드 무샬(ע֥וּד מֻשָּׁ֛ל) —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
이사야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아하스 왕을 향해 하나님의 첫 번째 위로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힛샤메르 웨-하쉬케트)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알-티라 우-레바브카 알-예라크 미-쉬네이 자네보트 하-우딤 하-아쉐님 하-엘레)" (사 7:4)
{הִשָּׁמֵ֣ר\ וְהַשְׁקֵט֩\ אַל־תִּירָ֗א\ וּלְבָבְךָ֙\ אַל־יֵרַ֔ךְ}
{מִשְּׁנֵ֨י\ זַנְב֧וֹת\ הָאוּדִ֛ים\ הָעֲשֵׁנִ֖ים\ הָאֵ֑לֶּה׃}
{"힛샤메르 웨-하쉬케트, 알-티라 우-레바브카 알-예라크!}
{미-쉬네이 자네보트 하-우딤 하-아쉐님 하-엘레!"}
(1) 힛샤메르 웨-하쉬케트 (הִשָּׁמֵר וְהַשְׁקֵט): 삼가며 잠잠하라!
샤마르 (שָׁמַר 힛샤메르): 니팔(수동/재귀형) 명령으로, "네 스스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영혼을 단속하라!"
샤카트 (שָׁקַט $\longrightarrow$ 웨-하쉬케트): '고요하다, 침묵하다, 소동을 멈추다(Keep calm)'.
인간적 잔꾀(앗수르와 동맹을 맺으려는 조급함)를 멈추고, 입을 닫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잠잠히 바라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2) 자네보트 하-우딤 하-아쉐님 (זַנְבוֹת הָאוּדִים הָעֲשֵׁנִים): 불 꺼진 부지깽이 꼬리들
우드 (אוּד): 아궁이나 화로에서 땔감으로 쓰다가 불이 붙은 나무 막대기(부지깽이).
자나브 (זָנָב $\longrightarrow$ 자네보트): 꼬리(Tail).
아샨 (עָשָׁן $\longrightarrow$ 아쉐님): 연기만 폴폴 나는(Smoking).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는 아하스의 눈에는 온 유다를 불태울 맹렬한 맹수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의 눈에 그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다 타버리고 끄트머리만 남아 연기만 쿨럭쿨럭 나는, 불꽃도 화력도 완전히 상실된 쓸모없는 부지깽이 꼬리 조각"에 불과했습니다!
7절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판결이 떨어집니다:"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로 타쿰 웨-로 티헤예)!"
4. 깊은 내면 해부: 아하스의 거짓 경건과 표적 거부
하나님은 흔들리는 아하스 왕의 믿음을 세워주시기 위해, 성경 전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백지수표 같은 은혜를 제안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샤알-레카 오트 메-임 야훼 엘로헤이카 하에메크 쉐알라 오 하그베아 레-마알라) 하시니" (사 7:10–11)
하에메크(음부의 깊은 곳)에서 하그베아(하늘의 높은 곳)까지:
"네가 원한다면 스올(지하)의 문을 열어 보여주어도 좋고, 하늘의 별을 떨어뜨려 보여주어도 좋다! 네가 믿을 수만 있다면 우주 전체에서 그 어떤 기적의 표적(오트, אוֹת)이라도 구하라!"
그러나 이 거대한 은혜의 초청 앞에서, 아하스 왕은 역사상 가장 위선적인 거절의 답변을 내놓습니다: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로 에쉬알 웨-로-아낫세 에트-야훼) 한지라" (사 7:12)
{לֹ֣א\ אֶשְׁאַ֔ל\quad וְלֹֽא־אֲנַסֶּ֖ה\ אֶת־יְהוָֽה׃}
{"로 에쉬알, 웨-로-아낫세 에트-야훼"}
신명기 6장 16절의 악마적 왜곡
아하스는 율법("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을 그럴듯하게 인용하며 정중하고 경건한 신자인 척 연기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추악한 불신앙의 가면'이었습니다.
