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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는 즐겨 읽는 책인데 워닥 방대하여 시간되는 데로 조금씩 읽고 있다.
그 중 백미는 아래 <규염객전>이 아닌가 한다. 일설에는 규염객이 바로 연개소문의 화신이라고 한다. 다음에 시간되는데로 재미 있는 글을 골라 올리도록 할 생각이다. 낙민
太平廣記 193권 豪俠一 虬髯客
규염객(虬髯客)
수나라 양제는 강도로 행차하면서 사공(司空) 양소(楊素)를 서경(西京 장안)의 유수로 임명했다. 양소는 세도가의 집에서 귀하게만 자라서 세간의 일을 잘 모르고 있었으며, 마침 난세를 당하여 천하에서 아무리 권세가 크고 명망이 높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사치와 호화를 마음껏 부려 예법도 다른 신하와 다르게 했다. 그는 공경(公卿) 등의 벼슬아치들이 용무가 있어 찾아 오거나 손님들이 용무가 있어 찾아오더라도 언제나 의자에 걸터앉은 채 만났으며, 미녀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시녀들을 나란히 세우는 모습은 자못 황제를 참월할 정도였으며 만년에는 그런 버릇이 더욱 심해졌다.
隋煬帝之幸江都也,命司空楊素守西京。素驕貴,又以時亂,天下之權重望崇者,莫我若也。奢貴自奉,禮異人臣。每公卿入言,賓客上謁。未嘗不踞牀而見。令美人捧出,侍婢羅列,頗僭於上。末年益甚。
하루는 위공(衛公) 이정(李靖)이 아직 평민의 신분이었을 때 기발한 정책을 진언했다. 그러나 양소는 여전히 거만한 태도로 이정을 대했다. 이정은 앞으로 나아가 읍을 하고 말했다.
“바야흐로 천하가 어지러워 영웅들이 앞 다투어 봉기하고 있사온데, 공께서는 황실의 중신이시니 반드시 그런 호걸들을 모으는 일에 관심을 쓰셔야하며 이처럼 거만한 태도로 손님을 만나서는 안 되시옵니다”
그러자 양소는 엄숙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이정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가 매우 흡족하여 그의 정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물러나게 하였다. 이정이 변론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용모가 뛰어난 한 기녀(妓女)가 붉은 총채를 들고 그 앞에 서서 이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공이 물러 나오자 그 기녀는 마루 끝까지 쫒아 나와서 관리를 불러다 물었다.
“지금 물러가신 처사(處士)는 항렬이 몇 째이시며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관리가 자세히 알려주자 기녀는 머리를 끄덕이며 물러갔다.
一日,衛公李靖以布衣來謁,獻奇策。素亦踞見之。靖前揖曰。天下方亂,英雄競起,公為帝室重臣,須以收羅豪傑為心,不宜踞見賓客。素斂容而起,與語大悅,收其策而退。當靖之騁辯也。一妓有殊色,執紅拂,立於前,獨目靖。靖既去,而拂妓臨軒,指吏問曰。去者處士第幾。住何處。吏具以對,妓頷而去。
이정이 여관에 돌아 왔는데, 그날 밤 오경 초에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정이 일어나 물어보니 자주색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사람이 지팡이네 자루 하나를 걸치고 서 있었다. 이정이 물었다.
“누구시오?”
그 사람이 대답했다.
“소첩은 양씨 댁에서 붉은 총채를 들고잇던 기녀입니다”
이정이 급히 맞아들이자 기녀는 겉옷과 모자를 벗었는데, 18~19세의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기녀는 소박한 얼굴 그대로 아롱진 옷을 입은 채 이정에게 절을 했다. 이정이 놀라서 답배하자 기녀가 말했다.
“소첩은 양사공(양소)을 오랫동안 모시면서 세상의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만, 공과 같은 분은 없었습니다. 저는 사라(絲蘿)와 같아 혼자서는 살 수 없어서 큰 나무에 의지하고자 도망쳤을 따름입니다.”
靖歸逆旅,其夜五更初,忽聞扣門而聲低者,靖起問焉,乃紫衣戴帽人,杖揭一囊。靖問誰。曰。妾楊家之紅拂妓也。靖遽延入,脫衣去帽,乃十八九佳麗人也。素面華衣而拜。靖驚。答曰。妾侍楊司空久,閱天下之人多矣,未有如公者。絲蘿非獨生,願託喬木,故來奔耳。
이정이 말했다.
