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석문화의 흔적을 찾아보다(1)
●해운대 구석기유적지 기념비는 햇살공원에 세워져 있는데, 유적은?
자료출처 : 해운대구청 홈페이지 해운대문화관광 문화유산 구석기유적 소재지 : 해운대구 중동 59번지 / 좌동 933번지
부산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청사포와 해운대신시가지의 좌동 및 중동유적은 부산의 역사를 지금까지의 신석기 시대에서 구석기 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또한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어 이 시대의 한·일 문화교류와 문화전파 경로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992년 12월부터 1993년 4월까지 약 5개월간 조사된 이 유적은 해운대 신시가지 개발계획에 따라 부산시립박물관의 예비조사를 거쳐 좌동과 중동 2개 지점에서 확인 발굴되었다. 직선거리로 약 300m를 이웃한 이 유적들은 해발 40~50m높이의 구릉에 펼쳐져 있고, 이곳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1만5천년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후기 구석기 유물들이 약 300여점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특징적 석기로는 좌동의 경우 긁개와 홈날 그리고 석재로 사용된 몸돌들이, 그리고 중동의 경우는 후기구석기 가운데서도 말기 양상으로 볼 수 있는 돌날몸돌, 돌날, 소형의 찌르개가 있다.
●해운대 구석기이후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선사유적 찾을 수 있다.
역사와 문화는 함께 간다. 모든 것에 역사적 유래가 있고 마을마다 문화유산이 있다. 그런데 해운대 축제는 있으나 역사는 보이지 않고, 넓이의 행정 없는 듯한데, 높이의 행정 요란하다. 흔히들 돌을 무지나 어둔함, 그리고 무언에 빗댄다. 그러나 인간의 슬기가 스며들었을 때, 돌은 ‘불멸의 상징’이나 ‘수호신’ 으로 둔갑되기도 하고, 말도 한다. 그래서 버려졌던 큰 돌들이 인간의 주목을 받고, 인간은 이러한 돌들과 긴 시간여행을 떠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거석(巨石)이란 선사시대(先史時代)에 무엇을 기리거나 상징하기 위하여 큰 돌로 만든 구조물, 즉 거석기념물을 말하며, 이러한 거석기념물을 수반하는 여러 문화를 통칭 거석문화라고 한다. 원래 거석기념물은 유럽의 대서양 연안지대에서 발견된 거석분묘나 원시 신앙과 관련된 각종 거석유물을 가리켰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거석유물들을 통틀어 일컫고 있다. 거석문화는 대체로 신석기 시대에 출현하여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시대 초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 생존해 온 끈덕진 문화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최근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시아의 일부 도서 지방에서는 여전히 거석기념물을 축조하는 이른바 ‘살아있는 거석문화’가 남아있어 생생한 연구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거석기념물은 지역에 따라 조성 편년이나 형태 및 기능이 조금씩 다르지만, 총체적인 유형은 비슷하다. 긴 기둥 모양의 돌 하나를 지상에 수직으로 세운 멘히르(독석)와 돌기둥을 두 개 세우고 그 위에 평평한 돌을 한 개 가로 얹은 트릴리톤, 그리고 돌을 여러 개 세운 위에 평평한 뚜껑돌을 얹은 돌멘이 있다. 일명 지석(支石) 혹은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이 돌멘은 좁은 의미에서 거석기념물을 대표하리만큼 거석기념물 중에서 가장 많고, 또 분포지역도 제일 넓다. 다음으로, 돌멘 앞에 큰 돌로 출입하는 통로를 만들고 봉토를 쌓은 코리도툼과 기둥 모양의 돌을 여러 줄 배열한 알리뉴망(열석), 여러 개의 돌을 일정한 간격에 따라 원형으로 둘러서게 한 크롬렉(환상열석)도 있다. 그밖에 사람의 형상을 한 석상도 거석기념물에 속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영국 스톤헨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솜씨에 의해 문명의 화신으로 탈바꿈되어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거석은 고대인의 묘장법(墓葬法)을 증언하기도하지만,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남근숭배와 관련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제단 주위에 배치된 거석은 종교적 행사용이고, 원형의 크롬렉은 태양 숭배를 의미하며, 어마어마한 거석은 악마로부터 시체나 영혼을 수호하기 위한 성역(聖域)으로 풀이된다. 이와 더불어 육중한 거석은 위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기능과 의미 때문에 거석기념물은 하나의 보편성을 띤 복합적 문화를 형성하고 장기간 존속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고인돌은 모양에 따라 크게 탁자식(북방식), 바둑판식(남방식), 개석식으로 나뉜다. 탁자식 고인돌은 지상에 판석을 세워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것으로, 주로 한강 북부와 만주지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남방식 고인돌은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땅 위에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것으로 주로 한강 남쪽 지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개석식고인돌은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었지만 받침돌 없이 무덤방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린 것이다. 고창과 화순, 강화의 고인돌은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유적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 장산 어딘가 거석문화의 상징인 고인돌이 있지 않을까? 거석유물은 주로 큰 바다와 인접한 곳에 밀집되어 발견된다. 태양과 달 등 자연숭배사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남방의 양석(陽石)해양문화의 소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바다와 연결된 산이 있는 곳 해운대의 장산 어디에서 찾아보려하는 것이며, 구석기유적이 발견된 곳으로, 수많은 너덜을 갖고 있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정된 산 이기로 더욱 확신을 갖고 찾아 나서는 것이다. 상산마고당과 장산국기의 여지도를 연관지어보면 조선중엽까지는 장산이 아닌 상산으로 불러왔던 것으로 추정되며 장산국기도 지도상 동남단에 위치된 것으로 보아 설화상의 장산국과 지도상의 장산국기는 다른 곳일 수 있음에 착안하여 탐사해보는 것이다. 또한 한자어의 표기상 기(基)와 묘(墓)의 글자체가 비슷하여 장산국기로 표현된 곳이 어쩌면 장산국의 묘지 등 거석기념물의 위치표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벌써 20여회를 넘게 찾게 되었다. 신라에 복속된 패망장산국의 족장과 그 가족들의 무덤은 어떤 형태로 만들어졌을까? 東夷族의 묘장법인 돌무덤형태일 수도 있고, 받침돌 없는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을 올린 그런 고인돌이었을 수도 있고, 매장하여 선돌만 세웠을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탐사의 성과를 위한 발걸음은 자주하겠으니, 지역주민님들께서는 관련 정보 있으시면 연락 주셔서 장산국의 선사문화유적을 확인해가는 일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도록 희망 가꾸어 나가자.
옥숙표 / 장산보존시민네트워크 부위원장 |
첫댓글 장산국의 터는 도시화로 찾지못하더라도 그들의 무덤은 남아 있을 터이니 희망 가져봅시다.
청사포 그린레일웨이를 걷다보면 구석기유적지를 볼 수 있습니다. 장산의 구석기 유적 일반인인 저의 시각으로는 이주 많습니다.