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NewJeans) — 〈Hype Boy〉
https://youtu.be/11cta61wi0g?si=sY0zucTPNcb8625D
박재범 (Jay Park) — 〈몸매 (MOMMAE)〉
https://youtu.be/gx_mg-1WhWw?si=s0mHyuW6eA3mxiei
한글날 기념 (2): '뒤쥭박쥭'에서 K-POP까지 — 한국어와 한글의 주체적 수용과 변용
1. 1편에서는 정조의 어찰 속 '뒤쥭박쥭'이라는 한글 표현과, 한자문화권 속에서도 이두문과 언문(한글)의 전통을 통해 우리말의 정체성을 지켜 온 역사를 살펴보았다. 2편에서는 정조의 어찰 속에 더 깊숙이 숨어 있는 우리말의 흔적들을 좀 더 들여다보자.
(1)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말의 표현을 그대로 한자로 옮긴 독특한 사례들이다.
'한 귀로 흘리다'라는 우리말 표현을 옮긴 "一耳流"(일이류)가 그 예다. '한 귀'에 해당하는 一耳를 앞에 놓고 '흘리다'에 해당하는 流를 뒤에 배치하여 우리말 표현의 흐름을 그대로 살렸다.
'이 편지를 즉시 태워라'는 뜻을 옮긴 "此紙卽丙之"(차지즉병지) 역시 마찬가지다. 한자를 사용했지만 그 안에는 우리말의 생활감각과 생생한 말맛이 살아 있다.
'모쪼록'을 "某條"(모조)라고 적은 표현도 눈길을 끈다. 한자의 뜻을 취한 것이 아니라 소리를 빌려 우리말을 적은 것이다. 한문을 쓰면서도 입에 익은 우리말을 그대로 살려낸 셈이다.
(2) 둘째, 정조는 때로 한자로 옮기는 대신 한글을 한문 문장 속에 그대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1편에서 살펴본 ‘뒤쥭박쥭’이 대표적인 예라면, 또 다른 어찰의
“以人也之만조爲言 計不得已” (이인야지만조위언 계부득이. 그 사람이 ‘만조’하다는 말이 있어 어쩔 수 없었소)
라는 대목도 같은 경우다. 천거받은 사람을 임용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사람이 ‘만조’하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만조’는 ‘볼품없고 얄팍하다’는 뜻을 지닌 당시의 구어적 표현이다. 정제된 한문 문체 속에 평소 쓰던 우리말을 그대로 끼워 넣음으로써, 사람에 대한 평가와 자신의 뜻을 더욱 직관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한 것이다.
(3) 셋째, 우리말의 생활어를 한자로 빚어낸 표현들도 눈에 띈다. '꽁무니를 빼다'라는 뜻의 "拔尻"(발구), '입에 맞는 떡'을 표현한 "適口之餠"(적구지병)이 그러하다. 정치적인 맥락에서도 이러한 생활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정조는 정치적으로 활용할 만한 좋은 소재를 '좋은 건더기'라는 뜻의 "好滓料"(호재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문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안에는 우리말의 생활감각과 생생한 말맛이 배어 있다.
(4) 넷째, 거침없는 구어와 격한 감정의 언어다. 심환지에게 “경은 과연 생각도 걱정도 없는 늙은이로구나. 참으로 답답하다"는 뜻으로 "卿果無思無慮之老也 奈鬱悶奈鬱悶"(경과무사무려지노야 내울민내울민)이라고 하였고, 다른 신하를 두고는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의 "口尙乳臭"(구상유취), '진짜 호로자식'이라는 뜻의 "眞胡種子"(진호종자),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린다'는 뜻의 "敢欲容喙"(감욕용훼) 같은 거친 표현도 사용하였다. 편지 곳곳에 등장하는 웃을 때 내는 의성어 '하하' 내지 '크크'에 해당하는 "呵呵"(가가) 역시 정조의 감정과 인간적인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2. 정제된 공문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표현들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권위와 격식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말맛과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했던 한 인간, 정조를 만난다. 왕의 편지에서도 언어는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두식 표현으로 우리말의 어순과 소리를 담아내고, 생활어를 한자로 빚어내고, 때로는 한글을 그대로 끼워 넣고, 거침없는 구어로 감정을 쏟아낸 정조의 어찰. 그 자유분방한 언어 감각은
오늘날 우리말과 영어를 거리낌 없이 뒤섞고, 격식보다 감정의 생생함을 앞세우는 K-POP의 언어 감각과 닮아 있다.
뉴진스의〈Hype Boy〉나 박재범의〈몸매〉가 들려주는 것도 결국은 정제된 표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말맛을 가장 생생하게 살려내려는 언어의 몸짓이다.
'뒤쥭박쥭'에서 '몸매'까지. 시대는 이백오십년 가까이 떨어져 있지만, 격식의 틀을 벗어나 가장 살아 있는 말을 찾으려는 마음만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