“양사공께서는 도성에서도 권세가 대단한 분인데, 이렇게 해도 괜찮겠소?”
기녀가 말했다.
“그분은 목슴만 남아있을 뿐 시체와 다름없으니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기녀들 중에도 그의 앞날에 희망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달아난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 역시 그리 뒤쫓지도 않습니다. 소첩은 세밀한 계획을 세웠으니 아무쪼록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이정이 성을 물었더니 기녀가 대답했다.
“장(張)가입니다.”
항렬을 물었더니 기녀가 대답했다.
“맏입니다.”
靖曰。楊司空權重京師,如何。」曰。彼屍居餘氣。不足畏也。諸妓知其無成。去者衆矣。彼亦不甚逐也。計之詳矣,幸無疑焉。問其姓,曰:「張。問伯仲之次,曰。最長。
이정이 그녀의 피부와 차림새와 말씨와 행동거지를 살펴보니 진정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같았다. 이정은 뜻하지 않게 이와 같은 미녀를 얻게 되자 기쁘면서도 두려웠으며, 순식간에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생겨 불안했다. 또한 집안을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사람도 그치지 않았다.
며칠 후 기녀의 행방을 찾고있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역시 엄중하게 찾는 눈치는 아니었으므로, 이정은 장씨에게 남장을 시켜 말에 태우고 여관의 쪽문을 열고 길을 떠났다. 그들은 장차 태원(太原)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석(靈石)의 여관에 묵었다.
침상을 마련한 후 화로에는 고기를 올려 올려놓았는데 고기가 거의 익어가고 있었다. 장씨는 머리카락을 땅에 늘어뜨린 채 침상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고, 이정은 마침 말에 손질을 해 주고 있었다. 그 때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체구는 보통이고 붉으면서도 구불구불한 구레나룻을 하고 있었으며, 당나귀를 타고 와서 가죽주머니를 화로 앞에 던져놓고 베개를 가져다 비스듬이 기대고 누워서 장씨가 머리를 빗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정은 몹시 화가 났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여전히 말에 솔질을 했다. 장씨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서 한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등 뒤에서 이정을 향해 가로저어 보이면서 화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황급히 머리를 다 빗고나서 옷을 단정히 여미고 그 손님에게 다가가 성을 묻자 누워있던 손님이 말했다.
“장(張)가요”
장씨가 대답했다.
“소첩도 성이 장가이니 누이동생이 되겠군요.”
장씨는 급히 절을 올리며 물었다.
“항열은 몇 째이신지요”
손님이 말했다.
“셋째요 누이는 몇째시오?”
장씨가 말했다.
“맏이입니다”
그러자 손님이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군, 누이동생 하나를 만났으니 말이야.”
장씨가 멀리서 이정을 부르며 말했다.
“이랑(李郎), 빨리 오셔서 셋째 오라버니께 인사하세요.”
觀其肌膚儀狀,言詞氣性,真天人也。靖不自意獲之,益喜懼,瞬息萬慮不安。而窺戶者足無停屨。既數日,聞追訪之聲,意亦非峻,乃雄服乘馬,排闥而去。將歸太原,行次靈石旅舍。既設牀。爐中烹肉且熟,張氏以髮長委地。立梳牀前。靖方刷馬。忽有一人,中形,赤髯而虬,乘蹇驢而來,投革囊於爐前,取枕欹臥,看張氏梳頭。靖怒甚。未決,猶刷馬。張氏熟觀其面,一手握髮,一手映身搖示,令忽怒。急急梳頭畢,歛袂前問其姓。臥客曰。姓張。對曰。妾亦姓張,合是妹。遽拜之,問第幾。曰:「第三。問妹第幾。曰。最長。遂喜曰。今日多幸。遇一妹。張氏遙呼曰,李郎且來拜三兄。
이정은 급히 절을 했고, 결국 그들과 함께 둘러앉았다. 손님이 말했다.
“삶고있는 것이 무슨 고기요?”
이정이 말했다.
“양고기인데, 이미 푹 익었을 것입니다.”
손님이 말했다.
“배가 몹시 고프군.”
