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은 1958년에 ‘동물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식량을 먹어치우는 벼룩 파리 쥐 참새 등이 박멸 대상이었다. 당시 중국 정부는 파리 4만8695.49kg, 쥐 93만486마리, 참새 136만740마리를 죽였다고 발표했다. 벼룩까지 얼마 잡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문제는 이듬해부터 3년 동안 대기근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참새가 줄어들자 해충이 급증했다. 농사를 망친 것이 대기근의 한 원인이었다.
◆3년 만에 처음 나온 바퀴벌레
중국의 대기근은 눈에 보이는 곡식 도둑인 참새를 잡으려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해충이라는 불청객을 부름으로써 정책이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살다보면 불청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봄철과 겨울에 한국을 뿌옇게 뒤덮는 황사와 미세먼지, 십여 년 전부터 소나무를 괴롭히는 재선충 등이 그것이다.
지난 10일 아침, 출근하려던 딸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놀라서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했다. 서둘러 살충제를 갖고 갔더니 새끼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돌아다녔다. 다행히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한 마리가 보였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는 수십 마리가 있다’는 ‘바퀴벌레법칙’이 있어 안심하기는 일렀다.
아파트는 정기적으로 공동방역을 하기 때문에 바퀴벌레를 거의 볼 수 없다. 이사 온 지 3년 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한층 아랫집이 최근 이사했는데, 이삿짐에 붙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아파트에서 이웃집이 이사 오면서 바퀴벌레가 불청객으로 따라 온 것이다.
1920년 프랑스에 상륙한 아르헨티나개미도 불청객이었다. 프랑스가 지중해 연안의 도로를 꾸미기 위해 협죽도나무를 들여올 때, 그것을 담았던 나무상자에 묻어 들어온 것이 확실하다. 이 개미는 덩치가 작지만 영리하고 호전적이다. 특히 암컷들이 혼인여행을 하지 않고 땅속에 있는 방에서 교미한다. 여왕개미도 20마리나 된다. 그러니 개체수가 빠르게 늘어난다. 이 개미는 1960년에 피레네산맥을 넘어 바로셀로나로, 1967년에는 알프산맥을 지나 로마까지 점령했다. 토박이 개미를 전멸시키며 유럽의 주인이 됐다. 적반하장의 대표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불청객을 퇴치하는 것은 겸손
작년 말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도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다. 바이러스에게는 인간이 불청객일 수 있다. 인간이 불청객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신약을 계속 개발하는 것에 대응해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정치와 경제에서 불청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side-effect)이다. 아무리 꼼꼼하게 챙겨도 사람 머리로는 일어날 모든 일을 100%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넘어가는 조그만 틈이 대책의 전체를 흔들거리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가 22번이나 부동산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오히려 가파르게 상승했다. 좋은 정책은 송아리조차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촘촘히 짠 그물보다는 뼈대만 명확히 밝히고 세세한 것은 때와 장소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은 아래에서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좋아하여 칭송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업신여겨 깔보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엄한 법을 만들어 국민들을 형벌로 다스리고 강제하면 두려워하지만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무리하게 되고, 무리하면 실수하고, 국민들의 비웃음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주역』에서는 이를 풍동(風動)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면 풀과 나무가 바람결에 따라 산들거리듯, 위에서 올바른 정책을 펴면 백성들이 스스로 감화되어 움직인다는 뜻이다. 공자가 바람을 뜻하는 손(巽)이 들어간 8개 괘의 뜻을 덕(德)과 명(命)으로 설명한 것은 이에 따른 것이다. 계강자가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바람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는다”고 대답한 것도 지도자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솔선수범을 강조한 것이다.
◆기자보고 “후레자식”이라고 한 이해찬 대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지난 1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모 언론사 기자 사이에 어색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은 없으신가요?”(기자)
“그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나. 최소한 가릴 게 있다. 후레자식 같으니라고”(이해찬 대표)
박 시장의 갑작스런 죽음이, 하루 전날 있었던 성추행 고소사건과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있는 상황에서, 기자가 민주당의 대응을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의 반응이 너무 뜻밖이었다. 성난 얼굴로 기자를 노려보다가 한 말 끝이 “후레자식 같으니라고”였다. 후레자식은 “배운 데 없이 제풀로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아주 경멸적인 말이다.
이 대표의 이날 말과 행동은 납득하기 어려운 언동(言動)이었다.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대신 해당 언론사에 전화해 “송구하다. 해당 기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 달라”고 사과했다. 이 대표가 “(박시장과) 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40년을 함께 해온 오랜 친구”여서 “매우 안타깝다”고 밝히긴 했으나,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한 질문에 대해 그렇게 면박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명으로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자유로운 언론의 필요성에 대해>(1787)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누가 나에게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부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
세상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오로지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만이 이분법을 강요한다.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행복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당장 내일, 아니 5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삶과 죽음, 그리고 민심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자연스런 이치에 따르는 사람은 살고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
제퍼슨은 이런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했다. 권력에 빠지면 오만해져 민심과 정의에서 멀어질 우려가 있다. 신문이 늘 쇠파리처럼 정부가 잘못하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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