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사랑 11월의 이야기
(2019)
내 엉터리 시 중에
‘잊고 사는 이들이 잊지 않고 살아
가려 하는 이들을 슬프게 하는 밤이 있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11월은 그런 달입니다..
하나 둘 화려한 색을 입는 잎새들 그리고 하나 둘
땅으로 지는 낙엽들을 보면서
마음이 저공비행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탁사랑도 22년을 지나면서 떠나간 분들
또 새로오신 분들...
그런 얼굴들을 떠올리며 적어보는
11월의 이야기 입니다
11월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
조선의 27명의 왕 중 가장 애틋하고 안스러운 왕은
어떤 왕일까?
아버지의 의심으로 갖은 고난을 겪다 천신만고 끝에
왕이 되었으나 결국 비운의 왕으로 끝난 ‘광해’?
기울어가는 저물녁 끝에 왕이 되어 이리 저리 휘둘리다
생을 마감한 고종?
할아버지도 서자, 아버지도 서자, 자신도 서자 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독특한 이력의 왕이있다.
이번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 서자출신의 왕
25대 임금 철종(1831∼1863) 이원범의 이야기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 갇혀 죽었고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 상계군은 역모로 죽었다
할머니와 큰 어머니는 신유박해 때 천주교 교인이라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아버지 전계군과 큰 형 원경 역시 다른
역모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때가 이원범의 나이 14세 때였다..
그리고 원범은 강화도로 쫒겨가 농사를 지으며
비루하게 살게 된다..
헌데 헌종이 죽고 후사가 없자 졸지에 강화에 있는
원범이 한성으로 불려나와 왕이 된다..
이름을 ‘휘’로 바꾸고
그리고 처음에는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 청정을 하였다..
그 후 대왕대비의 근친 안동김씨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게 된다
안동김씨의 천하였으니까 ...
그럼에도 철종실록에 보면 그는 자신이 친정하게
되면서 부터는 백성을 잘 살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관서지방에 기근이 들자 선혜청전 사역원 삼포세등
11만냥을 무상 대출해주고 여름에 더위피해가 심한데
재곡이 없자 백성을 구활하지 못한 아쉬움에
탐관오리 들을 징벌 하겠다고 엄명을 내리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민초로 살아 봤기에 특히 민초들의
재난 화재 기근에는 나랏돈을 톡톡 털어 빈민
구호책을 적극 실시하였다..
허나 정치 실권은 안동김씨에 있었고
이미 조선의 비극은 잉태되고 있었다..
(부분 복원된 철종의 어진)
당시 민생은 삼정의 문란으로 극도로 피폐화
되어 있었다..
삼정의 문란이란
토지세인 ‘전정’, ‘그리고 민초들이 군대를 가면
먹고 살 일이 난감하니 옷감으로 대신했던 ‘군정,
그리고 보릿고개 때 쌀을 빌려줬다 가을에 되받는
‘환곡’의 세 가지 세금정책이다..
(역사공부에 약한 인택이를 위해 씀 ㅎㅎ)
나라는 왕의 외척들이 장악해서 자기들 권력놀이에 여념이
없을 때 지방 민생은 탐관오리 토호들이
이 세 가지 세금정책을 불법으로 자행하여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었다..
오직 했으면 이미 죽은 자에게도 군역세를 걷어가는
‘백골징포’라는 말이 나왔을까?
봄에 빌려주는 것은 돌이 섞여있는 썩은 쌀이요
가을에 걷어 가는 것은 백미였으니 말 안해도 민초들의
삶을 충분히 알만하다..
지난 봄 여름 동안 제법 인기 있던 드라마
‘녹두꽃’이 있다..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하는
여기서 파랑새는 일본군. 논두밭은 동학군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가리키고
청포장수는 우리 민초들을 상징한다..
이 동학 운동의 시초가 된 것이 바로
‘임술민란’이다.
실은 임술농민봉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1862년 철종 13년...
세금에 시달리던 민초들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가지다 하면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
2월 달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4월에는 전주
5월에는 충청도로 확산 되어 나갔다..
전국70여 고을에서 들불처럼 제주도 까지 퍼져간다
그리고 철종은 이것을 잘 해결해 보려고 팔을 걷어
붙였으나 철종의 팔뚝은 나약하기 그지 없었다.
나라는 이러 저러하게 제도를 개선하고 탐관오리를
색출하려 내려보내지만 가제는 게편 아닌가?
내려 보낸 놈이나 해먹던 놈이나 똑 같으니
무엇이 바뀌겠는가
팔뚝 굵은 것은 안동김씨를 필두로한 양반 세력이었으니
결국 나라의 해보려한 정책들은 무위로 돌아가고
가녀린 팔뚝 마저 꺽인 철종은 이후 술과 여자로
타락 세월을 보낸다고 전해온다..
헌데 생각해 보라
자신이 뭔가 해보려다 외척을 비롯한 기득권에 막혀
좌절된 철종이 바로 그 다음해 세상을 떠난다..
이것은 주색잡기를 즐겼다기 보다는
아마 그 이후 모든 것에 좌절한 철종이 더 이상 생의
의욕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철종 사후 조선은 급속도로 기울어져 간다
위에 언급한 동학 운동은 일본의 개입으로 마무리
져 지고 조선에 숟가락을 얹은 일본
결국 그것은 을사늑약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아무런 배경도 없는 꼭두각시 임금
그리고 그의 마지막 노력이었던 삼정이정청을 통한
민심진압과 민생해소의 좌절..
결국 가장 힘없고 가장 무능한 임금으로
치부되었고
농사짓던 무지랭이라는 의미로 ‘강화도령’이라
비아양을 받으며 살다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던 안스러운 임금이 바로 철종이다..
(철종이 임금이 된 후 강화에 철종이 살던 움막 자리에
몇년후 강화유수가 새로 집을 지어 철종의 외가를 지어주고
'용흥궁' - 용이 흥하는 집 이라 이름 붙여진 곳..)
참 참..
하정우가 나왔던 ‘군도’- 민란의 시대 라는 영화가 바로 이
임술민란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There are only two ways to live your life.
One is as though nothing is a miracle.
The other is as though everything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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