이정이 저자거리로 나가 호떡을 사오자, 손님은 비수를 뽑아서 고기를 잘라 함께 식사를 했다. 손님은 식사를 마친 후 먹고 남은 고기를 잘게 썰어 당나귀에게 가져다 먹였는데, 그 동작이 매우 신속했다. 손님이 말했다.
“이랑의 행장을 보아하니 가난한 선비인 듯한데,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얻었소?”
이정이 말했다.
“제가 비록 가난하지만 또한 생각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물었다면 대답하지 않았겠지만, 형님께서 물으셨으니 숨기지 않겠습니다.”
이정이 장씨를 얻게 된 유래를 자세히 말해주자 손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장차 어디로 갈 생각이요?”
이정이 말했다.
“장차 태원으로 피신할 생각입니다.”
손님이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의탁할 만한 사람이 못되오.”
손님이 다시 말했다.
“술 있소”
이정이 말했다.
“이 집의 서쪽이 바로 술집입니다.”
이정은 술 한 말을 사왔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손님이 말했다.
“내게 술안주가 좀 남았는데 이랑이 같이 드실 수 있겠소?”
이정이 말했다.
“감히 그래도 될까 싶습니다.”
靖驟拜。遂環坐。曰。煮者何肉。曰。羊肉,計已熟矣。客曰。饑甚。靖出市買胡餅,客抽匕首,切肉共食。食竟。餘肉亂切爐前食之。甚速。客曰。觀李郎之行,貧士也,何以致斯異人。曰。靖雖貧,亦有心者焉。他人見問,固不言。兄之問,則無隱矣。具言其由,曰。然則何之。曰。將避地太原耳。客曰。然吾故非君所能致也。曰。有酒乎。靖曰:主人西則酒肆也。靖取酒一㪷。酒既巡,客曰。吾有少下酒物,李郎能同之乎。靖曰。不敢。
그러자 손님이 가죽주머니를 열고 사람머리 하나와 심장과 간을 꺼냈다. 손님은 머리는 다시 주머니에 넣더니 비수로 심장과 간을 썰어 이정과 함께 먹으며 말했다.
“이 것은 천하의 배신자의 심장이오. 나는 가슴속으로 10년 동안이나 원한을 품어 왔는데, 이제 비로소 잡게 되니 가슴속 원한도 풀렸소.”
손님이 다시 말했다.
“이랑의 풍채나 태도를 보아하니 진정한 대장부임에는 틀림없는데, 혹시 태원 땅의 이인(異人)을 들어 보았소.
이랑이 말했다.
“일찍이 한 사람을 만났는데, 제 소견으로는 그 사람이야말로 진인(真人)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장수나 재상의 자질을 갖추었을 뿐입니다.”
손님이 말했다.
“그 사람의 성이 무었이오.?”
이정이 말했다.
“제 일가(一家)입니다.
손님이 말했다.
“나이는 얼마나 되었소?”
“스물 정도 되었습니다.”
손님이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소?”
이정이 말했다.
“주장(州將 태원 유수 이연)의 아들입니다.”
於是開華囊。取出一人頭幷心肝。却收頭囊中,以匕首切心肝共食之。曰。此人乃天下負心者心也,銜之十年,今始獲,吾憾釋矣。又曰。觀李郎儀形器宇,真丈夫,亦知太原之異人乎。曰。嘗見一人,愚謂之真人。其餘將相而已。其人何姓。曰。同姓。曰。年幾。曰。近二十。今何為。曰:州將之愛子也。
손님이 말했다.
‘비슷한 듯하니 또한 만나보아야 하겠군, 이랑은 나를 그와 한 번 만나게 해줄 수 있겠소?“
이정이 말했다.
“제 친구인 유문정(劉文靜)이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니 그를 통해 만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께서는 그 사람을 만나 무었을 하려고 하십니까?”
손님이 말했다.
“하늘의 기운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태원에 기이한 기운이 있다고 하면서 나에게 그 기운을 가진 자를 찾아보라고 했소. 이랑은 내일 떠나면 태원에 언제쯤 태원에는 도착하시오?”
이정이 말했다.
“아무 날 당도할 것입니다.”
손님이 말했다.
“도착한 다음날 새벽에 내가 분양교(汾陽橋)에서 기다리겠소.”
손님은 말을 마친후 당나귀에 오르더니 나는 듯이 달려갔고, 순식간에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이정과 장씨는 놀랍고 두려워 한참 멍하니 잇다가 말했다.
