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고기
제9회 대상
오경자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다 죽을까? 아니 모든 생명체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조금의 예외는 있겠지만 하나같이 자신의 종의 보존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쳐 살다가 빈껍데기만 남아 스러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자신의 새끼를 위해 자신을 버려가면서 지켜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식물도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기기 위해 밟히면서도 살아남는다.
사람들의 취미생활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낚시가 여가 생활의 주종을 이룬다 할 정도로 주말 새벽이면 낚시꾼들이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골프가 대중화되기 전이어서 등산과 낚시 정도가 여가 생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의 풍속도 중의 한 장면이다. 왜 그렇게 낚시에 심취했을까 생각해 보아도 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낚시가 바로 인생과 같아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미끼를 끼워서 늘어뜨리고 앉아 고기가 제풀에 물어 주기를 기다리는 낚시는 요즘 같이 도구가 발달된 현대에 와서는 고기를 잡기 위한 수단하고는 거리가 먼 개념이 아니던가? 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라면 망을 던져서 건져 올리면 쉽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고기가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과 자신의 낚시에 고기가, 그것도 대어가 걸려들었을 때의 그 짜릿한 손맛 때문에 낚시의 함정에 기꺼이 빠져드는 것이다. 결국은 성취감의 극대화가 낚시의 묘미인 셈이다.
인생사와 너무 흡사해서 사람들은 거기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대어가 걸렸을 때 허둥대다가는 놓치고 마는 것이 다반사이고 침착하게 천천히 낚아채야 대어 판화 액자를 만들어 걸 수가 있다. 피라미 몇 마리밖에 못 낚은 남편들이 호기 있게 아내 앞에 다래끼를 들이 대려고 남대문 시장에는 민물고기 어시장이 성시를 이루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시나브로 그런 풍경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낚시 가게도 찾기 힘들게 되었다.
낚시의 퇴조가 아쉬웠던지 소리를 낚는다는 해괴한 소리가 심심찮게 돌아다녔다. 이제는 휴대전화의 문자에까지 영역을 넓혀 가히 성업 중이라 하니 낚시의 진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기막힌 일이 되고 말았다. 남이 당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에이, 그런데 속아 넘어가다니, 말도 안 된다면서 콧방귀를 뀌지만 막상 자신이 당하면 훨씬 더 허술한 꼬임에도 쉽게 넘어가고 마는 것이 그 소리 낚시라는 괴물의 정체이다. 주로 노인이 피해 대상이 많은 연고인가, 그들의 쇠약한 청각까지를 배려(?) 해서인가 친절하게도 문자로 공세 방법을 바꾸고 있다.
며칠 전 걸려온 전화가 내용이 복잡한 데다 상대방이 어려운 부탁을 하는지라 끼어들기 싫어서 사양하는 전화를 장장 2시간이 넘도록 끊지 못하고 곤욕을 치렀다. 겨우 끊고 조금 있다가 그동안 걸려왔을 전화가 궁금해서 열어보니 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자기 휴대폰이 고장나서 수리 맡기고 이것은 문자서비스만 되는 것을 빌려 쓰는 중이니 빨리 문자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자기가 부탁할 것이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순간 딸에게 너무 미안하고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애가 탔을까? 에미라는 것이 쓸데없는 전화를 2시간이 넘도록 붙들고 있느라 딸의 애간장을 태웠을 생각을 하니 미안하고 속상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를 심정이었다. 서둘러 문자를 넣고 그로부터 나는 눈먼 고기가 되어 문자낚시에 장장 4시간 동안 끌려 다니게 되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의 덕을 본 걸까? 휴대폰의 앱 설치 기능 등을 할 줄 몰라서 더듬거리다가 마지막 추락 일보직전에서 구출 되었다.
초장에 주민등록증은 사진 찍어 보낸 후였고 그 후속으로 지시가 찍히는데 아무리 하라는 대로 해도 그 필요한 화면이 뜨지 않고 스르륵 지나가 버리는 바람에 화를 면했으나 그 순간에는 따라가지 못 하는 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무슨 서류를 빨리 해서 어디 보내야 하는데 인증이 필요하다고 절절히 찍어 오는데 에미가 서툴러서 딸 진을 빼고 있다는 자책감과 미안함, 딸의 일이 그르치게 될까 봐 드는 조바심 등으로 진땀이 나고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사무실로 달려 나가겠다고 하니까 그렇게라도 해 달라고 찍혔다. 그제서야 동네 휴대폰 가게에 가서 도움 받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딸에게 물었더니 가게에 가서 문자 달라고 하고 끊었다.
달려나간 휴대폰 가게 주인이 사기라며 딸에게 전화를 걸어보란다. 고장 났다지 않느냐고 도리질을 치는 내게 글쎄 거짓말이니까 빨리 걸어 보라지 않는가? 후들거리는 손가락이 마지막 번호를 누르자마자 천연덕스런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저앉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집앞 버스정류장에 내리려는 중이라는 아이는 왜 그러냐고 묻는데 분위기가 경쾌하기 그지없다.
보이지 않는 낚시를 물어보려고 소리에 따라 춤을 추던 눈먼 고기는 이렇게 낚이지는 않는 행운을 얻었다. 정신을 차리고 검색해 보니 장장 4시간의 악몽이었다. 자식이 무엇이기에 그 아이가 필요하다니까 앞뒤 잴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매달렸던 4시간, 이것이 부모라는 자화상이라면 너무 심한 비약이려나? 그동안 온 나라를 들쑤시던 일들 중에 우리네 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온갖 추태로 나라를 뒤흔들었다. 그들 역시 오늘의 이 아낙 같은 그저 자식에게 눈먼 한 마리 고기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아니 오히려
더 했을지도 모른다는 자성이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딸이 즉시 온갖 신고와 대처로 금융 사고는 당하지 않게 조치하였다. 범죄자들의 손에 주민등록증이 들어가 사진까지 보이게 되었음이 불쾌하기 그지없으나 감사의 기도에 덮여버렸다.
그래도 눈먼 고기의 심정을 이해하는 딸의 태도를 보니 이제 눈을 감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안도의 숨 한 자락 평화롭게 쉬어진다.
첫댓글 보이지 않는 낚시를 물어보려고 소리에 따라 춤을 추던 눈먼 고기는 이렇게 낚이지는 않는 행운을 얻었다. 정신을 차리고 검색해 보니 장장 4시간의 악몽이었다. 자식이 무엇이기에 그 아이가 필요하다니까 앞뒤 잴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매달렸던 4시간, 이것이 부모라는 자화상이라면 너무 심한 비약이려나....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온갖 추태로 나라를 뒤흔들었다. 그들 역시 오늘의 이 아낙 같은 그저 자식에게 눈먼 한 마리 고기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본문 부분발췌
자식 앞에서 부모는 눈먼 고기가 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자식의 일이 아니라면 앞 뒤 재고, 따지고 분석하고 예측하느라 ... 쉽게 미끼를 물지 않을 터인데.. 자식의 일이라 생각하면 덥석 미끼를 물고 마는 것.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는 앞뒤 안가리고 눈먼고기가 될 본능을 지니고 있는 듯 합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퍼 나르신 조성순 선생님의 수고로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