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4막21장 (7부)
강남구 삼성동.
지금은 코엑스와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있고 벤쳐회사 빌딩으로 낮에도 햇빛이 비추지 않는 강남의 최고 요충지이다.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이어지는 대로는 한국의 상징으로 느껴지는 빌딩으로 가득차 있고 젊은이들의 패기에 찬 행보로 활기를 느낄수 있는 곳이다.
삼성동과 강남일대는 IMF이후 김대중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두각을 나타낸 지역이며 지금은 한국의 중심가가 된것이다.
나는 1978년 삼성동을 찾아갔다.
모교인 휘문고교를 가기 위해 강남구 삼성동으로 간것이다.
[강남구 역삼로 541]
휘문고교의 현주소이다.
모교는 종로구 계동을 현대그룹한테 매각하고 삼성동으로 이전한 것이다.
박대통령의 인구 분산 정책에 따라 종로구에서 강남구로 이전한 것이다.
그당시 삼성동은 시골이었다.
건물이라고는 거의 없었고 저멀리 봉은사라는 사찰에서 한적하게 목탁소리가 들려오고 드넓은 들판을 지나 오른쪽 언덕에 모교는 덩그러니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뭐여,
깡촌이잖아.
왜 이런 외딴곳으로 이사를 왔을꼬..
종로의 중심가에 있던 모교가 깡촌으로 이전하여 시골의 학교가 되고 만것이다.
희중당의 덩굴은 사라지고 허전한 운동장에 건물 몇채 지은 모교는 을씨년스럽기만 하였다.
사람도 다니질 않아 억지로 찾아낸 모교를 보는 순간 나로서는 이해를 가지 못하였다.
재단측들이 정신이 나간것이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모교의 삼성동 이전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군데군데 주공아파트가 전부이고 뚜렷한 주택가가 형성되질 않아 학생들은 어디서 모집한단 말인가.
괘이한 일이다.
포장된 도로도 있질 않아 진흙탕을 디디며 언덕에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모교.
모교는 실수를 한것이다.
박대통령한테 무슨 잘못을 하였길래 서울의 구석진곳으로 쫓겨났을꼬.
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오늘.
나는 놀라고 말았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모교는 발전 된것이다.
심지어는 강남 아파트 시세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교는 주위의 부동산값을 치솟게 한것이다.
지금은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층 빌딩으로 에워쌓인 모교는 강남의 중심가에 우뚝 서고 만것이다.
모교의 재단측 선견지명에 탄복할 다름이다.
어찌 앞날을 그렇게 잘 예측한단 말인가
만약 지금도 종로구 계동에 있었다면 강남의 아파트값은 그렇게 오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종로의 대입 학원가를 형성시키듯 지금은 대치동에 국내 최대의 대입 학원가를 형성시키고 만것이다.
모교 존재가 다시 부각되는 순간이다.
지금은 지하철 2호선 삼성역 3번 출구에서 5분거리에 위치한 모교.
종로구 계동에서 강남구 삼성동으로의 이전은
모교의 탁월한 "신의 한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