“협객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법이니 두려워 할 것은 없소. 그저 서둘러 떠납시다.”
曰。似矣,亦須見之,李郎能致吾一見否。曰。靖之友劉文靜者與之狎,因文靜見之可也。兄欲何為。曰:望氣者言太原有奇氣,使吾訪之。李郎明發,何時到太原。靖計之:某日當到。曰。達之明日方曙,我於汾陽橋待耳。訖,乘驢而其行若飛。廻顧已遠。靖與張氏且驚懼。久之曰,烈士不欺人,固無畏,但速鞭而行。
기약한 날 태원에 들어가서 그 손님을 기다렸다가 만나게 되자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함께 유문정을 찾아갔다. 이정은 유문정을 속이며 말했다.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낭군(이세민)을 한번 보고 싶어 하니 그를 보여 주게”
유문정은 평소에 이세민을 비범하게 여겨 그를 보좌할 방법을 논의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을 볼 줄 아는 손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그 사실을 알고 싶었다. 유문정은 급히 술자리를 마련하고 이세민을 청했다. 잠시 후 태종(이세민)이 도착했는데, 그는 적삼도 입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은채 갖옷을 걷어 붙이고 왔으나, 의기는 충만하고 용모 또한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及期,入太原,候之相見,大喜,偕詣劉氏。詐謂文靜曰。以善相思見郎君。迎之。文靜素奇其人。方議論匡匡原作□。據明鈔本改。輔,一旦聞客有知人者,其心可知,遽致酒延焉。既而太宗至,不衫不履,裼裘而來,神氣揚揚,貌與常異。
규염객은 묵묵히 말석에 앉아 있었는데 태종을 보더니 기가 죽고 말앗다. 몇 순배 술을 마신 후 규염객이 이정을 불러 말했다.
“진정한 천자의 상이로군(真天子也) !”
이정이 이 말을 유문정에게 전하자 유문정은 더욱 기뻐하면서 (자신의 안목을) 자부했다. 유문정의 집을 나왔을 때 규염객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천자감이) 십중팔구 틀림없지만 도형(道兄)께서 그를 보tu야 하오.
이랑은 누이동생과 함께 다시 도성으로 들어가서 아무 날 오시(午時)에 마행(馬行) 동쪽 주루 아래층으로 나를 찾아와 주시오 주루 아래층에 이 당나귀와 말라빠진 나귀가 있으면 나와 도형이 그곳에 있을 것이오.“
虬髯默居坐末,見之心死。飲數巡,起招靖曰。真天子也。靖以告劉,劉益喜自負。既出,而虬髯曰。吾見之,十八九定矣;亦須道兄見之。李郎宜與一妹復入京,某日午時,訪我於馬行東酒樓下,下有此驢及一瘦騾,即我與道兄俱在其所也。
이정은 주루에 도착하여 당나귀 두 마리가 있는 것을 보고 옷을 움켜쥐고 주루에 올라갔는데 규염객은 한 도사와 술을 대작하고 있었다. 규염객은 이정을 보더니 놀라고 기뻐하면서 그를 불러 안치고 술을 십여 순배 마셨다. 규염객이 말했다.
“주루 아래의 상자 안에 10만전이 들어있으니,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을 한 곳 골라 누이동생을 정착시키고, 아무날 다시 나와 분양교에서 만나세.”
기약한 날 분양교의 주루에 올라갔더니 도사와 규염객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들이 함께 유문정을 찾아 갔을 때 마침 유문정은 바둑을 뚜고 있었으며, 이정은 인사를 하고 나서 자신들이 찾아온 뜻을 말하였다. 그러자 유문정은 이세민에게 바둑두는 것을 구경하러 오라고 청했다. 도사는 유문정과 바둑을 두었고 규염객과 이정은 옆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문황(이세민)이 도착하여 길게 읍하고 앉았는데, 정신과 풍체가 청량하여 좌중에 바람을 일르킬 정도였으며 주변을 돌아보는 눈빛은 번쩍번쩍 빛났다. 도사는 문황을 보자마자 기가 질리더니 바둑알을 내던지면서 말했다.
“이 대국은 졌소이다. 졌어요. 이곳에서 이 판의 대세를 잃고 말았으니 묘수올시다. 구해볼 도리가 없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소이까?”