아하스가 표적을 구하지 않은 진짜 이유: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앗수르 제국 황제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사신을 보내 뇌물을 바치고 군사 원조를 요청하기로 작정하고 있었습니다(왕하 16:7: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올라와 나를 구원하소서").
만약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여 기적이 나타나면, 앗수르를 의지하려던 자신의 세속적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불편한 순종의 결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작정했을 때, 가장 거룩하고 종교적인 언어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합니다.
이사야는 분노하여 다윗 왕실의 위선을 꾸짖습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쉬므우-나 베이트 다위드)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키 탈우 감 에트-엘로하이)" (사 7:13)
5. 핵심 원어 강해: 알마(עַלְמָה) — 처녀가 잉태하리라
인간 왕 아하스는 표적 구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포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불신앙과 완악함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행진을 결코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하스의 손에서 결정권을 빼앗으시고,
당신 자신의 무조건적인 주권으로 온 우주를 뒤흔들 영원한 표적을 인류 역사 한복판에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라켄 이텐 아도나이 후 라켐 오트)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힌네 하-알마 하라 웨-욜레데트 벤)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웨-카라트 쉐모 임마누엘)" (사 7:14)
{לָ֠כֵן\ יִתֵּ֨ן\ אֲדֹנָ֥י\ ה֛וּא\ לָכֶ֖ם\ א֑וֹת}
{הִנֵּ֣ה\ הָעַלְמָ֗ה\ חָרָה֙\ וְיֹלֶ֣דֶת\ בֵּ֔ן\ וְקָרָ֥את\ שְׁמ֖וֹ\ עִמָּ֥נוּ\ אֵֽל׃}
{"라켄 이텐 아도나이 후 라켐 오트!}
{힌네 하-알마 하라 웨-욜레데트 벤, 웨-카라트 쉐모 임마누엘!"}
(1) 하-알마 (הָעַלְמָה): 그 처녀 (The Virgin)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알마(עַלְמָה)'가 처녀(Virgin)가 아니라 단순히 '젊은 여성(Young woman)'을 뜻하며, '베툴라(בְּתוּלָה)'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았으므로 동정녀 탄생이 아니라고 억지 주장을 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과 성경 전체의 용례는 이 거짓을 단칼에 분쇄합니다:
정관사 하(הָ, The):
본문은 막연한 어떤 여자가 아니라 "그 처녀(The Virgin)"로 특정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그 여자의 후손'을 낳을 바로 그 특별한 여인을 가리킵니다.
구약의 용례:
구약성경에서 '알마'는 총 7번 사용되는데(창 24:43, 출 2:8, 시 68:25, 잠 30:19, 아 1:3, 6:8, 사 7:14), 단 한 번도 남자를 안 결혼한 여인에게 사용된 적이 없으며 언제나 '결혼하지 않은 순결한 처녀'만을 지칭했습니다.
반면 '베툴라(בְּתוּלָה)'는 때로 요엘 1장 8절처럼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에게도 사용될 수 있는 모호함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령의 순결한 동정녀를 가리키기에 '알마'는 가장 흠 없는 정확한 단어였습니다.
70인역(LXX) 헬라어 번역:
그리스도 오시기 250년 전,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던 유대인 랍비 70인 학자들은 이사야 7장 14절의 '알마'를 의심의 여지 없이 남자를 전혀 모르는 순결한 처녀를 뜻하는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 — Virgin)’로 번역했습니다!
신약의 마태복음 1장 23절이 인용한 단어가 바로 이 '파르테노스'입니다.
표적(오트)으로서의 절대성:
젊은 여자가 남자를 알아 임신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일상적인 자연 현상이지,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기적의 표적(오트)'이 될 수 없습니다.
남자의 씨(정액)를 받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순결한 동정녀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만이 온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우주적 표적(오트)이 되는 것입니다!
