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년 전만해도 대만불교는 한국불교 입장에서 크게 비중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외려 역사와 전통이 일천한, 그래서 한국불교가 형님의 입장에서 뭔가 한 수 가르쳐 주어야할 대상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대만불교의 위상이 최근 들어 확 달라졌다. 대만을 찾는 한국불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대만불교를 배우려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말 그대로 “요즈음은 대만불교가 대세”가 되었다.
불광산사 체육관에서 대법회를 하는 대만불자들.
대만불교의 복지포교, 대중포교, 대중교육, 수행시스템, 도량구성, 기도방법 등 거의 모든 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으로 우뚝 섰다. 그래서 대만불교를 돌아보고 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만불교처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잘하고 있어서 한국불교가 대만불교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데 큰 이론이 없어 보인다. 동국대 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졸업한 스님들이 견학여행으로 주저없이 선택한 곳도 대만불교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불광산사, 자제공덕회로 대표되는 대만불교의 성공은 한국불교의 롤모델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게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만불교에 대한 인식이 ‘오직 그것뿐, 그거 거기에 머물 뿐’이라는 데 있다. 대만불교를 돌아보거나 견학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 순간에 들었던 그 마음이 한국에 돌아와 일주일 열흘 넘어가다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변해갈 뿐이다. 이러기를 몇 년째다. 대만불교를 배우자는 구호와 공감만 있을 뿐, 진전이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일과성, 일회성 견학과 감동이 주는 뻔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한국불교는 또 다시 몇 해를 보내고 만 것이다.
이런 비효율적이고 고질적인 관행을 보다 못한 불광연구원이 드디어 나섰다. 백번을 다녀오는 것보다 서너 번을 다녀오더라도 그것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롤모델로 삼아야 할 대상들에 대한 이론적 정리에 착수한 것이다.
대만불교는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불교가 주목하는 불교로 급성장했다. 한국에서도 대만불교를 롤모델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그 첫 행사가 4월 30일 오후 2시부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대만불교의 실천이념과 운영시스템’이라는 주제로 대만불교에 정통한 학자들이 모여서 학술연찬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아마도 이 연찬회는 21세기 초입의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데 매우 큰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 지도 모른다. 한국불교가 변해가야 할 방향을 대만불교에서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바로 대만불교를 주제로 한 연찬회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약간 폄하하기도 했던 대만불교를 배워야 하는 한국불교의 입장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배워야 할 롤모델을 찾은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목조건물이 아닌 시멘트 건물이기는 하지만, 사원의 시설이 기도나 의례를 위한 공간보다는 교육과 포교, 토론, 문화의 중심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 등 우리가 대만불교에서 배워야 할 것들은 부지기수다. 이번 연찬회가 기대되는 이유다.
‘대만불교의 실천이념과 운영시스템’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연찬회에서는 먼저 ‘대만불교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시도된다. 최근 한국불교계에서 유행처럼 대만불교계 탐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만불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참고자료는 몇몇 탐방기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다.
“대만불교를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알고자하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한국불교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연구자료로 삼고자 한다”는 불광연구원은 앞으로 2차에 걸쳐 사상, 신행, 봉사 등 대만불교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조명하는 학술연찬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4월 30일에 진행되는 1차 연찬회에서는 대만불교가 이처럼 현대사회 속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실천이념은 무엇이고, 불교계와 단위 사찰의 운영시스템은 어떤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고찰할 예정이다.
일목요연하고 맛깔난 진행으로 정평이 난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사회로 동국대 양정연 연구교수가 ‘대만불교의 성장 과정과 특징’을 발표한다. 이 발표에는 대만불교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대만불교의 발전 배경, 교세와 현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어 평소 대만불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김호성 동국대 교수가 ‘대만불교의 실천이념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발표한다. 김 교수는 ‘태허와 인순의 인간불교 이념의 영향, 인간불교, 생활불교 등 실천이념 분석’, ‘대만불교의 대표적 사찰을 일군 개산조들의 실천사상에 대한 고찰’ 등을 다룬다.
이어 서대원 충남대 연구교수가 ‘대만불자의 계율정신과 윤리의식’을 주제로 대만불교 전반에서 엿 볼 수 있는 승가와 재가의 계율준수 의식과 현황을 살펴본다.
이어 2부에서는 김영진 인하대 HK교수의 사회로 포교학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가 나서 ‘대만 사찰의 재정 운영체계 및 불사 추진양태 연구’를 발표한다. 김교수는 특유의 독보적 분석력으로 대만 사대사찰을 비롯해 대만불교 전반에 걸쳐 사원운영과 불사 진행방식에 대한 연구 성과를 공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어 박인석 동국대 연구교수가 ‘대만불교의 사회활동’을 주제로 발표한다. 박 교수는 자재공덕회를 비롯해 대만불교의 대사회활동에 대한 고찰과 규묘와 운영현황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발제가 끝나면 발제자들과 함께 의은스님(서울 불광산사 주지), 김관태 사찰경영컨설팅 살림 대표 등이 나서 종합토론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