도사는 바둑을 그만두고 떠날 것을 청했다. 유문정의 집을 나와서 도사가 유염객에게 말하기를
“이 세상은 공의 세상이 아니니 다른 곳에서 도모하시오. 노력하되 이 일은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오.”
公到,即見二乘,攬衣登樓,即虬髯與一道士方對飲。見靖驚喜,召坐,環飲十數巡。曰。樓下櫃中有錢十萬,擇一深隱處,駐一妹畢,某日復會我於汾陽橋。如期登樓,道士虬髯已先坐矣。共謁文靜。時方奕棊。揖起而語心焉。文靜飛書迎文皇看棊。道士對奕。虬髯與靖旁立為侍者。俄而文皇來,長揖而坐,神清氣朗,滿坐風生,顧盼暐如也。道士一見慘然。下棊子曰。此局輸矣,輸矣。於此失却局,奇哉。救無路矣,知復奚言。罷奕請去。既出,謂虬髯曰。此世界非公世界也,他方可圖,勉之,勿以為念。
그리고는 함께 도성으로 들어갔다. 규염객이 이정에게 말하기를
“이랑의 일정을 계산해 보니 아무 날에야 도착할 터인데, 도착한 다음날 누이동생과 아무 동네에 있는 내 집으로 들려주시오. 이랑이 우리 누이동생과 교제하면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지내고 있어 내 마음이 불편하고 우리 집사람도 인사시킬 겸 조용히 의논하고자 하는 일도 있어서 청하는 것이니 미리부터 사양하지 말아주시오”
규염객은 말을 마치더니 탄식하고 돌아갔다.
이정은 채찍질하며 말을 달렸고 얼마 후 도성에 당도하여 장씨와 함께 규염객의 집으로 찾아갔다. 가보니 조그마한 판자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두드리자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인사 하며 말하기를
“삼랑(규염객)께서 큰 아가씨와 이랑을 기다리신지 오래되셨습니다.”
因共入京。虬髯曰。計李郎之程,某日方到。到之明日,可與一妹同詣某坊曲小宅。媿李郎往復相從,一妹懸然如磬,欲令新婦祗謁,略議從容,無令前却。言畢,吁嗟而去。靖亦策馬遄征。俄即到京,與張氏同往,乃一小板門,扣之,有應者拜曰。三郎令候一娘子李郎久矣。
그는 두 사람을 인도하여 여러 문을 통해 들어갔는데 들어갈수록 문은 더욱 웅장하고 화려했다. 시녀 30여명이 앞에 늘어서 있었고 하인 20여명이 이정을 이끌고 동쪽 대청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의 물건들은 모두 인간세상의 것들로 생각되지 않았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하고 나니 옷을 갈아 입으라고 청했는데 그 옷 또한 진기한 것이었다. 옷을 갈아 입고나자 어떤 이가 전갈했다.
“삼랑께서 오십니다.”
그러자 규염객은 사모(紗帽)를 쓰고 갖옷을 입은 채 나왔는데 용이나 범 같은 모습이었다. 규염객은 이정과 장씨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한 후 아내에게 인사하라고 재촉했는데 그의 아내는 선녀와도 같은 미인이었다. 중당으로 안내되어 들어가자 그곳에는 갖가지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으며 비록 왕공(王公)의 집이라 해도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네 사람이 마주 앉아 성찬이 모두 차려지고 여자 악사 20여명이 그 앞에서 음악을 연주했는데 그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 했으며 인간 세상의 곡조가 아니었다.