6. 핵심 원어 강해: 임마누엘(עִמָּנוּ אֵל)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은 인류 구원사의 최고 절정이자 복음의 심장입니다:
{עִמָּ֥נוּ\ אֵֽל}
{“임마누(עִמָּנוּ, 우리와 함께) + 엘(אֵל, 하나님이시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1) 임마누엘의 2중적 역사적 지평
이사야의 예언은 언제나 '당대의 역사적 1차 성취'와 '종말론적 메시아의 궁극적 성취'라는 2중적 지평(Prophetic Foreshortening)을 지닙니다:
| 구분 | 1차적 역사적 징조 (사 7:15–16, 8장) | 궁극적 구속사적 성취 (마태복음 1장) |
| 태어난 아이 | 이사야의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 (혹은 히스기야의 탄생) |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 |
| 모친의 상태 | 당시 미혼이었던 이사야의 예비 신부(결혼 전 처녀) |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한 순결한 ‘동정녀 마리아’ |
| 역사적 표적 | 아이가 선악을 분별하기 전(2–3년 내)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멸망함 |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탄의 제국을 영원히 멸하심 |
| 임마누엘의 실체 |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의 그림자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참 하나님’ (성육신) |
이사야 7장 16절의 예언대로, 그 아이가 젖을 떼고 선악을 분별하기 전인 불과 2년 뒤(주전 732년), 앗수르가 쳐내려와 다메섹(아람)을 멸망시켰고, 이어 북이스라엘 사마리아마저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아하스를 위협하던 두 부지깽이는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의 아이는 불완전한 모형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임마누엘은 700년 뒤, 갈릴리 나사렛의 동정녀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7. 심판의 역설: 버터와 꿀, 그리고 앗수르의 범람 (사 7:15, 17–25)
그러나 아하스가 하나님의 표적을 믿음으로 받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했기에, 임마누엘의 예언 뒤에는 서글픈 징계의 현실이 뒤따릅니다: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버터)과 꿀을 먹을 것이라(헤므아 우-데바쉬 요칼)...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야비 야훼 알레이카... 에트-멜렉 앗슈르)" (사 7:15, 17)
버터와 꿀 (헤므아 우-데바쉬):
풍요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는 전쟁으로 인해 농경지가 완전히 황폐해져 곡식을 추수하지 못하고, 버려진 황무지에서 소와 양 몇 마리가 풀을 뜯어 젖을 내고 야생 벌들이 만든 꿀이나 겨우 주워 먹는 '전쟁 후의 황폐한 결핍의 음식'을 뜻합니다(21–22절).
앗수르의 털 깎는 삭도 (20절):
아하스는 앗수르를 구원자로 믿고 의지했으나, 하나님은 아하스가 돈을 주고 빌려온 바로 그 앗수르 왕을 '면도칼(삭도, 타아르)'로 삼으사, 유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과 수염까지 삭삭 밀어버리는 치욕적인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영적 법칙:
하나님 대신 의지했던 세상의 우상(앗수르)은,
반드시 돌아서서 나를 찌르고 베어버리는 가장 잔인한 면도칼이 되어 돌아옵니다.
8. 구속사적 절정: 말씀이 육신이 되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아더 핑크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사야 7장 14절의 임마누엘 예언을,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 언약이 역사 속에 완벽하게 실체화된 성탄의 신비이자 기독교 복음의 절대적 심장으로 해설합니다.
마태복음 1장 21–23절을 펼쳐보십시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첫 아담의 타락과 마지막 아담의 동정녀 탄생
[ 첫 아담의 혈통 ] ── 남자의 정액(남자의 씨)으로 전수되는 원죄(Original Sin)의 오염
↓
모든 인류가 죄 아래 갇힘 (롬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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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정녀 탄생 (알마) ] ── 남자의 씨를 배제하고, 성령의 권능으로 잉태됨 (눅 1:35)
↓
죄의 오염이 전혀 없는 "거룩하신 자(토 하기온)"
↓
[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이요 참 인간! ]
왜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알마)’의 몸에서 태어나셔야만 했습니까?