延入重門,門益壯麗。奴婢三十餘人羅列於前。奴二十人引靖入東廳,非人間之物。巾粧梳櫛畢,請更衣,衣又珍奇。既畢,傳云三郎來,乃虬髯者,紗帽褐裘,有龍虎之姿。相見歡然,催其妻出拜,蓋天人也。遂延中堂,陳設盤筵之盛,雖王公家不侔也。四人對坐,牢饌畢,陳女樂二十人,列奏於前,似從天降,非人間之曲度。
식사를 마치고 술을 마실 때 하인들이 서쪽 대청으로부터 상 20개를 들고 나왔는데 상에는 각각 비단수를 놓은 천으로 덮여있었다. 상을 늘어 놓은 후 천을 벗기자 그것은 문서와 열쇠들이었다. 규염객이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내가 소유한 진귀한 보물과 돈의 수를 기록한 것인데 모두 이공께 드리겠소. 왜인지 아시겠소? 나는 본래 이세상에서 큰 일을 해 보려고 20~30년 동안이나 천하의 대권을 다투어 왔으나 그다지 큰 공업을 세우지 못했소. 이제 이 세상에 이미 주인이 나타났으니 내가 이 세상에서 머문들 무었하겠소. 태원의 이씨는 진정한 영주이니 3~5년 내에 천하를 태평하게 할 것이오. 이랑은 뛰어난 재주로 청평지주를 보필하여 충성을 다 바친다면 반듯이 신하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오, 누이동생은 선녀 같은 용모에 불세출의 지략을 갖추었으니 남편의 출세에 따라 최고의 헌상(수레와 의복)을 누릴 것이오, 누이동생이 아니었다면 이랑의 인물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오, 성현이 처음으로 국가를 창업할 때에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범이 포효하면 바람이 일고, 용이 날면 구름이 모이는 법이니, 이는 본디 당연한 것이오, 내가 주는 재물로 진정한 군주를 받들어 공업을 돕도록 하시오, 힘껏 노력하시오~ 앞으로 10여년 후에 동남쪽 수 천리 밖에서 큰 사건이 벌어질 것인데, 그때가 내 일이 성공하는 때일 것이오, 누이동생과 이랑은 그 때 술을 뿌려 나를 축하해주기 바라오.”
규염객은 하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이랑과 큰아가씨가 너희들의 주인이시다.”
규염객은 말을 마치고 난 후 그의 아내와 군장을 하고 말에 오른 후 하인 한사람만 말을 타고 따르게 했는데 몇 걸음도 가지 않은 듯 했으나 어디론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食畢行酒。而家人自西堂舁出二十牀。各以錦繡帕覆之。既呈,盡去其帕,乃文簿鑰匙耳。虬髯謂曰。盡是珍寶貨泉之數,吾之所有,悉以充贈。何者。某本欲於此世界求事,或當龍戰三二年,建少功業。今既有主,住亦何為。太原李氏真英主也,三五年內,即當太平。李郎以英特之才,輔清平之主,竭心盡善,必極人臣。一妹以天人之姿,蘊不世之略,從夫之貴,榮極軒裳。非一妹不能識李郎,非李郎不能遇一妹。聖賢起陸之漸,際會如期,虎嘯風生,龍騰雲萃,固當然也。將余之贈,以奉真主,贊功業。勉之哉。此後十餘年。東南數千里外有異事,是吾得志之秋也。妹與李郎可瀝酒相賀。顧謂左右曰。李郎一妹,是汝主也。言畢,與其妻戎裝乘馬,一奴乘馬從後,數步不見。
이정은 그 집에 의지하여 부호가 되었으며 그 재산으로 문황(당태종)의 창업을 도와 대업을 완수 할 수 있었다.
정관연간(627~649)에 이정의 직위는 복야(僕射)에 이르렀다. 어느 날 동남쪽의 만족이 아뢰었다.
“어떤 해적이 천척의 배에 십만의 갑병을 거느리고 부여국으로 들어가서 그 임금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며 국내는 이미 안정되었습니다”
이정은 규염객의 일이 성공했음을 알고 집에 돌아가 아내 장씨에게 알려주었으며 함께 예복을 갈아입고 동남쪽을 향해 술을 뿌려 규염객의 성공에 축하의 예를 올렸다. 이로부터 진명천자가 되는 것은 영웅이 바란다고 해도 될 수 있는 바가 아닌데 하물며 영웅도 못되는 자들의 경우에서는 어떻겠는가?
신하의 신분으로서 터무니 없이 난을 꾸미고차 하는 것은 사마귀가 자신의 팔뚝으로 구르는 수레바퀴를 막으려는 것과 같을 뿐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위공(衛公 이정)의 병법 가운데 절반은 규염객이 전해준 것이다.”(규염전)
靖據其宅,遂為豪家,得以助文皇締構之資,遂匡大業。貞觀中,靖位至僕射。東南蠻奏曰。有海賊以千艘,積甲十萬人。入扶餘國。殺其主自立,國內已定。靖知虬髯成功也,歸告張氏,具禮相賀,瀝酒東南祝拜之。乃知真人之興,非英雄所冀,況非英雄乎。人臣之謬思亂。乃螳蜋之拒走輪耳。或曰,衛公之兵法,半是虬髯所傳也。出《虬髯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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