만약 예수님이 아담의 타락한 피를 이어받은 인간 남자의 씨로 태어나셨다면, 주님 역시 원죄를 가진 죄인으로 태어나 남의 죄는커녕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는 인간 남자의 개입을 완전히 차단하시고,
동정녀 마리아의 복중을 거룩하게 성별하사,
죄의 오염이 단 0.001%도 없는 온전한 인간의 육체를 조성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멀리 하늘에 계시며 인간의 고통을 관망하는 초월자가 아니셨습니다.
주님은 흙먼지 날리는 인간 역사의 비참한 진흙탕 속으로 친히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선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스케노센 엔 헤민 —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우리의 가난과 질병과 슬픔과 배신을 온몸으로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의 모든 죄의 담을 단번에 허물어버리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은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영원한 임마누엘의 약속을 완성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에고 메스 휘몬 에이미 파사스 타스 헤메라스)!"
9. 목회적 적용과 묵상(1) 바람에 흔들리는 숲처럼 떨지 말고 '임마누엘의 반석' 위에 서라
사업의 위기, 건강의 적신호, 자녀의 문제,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이 당신의 삶을 포위하고 있습니까?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처럼 바들바들 떨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힛샤메르 웨-하쉬케트)!"
당신을 위협하는 세상의 거대한 대적들은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합니다.
문제의 파도를 보지 말고, 문제 너머에서 일하시는 온 우주의 주관자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임마누엘),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롬 8:31)!
(2) 아하스의 '거짓 경건(위선)'을 벗어던지고 온전한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라
우리는 종종 아하스처럼 행동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척 기도의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서,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인맥, 돈, 꼼수라는 '앗수르의 군대'를 더 신뢰하며 동분서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나이다"라는 핑계 뒤에 숨겨진 당신의 완악한 불신앙을 찢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신뢰하십시오.
세상의 썩은 동아줄을 끊어내십시오.
하나님의 백지수표 같은 약속 앞에 당신의 전 생애를 던지는 거룩한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십시오.
(3) 세상이 주는 독주 대신 '임마누엘의 동행'을 영원한 기업으로 삼으라
세상이 주는 부귀영화와 권력은 앗수르의 칼날처럼 언젠가 당신을 배신하고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오직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최고의 축복은 환경의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지금 함께 계신다(임마누엘)"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질병의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실패의 잿더미 속에 앉아 있을 때에도
주님은 당신의 손을 꼭 쥐고 그 고통의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영원한 동행이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어떤 흑암 속에서도 당신을 마침내 영광스러운 승리의 아침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10. 결론: 흑암의 땅에 비치는 큰 빛을 향하여
이사야 7장의 막이 내리며,
아하스 왕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하는 파멸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유다 땅에는 앗수르의 범람이라는 쓰디쓴 전쟁의 삭도가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군주의 참담한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허공에 쏘아 올리신 거룩한 화살,
곧 ‘임마누엘의 약속’은 역사의 어둠을 뚫고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사야 9장의 문이 열립니다.
앗수르의 말발굽에 가장 먼저 짓밟혀 피눈물을 흘리던 최북단 변방,
멸시와 천대를 받던 흑암의 땅 ‘스불론과 납달리, 이방의 갈릴리’!
그 칠흑 같은 사망의 그늘진 땅에,
마침내 하늘의 영원한 태양이 솟아오르며
온 우주를 뒤흔드는 구속사의 거대한 여명이 밝아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전쟁의 모든 군화와 피 묻은 복식이 불에 살라지고,
다윗의 보좌 위에 영원한 평강의 나라를 세우실
한 아기, 한 아들의 탄생!
천상의 천군 천사들이 무릎 꿇고 외친 그 메시아의 네 가지 신적 이름: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페레 요에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엘 기보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아비-아드), 평강의 왕이라(사르-샬롬) 할 것임이라!"
제3강: 흑암에 비친 큰 빛과 평강의 왕 — 한 아기의 탄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